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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29화 (29/223)

※ 029화

띵,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혔다. 남자가 숨을 크게 내쉬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권도언 길드장님, 릴림 공격대장님, 그리고 차현 길드장님과 여례 길드장님도.”

방금 전까지 소리를 질렀던 남자라고는 믿을 수 없는 어투였다. 하영주가 슬쩍 눈을 가늘게 떴다. 남자가 절도 있는 발걸음으로 다가가 권도언과 백리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까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던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예의 바른 자태였다.

“네, JJ에서 나오셨다고요. 얘기는 다 들었어요.”

“아하! 역시 아시는군요. 네, 길드장님도 알다시피 JJ는 뉴욕 최초의 길드이자, 세계 최초 포션 제작권을 가진 유일무이한 글로벌 길드입니다. 전 세계에 이 정도의 독보적인 효과를 보일 수 있는 포션은 아마 저희 JJ의 것이 유일할 겁니다.”

남자의 청산유수 같은 말이 계속 이어졌다. 약속을 잡아 주셔서 영광이고, 앞에서 왔을 때 건물이 크고 높아서 놀랐고, 역시 여파의 자본력은 어마어마하고…….

포션에 대한 찬양이 끝나고 이제 물건을 보여 줘야 하는 그때, 남자가 데아의 팔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소파에 기대어 앉아 있던 백리서와 권도언, 그리고 훈련부장의 표정이 한 번에 이상해졌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길드장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 길드원은 오늘 저에게 이곳을 안내해 준 사람입니다.”

권도언과 백리서의 표정이 요상해지든 말든 남자는 미간에 힘을 주고는 또박또박 말을 뱉었다.

“그때 제 가방을 들어 준 이 길드원의 실수로 이, 보이십니까?”

남자가 자신의 가방을 펼쳐 보였다. 처참한 모습의 포션병의 모습이 모두의 앞에 노출됐다.

차현이 도와주고 싶은데 구실이 없어서 안타깝다는 듯이 데아를 쳐다보았다.

“해당 포션은 한 병에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상등품입니다. 이번 거래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모두가 예상할 정도였죠. 전 세계에서 선주문이 어마어마하게 들어오고 있지만 물량이 확보되지 않아 VIP 고객들에게만 먼저 제공되는 아주 귀한 제품인데……. 그런데 이 길드원의 실수로…….”

“아뇨. 전 포션병을 깬 적이 없어요.”

그때 데아가 대꾸하자 남자의 인상이 대번에 험악해졌다.

“이분이 저한테 가방을 던지듯 넘겨주었고 저는 계속 한자리에서 들고 있다가 다시 건네준 게 다였어요. 그 이상의 일은 모릅니다.”

“맞아. 나도 봤어. 이데아 씨는 얌전하게 들고 있었지, 아마?”

그제야 기다렸다는 듯이 차현이 말을 얹었다. 남자의 얼굴에 당혹감이 가득 찼다.

“차, 차현 길드장님…….”

말꼬리를 늘이던 남자는 이내 화살의 끝을 데아에게로 돌렸다. 남자가 손가락으로 데아의 이마를 쿡쿡 누르기 시작했다. 또 골이 울렸다.

흔들리는 시야 너머로 표정을 차갑게 굳힌 백리서와 ‘어어?’ 하며 황당해하는 권도언, 그리고 사색이 된 훈련부장의 모습이 보였다.

“너, 너 자꾸 모른 척할래?!”

남자는 겨우 붙들고 있던 한 줌의 이성마저 날려버린 듯했다. 하영주가 서둘러 제압했지만 남자도 낮은 등급의 헌터는 아닌 듯, 하영주의 손을 피해 이제 데아의 어깨를 거세게 밀치고 있었다.

“당장 멈추시죠.”

보다 못한 백리서가 벌떡 일어나자 남자가 슬쩍 움츠리며 씨근거렸다. 그러더니 혼자 심호흡을 하곤 평온을 가장한 얼굴로 백리서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저는 거래를 원합니다.”

“하아… 무슨 거래요?”

들어줄 생각은 없지만 말은 해보라는 듯 백리서가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고개를 까닥였다.

하영주가 후다닥 안겨 오는 데아를 안았다. 붉어진 그의 이마를 보더니 ‘저거 미친 새낀가 봐. 미친 놈, 미친놈.’ 하면서 욕을 했다. 그러나 남자는 못 들은 듯이, 백리서가 원하는 것을 말하라는 바로 이때를 바라왔다는 듯이 눈을 빛냈다.

“저도 길드 여파가 망가진 포션을 책임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겨우 말단 길드원의 실수인걸요. 얼마나 상심이 크시겠습니까. 좋게 넘어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하! 그러나 처음 JJ 길드가 포션을 대가로 요구하려 했던 거래 사항은 꼭, 꼭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거래 사항?”

더 말해 보라는 듯이 권도언과 백리서가 침묵했다. 데아는 자신의 이마를 문질거리는 하영주의 손길을 느꼈다. 하영주가 속삭였다.

“저 미친놈 뭐라는 거니?”

“언니, 다 들려.”

“들으라 그래.”

“현재 뉴욕에 A급 던전이 발생했다는 소식은 이미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아, 그 터미널 던전.”

“네, 맞습니다. 공략하지 못한 지 벌써 25일이 되어가죠. 이제까지 나온 던전 중 가장 높은 난도이고, 던전 포화도 5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아주 촉박합니다.”

“네, 그래서요?”

“뉴욕에는 공격력이 높은 헌터는 많습니다. 사냥은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도무지 공략법을 알지 못해 헤매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저희 길드장님께서 길드 여파에 소속된 한 헌터의 지원을 원하셨습니다.”

“네.”

“그래서 저희 JJ 길드는 포션을 대가로.”

남자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거래라는 듯이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5일간 샤샤 헌터의 지원을 요청하고 싶습니다.”

“…….”

훈련부장과 권도언, 그리고 백리서의 눈동자가 동시에 데아에게 은밀하게 와 꽂혔다.

“등신.”

하영주가 작게 읊조리자 툭, 데아가 빠르게 옆구리를 쳤다.

“최소한 만나게라도, 아니 전화라도 해주셨으면 좋겠군요. 설득은 자신 있습니다. 요청드립니다. 물론 모른 척하시지는 않겠죠? 설득은 자신 있습니다.”

남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권도언의 시선이 빠르게 데아를 향했다가 사라졌다. 그 안에 담긴 건 웃음이었다.

어떡할래.

“헌터와 관련된 사항은 헌터의 의사가 가장 중요합니다. 특히 샤샤 헌터는 저희 길드 쪽에서도 어렵게 섭외한 인재라서요.”

“만나게, 만나게만이라도 해주십시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추후에 반드시 저희 JJ 길드의 더한 보상과 우호적인 관계로 은혜를 갚겠습니다.”

권도언이 귀 위쪽을 꾹꾹 눌렀다.

“그리고 현재 샤샤 헌터는 저번 던전 공략 포상 휴가를 받은 참이라 길드에 없습니다. 하지만 연락은 따로 넣어 드릴 수 있죠.”

‘거짓말쟁이들아. 매일 여덟 시 출근하게 하면서 무슨 휴가야.’

데아가 입 모양으로 말하자 하영주가 입술을 바르르 떨며 꾹 다물었다.

“따로 연락… 말입니까? 지금 당장 전화를 드리면 안 되는 겁니까?”

“그건 좀…….”

“뭐, 그래요.”

“……?”

권도언이 승낙하자 백리서가 무슨 꿍꿍이냐는 듯 눈썹을 씰룩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권도언은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자기가 직접 통화하겠다며 손을 내미는 남자의 손을 거절했다.

“제가 직접 전화하죠. 우리 샤샤 헌터는 모르는 전화는 안 받아서.”

“아… 네.”

아니었다. 데아는 아는 번호도 귀찮으면 받지 않았다. 물론 말을 지어 낸 권도언은 그러거나 말거나 핸드폰의 전원을 켜서…….

꾹, 꾹, 꾹.

홈 화면 위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고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대었다. 수신인이 없는 통화. 전화를 하는 시늉…….

“어, 샤샤 헌터.”

권도언이 허공에 말을 걸었다.

‘너 뭐 하니?’

‘애쓴다.’

그런 권도언을 여파 소속 사람들은 대개 비슷한 눈으로 흘겨보았다. 데아의 안에서 길드장의 권위가 다시 한번 무너졌다.

“네. 그래서…….”

한참 동안 지금 상황을 요약해서 말해 주는 척하던 권도언은 씩 웃으며 데아와 눈을 마주쳤다. 데아는 저도 모르게 등을 곧게 폈다.

“…하고 싶어요?”

아.

완벽한 방관의 현장 안에서 데아는 자신을 향한 날카로운 신경들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닌 척, 자신의 반응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 자신의 헌터명을 아는 사람들은 고요하게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데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권도언과, 백리서, 그리고 훈련부장을 바라보다가 슬그머니 뒤로 한 걸음 빠져나왔다. 다른 길드장들의 시야가 다른 곳으로 향할 때에 맞춰, 중년 남자가 절대로 자신을 보지 못할 사각지대 안에서 싱그럽게 웃고는.

‘지랄하지 말라고 해요.’

고개를 거세게 가로로 흔들었다. 권도언의 긴 눈매가 웃음을 머금었다.

“싫다는군요.”

탁!

전원을 끈 권도언이 탁자 위로 휴대폰을 던져버렸다.

“네?”

중년의 남자가 황망하게 중얼거렸다.

“그럴, 아니 제가 직접 통화를 해보겠습니다.”

하지만 데아의 의지는 확고했다.

‘내가 당신의 부탁을 왜?’

아직까지 손가락으로 눌린 이마가 욱신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내가 샤샤고, 난 당신의 요구를 들어줄 마음이 미래에 당신 머리 위에 남을 머리카락만큼도 없다고 일갈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

“오호… 샤샤 헌터가 좀 냉철한 편인가?”

“이해는 가. 만나 보지도, 들어보지도 못한 길드의 출장 지원이라니, 굳이 신비주의를 지키고 있는 헌터 입장에서는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겠지.”

그렇게 꿍얼거리는 두 명의 길드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차현과 여기은. 물론 두 길드장의 존재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옳은 선택이야. 대부분의 세계가 난항을 겪는 이 시기에 수없이 지원 요청이 왔을 텐데, 상대적으로 빈곤한 나라들을 버려두고 콕 집어 뉴욕에, 심지어 꽤나 부유한 길드의 요청을 보란 듯이 승낙한다면 여론 몰이 당하는 건 순식간이지.”

“아하, 역시 거절에는 이유가 있다 이건가? 생각 외로 신중하잖아?”

“그렇네. 생각보다 대단한데.”

아니다. 데아는 거기까지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

이윽고 데아는 남자가 무릎을 꿇고 비는 틈을 타서 하영주와 길드장실을 나왔다. 더 듣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진짜 이상한 사람 아니야? 뭐 저런 인간이 다 있지?”

“그러게 말이야.”

“큰 길드에서 나와서 괜찮은가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고. 뭐야? JJ 길드는 뭐 저런 사람을 보냈지?”

“JJ 길드…….”

하영주가 삑, 삑,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왜, 데아야. 뭐 이상한 거라도 있어?”

“아니, 어디서 들어본 것 같아서.”

“아아, 좀 유명하긴 해. 길드장도 S급 헌터고, 포션 제작에서 일등일걸. 저번에 내가 너한테 보여 줬던, 말하는 인어 봤다는 괴담 썰, 기억해? 인어 이름이 피파…였던가? 아무튼 그 인어한테 포션 받은 헌터가 그걸 기증한 곳이 저 JJ 길드 산하 연구소야.”

“아…….”

말하는 인어. 피파. 피파글렌.

“그래서 익숙했구나.”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데아야, 안 내려?”

하영주가 기숙사 층에서 열린 엘리베이터 너머에서 말을 걸었다. 잠시 침묵하던 데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잠시 밖에 나가서 뭐 좀 사오려고.”

“그래. 그럼 나 먼저 들어갈게!”

엘리베이터가 닫혔다.

모두가 샤샤를 원하는 때였다. 데아는 길드 안에만 있었음에도 자신의 헌터명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지금 온 세상은 희귀 스킬 소유자인 샤샤가 S급 헌터였다는 점에 열광하고 있었다. 이토록 혼란스러운 시기, 해외에서는 하룻밤 사이 인어에 의해 마을이 괴멸되는 사건까지 벌어지는 이런 때에 한국에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강자가 나타났다는 것에 안도하는 것 같았다.

‘S급 스킬을 공개한 게 잘한 일일까?’

―괜찮아. 잘한 거야. 어쩔 수 없었잖아?

그때 경배가 조곤조곤 속삭였다. 한동안 말이 없더니 이제 좀 살 만한 모양이었다.

―인간들은 의심이 많고 악독해. 어느 정도 패를 보여줌으로써 위기를 넘겼으니 됐어. 자기는 최선을 다했어.

“그래, 고마워…….”

의도치 않게 또 태풍의 눈에 우뚝 서있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방안은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공개할 다른 공격 스킬도 없었고.

데아는 1층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버튼을 가만히 응시했다. 1층 아래, 지하 1층, 지하 2층…….

지하 3층.

지하 3층이 끝이었다. 여파 길드 건물에서 지하 3층보다 더 아래에 위치한 곳은 없었다. 그리고 데아가 알기론 지하 1층과 2층은 부품실과 지하 주차장이었다.

지하 3층은… 한 번도 간 적 없는데.

“길드가 세워진 곳 아래에서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는 걸 아니? 무슨 실험인지 궁금하지 않아?”

의뭉스러웠던 이상한 인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며 휘던 둥근 안경 속의 눈이 불쾌했다. 결국 제대로 된 답은 바다 밑으로 오라는 말밖에 하지 않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아는 지하 3층을 눌렀다. 충동이었다.

“…….”

잠시 1층에 멈췄다가 아무도 태우지 않고 다시 닫힌 엘리베이터는 그대로 지하 3층으로 하강했다. 붉은 불빛이 꺼지고 띵, 소리를 내며 열린 엘리베이터가 밝은 빛을 어둠 속에 흩뿌릴 때까지 데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이 흐른 후, 천천히 고개를 든 데아가 마주한 것은.

“뭐야…….”

평범한 지하 주차장이었다. 오늘은 사람이 없는지, 듬성듬성 세워진 자동차가 을씨년스러웠다. 김이 빠진 데아를 태운 엘리베이터는 그대로 위로 올라갔다.

◈          ◈          ◈

“릴림 공격대장님.”

백리서는 고개를 돌렸다. 분명 데아와 함께 밑으로 내려간 줄 알았던 하영주가 길드장실로 올라와 있었다. 최악으로 끝난 회의가 마무리되고, 자리를 떠나지 않으려던 남자에게 축객령을 내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여기… 혼자 계십니까?”

“네. 길드장님을 찾으시나요?”

“아, 그건 아닙니다.”

하영주는 백리서를 껄끄러워한다. 모든 상사를 대하는 직장인이 그러겠지만, 하영주는 이전부터 백리서에겐 상사 이상의 벽을 느끼곤 했다. 그래서 그가 더없이 불편했다. 그건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괴리감이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가끔 하영주는 백리서가 자신을 부하나 아래 직원, 혹은 길드원이 아닌 지나가는 풍경 중 하나로 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합리적인 의심을 했다. 그리고 그건 자신뿐만이 아니었다. 가비, 가윗, 그 어떤 사람이든 모든 사람들이 백리서에게 그러했다.

백리서에게는 모두가 수단이었다.

하영주는 침착함을 유지했다. 백리서의 표정이 더없이 서늘했다.

“이데아 헌터에 대해 보고할 것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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