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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28화 (28/223)

※ 028화

“머리는 다듬으신 건가요?”

하반신 생선이 물어가 버린 오른쪽 머리를 말하는 듯했다.

“…아뇨, 아직.”

“귀하신 분인데 당연히 사드려야죠. 그런데 웬 커피예요?”

“심부름이요. 그런데 오늘 지각하신 거예요?”

저 멀리서 자신을 경탄하듯 바라보는 편의점 알바생의 시선이 느껴졌다.

‘상사에게 그런 말을?’이라고 말하는 듯한 눈길이었다.

알바 자리만 아니었다면 그는 혀를 내둘렀을 것이다.

하지만 데아는 카메라 뒤에서 백리서와 손가락 욕을 하며 깐족거리는 권도언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불과 며칠 전의 일이었다. 백리서가 자리를 피해버려서 그 권도언의 손가락 욕이 고스란히 백리서 뒤에 있던 데아에게 향하게 된 것도, 저도 모르게 마주 손가락을 올려 욕을 한 것도 며칠 전 일이었다.

이상한 취향이라도 있는 건지, 권도언은 데아에게 욕을 얻어먹고도 환하게 웃었다.

‘변탠가…….’

그렇다. 데아의 안에서 권도언은 길드장의 권위가 없었다.

“뭐, 저도 사람인 이상 그럴 때가 있죠.”

권도언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하긴, 그렇죠.”

A급 던전을 공략하고 나온 지 벌써 3일이 지났다. 가끔 들어가 본 커뮤니티 ‘헌팅’ 안에서 자신의 이름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연관 게시물의 숫자에 0이 하나 더 늘어나 있어서 얼마나 놀랐던가.

“잠깐, 사과문.”

“무슨 사과문이요?”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감히 자신을 사칭한 음침한 남자의 신분증은 현재 기숙사 방 외투 주머니 안에 고이 잠들어 있었다.

‘사과문 확인을 깜빡했네.’

데아는 생각난 김에 바로 핸드폰을 켰다. 그리고 해당 커뮤니티의 최상단 공지에 박힌 사과문 게시물을 보고 우뚝 굳었다.

댓글 9,989개

“…….”

그래, 돌려줘야겠다. 데아는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깊고 넓은 아량을 느끼며 가볍게 웃었다.

“그나저나 길드장님도 많이 피곤하셨나 봐요. 이렇게 옷도 흐트러져 있고…….”

데아는 끝이 약간 접힌 권도언의 셔츠를 잡고 밑으로 팡, 당겼다. 남의 매무새를 신경 써주는 것. 병동 안에서 정이 많던 한 환자의 영향이었다.

데아는 권도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급하게 뒤를 돌아보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팡팡 두드려 마저 주름을 폈다.

그러자 뒤로 뻗었던 권도언의 뒷머리도 시야에 들어왔다. 평소에는 빈틈없던 사람이 오늘따라 왜 이런지 모르겠다.

“아, 잠깐만 뒤로 돌아 보세요.”

권도언이 순한 양처럼 뒤를 돌자 까치발을 들어 그의 뒷머리를 툭툭 두드려 머리카락을 내려 주었다. 권도언과 알바생이 동시에 움찔거렸지만 데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냥 정돈이 안 된 거였던 건지 조금만 건드리자 머리카락은 얌전하게 펴졌다.

“…제가 그렇게 단정하지 못했나요?”

“아니, 그냥……. 왜요?”

“아뇨, 뭐…….”

뒤이어 권도언이 푸흐흐 웃었다.

“귀한 헌터님께서 그렇게 말씀 주시면 한낱 길드장은 눈치가 보여서요.”

뭐래.

“늦잠 자서 그래요 용서해 주세요.”

“무슨 용서까지 빌어요.”

“그렇지. 사과의 의미로 뭘 사드려야지. 데리야키요?”

“아, 네.”

권도언은 손에 데리야키 핫바 하나를 들고, 청양고추와 닭가슴살 핫바를 제치고 뒤에서 치즈 핫바를 하나 더 꺼냈다.

“저는 치즈가 좋아요. 원래 좋아해요.”

“그렇군요.”

궁금하지 않았지만 말을 하니 호응을 해주었다. 그때 권도언이 옆의 음료수 칸으로 가 문을 열었다.

“음료수는 안 드세요? 저 이데아 씨한테 잘 보여야 해서 원하시는 건 다 사드려야 하는데.”

“그래 봤자 편의점 안이면서.”

“봐줘요.”

“편의점 전부 다는 안 돼요?”

“크게 되실 분이네.”

그러곤 그가 매끈거리는 낯짝을 한층 더 반짝거리게 다잡더니 데아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시원하게 입을 위로 올려 웃는 게 아닌가. 저 멀리 편의점 알바생의 ‘이야―’ 하는 배부른 탄식이 들려왔지만 데아는 인상을 찌푸렸다.

싼 거 고르라 이건가.

“그럼… 전 이거요.”

1+1 하는 레모네이드 캔이었다. 권도언이 물끄러미 그걸 보더니 비슷한데 더 맛있는 걸 안다며 다른 캔을 꺼내 들었다. 파란색 점박이가 콕콕 찍혀 있는 블루 레모네이드 캔이었다.

권도언은 옆의 다른 캔 커피 하나를 더 손에 쥐더니 순식간에 결제를 마쳤다.

그리고 빨대를 꽂아 블루레모네이드를 쪼옵 마신 데아는…….

“와.”

혀 위에서 혁명의 축제가 일어난다는 것이 뭔지 깨닫게 되었다. 입속에서 톡톡 터지는 청량감, 연동 스킬에 대해 고민했던 것이 전부 과거였다는 듯이 잔걱정이 한 번에 사라지는 시원함이 뇌를 감쌌다.

충격에 얼어붙은 데아를 지나친 권도언은 그럼 길드에서 만나자는 말만 남기고 사라졌지만, 데아는 아메리카노를 공략 1팀 팀원들에게 건네주고도 블루 레모네이드 한 캔을 한참 동안 홀짝였다. 데리야키 핫바는 뜯지도 않은 채 말이다.

◈          ◈          ◈

그렇게 맞은 오후 다섯 시, 이른 저녁을 먹기 위해 길드 밖으로 향하던 데아는 로비에서 사람들의 시선과 안내를 받으며 당당하게 들어오는 세 명을 볼 수 있었다.

차현. 길드 023의 길드장이자 S급 헌터.

저번 헌터 연구 센터 앞에서 마주치고 처음으로 보는 익숙한 얼굴에 데아는 기둥 뒤로 몸을 가렸다.

‘내가 왜 숨지?’

그러나 행동은 착실하게 본능을 따랐다. 데아는 차현 옆에 있는 두 사람을 흘끗거리며 지켜보았다.

따분한 기색으로 천장을 보는, 키 작은 젊은 여자 하나. 그리고 초조한 기색으로 손에 들린 서류가방을 연신 매만지며 한숨을 쉬는, 예민한 이미지의 안경 쓴 중년 남자 한 명이었다.

‘무슨 일이지?’

그때 키 작은 여자가 데아 쪽을 향해 휙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마주치는 건 한순간이었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데아는 무시하고 넘어갈 생각이었다. 우선 배가 너무 고팠고, 밖에는 자신을 기다리는 하영주와 가윗이 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찾았네! 당신이지? 안내해 준다는 사람!”

“네?”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동료들의 생각은 안경을 쓴 중년의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와 자신이 들고 있던 가방을 가슴팍에 팍 던지듯 넘겨준 순간 끝이 났다.

데아가 당황하자 남자는 확신에 찬 듯 짜증스럽게 데아의 머리를 툭툭 치기 시작했다.

“……?”

골이 울렸다. 그때 차현이 데아를 알아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시간이 몇 시인데 이제야 나옵니까? 머리카락은 왜 이래? 그나저나 미리 10분 전에는 대기를 하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여파 길드 길드원 교육이 원래 이래? 나오는 게 보디가드밖에 없어?”

“네? 무슨…….”

“무슨 소리긴 무슨 소리야. 뉴욕 JJ 길드 알아요? 들어봤죠? 난 그곳에서 나왔습니다. 당장 길드장실로 안내하세요. 사람을 불러 준다고 했으면 진작에 들여보내 줄 것이지, 말도 없이 바쁜 사람 기다리게만 하는 건 어디 예의야.”

“어? 데아 씨 아니에요?”

차현이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데아는 그를 향해 뻣뻣하게 고개를 숙였다. 순간 중년의 남자 얼굴에 난처함이 스쳤다. 설마 자신이 무례하게 대한 상대가 길드장 ‘차현’의 아는 사람일까, 긴장한 기색이 또렷했다.

“네, 안녕하세요.”

“아, 맞네. 이분은 이데아 씨라고 길드 여파의 훈련 보조원입니다. 안내원이 아니라……. 후, 인사하세요. 그리고 저기 여기은 길드장님도.”

여기은?

길드 여례아의 길드장 ‘여례’ 여기은. S급 마법 계열 원거리 공격 헌터였다. 키가 작고 짧은 단발머리를 한 여자는 아까 전부터 데아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여기은의 입술 아래 찍혀 있는 점이 시선을 잡아끌었다.

데아는 들었던 여기은의 정보와 경고를 끄집어냈다.

여기은 22세. 사람을 오로지 수단으로 보며, 1위 길드에 대한 커다란 욕망을 품고 있는 자였다. 여례아를 국내 1위 길드로 만들기 위해 온갖 상식 이하의 짓을 벌였지만, 결국 여파에게 1위 자리를 내어 준 현 상황에 대해 큰 불만을 품고 있다고.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직 전투도, 경영도 경험이 적고 나이도 어려 뭘 작당하든 어리숙한 느낌이 난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그 상식 이하의 짓거리들이 언론에 노출되지 않았던 이유는 단 하나. 여기은이 국내 최대 기업 ‘상연 SY’의 외동딸이었기 때문이다.

거대 기업 상연 SY의 대주주이자 회장인 여기은의 어머니는 하나뿐인 딸을 전력을 다해 푸시해 주었다.

배후에 거대한 자본과 권력을 드리우고 S급으로 각성해 단숨에 기업 안에서도, 세계에서도 큰 영향력을 끼치게 된 여기은은 콧대가 드높아져 눈에 뵈는 게 없어졌고…….

여기까지가 백리서에게 전해 들은 내용이었다. 그래서 매우 깐깐할 거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 예상보다 그렇게 보이진 않았다. 그냥 예민한 고양이상이랄까.

“…….”

그래도 비상하게 눈치가 빠르다고 들었으니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

그때 여기은이 고개를 까닥였다. 데아도 마주 고개를 까닥였다. 차현이 입을 열었다.

“저랑 여기은 길드장님은 길드장 회의가 있어서 왔는데… 여기 이분은 먼저 오신 모양이더라고요. 이 앞에서 서성이는 걸 들여보내 줬더니 설마 길드원 머리를 툭툭 칠 줄은 몰랐네요. 뭐, 길드 JJ 문화가 좀 그렇나 봐요? 괜히 미안해요. 데아 씨.”

“아뇨, 길드장님이 그런 것도 아니고…….”

여실히 빈정거리는 어투에 남자의 얼굴이 붉어졌다.

“저희는 릴림부터 만나야 해서 따로 올라가면 되는데, 이분은 따로 가야 해서……. 데아 씨, 혹시 바쁘지 않다면 안내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손님 대기실로 모시면 되죠?”

“네.”

주변을 둘러보았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사람들이 우르르 데아의 시선을 피했다. 안내할 만한 사람은 자신밖에 없어 보였다.

게다가 엘리베이터는 코앞이었다.

후딱 버튼만 눌러 주고 나와야지.

“네.”

“정말 고마워요.”

차현이 사람 좋게 웃었다.

데아는 차현과 헤어진 후, 가방을 다시 남자에게 돌려주었다.

“길드장실은 52층이에요. 그리고 대기실은 51층에 있을 거예요. 그냥 누르고 올라가서 내리시면 돼요.”

데아는 길드장실 층 버튼만 눌러 주고 문이 닫히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쏙 몸만 빼냈다. 닫히기 직전, 그 안에서 어이없어하는 중년 남자의 표정이 시야에 잡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데아는 가뿐한 마음으로 밖으로 나가 하영주와 가윗과 만족스럽게 차돌박이를 먹었다. 그리고 다시 길드로 돌아와 엘리베이터에 오르는데.

“너!!”

“……?”

아까 만난 중년 남자가 사색이 된 얼굴로 데아의 팔을 움켜잡았다. 옆에 서있던 하영주가 떼어 내려고 했지만 남자는 막무가내였다.

“한참을 찾았네. 네가 그랬지!!”

“네?”

남자가 자신의 가방을 펼쳤다. 그 안에 있던 건 여섯 개 묶음으로 된 유리병이었다. 정성스러운 포장 용기에 담긴 고급 유리병들은 알루미늄 케이스 안에 한 번 더 밀봉되어 있었다. 그런데 죄다 깨져 있었고, 가방 안에서는 낯선 향이 풍겨 나왔다.

‘설마 이거…….’

남자는 붉으락푸르락하는 얼굴을 주체하지 못하고 데아에게 침이 튀도록 소리를 질렀다.

“포션! 포션이야! 내 가방을 든 사람이 너밖에 없는데 누구겠어! 네가 다 깼지?!”

같은 엘리베이터에 탄 사람들이 흘끗 쳐다봤지만 그는 신경을 쓸 정신조차 없어 보였다. 머리 위로 정신없이 물음표를 띄우고 있던 데아는 남자가 자신의 팔을 강하게 잡아 오자 무의식적으로 그를 팍 밀쳤다.

우당탕탕!

남자가 엘리베이터 벽에 부딪치고 바닥을 굴렀다.

주변에 정적이 흘렀다.

‘이 사람… 각성자가 아닌가?’

“…제가요? 어떻게요?”

일단 대사부터 쳐보자.

“아까 내 가방을 들었잖아! 실수로 어디에 부딪쳤거나 내 가방을 떨어뜨렸겠지! 너 같은 말단이 이 값어치를 알아? 이걸 어떻게 책임 질 거야? 이제 곧 거래 시작인데!”

남자가 과도하게 넘어진 게 창피했는지 벌떡 일어서 고함을 질러 댔다. 그때 하영주가 앞을 가로막았다.

“지금 여기서 이러실 게 아니라…….”

“정말 저밖에 안 들었던 거 맞아요?”

“그, 그래!”

“저한테 이 가방을 던지듯 주고 제 옆에서 안 떨어져 계셨잖아요. 그랬는데 제가 이걸 어떻게 깨요? 제가 집어 던지는 거 봤어요?”

“이, 새파랗게 어린 게 어디서 어른한테 말대꾸야?”

그때 띵, 소리를 내며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잘 생각해 보시라고요. 올 때부터 깨져 있던 건 아니고요?”

“그럴 리가 있나!”

“잠깐 가방을 든 저보다 저한테 그걸 던져서 준 아저씨가 더 이 가방을 험하게 다뤘는데, 왜 그게 제 탓이에요? 그때 깨진 거 아니에요?”

“그럼 내가, 내가 깼다는 거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남자는 데아가 내리지 못하게 그의 팔을 꼭 붙잡고 있었다. 남자의 얼굴에는 길드장실로 같이 올라가서 책임져야 한다는 열의가 이글거렸다.

“누나…….”

가윗이 불안하게 쳐다보자 하영주가 가윗보고 먼저 내리라 손짓한 후, 52층을 연타하는 남자의 손에서 데아의 팔을 빼냈다.

“헌터님.”

데아가 하영주를 올려다보았다. 그가 든든하고 안정적인 벽 같았다.

“길드장실 가려는 거죠? 같이 갑시다, 네. 길드원 팔은 빼주시고요.”

“이 책임은 전부 너희가 져야 할 거야. 포션을 왜 여기에 가져온 건데. 이게 얼마나 중요한 거래인 줄 알아? 이건 전 세계에 유통되지도 않은 포션이라고. 이걸 왜 여기 한국까지 가져왔는데. 뭘 위해서, 뭘 위해서…….”

그때 52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남자는 말을 그만두고 심호흡을 했다. 그의 얼굴이 딱딱해졌다.

들어선 길드장실 안에는 권도언과 백리서, 그리고 공략 1팀의 훈련부장과…….

“어, 데아 씨. 안녕!”

차현과 여기은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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