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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25화 (25/223)

※ 025화

툭 터져 나온 물음에 인어가 파도 속으로 입수하려던 몸을 멈췄다. 돌아본 얼굴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붉은 인어?”

데아는 빠르게 아는 것을 설명했다.

“여성체야?”

“…아니, 남성체.”

인어는 삐딱하게 입꼬리를 올리곤 다시 턱을 괴었다.

“으음… 왜?”

“…그냥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만 말해 줘.”

“정보를 구하려는 상대에게 할 말은 아니구나. 혹시 몇 년 동안 사회와 단절된 채 자랐던 거니? 인간들 중에 사회력이 떨어지는 인간이 가끔 이런 모습을 보이긴 하던데…….”

“…….”

“까칠하긴. 표정 풀어.”

인어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싶더니 고개를 기울였다. 관용을 베풀어 줄까 하는 표정이 그의 얼굴 위를 잠깐 스치고 지나갔다.

“네가 말하는 특징의 인어가 하나, 둘, 셋, 넷……. 많아서 잘 모르겠구나. 기다리면 언젠가는 인간 세상에 발은 디뎌 주겠지. 그런데 그전에 너희 인간계가 무너지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르겠고.”

“아니, 무슨. 뭐가 무너져?”

“그런데 왜 만나려고? 싸워서 죽이려는 생각이니?”

설마 약한 인간인 네가?

데아가 입을 다물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인어가 턱을 긁었다.

“인간의 다리를 만들 수 있는 인어는 다 강해. 지금 덤비면 네가 죽어. 기다리는 동안 훨씬 강해져서 때를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야. 복수라도 하는 거니? 뭐, 방관 정도는 해줄게.”

“하…….”

“그래도 너는 보기 드문 인간이니까 힌트 정도는 줄까. 대신 대가를 나에게 줘.”

“대가?”

‘역시 세상에 무료는 없다는 건가.’

데아가 긴장한 기색으로 인어를 노려보자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신체 일부 조금만 주려무나.”

뭐?

데아는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데아가 혼란스러워하든 말든 인어는 손을 휘둘렀다.

‘이렇게 그냥 공격한다고?!’

강력한 바람이 일시에 불자 ‘아니, 잠깐!’이라고 소리친 데아가 두 눈을 감으며 몸을 웅크렸다.

그러나 인어의 손에 잡힌 건 한 뭉텅이의 머리카락이었다.

“…….”

머쓱하게 일어난 데아가 인어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안 그래도 짧았던 머리카락 오른쪽이 휑하게 비어버렸다. 완벽한 비대칭 머리를 자랑하는 데아를 보던 인어가 유감이라는 듯 눈가를 찌푸렸다.

“널 연구하고 싶어졌거든. 그래도 손가락보다는 낫잖니?”

“대답을 아…주 잘 해야 할 거야.”

“그럼, 그럼.”

그래도 데아는 알고 있었다. 인터넷에 써진 그대로라면 눈앞의 인어는 단 일격으로 가뿐히 보스 인어를 물리친 아주 강한 인어였다. 지금 여기서 그가 덤벼 온다면 해변의 사람들을 전부 합쳐서도 이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자신이 건방져 보임을 안다. 머리카락으로 대가를 끝내고 질문에 대답을 해주겠다는 것이 그의 배려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기가 마음 한구석에서 자기주장을 했다.

그게 뭐? 상대는 인어다. 죽여 마땅찮을 인어다. 당장은 살갑게 보여도 그들은 인간의 목숨을 파리처럼 여긴다. 순식간에 마음이 술렁였다.

6년 전, 재밌어하며 가족을 처참하게 꿰뚫던 붉은 인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데아의 눈동자가 다시 날카로워졌다.

“그래서 대답은.”

“인어가 사는 곳을 알려 줄게.”

상상치도 못한 대답이었다, 놀란 데아의 표정에 인어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기다리기 싫다면 직접 찾아오렴. 우리 인어들의 제국으로 찾아와. 너희 인간들은 ‘창’을 ‘게이트’라고 부르지? 게이트를 통해 넘어온 던전 안의 바다. 우리들의 제국은 그 밑의 심해에 있어. 보통 인간이라면 불가능하겠지만, 너는 물속에서 숨을 쉬니까 가능할 거란다.”

“물속…….”

“우리들의 제국으로 오면 네가 찾는 붉은 인어도 만날 수 있을 거야. 물론 아직은 약한 인간인 네가 오면 그대로 산산조각 나겠지. 그러니까…….”

인어, 피파의 눈이 빛났다.

“강해져서 우리들의 제국으로 와. 왕궁에 누구보다 인간을 싫어하면서 우호적인 척 구는 재수 없는 폭군이 하나 있는데, 네가 와준다면 좀 재밌어질 것 같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냥 오라는 건 부정확해. 길을 잃을 수도 있고.”

“우리의 역사는 너희들보다 길어. 모든 심해에 우리가 있으니 길을 잃는다는 생각은 하지 말렴. 그저 빛을 찾아 밑으로 내려오기만 하면 돼. 비현실적이지만 인어들의 제국은 아주아주 크단다.”

“…….”

“바다의 폭포 뒤에 늪이 있고 안개 가운데 불구덩이가 있는 이곳이 그래서 던전인 거고.”

고개를 돌리니 나룻배를 탄 하영주와 가비가 가까워져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힘차게 노를 젓는 그들이 데아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데아도 마주 손을 흔들었다.

“…던전 바다 밑에 인어들의 제국이 있다는 거, 이 사실을 나에게 말해 줘도 돼?”

“내 걱정을 해주는 거니? 나를 만났다는 사실을 말하고 다니게?”

“…….”

“주목받는 게 좋다면 말하고 다녀도 좋단다. 모든 이의 시선은 너를 따르겠지.”

“…하긴, 안다고 해도 뭐 어쩌겠어. 우리는 물에 닿는 것도 기피하는데.”

“그렇지. 내 대답이 만족스러웠나 보구나. 처음 볼 때는 눈은 사납고 표정은 우중충해서 영 인상이 글렀다 싶었는데.”

생각보다 표정이 다양해서 재밌네.

인어가 몸을 움직였다. 가까워지는 하영주와 가비의 시선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로 몸을 옮기며 수면 아래로 조금씩 몸을 담갔다.

“어쨌든 잘해 보렴. 나는 특이한 인간의 활약을 늘 고대하고 있단다. 요즘에는 영 재미가 없어서.”

그대로 물속으로 사라지는 듯 보였던 인어가 뭔가 떠오른 듯이 데아를 응시했다.

“참, 내 이름을 아니?”

“…….”

“역시 알고 있구나. 인간들은 소문이 참 빠르다니까.”

말을 마친 피파가 슬그머니 올라와 데아와 눈높이를 맞췄다. 순간, 거대한 존재감이 두각을 드러냈다. 데아는 자신의 바로 위에서 서늘하게 빛나는 피파를 올려다보았다. 숨죽인 포식자가 그곳에 있었다.

“정확한 내 이름은 ‘피파글랜’. 여덟 명의 1세대 인어 중 하나지.”

물방울이 똑, 데아의 이마 위로 떨어졌다. 인어의 검은자위가 가늘게 접혔다. 압박감에 폐가 조여들었다.

“1세대?”

“그래, 1세대.”

피파글랜, 피파가 꿈처럼 웃었다. 먼 시간 속에 묻어 두었던 상념을 가까스로 건져 올려 상기해 내듯 피파는 느리게 호흡했다.

“제국 안에 거주하는 인어는 모두 상급 인어로, 1세대, 2세대, 그리고 3세대로 나누어지지. 그중 1세대는 여덟 명밖에 없어. 대부분의 백성은 3세대랄까.”

“…….”

“인간의 다리를 만들 수 있는 인어라고 했으니… 상급 인어임은 자명하고.”

“상급 인어가 있다면… 하급 인어도 있어?”

“그럼. 제국 밖으로 추방된 인어들. 너희 인간들이 던전 안에서 수없이 사냥하는 미천한 존재들이 바로 하급 인어인걸?”

그의 입술이 허공을 더듬으며 호선을 그었다.

“그리고 네가 궁금해하던 남성형 ‘붉은 인어’는 아마 2세대나 3세대일 가능성이 높단다.”

“왜 1세대는 아니야?”

“‘우리’ 중에 붉은색 머리를 한 남성형 인어는 없으니까.”

피파가 데아의 이마 위로 아무렇게나 헝클어져 있던 앞머리를 쓸어 올려 주었다.

“…1세대와 2세대의 차이가 있어?”

“당연하지. 1세대만이 인간의 언어를 쓸 줄 아는걸?”

“오… 더 있어?”

“힘의 차이도 명백하지. 더 있는데… 그걸 지금 다 말해 줄 여유는 없을 것 같구나. 그 인어, 말을 안 했지? 그럼 2, 3세대가 확실해.”

“…아니.”

침묵의 시간이 조금 지나고, 데아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말을 했어.”

인어의 눈썹이 단숨에 올라갔다.

“그럴 리가. 그 인어의 말을 네가 들었다고?”

“물론 너처럼… 사람처럼 말을 하진 않았어. 그냥 목소리가 바로 머리에 꽂히듯이 들렸어. 나도 그 원리를 설명할 수가 없어. 하지만 분명.”

“음…….”

얼굴에 심각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던 인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밝게 휙 표정을 바꿨다.

“그런 경우도 있다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뭐, 흔한 일은 아니니까 놀랐겠지. 안심해도 좋아. 이상한 게 아니야.”

“…그렇지?”

“하지만.”

인어가 눈썹을 굳히며 데아의 팔을 덥석 잡았다. 팔에 와 닿는 서늘한 손바닥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이 말을 ‘도원’한테 했니?”

“…목소리를 들었다는 건 말 안 했어.”

왜 인어의 말에 순순히 대답해 주고 있는지 모를 노릇이었지만 답해야 할 것 같았다. 그건 확신에 가까운 촉이었다. 대답을 들은 인어가 눈썹을 누그러뜨렸다.

“잘했구나.”

“…왜?”

“실험실로 끌려가는 건 싫잖니? 그리고 아무거나 함부로 주는 거 받아먹지 말렴.”

먹어?

갑작스러운 화제 전환에 데아가 미간을 좁히자 피파가 검지를 쭉 뻗어 눈썹 사이를 눌렀다. 차가운 체온에 화들짝 놀라 뒤로 몸을 당겼다.

“그래. 네 먹이 간수를 잘 해.”

의문스러운 말만 남기고 피파는 빠르게 수면 속으로 몸을 감췄다. 물방울이 튀는 소리도 없이 고요한 파문만 남기고 사라진 자리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등 뒤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하영주와 가비가 죽은 보스 인어의 사체를 밟고 올라오고 있었다.

“데아야… 나는 네가 죽은 줄 알고…….”

하영주가 와락 데아를 껴안았다. 그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눈이 붉게 퉁퉁 부은 걸 봐서는 오래 울었던 것 같았다.

‘날 걱정한 건가.’

데아는 자신을 끌어안는 하영주의 등을 조심스럽게 마주 안았다.

“머리카락은 얻다 뜯어 먹혔대. 어느 물고기가 포식했더냐. 그래도 무사해서 다행이다. 나는 네가 무사해서 정말……. 다음부터는 무조건 너부터 나가라, 데아야. 진짜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어…….”

“…….”

머리카락을… 물고기가 가져간 건 맞았으므로 데아는 입을 다물었다.

“자, 이제 집에 갑시다.”

밝아진 하늘 아래에서 가비가 시원하게 웃었다. 항상 말만 가볍게 섞고 말았던 사이였는데, 이곳에서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데아는 느리게 웃었다. 데아의 미소를 본 가비의 표정이 움찔 굳었다.

“웃는 건 처음 보네요.”

데아의 표정이 도로 싸늘하게 돌아섰다.

“나쁜 뜻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항상 볼 때마다 표정이 고정이라서.”

불쾌했다면 미안합니다.

가비가 엄청난 상상을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냥 얼굴 근육이 힘을 못 썼던 것뿐이었다. 하영주의 어깨 너머로 해변에서 방방 뛰고 있는 헌터들이 보였다. 화려하게 빛나는 게이트 또한. 이제 정말 갈 때였다.

모든 게 끝났다는 사실이 드디어 실감 났다. 놀랍게도 게이트는 클리어되었다.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나룻배에 올라탄 지 오래 지나지 않아, 데아를 사이에 두고 노를 젓고 있던 가비가 익살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의 눈에는 순수한 경탄이 담겨 있었다.

“이 던전 A급입니다.”

데아의 눈이 커졌다.

○○랜드 출구 던전(등급 : A)(측정 완료) 10/29 01:38

여파 헌터 한 명(B) 공략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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