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4화
“…….”
―자기님은 궁금한 게 있으면 뭐든 물어봐도 돼. 물론 대답해 줄 순 없지만.
데아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렇다면 혹시 등급에 관한 것도…….
―또 온다.
보스 인어가 입을 벌리며 한 번 더 닥쳐왔다. 몸에 울리는 충격에 저 멀리 밀려났지만 무사히 방어에 성공했다. 그러나 목검이 반 토막 났다. 손등이 아렸다.
잠깐, 그러면 그동안 품었던 수많은 의문점들을 이 스킬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데아의 머릿속으로 게이트의 목소리, 정체불명의 미획득 스킬들, 그리고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N등급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러면 물어볼…….’
―오른쪽에서 온다.
또다시 보스 인어가 빠르게 다가왔다.
터엉!
강하게 부딪쳤다. 강철 같은 지느러미와 비늘이 스친 팔에서 피가 새어 나왔다. 주변 물이 붉어졌다.
―궁금한 게 많은 건 이해하지만, 우선 저 생선 죽이고 나가자?
때 아닌 온기에 흠칫 몸을 굳히는 사이 아마 누군가가 있을 거라 추정되는 장소, 자신의 뒤에서는 해류가 흐름에 거스르듯 멈췄다. 강한 존재감이 이를 드러내고 사납게 웃었다.
―나를 사용하는 방법은 간단해, 자기야. 일단 이런 나뭇가지는 버리고.
툭 부러진 목검을 쥔 손등에 힘이 가해진다 싶더니 이내 하나뿐인 무기가 저 바닥 밑으로 떨어져 자취를 감췄다.
“아니…….”
데아가 두 눈을 험악하게 치켜떴지만 허공의 목소리는 왜 그러냐는 듯 태평했다.
그때 물의 흐름이 달라졌다.
거대한 공기방울이 팔을 타고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더니 긴 창대 형태로 늘어났다.
“어, 어?”
데아가 다급하게 손을 뻗자 양 손아귀에 알맞게 잡히는 거대한 물의 덩어리가 하얗게 바글바글 일어났다. 그러더니 일시에 강한 해류가 생성되었다.
주변에 떠다니던 산호며 해초가 빠르게 흔들리며 요동쳤다. 해류의 근원을 손으로 움켜쥔 듯, 스킬을 쓰는 데아의 양 손등이 힘에 맞춰 덜덜 떨렸다. 그러자 해류는 마치 얼음이 되어 굳은 것처럼 일시에 강하게 솟아올랐다. 하지만 차갑지는 않았다.
―잘 잡아. 놓치면 자기까지 휩쓸려.
손가락 안쪽으로 잡히는 단단한 바다의 창. 미친 듯이 소용돌이치는 힘이 믿을 수 없게 응축되어 길게 뻗어 나간 무기. 키의 몇 배는 우습게 뚫는 거대하고도 날카로운 형태의 장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닷속에도 벼락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그 순간 데아는 저 보스의 역린을 꿰뚫는 환상을 보았다. 번쩍이는 붉은 점이 보스의 입안, 목구멍과 식도를 지나는 길 통로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저 어둡고 깊은 통로에 손안의 창을 박아 넣을 것이다. 가능했다. 가능할 것 같았다. 어렵지 않아 보였다.
맥박이 빠르게 뛰었다.
―지금이야.
호흡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몸 안의 마력이 빠르게 닳았다. 그전에 끝내야 한다. 데아는 있는 힘껏 팔을 뒤로 당겨 표적을 조준했다. 보스 인어가 동굴 같은 입을 쩌억 벌려 헤엄쳐 왔다.
일상에 닥치는 갑작스러운 자연재해처럼 데아의 눈동자에 인어의 날카로운 이빨이 가득 찼다.
―던져.
푸욱!
까아아악!!
주인의 의지에 따라 더 얇고 길게 변한 거대한 해류의 소용돌이는 인어의 벌린 목 속을 투과해 강하게 회전했다. 퍼억, 강하게 밀쳐진 보스 인어를 따라 데아도 바닷속을 굴렀다.
물의 창은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갈기갈기 목구멍을 찢었다. 살점이 사방으로 튀었다. 난자된 핏덩어리가 순식간에 바닷속을 메꿨다. 순식간에 몸의 절반이 날아가서 절명한 인어의 남은 신경만 고통스럽게 펄떡였다. 엄청난 파괴력이었다.
“하아, 하아…….”
끝난 건가?
데아는 자신이 했음에도 믿을 수 없어 한동안 말을 잃었다.
[바다의 경배(S) : 머리끝까지 물에 젖은 당신의 손에 들린 것은 강력한 죽음입니다.]
S급 스킬 대단하구나.
쿠구구구…….
―창, 창 잡아!
그때 죽은 인어의 시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데아는 바다의 경배의 말에 따라 허우적거리며 부유하는 인어의 시체로 다가가 아직 박혀 있는 창을 잡았다.
그때 인어의 질긴 살가죽을 타고 주먹만 한 구슬이 굴러떨어졌다. 엉거주춤 구슬을 잡자 희미하게 빛났다. 마석이었다. 데아는 푹, 숨을 내쉬며 자신의 인벤토리 안에 그것을 넣었다.
―잘 잡아, 자기야.
“나도 알아……!”
마석을 잡으니 전투가 끝났다는 실감이 났다. 깊게 박아 넣은 창에 온몸을 의지하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거칠게 수면 위로 솟아오르는 인어의 시체 위에서 귓가를 때리는 수면의 마찰음을 견뎌냈다.
그리고 그 끝에서 데아는 갑작스럽게 밝아진 시야를 느꼈다. 두 눈을 번쩍 뜨니 바다 한가운데였다. 물 위로 둥실 떠오른, 꿰뚫린 거대한 시체를 밟고 일어서자 끝없이 이어지는 바다가 보였다. 광활하고 황폐한 푸른 사막 위에 홀로 남은 것 같았다.
미친 듯이 몰아치던 폭풍우와 파도가 거짓이었다는 듯이 먹구름은 사라져 있었고, 바다는 잔잔했다. 마른기침이 터져 나왔다. 데아는 콜록이며 주저앉았다.
“…해변은?”
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 해변이 보였다. 하영주와 가윗, 그리고 자신이 죽어라 달렸던 그 해변이었다. 그곳에 게이트가 생성되어 있었다.
“이제 저기로 나가기만 하면 돼. 다행…….”
그러나 데아는 딱딱하게 굳었다. 해변 위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하영주와 익숙한 얼굴의 공략 1팀도 있었다.
“데아야?”
“방금 뭐야? 뭐였어? 너무 멀어!”
“샤샤, 살아 있어!!”
“던전 클리어를 한 거야? 네가?”
경악으로 물든 사람들의 얼굴이 창백했다. 하영주는 하얗게 질렸다가, 머리에 열이 올랐는지 붉어진 얼굴로 이상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이내 괴상한 소리를 내며 훌쩍였다.
데아는 창을 잡고 앉았던 몸을 다시 일으켰다.
그때였다.
찰칵.
익숙한 소리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러나 카메라는 없었다.
착각인가?
“이데아! 여기로 올 수 있어?!”
사람들은 데아와 인어의 시체와 데아의 창에 차례를 시선을 주었다. 그때 손안에 잡히던 바다의 창이 순식간에 푸스스 흩어졌다.
우선 저쪽으로 가야 했다. 가서…….
“큽, 아니요, 지금 힘이 없어서.”
“그러면 거기 있어!!”
그때 발등이 훅 당겨졌다. 점액질로 미끄러운 보스 인어의 위에서 다시 털썩 엉덩방아를 찧은 데아를 본 사람들의 놀란 비명이 해변에서 들려왔다.
“금방 그곳으로 갈게!”
가비의 인벤토리에서 꺼낸 작은 나룻배 위에 하영주와 가비가 타 노를 젓기 시작했다. 그러나 데아는 그들에게 시선을 줄 수가 없었다.
거대한 보스 인어의 시체에 가려 모습이 보이지 않는 해안가의 사각지대에 누군가 있었다.
구름 사이를 뚫고 나오는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연한 베이지색 머리카락을 쓸어 올린 한 사람… 아니, 한 인어.
동그란 안경을 끼고 나른한 미소를 입에 걸친 인어의 갈색 눈동자가 데아를 담았다. 데아는 문득, 이 인어의 이름을 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안녕, 인간 헌터.”
인터넷 커뮤니티를 뜨겁게 데우던 화제의 인어, 피파가 죽은 인어의 시체에 턱, 팔을 올리고 데아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악몽의 전조는 늘 예고 없이 찾아왔다. 아찔한 폭풍우 속의 지느러미. 파도를 부수던 생선의 비늘.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망갈 수 없던 순간의 무력감. 인간을 닮은 괴생물. 인간을 아주 많이 닮은…….
“너… 물속에서 숨 쉬었지?”
인어 피파가 입 한쪽을 비죽 올렸다.
그는 이제까지 봐온 인어와는 달랐다. 6년 전 마주한 붉은 인어와도 달랐다. 붉은 인어는 이렇게 직접 입을 움직여 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음성이 바로 머리에 꽂혔지.
“데아야! 얌전히 기다려!”
“샤샤 헌터! 곧 가겠습니다!”
데아가 누구와 함께 있는지 모르는 하영주가 저 멀리 나룻배를 타고 오며 부르짖었다. 속도를 보아하니 한참 걸릴 것 같았다.
그때 인어의 꼬리가 파도 속에서 철썩, 모습을 잠깐 드러냈다.
인어.
데아의 동공이 수축했다. 순식간에 데아의 손에서 많은 기포가 생성되더니 길쭉한 창이 생겨났다. 상태 창이 번쩍였다.
[바다의 경배(S) : 머리끝까지 물에 젖은 당신의 손에 들린 것은 강력한 죽음입니다.]
데아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온 세상의 초점이 한곳으로 모인다. 완벽한 승리를 위한 심해의 눈(A), 약점 파훼 스킬이 사냥감을 조준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시선은 빠르게 흐려지고 창은 푸스스 흩어져버렸다. ‘머리끝까지 물에 젖은’ 부분이 특히 빠르게 깜빡이는 걸 보니 스킬, 바다의 경배가 조건 제대로 안 읽느냐며 항의라도 하는 것 같았다.
―연속적으로 날 쓰기엔 자기 마력이 너무 부족해…….
바다의 경배가 아련하게 중얼거리다가 목소리가 이내 뚝 끊겼다.
불발로 끝난 데아의 공격을 인내심 있게 지켜보던 인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는 널 공격하러 온 게 아니란다. 안심하렴.”
데아의 입 끝이 씰룩였다. 인어 주제에 말이 길다.
“혹시 내 말을 못 들은 거면.”
“내가 그걸 왜 알려 줘야 해?”
“난 물속에서 혹시 숨을 쉬었냐고 물었단다.”
“그러니까 그걸 왜 내가 대답해 줘야 하냐고.”
“맞구나. 놀라운 능력이네. 그런 능력을 가진 건 인간들 중에서도 드물어. 아니, 처음인가. 너는 인간 헌터 중에서도 강한 편이니?”
“…….”
데아는 침묵한 후 어렵게 입을 열었다.
“아니야. 나보다 강한 헌터들이 많아. 나는 그냥…….”
“하지만 너만큼 흥미롭지 않겠지.”
번쩍 고개를 들자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인어의 눈동자가 지나치게 가까이 있었다.
헉, 데아는 몸을 뒤로 뺐다.
“그런데 하나 알려 주자면… 다른 사람들한테는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거란다.”
인어가 상념의 그림자 안에서 속삭였다. 질척이는 점액질이 가득한 보스 인어의 시체 위에서 옅고 투명한 갈색 눈동자를 가진 인어는 오래된 유물처럼 낡은 모습으로 웃었다. 데아는 상대가 인어라는 걸 알면서도 그 미소에 시선을 빼앗겼다.
“들키면 인간들 손에 죽을지도 모르니.”
지나치게 빛나는 모습으로 인어가 말했다.
“네가 여파의 길드원이라면 더욱 말이지.”
인어의 이마를 스치는 머리카락에서 물방울이 뚝 떨어졌다. 데아는 정신을 번쩍 차렸다.
“무슨 소리야?”
“비록 내가 던전 안에서만 사는 인어지만, 세상을 듣는 귀는 많거든. 너희 길드장, ‘도원’이라는 헌터명을 가진 남자지?”
“…….”
“넌 길드장을 믿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길드가 세워진 곳 아래에 뭐가 있는지 궁금하지 않니?”
길드 아래? 지하실을 말하는 건가?
“별로 안 궁금해.”
“궁금하지 않아도 알아야 할걸. 바로 실험실이야.”
조심하지 않으면 너도 그곳으로 끌려갈 거라며 인어가 나직이 경고했다. 낮은 목소리가 먹구름처럼 머리 위를 메웠다. 어느새 인어의 상체가 자신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인어의 그림자 속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곳 아래에서는 인어들에 관련된 연구과 실험이 진행되고 있단다. 비윤리적이고 잔혹한, 산 채로 뼈와 눈을 뽑고 살가죽을 발라내는 그런 실험이 인류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진행되고 있지.”
“…너무 갔어. 내가 물에서 숨을 쉴 수 있는 건 순전히 스킬 덕분이야.”
“흐음.”
“…헛소리하지 마. 나는 인간이야.”
“확신하니?”
“…그래. 난, 인간이라고.”
“그러나 ‘도원’도 믿어 줄까?”
“…….”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다는 것. 그건 유일무이한 우리들의 특권이었단다.”
네가 둔갑한 인어가 아니라는 걸 ‘도원’에게 어떻게 증명하려고?
인어는 웃지 않았다.
데아는 그를 팍 밀쳐 냈다. 그는 순순히 물러났다.
“실험체로 동료들을 뺏겨서 길드장님에게 앙심을 품고 있는 건 알지만, 내가 네 말을 왜 들어야 하지?”
“이해해. 그러나 듣는 게 좋을 거란다. 그리고 던전에서 너희들이 포획한 인어는 처치 불가인 하급 인어… 그러니까 찌꺼기일 뿐이야. 그들을 실험하고 죽인다 해도 나와는 하등 상관이 없어. 앙심 같은 게 있을 리가.”
“그런데 왜 이런 말을…….”
“네가 걱정되니까?”
데아는 헛웃음을 뱉었다.
“길드장님의 성격이 삐딱한 건 알아. 대외적인 이미지처럼 올바른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그런데 너무 넘겨짚는 거 아니야? 그리고 나도 초면이면서 무슨 걱정이 된다고…….”
데아의 말끝이 흐려졌다. 인어가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를 보는 눈으로 데아를 응시했다.
“흥미로운 인간은 흔치 않으니까. 의심이 간다면 직접 확인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야.”
인어가 죽은 보스 인어의 시체 위에서 손가락을 톡톡 두드렸다. 데아는 인상을 팍 일그러뜨렸다.
“인어 주제에 뭘 안다고.”
“…….”
인어는 길게 침묵했다.
“그래. 내가 너무 과도한 참견을 했군.”
“…….”
“미안하구나. 신기한 스킬을 가진 헌터는 오랜만에 봐서 답지 않게 흥분했네. 죽으면 아깝거든. 나도 한때는 인간을 연구했던 인어라서.”
“연구?”
“다 지난 일이지.”
가만히 시체에 몸을 기대던 인어가 싱긋 웃으며 몸을 돌렸다. 가려는 듯했다.
그 순간 가게 두면 안 된다는 강렬한 예감이 전신을 감쌌다. 자신에겐 그에게 물어볼 게 있었다.
뭘 물어보려고 했었지? 맞아, 그건.
“잠깐! 혹시 붉은 인어를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