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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23화 (23/223)

※ 023화

“여파 인근 던전에서 공략을 끝내고 나온 공략 1팀 헌터 전원을 확인했습니다! 영영 헌터와 가윗 헌터가 밖에 나와 있는 지금, 남은 공략 1팀원은 아직 신원이 불분명한 샤샤 헌터밖에…….”

콰콱!

“아악!”

나불대던 기자가 마이크를 놓치며 소리를 질렀다.

데구루루.

바닥을 구른 마이크에는 처참한 모양새로 돌멩이가 박혀 있었다. 무시무시한 힘이었다. 하영주가 돌을 던진 손을 천천히 내렸다.

“더 이상의 질문은 받지 않습니다.”

“하, 하지만.”

그러나 기자는 이내 슬슬 뒤로 빠졌다. 하영주도 눈치란 게 있었다. 데아가 이유는 몰라도 언론의 노출을 최대한 꺼리는 한, 그에 협조해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저런 무례한 작자가 일을 망치지.

하영주는 혀를 쯧, 찼다.

그때 밖에서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음이 들려왔다. 여러 대의 차가 끼익, 멈추더니 열 명이 조금 넘는 수의 사람들이 내려 하영주와 가윗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지원을 나온 공략 1팀이었다. 익숙한 얼굴들이 지금은 피와 오물로 더럽혀져 있었다.

“가윗!”

“가윗은 안에 있어.”

“후… 그렇습니까. 그런데 이데, 아니…….”

샤샤 헌터는요?

머리를 반삭하고 하얗게 탈색한 헌터가 소리 죽여 물었다.

“아직… 안에 있어. 가비.”

“…세상에.”

서연서. 헌터명 ‘가비’. 그는 방어계 돌진형 A급 탱커 헌터이자, 하영주의 동갑 친구이자, 가윗의 누나였다.

“뭐야… 혹시 우리 쪽 소식 못 받은 거야?”

“아냐, 들었습니다. 들었는데… 자세한 보고는 오는 차 안에서 들었고, 길드장님과 릴림은 아직 샤샤 헌터가 던전 안에 고립된 걸 모릅니다. 그분들은 그냥 공략 1팀 길드원 셋 앞에 던전이 터졌다고밖에……. 알았다면 팀원들만 안 왔죠.”

“그럼 어떡해? 릴림이랑 길드장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려?”

“하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우우웅―

“……!!”

그때 하얀 원형 게이트가 깜빡깜빡 빛나기 시작했다. 던전이 열렸다는 표시였다.

“…설마.”

“아…….”

던전이 열리는 건 헌터가 이동 스크롤을 썼거나, 던전을 클리어했거나, 전멸했을 경우다.

하영주가 얼굴을 처참하게 일그러뜨렸다. 그는 말리는 사람들을 뿌리치며 열린 게이트 안으로 뛰어들었다. 당황하던 지원 팀원들도 이내 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          ◈          ◈

“예를 들어 핵폭탄이 터졌어. 살려고 발버둥 치다가 피폭되면 엄청 고통스럽게 죽어.”

“네, 네.”

“그런데 핵폭탄이 터졌다는 소식을 듣고 약을 먹고 자살했어. 그러면 편하게 죽는 거지.”

“아하. 네.”

“그러면 자살하는 게 낫지. 그렇지?”

병동 안에서 나름 말도 섞던 환자였다. 이 환자는 그 말을 한 바로 다음 주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름이 뭐였더라.’

기억나진 않지만 분명한 건, 그는 죽음으로 향하는 삶의 긴 길 위에서 도중하차를 원했다는 거다. 그게 자신에겐 덜 고통스럽다 믿었으므로.

그가 지금의 자신을 보면 뭐라고 할까. 인어에게 잡아먹혀 죽느니, 차라리 그때 죽는 게 좋지 않았냐고?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지만, 데아는 그 말이 싫었다. 정말 많이 싫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죽음을 관조하고, 동요하지 않으며,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6년 전, 가족의 목숨을 바치고 살아남은 가냘픈 생명은 병동에 갇힌 어느 날 살자고 다짐했다. 자살한 환자가 실려 나가던 날 밤에도 절대 죽지 말자고, 살아서 그 인어를 죽여버리자고 소리를 질렀다.

‘그 인어는 또 보자고 했어. 언젠가 날 죽이러 올 거야. 죽기 전에 죽이면 될 일이야.’

인어의 손끝에서 갈기갈기 찢겨 죽을 바에는 그냥 약을 먹고 편해지는 게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고, 내면의 음습한 응어리가 끊임없이 속삭였지만 듣지 않았다.

그러나 알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충동에 진다. 언젠가 자신도 질지 모른다. 그만큼 충동은 강력하니까.

―그래서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매력적이지.

지극히 낮은 가능성을 끌어안고 처절해지는 사람이 좋다며, 게이트가 속삭였다.

성숙한 음성이 흐려지는 뇌리를 깨웠다. 그리고 그 순간, 인어를 마주하고 눈을 감으며 몸을 웅크렸던 데아는.

“흐, 악!”

숨을 쉬었다.

머리에 열이 오르고 각막이 팽창했다. 폐가 고통스럽게 쥐어짜지는 느낌과 더불어 심장이 정도를 모르고 날뛰었다. 시야가 두 개로, 네 개로 나누어지다가 이내 또렷해졌다.

하얗게 확장된 인어의 눈동자 수십 개가 코앞에서 번뜩였다. 간신히 산소를 머금고 있던 입이 벌어지며 공기방울이 바글바글 위로 올라갔다.

인간은 언제나 기적을 바란다. 죽음을 예감하며 그냥 편해지길 기도하지만, 완벽한 희망이 눈앞에서 번쩍이면 누구나 손을 뻗는 법이다.

“허, 어…….”

데아는 인어를 마주하며 호흡했다. 숨이… 쉬어졌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데아는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는 자신의 신체 기관을 느낄 수 있었다.

‘폐, 폐인가?’

알 수 없었다.

그때 어둠 속의 등대처럼 눈부신 활자가 인어의 얼굴 앞에서 아른거렸다.

[물속의 발자취(A) : 물속에서 제약 없이 빠른 행동력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맙소사, 아니.’

길드장 안의 수영장에서 휘적휘적 움직이기만 했지, 굳이 물속에서 숨을 쉬어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 멍청한 사람이 나라며 데아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이럴 때가 아니었다.

빠른 깨달음 끝에는 신속한 행동이 있었다. 데아는 뒷주머니에 꽂아 넣은 단도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아래에서 위로 단도를 올려쳤다.

키에에엑!!

한 인어가 단도에 몸이 뚫리며 비명을 질렀다. 물살이 달라졌다. 한 번 내리쳐진 파도가 다시 뒤로 후퇴하려고 하고 있었다.

‘잠깐만, 분명 보스가…….’

어쩌면 이 물살을 타면 보스가 있는 곳까지 다다를지도 몰라.

어느덧 인어들이 주춤 뒤로 물러섰다. 틈을 타서 데아는 해류에 몸을 맡겼다.

[심해의 눈(A) : 당신은 승리할 것입니다.]

붉은 점이 거친 물살을 타고 순식간에 가까이 다가왔다. 낭떠러지처럼 뚝 떨어진 바닷속 땅의 형태에 잠시 허우적거렸지만, 이내 데아는 아득한 깊이에서 섬뜩한 눈을 내비치는 보스 인어를 볼 수 있었다.

‘뭐야… 생각보다 좀 작은데?’

모래 속에 반쯤 파묻힌 우락부락한 사람 손이 아니었다면 인어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할 형태였다. 보스 인어는 몸의 대부분을 모래 속에 숨기고, 가로로 넓적한 몸을 작게 펄럭이고 있었다. 겁도 없이 여기까지 온 침입자를 경계하며 부르르, 상체와 지느러미를 떨었다.

데아는 손안의 단도를 고쳐 쥐었다.

‘하지만 보스인 이유가 있겠지. 작지만 만만하게 봐선 안 돼.’

그리고 그때, 데아는 자신을 덮치는 거대한 이빨을 보았다.

가까스로 뒤로 물러나 살았지만 거대한 이빨은 위협적인 파동을 선사하며 눈앞에서 콰악, 맞물렸다. 땅에 묻혀 있던 보스 인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분명 작았는데?’

데아는 끔찍한 점액질을 사방에 달고 나타난 보스 인어를 보며 눈을 찌푸렸다. 형편없는 몰골이었다.

수백 개가 넘는 이빨이 달린 입의 위로 아까 봤던 작은 물고기가 달려 있었다.

‘몸을 숙여서 사냥감을 유인하는 종류의 인어구나. 속았어.’

데아는 또다시 닥쳐오는 거대한 압박감에 무작정 단도를 휘둘렀다. 보스의 이빨 사이에 낀 단도에서 소름끼치는 마찰 소리가 나더니 빠각, 부서졌다.

허무하게 부러진 단도를 보고 있을 틈은 없었다. 자신의 머리를 겨냥한 이빨이 또 다물리고 있었다. 곧장 손잡이만 남은 단도를 끼워 넣어 참사를 면한 데아는 등을 돌렸다.

장기전이다.

데아는 인벤토리 안에서 훈련용 목검을 꺼냈다.

‘보스 인어는 어디 갔지?’

바닷속은 어두웠다. 그래서 사위 분간이 잘 되지 않았다. 그때 무심코 입을 벌렸더니 구슬 같은 뭔가가 목구멍 속으로 쑥 넘어갔다. 놀라 입을 다물었지만 이미 넘어가 버린 구슬은 뱉어 낼 수 없었다.

‘방금 뭐야?!’

손을 휘저으니까 손톱만 한 작은 구슬들이 와라락 잡혔다. 마석이었다. 인어는 죽으면 누구나 마석을 아이템처럼 드롭하는데, 자신이 죽인 작은 인어들에게서 떨어진 마석들이 근처에 수없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자신은 얼떨결에 그걸 하나 먹은 거고.

‘찜찜하게. 보스 인어가 언제 어디서 나올 줄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걸 보고 있을 여유는 없어.’

피가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생존 본능. 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뇌가 팽팽히 회전했다. 해류 속에 잡히는 단 하나의 움직임. 죽음을 전달하는 보스 인어의 기척을 눈치채기 위해 숨을 죽였다.

단도를 부순 이빨이 목검을 못 막을까? 한 줌 거리도 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조건 충족!]

“……?”

갑자기 상태 창이 켜졌다.

데아는 자신의 상태 창 아래 새롭게 새겨지는 활자를 눈 한 번 깜짝이지 않고 지켜보았다.

아까부터 심상치 않게 깜빡인다 싶었는데, 설마.

물속의 발자취의 연동 스킬이었다.

고요한 흥분이 데아의 머리를 데웠다.

저 멀리 보스 인어가 입을 죽 벌리며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건 사냥 성공을 확신한 포식자의 얼굴과도 같아서 데아는 저도 모르게 목검을 강하게 틀어쥐었다.

[물속의 발자취(A) 스킬 사용 완료!]

[조건 충족]

[미습득 스킬 획득 조건 충족]

[연동 스킬 바다의 경배(S) 습득 성공!]

[물속의 발자취(A)가 떨떠름하게 자리를 옮깁니다. 빈자리가 생성됩니다!]

[제자리를 찾은 연동 스킬이 환호합니다.]

[바다의 경배(S) : 머리끝까지 물에 젖은 당신의 손에 들린 것은 강력한 죽음입니다.]

[당신의 마력이 부족합니다!]

[당신의 ○○이 부족합니다!]

[○신의 바○는 ○직 ○○○○○!]

[스킬 시전자를 보호하기 위해 스킬, 바다의 경배가 몸을 웅크립니다.]

[15% 구현 완료]

보스 인어의 더러운 이빨이 지척까지 다가왔다. 위기의 순간에 찾아온 건 기적이었다.

―안녕.

[새로운 스킬이 당신을 가호합니다.]

‘뭐, 안녕?’

방금 전까지 시야에 가득 차올랐던 상태 창의 이상한 글들은 뭔지, 뭐가 15%밖에 구현되지 않았다는 건지 알 길은 없었다.

‘누, 누구야?’

데아가 허우적거리자 허공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시간이 없지?

새로운 음성이 귓가에 꽂혔다. 성별을 모르겠는 높이의, 장난기가 다분한 목소리가 작게 키득거렸다.

하지만 생각은 짧았다. 곧장 자신을 향해 이빨을 들이대는 보스 인어를 막아야 했다. 그 틈새를 타고 다시 한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가자. 자기야.

우선 한 번.

터엉!

끼이이익!!

거대한 무언가가 힘을 사용했다. 보스 인어가 거친 쇳소리를 내며 저 멀리 밀려났다. 데아는 자신을 수호하듯 둘러진 기이한 존재감을 느꼈다

―내가 연계 스킬이라는 건 알지?

그 존재감이 재차 말을 걸었다.

‘아, 그 물속의 발자취…….’

―아, 물속의 발자취? 쟤는… 내가 그냥 밀고 나와서 짜증 내는 것 같았는데 본인이 뭐 어쩌겠어. A급 주제에 대들 것도 아니고.

‘뭐?’

예기치 못한 스킬들의 서열질을 본 것 같았다.

‘그런데 스킬이 말도 하던가?’

―난 가능해.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부드럽게 양팔을 감쌌다.

휙!

보스 인어가 또 무작정 달려들었지만 간신히 피했다.

‘하지만… 나는 들어본 적이 없어.’

정말 있었다면 한 번쯤 화제가 될 법도 한데 이런 경우는 기필코 처음이었다. 데아의 당황을 읽었는지 스킬, ‘바다의 경배’가 웃었다. 자연스러운 떨림이 물을 타고 전해져 왔다.

―당연하지. 난 특별하니까.

‘아, S급 스킬이라서?’

―흐음… 물론 S급 스킬은 특별하지. 하지만 꼭 그래서는 아니고……. 아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그러니까 내 말의 요약은…….

스킬, 바다의 경배가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어디 가서 스킬이 말하는 걸 들었다고 떠벌리고 다니지 말란 소리야. 남들에게 알려 봤자 좋은 게 아니거든. 힘을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나 은연중에 경쟁하고, 질투하며, 해를 끼치기도 하니까. 자신의 스킬 활용에 큰 이점을 가진 요소를 아무도 말하지 않는 이상 굳이 먼저 나서서 밝힐 필요 없다는 걸 자기는 물론 알고 있겠지?

‘…….’

―참, 스킬들끼리는 대화할 수 있는 거 알아? 나 같은 상위 스킬이 있으면 나를 통해서도 다른 하위 스킬들이 주인에게 말을 걸 수도 있…….

띠링!

그때 데아의 눈앞에 직사각형의 불투명한 알림 창이 떴다.

[물속의 발자취(A)가 음성 메시지를 스킬 [바다의 경배]를 통해 전송했습니다.]

[‘경배 새끼 말 존나 길게 하네. 샤샤 안 그래도 답답이에 이해도 느린데 물고기 먹이로 주고 싶냐? 당장 일 안 해? 설명은 나중에 해도 되잖아.’]

―때 잘 맞추네. 봐, 이렇게.

그리고 데아의 눈앞에 직사각형의 알림 창이 또 떴다.

[스킬, 바다의 경배(S)가 물속의 발자취(A)를 향해 하품 소리를 보냅니다. ‘뭐라고? A급 말은 안 들려’ 사진을 보냅니다.]

[욕설 발언은 스킬 시전자에게 블라인드 처리가 됩니다.]

[스킬, 바다의 경배(S)가 눈을 깜빡거리며 웃습니다.]

[수위 발언은 규제됩니다.]

[스킬, 물속의 발자취(A)가 얼굴이 붉어진 채로 씩씩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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