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2화
“…오기 부릴 생각 없어. 나가자. 당연히 목숨이 더 중하지.”
“잘 생각했어. 나가서 공략대를 다시 꾸리고 오자. 데아, 네 덕분에 공략 패턴과 보스 위치를 알았으니 이제 클리어는 시간문제야. 정말 잘했고, 수고했어, 모두.”
하영주가 힘없이 웃었다.
“이거 하급이라 2초만 열리니까 빨리 넘어가야 해.”
데아는 파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파도가 다시 저 위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죽음의 색을 하고 덩어리진 파도를 피하기 위해 지금은 나가야 했다.
찌익, 하영주가 이동 스크롤을 찢었다.
“나가자!”
하영주가 빠르게 가윗을 안고 게이트를 넘어갔다. 데아도 서둘러 하얗게 빛나는 게이트로 발을 한 번 내디뎠다.
순식간에 시야가 반전되고,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경찰차 소리와 구급차 소리가 들려왔다. 밖이었다. 하영주가 벌써 가윗을 구급대원들에게 넘겨주고 있었다.
“어, 저기!”
누군가가 게이트를 반쯤 빠져나온 데아를 보고 손짓했다. 무사해서 다행이라는 듯이 미소한 구급대원이 담요를 들고 한 걸음 걸었다.
그때였다.
―벌써 가려고?
게이트가 또 말을 걸었다.
허공의 공기가 멈췄다. 숨이 멎는 것 같다고, 데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단다……. 그러니까 지금 나가면 아쉽지.
그렇지 않으냐며 게이트가 악몽처럼 웃었다.
“어.”
갑작스럽게 뒤로 잡아끄는 강한 흡인력에 짧은 신음이 터졌다. 데아의 허우적거림에 구급대원의 미소가 굳었다.
던전이 데아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뒤를 돈 하영주의 얼굴에서도 표정이 사라졌다. 누군가의 비명과 함께 바닥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벌떡 일어섰다.
“저, 잠깐!”
그 말을 마지막으로, 데아는 던전 안에 홀로 우뚝 서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콰과과과과!!
저 멀리 파도가 빠르게 내리꽂히고 있었다. 지금은 달려야 했다.
발밑으로 정신이 내려앉는 듯한 아찔함이 급습해 왔다. 그러나 머뭇거림은 잠시였다. 곧장 머리 위로 내려앉는 파도를 피하기 위해 데아는 필사적으로 다리를 뻗었다.
[타고난 몰이꾼(S) : 인어의 주목을 받는 동안 속도가 +60 증가합니다.]
“하, 흐…….”
데아는 땅을 밟았다. 부서진 난파선과 큼직하게 박힌 바위를 위태롭게 밟으며 거침없이 앞으로 향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정면에 있었지만 주저할 틈은 없었다. 온몸을 흠뻑 적시는 빗줄기가 시야를 가렸다.
“아, 크윽.”
돌출된 바위에 다리가 걸려 바닥을 굴렀다. 종아리가 찢어진 것 같았지만 아파할 여유는 없었다. 여기서 잡히면 끝이라는 현실만이 머리를 강타했다.
정말 여기서 잡히나? 그럼 죽어? 정말 여기서 잡히면? 인어의 수많은 손에 이끌려 파도의 한 줌 먹이로 전락하겠지.
‘그런데, 그런데 게이트는 왜 나를…….’
물리적인 압력이 자신의 몸을 붙잡고 뒤로 이끄는 느낌. 순간적으로 덮쳐 왔던 아득한 고양감을 잊을 수 없었다.
게이트는 분명 이런 기회는 또 없다고, 그러니 지금 나가면 아쉽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 조금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 제발!”
데아는 자신의 뒤로 바짝 다가온 파도를 느꼈다. 수백 개의 작은 인어의 손이 허공을 더듬거리며 어깨를 두드리고 있었다. 척추를 타고 흐르는 소름에 뒷목이 쭈뼛 굳었다.
게이트는 나에게 뭘 기대했던 걸까. 얼마나 잔인하게 죽는지, 그게 궁금했던 걸까?
얼굴을 흠뻑 적시는 것이 땀인지 눈물인지 빗물인지도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심장이 죽음을 예감하고 차갑게 쿵쿵거리고 있다는 거다.
온몸이 죽음을 대비하고 있었다. 온기가 사라진 손과 식어버린 맥박이, 순간 멀어버린 청력이, 이상하게도 느려진 호흡이, 파도의 물방울을 맞으면서도 놀라지 않는 촉각이.
온 귓가에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파도의 그림자가 전신을 덮었다. 늦었다. 뇌보다도 먼저 몸이 그 사실을 깨달았다.
하아압!
몸이 크게 숨을 들이켰다. 생존을 위한 처절한 발버둥이었다. 이렇게 들이마신 숨이 몇 초나 갈 수 있을까? 파도에 휩쓸리는 건 두 번째라서 아는데, 그 폭력적이고 거친 물살에 휘말리면 어떤 숨을 머금어도 반사적으로 다 토하게 된다.
하지만 이럴 줄 누가 알았겠는가? 역시 던전에 오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붉은 인어를 어떻게든 찾아내서 죽이고 싶었는걸…….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시야가 암전됐다. 사지를 구타하는 해류는 이빨을 품고 있었다. 인어의 네모난 잡식형 이빨이었다.
파도 속에 숨어든, 끔찍하고도 괴이한 작은 인어들이 데아를 향해 게걸스럽게 입을 벌렸다. 어둠 속에 더한 어둠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어쩌면 이때 처음 알았다.
◈ ◈ ◈
“방금 헌터 누굽니까!!”
“뒤에서 인어가 잡아당겼을 가능성도 있는 거 아닙니까?!”
“지금 그 안에 그 헌터 한 명뿐인 건가요? 게이트가 닫혀서 외부에서는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는데……!”
“영영 헌터! 가윗 헌터! 대답을 해주세요!”
구급차 안에서 담요로 온몸을 말고 덜덜 떠는 가윗과 그 앞에서 온몸으로 그를 가려 주는 하영주 앞으로 카메라 플래시가 끊임없이 터졌다.
지금 가윗은 환자이니 자중해 달라는 말도 그들에겐 통하지 않았다. 여파 길드에서 나온 헌터들이 겨우겨우 기자들과 호기심 어린 시민들의 진입을 막고 있었지만 하영주의 낯은 펴질 줄 몰랐다.
“…내 탓이야.”
“아니에요. 어쩔 수 없던 일이에요.”
하영주에게 따뜻한 종이컵을 건네며 여자가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여파 의료부 소속 헌터 차하늘이었다. 헌터명은 ‘하늘’. 각성은 했지만 낮은 공격 스킬에 비해 치료 스킬이 높아 던전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입단한 헌터였다.
하지만 그의 다정한 위로에도 하영주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명백한 최고 연장자인 자신의 책임이었다. 가윗을 안고 나와버리는 게 아니었다. 데아와 가윗을 먼저 보내고 자신이 마지막으로 나왔어야 했는데.
다시 게이트 안으로 휩쓸리듯 들어간 데아의 모습이 잔상처럼 남았다. 마지막까지 버둥거리던 손가락과 당혹감이 묻어 있는 낯선 표정이.
“…살아 있을까?”
“…….”
차하늘은 하영주의 말에 대답 대신 눈을 내리깔았다. 하영주가 쥔 종이컵 안의 따뜻한 물이 동요하며 일렁였다.
닫힌 게이트는 던전이 클리어되거나, 이동 스크롤을 쓰거나, 공략 팀이 전멸하기 전까진 열리지 않는다.
아무도 말을 안 하고 있지만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 게이트가 열리지 않는 걸 보아 잘 버텨 주고 있는 모양이지만, 데아는 아마도…….
가까운 이의 죽음이라면 헌터가 되고 나서 꽤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익숙해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당연했다. 죽음엔 익숙해지지 않고, 익숙해질 수도 없다. 특히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놀이동산에 갈 계획으로 들떴지 않은가. 그 단란했던 아침이 꿈같았다.
“…주무실래요?”
“어떻게 쉬어요, 지금 상황에…….”
“그래도 피곤하시잖아요.”
우우웅― 우우웅―
차하늘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여파로부터의 연락이었다.
“길드 옆에 생긴 던전을 클리어하셨다고요?!”
좋은 소식이었다.
“와!”
차하늘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길드 옆에 터졌다는 게이트 정리됐대요?”
“네. 방금 공략을 끝냈다고 연락이 왔네요. 이번에 센터에서 나온 게이트 등급 측정기로 던전 등급을 재봤는데 E급이 나왔었나 봐요. 참 다행이죠.”
“정말 다행이네요…….”
“네. 거기다 릴림 공격대장님과 권도언 길드장님이 직접 공략 팀에 합류하셔서 빠르게 클리어 된 것 같아요. 휴.”
그러니 여기로 빨리 지원 오실 수 있을 거라며 차하늘이 힘없이 웃었다.
던전의 등급은 헌터 등급과 마찬가지로 알파벳으로 측정된다. 최고 S등급, 최저 F급으로, 등급에 따라 던전 간의 난도도 분명 천차만별일 터였다.
‘그렇다면…….’
하영주가 고개를 들었다. 검은 눈동자 위로 하얀 원형 고리가 비췄다.
“저 던전의 등급은 얼마나 될까요?”
“글쎄요. 그런데 지금 던전 안에 들어가 계시는 헌터분… 공략 1팀 맞죠?”
“…네.”
“사실 벌써 영상이 돌아다니고 있어서…….”
“네?”
차하늘의 핸드폰 안에는 들어가라며 소리치는 시민들과 거기에 못 이겨 억지로 던전에 들어가는 저와 가윗, 그리고 데아의 모습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이 새끼.”
저를 몰아내듯이 던전 안에 들어가라 소리친 주범 또한 영상에 생생하게 찍혀 있었다.
하영주는 중년 남자의 얼굴을 확실하게 외워 두었다. 데아가 만에 하나 죽는다면 이 새끼도 밤길이 안전하지 않으리라.
화면을 밑으로 내리자 ‘그래도 너무했다, 어떻게 사람을 사지로 몰아넣느냐’, ‘헌터도 같은 사람이지 않느냐’, ‘인류애 떨어진다’는 댓글이 베스트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여기 나온 헌터들 지금 나왔대요. 이동 스크롤 써서 나온 듯? 그런데 하영주랑 가윗, 이 두 명만 나왔다는데 ㄷㄷ]
이런 댓글이 달려 있었고, 대댓글로는 아직 던전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한 헌터의 정체를 추측하는 글과 왜 두 명만 나왔는지에 대한 추측성 글이 난무했다.
[또 다른 영상 봄? 거기서 헌터가 게이트 밖으로 나오려다가 갑자기 거의 뒤로 끌려가던데.]
하영주는 더 넘기지 못하고 핸드폰을 다시 차하늘에게 주었다.
그때 갑자기 소란이 일어났다. 상기된 표정의 한 기자가 만류하는 헌터들의 손길을 거부하며 막무가내로 마이크를 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돌아가세요!”
차하늘이 자리에서 일어나 앞을 막는 순간.
“지금 던전 안에 남아 있는 헌터가 샤샤 맞습니까?!”
갑자기 사위가 기이하도록 조용해지는 순간이 있다면 지금일 거라고 하영주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