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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20화 (20/223)

※ 020화

일단 인어가 더 나오는 건 막아야 할 것 아냐!

하영주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저 남자는 지금 빨리 전장에 뛰어들어 순직하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모멸감과 분노에 그의 턱 근육이 꿈틀거렸다.

가윗의 손끝이 벌벌 떨렸다. 작은 소년이 느끼고 있는 감정은 공포였다. 정말 저 안으로 공략대 없이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그런.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눈앞에 들이닥친 공포와 남자의 말에 동화된 사람들이 하나둘 하영주와 가윗, 그리고 데아에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사칭범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당신들 헌터라며! 얼른 들어가!”

“들어가서 누가 싸우래? 공략대가 올 때까지만 들어가서 버티고 있으란 말이야!”

던전 안에서는 모든 통신 기기가 먹통이 된다. 그래서 특수한 장비가 아니고서야 내부 촬영이 불가능했는데, 그 때문에 대부분의 시민들은 던전 안의 상황을 모른다. 그래서 저딴 말을 쉽게 뱉을 수 있는 거라며 하영주가 씨근거렸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 시민들의 요구는 거칠게 불어났다.

하필 옆에 또 한강이 있어서 두려움은 두 배가 되었다. 그때 공포 앞에 이성이 마비된 시민 한 명이 무언가를 가윗을 향해 던졌다. 하영주가 빠르게 손을 뻗어 막아 주었지만 그건 울퉁불퉁 각이 진 주먹만 한 돌멩이였다.

“썩 들어가!”

짐승을 한자리에 몰아넣는 것처럼 돌을 던지다니.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미간이 절로 일그러졌다. 돌을 던진 시민은 하영주의 손등에 피가 흐르자 허둥지둥 자리를 벗어났지만 데아는 거칠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왜 우리가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지?

“어, 이런…….”

“아무리 그래도 저건…….”

하영주의 손등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자 놀란 시민들이 이내 하나둘 자리를 뜨며 물러났다. 자연스럽게 던전 안으로 들어가라는 목소리도 줄어들었지만 데아의 머리는 여전히 뜨거웠다.

그때 하영주의 핸드폰에 진동이 울렸다. 공략 1팀 다른 길드원의 전화였다.

“…여보세요.”

“…….”

“네? 게이트가 총 여섯?”

생성된 게이트는 하나가 아니었다. 전국에 동시다발적으로 생성된 게이트가 여섯. 그중 세 개의 게이트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고, 또 하나가 서울 선릉역에 있는 여파 길드 바로 옆이라서 공략 1팀의 도착이 늦어질 것 같다는 연락이었다.

막막해진 심정으로 전화를 끊은 하영주가 결연하게 입을 다물었다. 세 명의 눈빛이 동시에 부딪쳤다. 여전히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라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웅웅거리며 들려왔다.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보며 숨을 크게 들이쉰 하영주는 이내.

“닥쳐!!”

거칠게 외쳤다. 그 말에 손가락질을 하던 남자가 히끅거리며 입을 다물었다. 하영주는 그 남자를 노려보며 땅에 침을 퉤 뱉고는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안 그래도 들어갈 거니까!”

그리고 물을 울컥울컥 토해 내는 게이트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그때 한 인어가 이빨을 벌리고 데아의 바짓단을 물었다. 데아는 헛발질을 해서 떨쳐냈다.

“X새끼들아. 진짜 너네 면상은 내가 똑똑히 기억해 둔다. 밤길 조심해. 싹 다 뒤에서 대가리를 깨버릴 거야.”

“맞아요. 크게 다쳐도 힐 안 해줘요. 지,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들어가지만 이런 대우는 굉장히 모욕적이에요. 특히 저한테 돌 던진 사람은 CCTV 돌려서라도 잡아내서 고소할 거니까 그렇게 아세요!”

말이 늦을 것 같다지, 길드 바로 옆에 게이트가 생긴 거면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릴 거다.

전국에 게이트가 동시에 여섯 개. 생각보다 전국에 길드는 몇 개 없었다. 지원 헌터가 빠른 시간 안에 와줄 거라 기대하는 건 너무 낙천적인 생각이었다.

하영주가 목소리를 낮췄다.

“일단 들어가서 시간을 끌자. 정 아니다 싶으면 나오고. 다들 이동 스크롤 있어?”

“아니…….”

“아뇨…….”

“…….”

이동 스크롤을 구비하고 있는 사람은 하영주뿐이었다. 가윗은 겁을 먹었지만 자신에게 돌을 던진 시민들을 더 두렵게 쳐다보았다. 데아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얼굴을 가린 후드와 마스크를 한 번 더 점검했다.

그때 후드 위에 쓴 머리띠가 손에 걸렸다. 커다란 호박이 덩그러니 올라가 있는 이상한 할로윈 머리띠.

‘아직까지 쓰고 있었구나.’

데아는 손에서 힘을 풀었다. 호박 머리띠가 젖은 바닥 위를 굴렀다. 가윗과 하영주의 손을 찾아 꼭 잡았다. 그들의 손바닥이 땀으로 번들거렸다. 눈이 아플 정도로 하얀 게이트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삼켜지는 건 잠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너였구나.

게이트가 데아에게 말을 걸었다.

“왜 그래?”

“…아니.”

하영주와 가윗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뭐지? 잘못 들었나?

데아는 미간을 좁히곤 다시 걸음을 옮겼다. 세 사람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게이트의 문이 닫혔다.

○○랜드 출구 던전 10/28 21:12

여파 헌터 세 명(AAB)

공략 시작

◈          ◈          ◈

게이트를 넘자마자 데아는 곧장 발을 헛디뎠다.

“……?!”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 밟힘과 동시에 고꾸라진 데아는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파도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첨벙!

“야, 아니, 이거 뭐야!”

헌터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수칙 하나.

절대 던전 안의 물과 접촉하지 말 것.

그러나 게이트가 바다 위에 둥실 떠있는 경우에는 어쩌란 말인가?

다행히 바다 한가운데는 아니었다. 가까스로 바다로부터 네 발로 기어 나온 하영주와 가윗, 그리고 데아는 온몸의 물기를 쥐어짜며 어기적거리며 해안가로 대피했다.

하지만 나와도 물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눈도 뜨기 힘들 만큼의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저 멀리서 번개도 치는지 어두운 하늘이 가끔 번쩍였다.

쏴아아아아아.

“어우, 퉤엣. 얘들아, 괜찮아?! 무슨 비가 이렇게…….”

“전, 퉤, 괜찮아요! 데아 누나, 어디 있어요?”

“나, 큽, 여기.”

입에 들어온 물을 죄 뱉어 낸 데아가 젖은 앞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리며 정면을 응시했다.

‘어두운 밤? 아니, 밤이 맞나?’

늦은 밤이라고 착각될 만큼 온 하늘에 먹구름이 끼어 있었다. 굵게 떨어지는 비는 아프도록 온몸을 두들겼고, 우르르 쾅, 번쩍이는 번개가 지나가면 기다렸다는 듯이 뒤이은 천둥이 허공을 갈랐다. 추위가 전신을 급습했다.

“해안가형 던전인가?”

“그런 것 같아요.”

눅눅한 해안가 앞에는 그 무엇으로 막아도 소용없을 것 같은 거친 파도가 몰아치고 있었다. 평범한 해변이라기에는 조금 이상한, 이질적인 모양의 바다의 칼날이었다. 그러나 얼굴에 끊임없이 몰아치는 빗물을 막아 내느라 바쁜 하영주와 가윗은 큰 이상을 눈치채지 못했다.

“저게 다 뭐야? 난파선?”

“여기 무슨 무인도예요?”

어둑어둑한 해안가 위에는 난파된 배와 쓰레기들이 으스러진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하얗고 동그란 뭔가가 발에 차였다. 자세히 보니 백골이었다.

“으아악!”

소스라치며 짧게 소리친 가윗이 허둥지둥 하영주의 뒤로 달아났다. 하영주가 위험에 대비하듯 인벤토리에서 너클을 꺼내 손에 끼웠다.

“…그런데 이상해. 인어가 안 보여.”

“어, 그러고 보니…….”

해안가는 온갖 난파선과 쓰레기들로 난잡했지만 인어는 없었다.

게이트 밖으로 삐져나오던 작은 인어들은 그럼 어디에 있단…….

“파도.”

하영주는 곧장 고개를 돌려 사납게 몰아치는 파도를 응시했다.

어쩐지 모양이 조금 이상하다 싶었는데.

“저 파도 안에 인어들이 있어.”

데아의 나지막한 말에 하영주가 질겁했다.

“그 조그만 인어들이 저 안에? 그럼 빽빽하게 수백 마리가 있는 거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

“으악, 미친! 너무 징그러워!”

저 파도 안에 작은 인어들이 수없이 들어있다면, 파도에 스치기만 해도 수백 개의 손이 튀어나올 거다. 그러면 속절없이 끌려 들어가겠지.

“최대한 파도와 닿지 않도록 해야 해.”

“어… 그래야 할 것 같아.”

“그런데 저러면 인어들은 어떻게 죽여요?”

창백한 얼굴의 가윗이 인벤토리에서 자신의 스탬프를 꺼내 들어 데아와 하영주를 향해 온기 버프를 걸어 주며 물었다.

“보스는 자잘한 인어를 어느 정도 죽여야 나오잖아요.”

그것도 문제였다.

이제까지 이런 구조의 던전은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작게 혀를 차던 데아는 눈을 찌푸렸다. 그때 하영주가 손을 번쩍 들어 파도를 가리켰다.

“잠깐, 저 파도 좀 봐봐. 좀… 잦아들고 있는데?”

쏴아아아아…….

하영주의 말대로 파도가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덩달아 수면도 낮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데아는.

“설마…….”

이런 현상을 알고 있었다. 6년 전, 해일이 오기 전에도 지금과 비슷하게 수면이 낮아졌었다.

“어…….”

저 멀리서 거대한 파도의 벽이 생성되었다. 시간이 거꾸로 돌아간 것처럼 밀려 올라간 바다의 덩어리가 꼿꼿하게 서서 거대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밀려들어 오기 시작했다.

해일을 닮은 파도였다.

“잠깐, 저게 뭐야?”

“도망쳐!!”

파도보다는 크고, 해일보다 작은 인어의 물결.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 가만있다가는 한순간에 휩쓸려 버릴 것이다.

“피해!”

비명이 벼락처럼 떨어졌다. 거침없이 달려드는 거대한 파도를 피해 데아는 달아났다. 세 명의 인영이 폭발하듯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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