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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19화 (19/223)

※ 019화

가윗이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사칭범의 표정도 일순간 멍해졌다.

한 달 동안 소식이 없던 두 번째 게이트가 열렸다.

데아는 자신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한꺼번에 볼 수 있었다. 충격에 젖은 얼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일그러졌다. 그들의 시선이 닿아 있는 곳은 자신의 등 뒤였다. 하얗게 하늘을 비추는 공포의 상징, 한 번의 출현으로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낸 원형의 고리.

두렵도록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그건 확신에 가까운 예감이었다. 그 속에서 데아는 먼 과거처럼 느껴지는 어느 날의 뉴스를 상기했다. 뉴스 안의 CCTV. 첫 번째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온 죽음들.

“아니, 말도 안 돼.”

“뭐야?”

“도망쳐!”

두 번째 게이트가 열렸다. 바로 등 뒤에서.

데아는 하반신을 죽죽 끌며 기어가는 괴물들이 눈앞에 가득 찬 환상을 보았다.

“아악!!”

“으아악!”

사람들이 고함쳤다.

‘물속에 가까이 가면 안 돼. 그것들이 발목을 채어 갈 거야. 물속에 끌려가면 두 번 다시 나올 수 없어.’

백리서의 걱정 어린 충고들이 환청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철썩!

“……!”

그때 데아는 자신의 등을 후려치는 차가움을 느꼈다. 갑작스러운 추위가 온몸을 타고 팽창했다. 젖어 등에 달라붙은 옷이 축축했다. 피부가 아릴 정도로 아프기도 했다.

게이트 안에서 물이 나왔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뭐지?

그러나 당장 등 뒤로 다가온 물은 현실이었다.

철썩! 철썩!

고개를 돌려 보니 생성된 게이트 밖으로 물이 출렁이며 간헐적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많은 양이 아니라 다행이었지만, 처음 보는 인어종이 파도에 휩쓸려 덩달아 게이트 밖으로 튀어나오고 있었다.

손바닥 정도 크기인 납작한 인어였다. 인간의 상체와 물고기의 하체는 똑같았지만 그들의 이빨은 그 어느 강철도 뚫을 것처럼 단단하고, 날카로워 보였다.

그리고 고작 그것만으로도 시민들을 공황에 빠뜨리게 하기엔 충분했다.

“으아악! 인어가!”

“꺄아악!”

시민들의 비명이 사방으로 메아리쳤다. 어두운 밤하늘, 과도한 절망이 거리를 급습하는 가운데, 데아는 한 헌터 상식을 떠올렸다.

“인어가 나왔어! 헌터는 어디 간 거야!”

“아무 헌터가 좀 들어가 봐!”

헌터가 한 사람이라도 들어가면 그 게이트는 인어를 뱉어내던 걸 멈춘다.

수많은 나라에서 게이트를 대상으로 실험해 본 가장 확실한 결과 중 하나였다. 그리고 여기서 얼굴이 알려진 헌터는…….

“저, 저기 하영주다!”

“가윗도 있어!”

하영주의 얼굴 위로 서늘함이 덧씌워졌다.

“이 주위에 헌터 없어?! 인어가 더 나오기 전에 빨리 들어가 버려!”

“저기 하영주, 영영 헌터가 있다니까?!”

고개를 드니 사칭범은 후다닥 일어서 도망치려 하고 있었다.

어딜!

데아는 성큼 그에게 걸어가 멱살을 휘어잡았다.

“신분증 있어? 내놔.”

“헉, 흐, 네, 네……! 이 손만 놔주세요!”

이대로 도망갔다간 찾을 길이 없으니까.

“사과문 내가 다시 확인하고 신분증 보내 줄게. 그때까지는 헌터 활동 금지다.”

“흐, 네, 네!”

“범죄 아니에요?”

뒤에서 가윗이 소리쳤지만 데아는 무시했다. 뒤에서 게이트가 터졌지만 이건 이거고, 그건 그거였으므로. 그렇게 성공적으로 신분증 갈취에 성공한 데아는 남자를 놔주고 다시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길드원들 곧 온대요!”

“젠장,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려!”

헌터로서 인어를 사냥할 때 지켜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규칙.

절대 물에 가까이 다가가지 말 것.

인간은 물속에서 그것들을 절대 이겨 낼 수 없으니까. 차라리 물 밖으로 그것들이 나오길 기다렸다가 작살로 꿰어버려야 한다.

“데아야! 저리 떨어져!”

“누나!”

데아는 고개를 돌려 시야를 물들이는 하얀 빛무리를 마주했다. 눈이 멀 만큼 강한 빛이었다. 그 하얀 원형의 고리가 마치 누군가의 벌린 입 같다고, 문득 데아는 생각했다.

무언가를 집어삼켜서 단단한 이빨로 아작아작 씹어 넘기는 그런…….

게이트가 활성화되며 주변에 강한 반동을 일으켰다. 그 충격에 넘어진 사람들과 날아간 사람들 너머로, 데아는 본인을 잡아끄는 기이한 감각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불가항력이라고, 그 찰나 데아는 느리게 생각했다.

“…….”

모든 세상이 원형의 고리로 모여들었다. 자신의 모든 오감을 게이트가 앗아간 것 같았다. 주변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온몸에 튀기는 파도의 물방울이 하나도 거슬리지 않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발밑에서 꾸물거리며 기어 다니는 작은 괴물들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무서움에 몸부림 쳐야 하는데, 소리를 지르며 발밑의 인어들을 밟아 죽어야 하는데, 그렇게나 싫어하던 인어였는데.

정작 가까이 마주하니 그렇지 않았다. 참 이상한 현상이었다…….

“데아야, 뭐 해?!”

데아는 자신도 모르게 게이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원래 게이트가 이런 건가?

“이데아!!”

첫 번째 게이트의 활성화 때는 가까이 있지 못했으므로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건 몹시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을 향해 휘몰아치는 거대한 광풍 한가운데에서, 믿을 수 없지만 잔잔하고 따뜻한 미풍이 전신을 느릿하게 감싸고도는 기분이었다.

어서 와. 이리로 와.

네가 안식을 취할 곳으로 와.

그래선 안 된다는 직감이 지배적이었지만, 뇌리를 뒤흔드는 미약한 충동 또한 거셌다. 저 안으로 몸을 던져 뛰어들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문틈을 비집고 고개를 쳐들었다.

“데아야!”

처절한 하영주의 목소리가 언뜻 들렸지만 금세 지워졌다. 세상에 존재하는 건 자신과 게이트, 그리고 이 안에서 똬리를 틀고 있을 인어뿐이었다.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가면 영웅처럼 당당하게 살아남아 사냥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있는 거라고는 그냥 좀 희귀할 뿐인 스킬이 다인 주제에, 그럴듯한 공격 스킬 하나 없는 주제에, 가면 자살 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그럼에도 멈출 수가 없었다.

태양처럼 찬란하게 존재를 알리는 게이트가 마치 춤을 신청하듯 정중하게 손짓하고 있었다.

상태 창이 위험을 알리듯 눈앞에 펼쳐졌다. 불투명한 스킬 창이 빠르게 깜빡였다. 주인의 목숨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발악이라는 듯 애처롭게 존재를 드러내던 스킬 창은 데아가 게이트에 아주 가까이 다가가자 이내 꺼져버렸다.

“야!”

그때 팔이 잡힘과 동시에 몸이 돌려졌다. 창백한 낯의 하영주가 데아의 팔을 거칠게 잡고 질질 끌어당기고 있었다.

“너 미쳤어? 지금 공략 1팀 올 거야. 그때까지 대기해!”

하영주의 이성적인 고함이 현실을 일깨웠다. 그는 매우 긴장한 듯 보였다.

‘왜 그러지?’

그 순간 퍼뜩 정신을 차린 데아는 그제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펄떡이면서 자신에게 오는 인어를 진저리치며 밟아 죽이는 가윗, 가까이 다가가기만 하면 공격하는 작은 인어들 때문에 멀리 돌고 돌아 자신을 끌고 나온 하영주.

“헉.”

작게 숨을 뱉는 것으로 모든 환상이 깨져버렸다.

‘방금 뭐였지?’

게이트와 인어에게 느꼈던 찰나의 묘한 감정이 헛것이었다는 듯 그것들에 대한 역겨움이 속에 차올랐다. 물의 비린내, 게이트의 공포, 운동화 옆을 유유히 스치던 이빨달린 괴물.

그때 데아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게이트를 둘러싸고 있었다. 전부 놀이공원에 온 시민들이다. 그들은 게이트를 보며 도망가거나, 호기심을 버리지 못한 얼굴로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뭐야……. 저 사람 좀 이상해.”

“방금 봤어?”

데아를 향해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데아는 반사적으로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 다행히 마스크와 후드는 벗겨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왜 나를 보고?’

그 순간 데아의 눈이 자신을 촬영하는 한 시민의 핸드폰 카메라 렌즈와 정통으로 마주쳤다. 사위가 하얗게 탈색되는 건 한순간이었다.

“저 사람 게이트 생긴 거 보고 웃었지?”

“봤어, 너도?”

“어… 마스크 써서 잘못 본 줄 알았는데 눈이 잔뜩 휘어져서……. 난 진짜 무슨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어. 소름 끼쳐.”

심장이 크게 박동했다. 방금 전까지는 은은한 미풍에 휩싸여 있었는데, 갑자기 차가운 현실로 내동댕이쳐진 기분이었다.

그때 하영주가 데아를 훅 끌어안았다. 그는 키가 매우 커서, 데아는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부딪쳤다. 그도 몹시 묘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괜찮아 보지 마. 공략 팀 곧 온대…….”

잔잔하면서도 단단한 목소리였다.

“맞아요, 누나. 너무 놀라서 그래요. 조금만 더 기다려 보면…….”

“거기 영영이랑 가윗 아니야?!”

그때 누군가의 고함이 하늘을 갈랐다. 하영주의 몸이 움찔 떨렸다. 인어가 더 나오기 전에 누구든 안에 들어가라며 소리를 쳤던 남자였다.

“맞네! 당신들 헌터 아니야?! 인어가 더 나오기 전에 빨리 들어가! 어서!”

“…공략 1팀이 지금 오고 있는 중입니다. 합류한 다음에…….”

“장난하냐!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려! 다 죽으란 거야?! 당신들 의무가 시민을 지키는 거라며!”

하영주는 난감하게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방금 또 출렁이며 게이트 밖으로 물이 빠져나왔다. 동시에 사람들 사이에서 비명이 울렸다.

소량이었지만 눅눅하고 어두운 물빛이었고 그 안에서 같이 나온, 생전 처음 보는 인어들 또한 시민들에게 공포심을 주기는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게이트 밖으로 물이 나오는 일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던전 안쪽이 무슨 환경일지, 던전의 난이도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A급 헌터 둘과 B급 헌터 하나가 무작정 들어가는 건 굉장히 무모한 행위였다.

“죄송합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곧 공략대가 도착하니…….”

“공략대도 빨리 오라고 해! 먼저 들어가만 있으라는 말이 그렇게 알아듣기 힘들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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