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7화
―나는 아직 모르겠어요. 수면에 잠기는 태양의 파편. 눈부심에 찡그린 눈가의 주름. 확대된 세상이 당신을 향해 비산하죠.
―파도의 일렁거림은 그의 지느러미야. 수면 아래로 내려오는 햇빛은 그의 비늘을 비추고, 깊고 무거운 심해의 정적은 그의 머리카락을 수놓지. 맞아. 그는 바다를 닮았거든.
―우리는 모두 죽으면 바다로 돌아가. 바다로 돌아가 그를 도와…….
익숙한 노래가 헤타의 귀를 적셨다. 낡은 과거의 이야기. 지금은 산산조각 난 평화. 그 노래는 아주 어린 날의 시절 모두의 자장가였다. 지금은 들을 수 없는.
끼이익, 육중한 돌문이 열리자 매달려 있던 해초가 울렁이며 울렸다.
―어서 오세요. 무슨 일로……! 어!
허둥지둥 트레이를 들고 나오던 누군가가 문 앞에 서있는 인물을 보고 우뚝 멈췄다.
―세상에. 피파 님, 나와 보세요! 헤타 님이 오셨어요!
그러자 칸막이 너머 부스럭거리던 소리가 뚝 그쳤다.
깊게 파인 동굴을 개조한 의원 안에는 결정으로 가공한 약을 넣어 둔 서랍이 많았다. 탁자 위에 있는 수십 가지의 의료 도구는 낡았지만 깨끗했으며, 작게 소분한 약재료 또한 깔끔하게 정리되어 놓여 있었다.
2미터에 육박하는 큰 몸집의 남자가 완전히 들어오자 딸랑, 문이 닫혔다.
“오랜만입니다.”
나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러자 나무 파티션 너머 무언가를 열중해서 적던 피파가 고개를 돌렸다. 구불거리며 이마를 스치는 베이지색 머리카락. 코끝에 찍혀 있는 점. 후, 한숨을 내쉬며 깃펜을 내려놓는 섬세한 손가락. 그 사이에 가늘게 이어져 있는 물갈퀴.
“세상에. 머리카락이 짧아지니 못 알아보겠구나, 헤타.”
피파가 안경을 추켜올리며 느른하게 웃었다.
“리리타. 가서 손님한테 드릴 다과 좀 내오련?”
―네. 네.
일반 사람보다 덩치가 두 배 이상 큰 리리타는 헤타 쪽을 바라보지도 않고 빠르게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해해 줘. 원래 2세대 애들은 우리 같은 1세대를 무서워하는 게 정상이야.”
“알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야? 세상 소식 좀 얻어 왔니? 요즘 들어서 네가 잘 안 보인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드릴 말씀도 있지만… 이상한 소문 하나를 들어서 말입니다.”
“뭔데?”
헤타가 난처하게 눈을 깜빡였다.
“왜 인간들이 공략하는 던전에 출현하시는 겁니까?”
“아아. 어디서 그런 소식을 들었니?”
“전에 인간들의 카페에서……. 말 돌리지 마십시오.”
피파가 소리 없이 웃었다.
“웃으실 때가 아닙니다. 때문에 인간계에 소문이 이상하게 나있다고요. 이것저것 질문만 잘 해주면 좋은 아이템을 주는 이상한 인어라고.”
“재밌잖아.”
“재미없습니다.”
“우리한테는 넘치도록 있는 포션인데, 왜.”
“그 포션으로 기운을 차리고 인어들을 죽이지 않습니까.”
“네가 동족애를 가질 줄은 몰랐는데. 하지만 인간들이 사냥하는 건 선량한 인어나 평범한 하급 인어가 아니잖니? 정확하게는 악행을 저지르고 다니는, 처치 곤란한 악질 하급 인어를 대신 죽여 주는 거지.”
“그건 맞지만…….”
헤타가 침묵을 지키자 킥킥거리고 웃던 피파가 다시 눈을 내리깔았다.
“그래서? 여기 온 진짜 목적이 뭐니, 막내야.”
“…찾았습니다.”
피파의 갈색 눈동자가 순간 첨예하게 빛났다.
“찾았다고?”
“네.”
“누구를?”
“아시지 않습니까.”
피파가 뚫어져라 헤타를 바라보며 원형 탁자의 의자를 뒤로 뺐다. 서로 마주 앉자 때마침 리리타가 정갈하게 썰려 유리관으로 밀봉된 해초 다과를 들고 왔다.
“생각보다 느리고, 빠르네.”
유리관을 들어 올려 하나씩 다과를 꺼내 먹던 피파는 흥미 가득한 미소를 숨겼다. 리리타가 창문을 열자 수면 아래로 파고든 오후의 햇빛이 밀려들어 왔다. 유리관 위로 쏟아지는 햇빛을 바라보며 헤타가 고개를 들었다.
“트리야 누님은 아직 모르고 계십니다.”
“그러겠지. 트리야는 지금 폭군 놀이에 심취해 있어서 정신이 없거든.”
“그래서 왕궁을 나와 의원을 차리신 겁니까.”
“폭군의 횡포 아래 선량한 백성들을 지켜 줄 만한 왕족이 나밖에 없어서.”
“…….”
헤타의 은빛 눈동자가 피파를 투영했다.
100년 전의 인어 제국은 평화로운 곳이었다. 상급과 하급 인어들의 구분 없이 한 사회에 어울려 공생하던 이상향.
가장 강력한 최초의 인어 ‘태초’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눈부신 제국은 수백, 수천 년의 세월 동안 굳건했다. 그러나 100년 전, 불의의 사건으로 태초가 죽자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첫 번째로 나타난 현상은 소통의 단절이었다. 하급 인어와 상급 인어는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급 인어는 식욕과 폭력에 미친 괴물이 되었고, 상급 인어는 말이 통하지 않는 그들을 제국에서 내쫓았다. 추방당한 하급 인어들은 그렇게 거리의 부랑자가 되었고, 간혹 제국 안으로 침입해 그곳에 살고 있는 어린 상급 인어들을 공격하기도 했다.
인간들의 던전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어는 그렇게 변해버린 하급 인어였다. 안전을 위해 제거해야 하는 대상들.
하지만 그건 전조에 불과했다. 태초의 첫 번째 권속이자, 첫 번째 1세대 인어 트리야가 왕위에 오른 것이다.
그는 잔혹했고, 가차 없었다. 평화를 사랑했던 태초와 반대의 행보였다. 피비린내와 함께 등장한 폭군. 그가 바로 트리야였다.
그는 갑작스러운 변화에 반발하는 세력을 공개 처형으로 잠재우고, 뿔피리 소리가 길게 울리는 밤이 되면 어김없이 거리에 간부들을 풀어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백성들을 무작정 잡아들여 고문을 했다. 또 신고제를 만들어 이웃을 신고하면 훈장과 포상금을 주었으며, 소식을 전하는 정보의 창구를 하나로 줄여 모든 언론을 통제했다.
연좌제를 탄생시켜 한 인어가 잘못해도 그의 권속과 주군, 그리고 가족까지 줄줄이 벌을 받았으며, 인파 속에는 비밀 간부가 숨어들었다.
트리야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신격화했다. 때문에 일정한 시간이 되면 백성들은 거리에 나와 왕궁이 있는 위치를 향해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저항하는 백성은 없었다. 옛적에 이미 끌려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처형당했으므로. 아무도 믿을 수 없었다. 가족이 서로를 신고하는 세상이 도래했으므로.
학교에서도 정해진 내용 외의 다른 것을 가르칠 수도, 배울 수도 없었다. 간부의 폭력에도 침묵해야만 했다. 모두가 덜덜 떨면서도 고개를 숙이는 공포 사회의 연속이었다.
“제왕은 하나면 충분하지.”
그렇게 트리야는 태초와 관련된 모든 일을 금기로 지정했다. 제국 안에 조금 남아 있던 태초의 흔적은 전부 다 지워졌으며, 태초의 죽음이나 그 자체에 대해 더 알아보려는 인어는 역모 죄인으로 몰려 끌려갔다.
‘트리야’는 선대 제왕 ‘태초’를 매우 증오한다.’
모두가 그렇게 믿었다. 트리야도 굳이 나서서 해명하지 않았으므로 그 가설은 정설로 자리 잡았다.
제국 밖에는 이성을 잃은 하급 인어가, 제국 안에는 폭정을 저지르는 폭군이 있는 것이다.
“너도 날 이해하잖아.”
“…전.”
“그러니까 우리가 유일한 중립인 거고.”
피파가 곰방대 안에 가루를 넣곤 한 번 훅 빨았다. 건조한 미소가 얼굴 위로 그려졌다.
이러한 세상에는 당연히 혁명을 꿈꾸는 역도들이 생겨나길 마련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다친 인어들은 치료받을 곳도 마땅치 않았다. 그렇게 피파의 의원은 그런 역도들이 종종 찾아오는 유일한 휴식처가 되었다.
“그래서…입니까.”
“상급 인어가 폭정에 시달리는 어린 백성들을 굽어보는 건 당연한 거란다.”
피파가 의원을 차린 곳은 제국 변두리, 간부조차 잘 오지 않는 곳이었다. 조금만 올라서면 태양을 마주할 수 있는 아주 얕은 바닷속, 피파가 숨을 뱉었다.
“게다가 난 왕족이자 의사니까.”
◈ ◈ ◈
[진짜샤샤 : 정말 제가 샤샤거든요 어 정말 억욿해요]
데아가 올린 회심의 댓글 하나. 그러나 반응은 싸늘했다. 이미 가짜 샤샤가 본인에게 유리한 정보를 노출해 가며 판을 주도한 탓이었다.
개인 핸드폰을 한 달 전에 처음 만져 본 디지털 초짜 이데아는 그렇게 쓸려 나갔다. 인터넷의 용자들은 실명이었음에도 겁이 없었고, 성격이 나빴다.
[진짜샤샤 : 진짜억웅ㄹ울하고 눈물ㅇ넌다.]
└말투 컨셉임?
└어르신 여기서 이러시면 안 돼요.
└그런데 이 사람은 헌터명 아닌데 왜 강퇴 안 당함?
└운영자도 팝콘 뜯는 중임
└ㅋㅋㅋㅋㅋ어 ㅋㅋㅋㅋㅋㅋ
그때 가짜 샤샤의 댓글이 하나 더 달렸다.
[샤샤 : 아 ㅋㅋㅋ 진짜 어이없어. 죄송한데 저 진짜로 샤샤 맞고 여파 길드원 맞고, 권도언 길드장님이랑 릴림 헌터랑 친하거든요ㅜㅜ 제발 사칭 좀 하지 말아 주세요. 전부터 정말 스트레스받아요ㅜ 인증도 할 수 있거든요.]
“인증? 뭘 인증한다는 거야?”
[진짜샤샤 : 정보 뜬 거 업는데 뭘 인증한다는 겆니?]
[샤샤 : 헌터 등록증이요.]
[진짜샤샤 : 헌터 등롯ㄱ증 일주이 이후ㅜ에 나오ㅏ요]
마음이 조급해지자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문장이 돌아갈 수 없는 길을 건너고 있었다.
[샤샤 : ?? ㅋㅋㅋ무슨 소리예요 이미 나왔거든요.]
└(사진)
[샤샤 : 진짜 제발 사칭을 하려면 머리 좀 쓰고 하든가…ㅋㅋㅋ]
가짜 샤샤가 보낸 사진 안에는 샤샤의 헌터 정보가 적힌 공식 헌터 등록증이 찍혀 있었다. 헌터 등급 S급 소속 길드 여파…….
‘뭐, S급?’
그 밑의 대댓글로는 ‘S급이라니 대단하다’, ‘한국의 다섯 번째 S급 헌터 아니냐’, ‘진짜네. 인증ㅇㅈ’, ‘나도 헌터 등록증 나왔는데 똑같이 생겼다. 주작일 리가 없다.’와 같은 말이 와르르 달리고 있었다.
[5번째 S급 헌터면 이미 언론에서 난리 났을 텐데 너무 조용한 거 아닌가?]
그때 누군가가 진짜 샤샤 편을 들었다.
“맞아, 그거야. 너무 조용하잖아!”
그 밑으로 동의를 표하는 대댓글이 스리슬쩍 달리기 시작했다.
[샤샤 : 곧 발표될 예정이었어요ㅡㅜ 원래 극비인데 아까 길드장님한테 말씀드려 보니까 사칭이 더 심각한 문제라고 그냥 말해도 된데요.]
└길드장이면 권도언 아님?
└인맥 클라쓰
[진짜샤샤 : 나 에쓰ㄱㅡㅂ 안이야]
억울함에 댓글을 달아도 돌아오는 건 비슷한 반응뿐 이었다.
└ㅋㅋㅋㅋㅋ
└애잔하다
└왜 한국 유일 특수 스킬 헌터 능력치 깎아내리세요 ㅜㅜ
└추해여 님
[샤샤 : ㅋㅋㅋㅋ그럼 몇 급인데요?]
‘N급…….’
데아는 베개에 머리를 박으며 끙끙 앓았다. B급? 그러나 이건 ‘샤샤’가 아닌 ‘이데아’의 등급이었다. 그렇다. ‘샤샤’의 대외적인 등급은 아무도 모른다. 자신도 몰랐다.
‘뭐라고 말해야 하지?’
[진짜샤샤 : 비밀]
└??
└? 아 진짜 개웃곀ㅋㅋㅋㅋㅋ ㅜㅜ
└? 저기요 ㅋㅋㅋㅋㅋ뭐 하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밀당하냐
└근데 샤샤 정보 나온 게 아무것도 없어서 진실을 확인할 방법은 암것도 없는 거잖어.
└그러니까 비밀이라고 무작정 우길 수 있는 거지. 근데 그럴 바엔 S급 믿겠음.
└일단 헌터 등록증이 있는 사람 말 믿어.
그 후로도 온갖 항변을 달았지만 돌아온 건 비웃음뿐이었다.
데아는 알고 있었다. 얼마나 말이 안 되는 댓글이었는지, 또 인터넷 세계가 얼마나 냉혹한지. 이런 식으로 본인의 자아를 뺏기게 될 줄은 몰랐지만.
계속 보니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있었다. 샤샤의 기사가 처음 나간 한 달여 전부터 가짜 샤샤는 ‘헌팅’에 등장해서 사람들의 질문 세례에도 본인인 것처럼 성실하게 답변을 해줬다고 한다.
어느 인어의 사진을 들고 와 약점을 물어도 술술 대답을 해주고―사진이 찍힐 법한 흔한 인어는 인터넷에 찾아보면 다 약점이 나온다!― 권도언과 백리서, 가윗과 하영주를 포함한 공략 1팀과의 친밀함을 과시하고 다니니 헌터들이 가짜 샤샤를 진짜로 믿을 법도 했다.
[와 벌써 샤샤 S급이라고 알려졌나 봐.]
└여기 커뮤 크니까… 그리고 핫플 났잖아ㅜ
└엥 벌써 뭐 뜨는데.
“뭐?”
보니까 속보까지는 아니고 SNS 지라시처럼 도는 수준의 정보였다.
[속보]신비주의 헌터 ‘약점 파훼’ ‘샤샤’ 사실 한국의 다섯 5번째 S급…….
일이 커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