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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15화 (15/223)

※ 015화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길드에서도 파견 요청이 폭발적으로 오고 있는데 다 무시하고 있어요. 이데아 씨는 언론에 오르는 걸 꺼리고, 해외 진출은 월드스타가 되기 딱 좋고. 저희는 데아 씨에게 잘 보여야 하거든요.”

“하지만 많은 게이트에 드나들다 보면…….”

데아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붉은 인어를 만날 기회가 더 많아지지 않을까요?”

권도언은 그런 데아의 눈동자를 좋아했다.

“그건 데아 씨가 매우 강할 때의 이야기죠.”

동공과 홍채가 구분되지 않는 새까만 암흑이 그곳에 있었다. 길게 이어진 눈매는 고양이처럼 치켜 올라갔고, 반으로 갈라진 앞머리 밑의 눈 아래에는 그늘이 항상 드리워져 있었다.

그래서 데아를 처음 보는 사람은 그가 무뚝뚝하고 차갑다며 오해하고는 했는데, 권도언은 그런 데아가 오히려 호감이었다.

“수많은 게이트 안에 들어가 항상 살아나올 수 있어요? 매우 강하고, 또 운이 좋으면 붉은 인어를 만날 가능성이 많아지겠지만, 운이 없으면 만나기 전에 죽어요.”

그 주제에 속은 의외로 호전적이고 맹탕이라서.

“…….”

“혹시 사람을 더 많이 구하고 싶은 정의로운 마음가짐을 품고 있다면, 뭐 가도 좋아요. 곧바로 파견서를 처리해 줄 수 있으니까. 그런데 굳이?”

데아의 눈이 삐딱해졌다.

분명 재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훤히 읽히는 속마음에 권도언이 작게 웃었다.

“데아 씨가 찾는 붉은 인어는 높은 등급의 인어고, 나오면 곧바로 화제가 될 겁니다. 그때 가도 늦지 않아요. 불나방처럼 뛰어들다 죽으면 복수가 다 무슨 소용이에요? 관련 소식이 나오면 곧바로 알려 줄 테니까…….”

“알았어요. 잘 알아들었어요.”

그리고 데아는 눈을 흘기며 혼자 꿍얼거렸다.

계약 전과 후 태도가 좀 달라진 것 같은데…….

“잡은 물고기다 이건가.”

“잡은 물…….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워 왔어요?”

하여튼 이상한 말만 주워들어 와.

권도언이 혀를 쯧, 찼을 때, 올라갔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자신을 발견하고 인사하는 사람들의 인파 속에서 그는 그린 듯 완벽한 길드장의 미소를 짓고는 잽싸게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헌터 소식에 빠삭해서 나쁠 건 없어요. 각성자만 가입할 수 있는 커뮤니티도 있는데, 알아요? 가입하는 건 추천하진 않지만, 그냥 가끔씩 기사만 봐요.”

또 이상한 건 주워듣지 말…….

말이 끝나기 전에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혔다. 빠른 속도로 바뀌는 엘리베이터의 숫자를 바라보며 데아가 핸드폰을 켰다.

“정보…….”

더듬거리며 와이파이를 설정한 데아는 곧장 헌터 커뮤니티를 쳐서 제일 위에 나오는 카페에 가입했다. 샤샤가 국내 최대 헌터 커뮤니티 ‘헌팅’에 가입하는 순간이었다.

◈          ◈          ◈

안녕하세요! 국내 최대 헌터 커뮤니티 사이트 ‘헌팅’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1. 가입자명은 반드시 헌터명으로 설정 부탁드립니다! 어길 시 강퇴이니 꼭 유념해 주세요!

데아는 자판을 느리게 두드렸다.

직접 써야 하는 건가? 얼굴이 드러나는 곳이 아니니까 괜찮다 이건가?

샤샤

데아는 익숙하지 않은 작은 칸에다 자신의 헌터명을 써넣고 확인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이미 사용 중인 닉네임입니다.

“뭐?”

아니, 자기 헌터명만 적으라며? 중복이 있을 수 있나? 누가 내 헌터명을 뺏었어?

누군가가 자신을 사칭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했다. 그러나 데아는 침착하게 다시 닉네임을 적었다.

진짜샤샤

이번에는 있는 닉네임이라고 뜨지 않았다.

휴, 우선 가입을 하고 나중에 정정하는 글을 올려야지.

그때 정신이 팔린 샤샤, 이데아는 차마 그 밑의 작고 흐린 회색 글씨를 읽지 못했다.

(익명을 원하시는 분은 익명 게시판이 따로 있으므로 그곳을 이용해 주세요!)

“좋아, 그러면 그다음은.”

2. 현직으로 활동하는 헌터만 가입 가능합니다. 비각성자 가입 발각 시 무통보 강퇴

네 그런대 비각성자가 가입한 것도 알 수 있어요? 그런데 자기 헌터명으로 가입 안 하몀누 강퇘라는데 제 헌터명 뺏은 그 사람은 왜 강퇴 안 시켱요?

아직 익숙지 않은 자판 때문에 자꾸만 손이 헛나갔지만 데아는 최선을 다해 문장을 완성시켰다.

3. 소속된 길드가 있나요?

여파요

4. 본인의 포지션은?

‘포지션? 그런 게 있나?’

데아는 가입 절차 속 숨겨진 복병에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가윗은 힐러였고 영주 언니는 근거리 공격수였다. 그러나 자신에게 붙여진 이름은 따로 없었다.

약점 파훼. 이건 스킬 특징이지 포지션이 아니다.

같은 공략 1팀 헌터들이 자신을 두고 던전 공략 프리 패스라고 말하긴 했는데……. 감격에 찬 얼굴로 열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가윗의 얼굴이 잠시 떠올랐다.

고민하던 데아는 다시 핸드폰을 엄지로 두들겼다.

좋은 거

5. 새내기는 이용 불가인 게시판이 있습니다. 꼭 가입 인사 후, 등업을 먼저 해주시길 바랍니다.

네 그런데 새네기랑 등업이 뭐에요?

6. 카페 활동 많이 하실 거죠?ㅎㅎ

문득 시간을 보니 벌써 30분이 지나있었다. 갑작스러운 헌터명 박탈에 따른 분노와 느린 자판 실력이 불러온 참사였다.

네ㅔ

데아는 왠지 힘이 빠져 대충 응답했다. 그리고 가입하기 버튼을 누르니…….

가입 승인 시에는 최대 하루가 소요되니 유념 바랍니다.

“이렇게 깐깐하게 받을 거면서 질문을 왜 이렇게 많이 줬지?”

그는 우선 침착하게 카페에 들어가서 검색창을 클릭했다.

모든 정보를 여기서 얻을 수 있다 이거지? 그러면 ‘샤샤’에 대해 사람들은 뭐라고 하고 있을까?

하지만 데아는 쉽사리 자판을 누르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6년 전 생존자는 온갖 구설수에 휘말렸다. 경찰관이 기사가 나왔다고 보라며 내어 준 화면을 무심코 밑으로 내렸다가 보인 댓글난에 속이 뒤집어지는 감각을 또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샤샤’와 ‘6년 전 생존자’는 다르다. 권도언의 말을 들어보면 아직 사람들은 그 둘이 동일 인물이라는 걸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고,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샤샤’에 대하여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샤ㅅ

몇 번을 지우고 쓰기를 반복하다가 이내 확인 버튼을 눌렀다.

‘괜찮을 거야.’

자기 서치의 첫 발걸음이었다. 심호흡을 하고 액정을 들여다보자.

가입한 회원만 볼 수 있는 게시물입니다.

“에이 씨…….”

데아는 기숙사 침대 위에 핸드폰을 던졌다. 진이 다 빠져버렸다. 역시 이런 커뮤니티 따위에 진심이 되는 게 아니었다.

핸드폰에 코를 박고 지나가는 데아를 본 하영주는 핸드폰과 커뮤 중독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며 ‘정보먹버’만 하라고 명언을 남겼다. 그의 말은 옳았다. 사람을 가지고 놀리는 이런 커뮤니티와는…….

데아는 어플을 껐다. 그러자 새로운 알림 창이 나타났다.

알림 설정을 하시겠습니까?

알림 설정? 그런 건 모른다.

데아는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한 시간 뒤, 쉴 새 없이 어플을 들락거리던 데아는 가입 승인이 완료되었다는 알림을 보자마자 곧바로 ‘헌팅’을 켜서 가입 인사 게시판에 들어갔다.

데아는 훌륭한 커뮤니티의 새싹답게 공지를 정독하며 웬만한 커뮤니티 은어는 거의 습득한 상태였다. 새내기는 아직 등급 업그레이드(등업)을 하지 않은 갓 가입한 유저였다.

[안녕하세요. 가입 인사함니다. 제가 진자 샤샤입니다. 헌터명ㅎ 훔치신 분 돌려줄세요.] 18:32

―진짜샤샤

안녕하세요! 국내 최대 헌터 커뮤니티 사이트 ‘헌팅’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닉네임은 반드시 헌터명으로 설정 부탁드립니다.

성인 인증은 비밀 댓글로 인증 사진을 올려 주시길 바랍니다!

인증 사진 : 헌터명과 아이디를 쓴 종이로 신분증 앞 번호 두 자리를 제외하고 가린 사진

안녕하세요.

제가 진짜 샤샤입니다.

오늘 헌터 등ㄹ록하고 왔급니다. 그런데 제 헌터명 돌러주세요.

댓글 0

깔끔하니 좋았다. 그렇게 만족스럽게 업로드를 마쳤을 때였다. 갑자기 기숙사 문이 쾅쾅거리며 열리더니 흥분한 기색의 하영주와 가윗이 발을 동동 구르며 들어왔다.

“데아야, 데아야, 이것 봐. 진짜 개무섭고 완전 재밌는 거.”

“누나, 던전 괴담 떴어요! 대박이에요, 진짜로!”

“갑자기 찾아와서 무슨 말을…….”

온 창문에 암막 커튼을 달고 살던 어둠의 자식의 방에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바깥의 햇빛은 너무 강렬했다. 하지만 데아가 눈을 질끈 감든 말든 그들은 ‘무서운 던전 괴담’의 괴이함을 그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어 제정신이 아니었다.

하지만 데아는 무심하기만 했다. 사실 그런 무서운 이야기는 병동 안에서도 많이 돌았다. 자살한 어디 환자가 새벽 세 시마다 떠돌아다니고, 2층 남자 화장실의 수건이 핏자국과 함께 항상 바닥에 떨어져 있고. 그러니까 이런 시시한 장난질에는…….

“던전 안에서 사람이랑 똑같이 생기고 사람 말을 하는 인어가 나왔대요!”

이제부터 걸려 줄 예정이었다.

뭐?! 핸드폰을 집어 던진 데아가 허겁지겁 밖을 향해 달려갔다. ‘그쵸, 누나라면 이런 거 좋아할 줄 알았어요.’ 산뜻하게 울리는 가윗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데아의 기숙사 문이 닫혔다.

아무도 남지 않은 어두운 기숙사 방 안, 알림 설정도 해놓지 않아 울리지 않는 핸드폰 속, 그 ‘샤샤’의 짧은 가입 인사에 댓글이 지금 막 635개를 넘기고 있다는 사실을 데아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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