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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13화 (13/223)

※ 013화

“일 못한다고 소문내는 것도 아니고.”

데아는 권도언과 백리서, 영영 하영주와 가윗 서영호, 그리고 20명이 조금 넘는 공략 1팀과 함께 헌터 연구 센터를 찾았다. 한 달 전 같은 던전에서 싸웠던 반가운 얼굴들이었다.

“적어도 대형 길드끼리는 같은 날에 배정해 두면 안 되지.”

“오셨습니까, 길드장님!”

도착해 있던 공략 1팀은 권도언을 보자마자 고개를 숙였다.

수평적인 문화라면서요.

같은 세단을 타고 온 데아가 백리서를 흘끗 보았다.

“우선 가장 많이 출동해야 할 공략 1팀부터 오늘 전부 등급 측정합시다. 다른 길드원 만나도 싸우지 말고.”

“안 싸워요!”

하영주가 대뜸 소리쳤다. 권도언이 코웃음 쳤다.

“먼저 시비 걸지도 마시고요.”

“시비 걸리면요?”

“그럼 이기고 와요.”

“지면요?”

“그럼 근신.”

“헉.”

길드끼리는 사이가 그리 좋지 않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길드장 간의 사이가 안 좋은 게 주원인인 듯싶었다.

현재 공식적으로 언론에 노출된 한국의 S급 헌터는 총 네 명이었다.

여파의 공격 대장으로 있는 ‘릴림’ 백리서와 여파의 길드장 ‘도원’ 권도언.

길드 ‘여례아’의 길드장 ‘여례’ 여기은.

그리고.

“뭐야, 오랜만이야.”

높고 억양이 강한 목소리에 백리서가 눈을 콱 찌푸렸다. 밝은 오렌지빛의 머리카락에 동그란 선글라스를 낀 여자가 붉은 페라리에서 우아하게 내려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캐주얼한 청바지에 베이지색 퍼 재킷. 무채색 계열의 옷만 자주 입는 자신과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 같다고, 데아는 무심코 생각했다.

선글라스를 벗는 손끝이 반짝 빛났다. 금색 반지가 새끼손가락에 끼워져 있었다. 한눈에 봐도 일반적인 반지 같지는 않았다.

“최근 소식은 뉴스에서 들었어. 던전 클리어 축하해, 릴림, 그리고 도원.”

“권도언.”

“얘는 왜 헌터명으로 불리는 걸 싫어하는지 모르겠어. 그럴 거면 나처럼 본명이랑 같게 짓지. 그치, 릴림?”

“‘도언’으로 지으려 했는데 기자가 잘못 듣고 ‘도원’이라고 기사를 내버린 걸 어떡해.”

“맞아, 그랬지!”

릴림이 대꾸하자 여자가 소리 내어 웃었다. 그리고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지은 권도언을 향해 ‘도원’도 괜찮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눈가에 잡힌 주름마저 매력처럼 보일 만큼, 발랄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남편이랑 이혼 소송은 다 끝냈어?”

“아, 말도 마.”

그가 원치 않는 화제를 접한 듯이 인상을 찌푸렸다.

“위자료 달라고 그렇게 극성이더라. 또 손을 올리길래 그대로 손가락을 뒤로 꺾어버리고 내쫓았어. 등신.”

또 다른 S급 헌터이자 길드 ‘023’의 길드장, 차현. 헌터명 ‘차현’. 헌터명과 본명이 일치하는, 몇 없는 헌터이자 원거리 사격 공격에 특화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웃는 얼굴로 사람 멕이는 걸 좋아하고, 권도언은 귀여워 보일 정도로 재수가 없고, 속을 갈라 보면 능구렁이 수백 마리가 꿈틀거리고 있을 거라는 백리서의 말이 틀린 게 아니었던지, 여파의 공략 1팀 길드원들을 쭉 둘러본 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던전 클리어 팀 인원이 여기 다 모였네? 그러고 보니 엄청난 소문을 들었는데, 그 인어의 약점을 볼 수 있는 헌터가 여파에 있다는 소문이 찌인하게…….”

그리고 데아는 표정 관리에 실패했다.

‘소문? 무슨 소문?’

당황해서 빠르게 눈을 깜빡이는 데아를 큰 눈으로 쳐다본 차현이 의외라는 듯 웃었다.

“그쪽이에요?”

“네? 아니…….”

“뭐야, 생각보다……. 아니지. 여파가 잘해 줘요? 저희가 조건 두 배로 더 잘해 줄 수 있는데, 괜찮으면.”

“거기까지 해, 차현.”

보다 못한 백리서가 막아서자 권도언이 앞으로 나섰다.

“뭔가를 착각하는 모양인데, 여기 이분은 이번 등급 측정을 도와주러 온 여파의 보조 인력입니다. 샤샤는 지금처럼 이상한 사람이 막무가내로 스카우트 날릴까 봐 오지 않은 상태고.”

“아… 뭐야, 그런 거였어?”

권도언이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그의 어깨 너머로 침착하게 표정을 관리하는 길드원들이 보였다. 그러나 표정이 풀린 차현은 이내 데아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착각을 했네.”

샤샤 보고 싶었는데.

차현이 미안한 기색으로 데아를 향해 싱긋 웃고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데아의 등 뒤로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그쪽 길드원은 어디에 버려두고 여기 와서 이럽니까?”

“우리는 저녁부터 측정 시작이거든. 나는 사전 답사 온 거야.”

아직 시간은 점심때였다. 데아는 익살스럽게 손을 흔들면서 그럼 다음에 보자며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오늘 차현을 볼 줄은 몰랐는데. 그래도 순순히 돌아가니 다행인가.”

백리서의 중얼거림에 ‘왜요?’ 하고 묻자 그가 난처하게 웃었다.

“예전부터 나를 영입하려고 찰거머리처럼 졸졸…….”

“여파 헌터님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그때 연구 센터의 문이 열리더니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이 뛰쳐나왔다.

한 명씩 나와서 등급 측정을 받으면 된다는 말에 대기실로 안내받는 동안 데아는 연구 센터로 오는 차 안에서 권도언과 백리서가 했던 말을 다시 상기했다.

“어젯밤에 연구 센터에서 완성된 등급 측정 키트를 하나 훔쳤어요. 그리고 조작을 좀 했죠.”

아무렇지도 않게 엄청난 말을 한 권도언이 조수석에서 발을 까딱이며 웃었다.

“아직 각성자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초반이라 이런 류의 보안은 약하거든요. 까다로운 작업이긴 했는데 뭐, 그 일회용 키트는 누가 사용해도 B등급이라고 나올 거예요. 그렇게 해놨으니까.”

그 말에 안절부절못하는 건 데아뿐이었다.

“…그런데 그 해당 키트를 제가 쓰게 될 거라는 보장이 없지 않아요?”

“걱정 마세요. 다 개입해 놨으니까.”

“아… 네.”

대외적으로 데아는 여파 소속 평범한 길드원 1이 될 예정이었다. 당연히 그의 등급 측정 순서는 맨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줄어들어 가는 대기실 안에서 차례를 기다리길 두 시간,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데아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금 따끔해요.”

노란 줄로 팔뚝을 칭칭 묶고는 피를 뽑아간 연구원이 권도언이 손수 골라준 키트 위에 피를 떨어뜨렸다.

당연히 그곳에 나온 건.

“B등급입니다. 헌터님.”

“아, 네. 감사합니다.”

“이데아 씨, 먼저 나가 계세요. 전 아직 측정을 안 했거든요.”

등급 측정실에는 권도언과 연구원만 있었다. 데아는 그대로 나가는 문을 밀며 걸음을 옮겼다.

‘뭐야. 긴장했는데 정말 별것 아니었어.’

◈          ◈          ◈

권도언은 닫힌 문을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그때 연구원의 호출기가 요란하게 울려댔다.

“어, 갑자기 호출이……. 아직 측정을 다 끝내지 못했는데.”

난처한 기색으로 연구원이 권도언을 바라보자 그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바쁘신 일 먼저 끝내고 오세요.”

잘생긴 얼굴에 뛰어난 능력, 길드장이라는 위치. 어려운 사람이라는 인상을 깨주는 신뢰감 넘치는 권도언의 은은한 미소에 연구원이 어색하게 웃으며 그럼, 하고 운을 떼었다.

“원래 이렇게 자리를 비우면 안 되는데, 정말 죄송해요, 길드장님. 그럼 한 10분만 기다려 주세요!”

“네, 기다리겠습니다.”

연구원은 곧장 자리를 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백리서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수고했어.”

“호출기 단속을 어떻게 하는 거야. 하나 훔쳐도 아무도 모르니 원.”

말을 마친 백리서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이렇게 연구원을 따돌리면서까지 해야겠냐는 눈빛이었다.

“당연하지. 너는 N등급을 믿어, 그럼?”

“어느 정도는.”

“난 직접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안 믿어.”

권도언이 자연스러운 발걸음으로 이데아의 피를 뽑았던 샘플 근처로 다가갔다. 능숙하게 혈액이 담긴 관을 집어 올린 그는 안주머니에서 새로운 키트를 하나 더 꺼내 들었다.

“이건 조작 안 한 거.”

그리고 능숙하게 포장을 까 그 위로 이데아의 피를 한 방울 떨어뜨렸다.

연구원이 다시 돌아오기까지의 시간은 10분. 보통 7, 8분이면 결과가 나오니 시간은 충분했다.

“길드장으로서 이데아 씨의 진짜 등급을 확인하는 건 나쁜 게 아냐. 듣도 보도 못한 N등급이라는 사실이 진실이든 아니든.”

“뭐… 그렇지. 그런데 이 등급 측정기는 S~F등급까지밖에 측정하지 못해. 데아가 정말 미지의 등급을 가지고 있다면 뜨지 않을 거야.”

“그건 봐야 아는 거지. 그리고 걱정하지 마. 이데아 씨는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할 성격은 아닌 것 같으니까. 하지만 N등급이라는 이상한 등급이 믿어져야 말이지…….”

이내 등급 측정 키트가 깜빡거렸다. 권도언과 백리서는 말을 멈추고 등급 키트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키트에 떠오른 등급은 최하위부터 차례로 올라간다. S등급 헌터가 키트를 통해 측정해도 처음에는 우선 F가 뜨고 E, D, 그리고 자신의 등급으로 올라가 확정되는 방식이었다. 이데아의 새로운 키트 또한 처음에는 F등급이 떴다.

F

키트의 불빛이 붉게 깜빡거린다는 건 이다음 등급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데아의 키트는 계속 깜빡거렸고 이내 E등급으로 올라갔다.

“아마 B등급까지는 무난하게 올라갈 거야.”

권도언은 계속 반짝이며 C등급까지 올라간 키트를 삐뚜름한 미소와 함께 지켜보았다. 이윽고 키트 안의 알파벳이 이내 바뀌었다.

B

그리고 불빛이 깜빡이는 속도가 느려졌다.

“으음…….”

“거봐. 왜 N등급이 떴는지는 모르겠지만 훈련장에서 본 등급은 딱…….”

하지만 권도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느려지던 불빛이 다시 빠르게 깜빡이더니 알파벳이 다시 휙 돌아간 탓이었다.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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