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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12화 (12/223)

※ 012화

―너무해요.

누군가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뭐가?

‘나’는 물었다. 고개를 들자 해류에 흔들리는 긴 하얀 머리카락이 보였다. 손을 뻗자 쉽게 만져졌다.

아, 이건 내 머리카락이다.

―가지 마세요.

누군가가 또 ‘나’에게 말을 걸었다. 부유하는 지느러미, 햇빛을 받아 녹색으로 빛나는 머리카락, 어린 티가 남아있는 앳된 누군가.

―내가 당신의 첫 번째 권속이잖아요. 그런데 왜 다른 권속들이 깨어나길 더 기다려요? 므아나 하나로도 난 벅차다고요. 여기서 당신의 사랑을 더 빼앗기긴 싫어요.

머리 위에 하얀 산호가 장식된 작은 여자아이. 바닷속으로 파고들어 오는 가느다란 햇빛이 비극의 종소리처럼 주변을 적셨다. 하늘거리는 물고기의 꼬리, 반투명한 물갈퀴.

―나 하나만으로는 부족해요?

분명 아이는 울고 있었다. 눈물은 보이지 않았지만.

―당신이 간다면…….

아이의 눈이 순간 사납게 번뜩였다.

―나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          ◈          ◈

늦은 아침에 기상한 데아는 양치를 하고 세면대에 거품을 퉤 뱉으며 꿈의 모든 것을 망각했다. 원래 꿈이란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꿈이고.

대충 후드 집업을 뒤집어쓴 데아가 기숙사 문을 열고 나갔을 때였다. 문에 끼워져 있던 쪽지가 툭 떨어졌다.

이 무슨 구시대적인…….

그러다 아직 자신에게 개통된 핸드폰이 없다는 사실을 상기해 낸 데아는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쪽지를 확인했다.

아침 드시고 길드장실로 오세요.

아, 예, 예.

곧장 식당으로 내려가 아침을 먹은 데아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52층의 길드장실로 올라갔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마주치는 길드원들마다 한껏 상기된 얼굴이었다.

‘오늘 무슨 일 있나?’

“세계 최초의 던전 클리어가 우리 길드라니!”

한 길드원이 소리쳤다. 모든 상황을 납득한 데아가 고개를 돌렸다.

문을 열자 전화 통화를 하고 있던 권도언이 흘끗 데아를 보더니 ‘아, 네. 그럼 그렇게 진행해 주세요. 네, 끊겠습니다.’라고 차갑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안 헤매고 잘 왔네요?”

“52층 통째로 길드장실인데 헤맬 게 뭐가 있어요.”

“다른 사람들은 이상하게 길을 잘 못 찾던데…….”

권도언은 능숙하게 소파를 향해 눈짓했다. 푹신한 방석이 깔려 있는 고급스러운 소파에 앉자 바로 앞에 놓여 있는 계약서가 눈에 띄었다. 한쪽 면에 자신의 이름과 ‘샤샤’라는 헌터명이 적혀 있는 정식 헌터 등록 계약서였다.

“잘 읽어 보고 사인하세요.”

계약서는 잘 읽어야 한다.

그러나 별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한 이데아가―애초에 계약서를 보는 눈이 없기도 했다.― 쓱쓱 자신의 이름을 적을 때였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백리서가 환하게 미소 지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데아 씨!”

“네, 그…….”

백리서가 기대하는 눈으로 바라보기를 한참, 데아가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리서 언니…….”

“그래요.”

오늘따라 기분이 좋은 건지 실실 웃은 그가 권도언을 옆으로 툭 밀어내고는 맞은편 소파에 몸을 기댔다.

“이데아 씨는 저한테 말 놔도 좋은데.”

백리서가 직구를 던졌다. 사회생활 단절 기한 6년 차 이데아는 침묵했다.

“리…서 언니는 놓으셔도 돼요. 그래도 저는 안 놓을게요.”

“왜?”

백리서는 기회를 저버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곧장 말을 놓은 그는 데아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턱을 괴었다.

“그… 앞으로 상사가 되실 예정이니까…….”

“아하!”

납득했다는 듯이 백리서가 소리 내어 웃었다. 권도언이 둘이 뭐 하냐고 꿍얼거렸지만 백리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지. 이제부터는 정식 여파 소속 헌터지. 그래도 언제든지 반말하려면 해도 돼. 나는 다 좋아.”

그리고 백리서가 권도언을 쳐다보자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저한테는 말 놓지 마세요. 저도 안 놓을 겁니다.”

“아무 말도 안 했는데…….”

“…….”

한참 볼펜을 빙글빙글 돌리던 권도언이 노트북을 가져오더니 데아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러면 인터뷰를 시작할까요?”

“이렇게 갑자기요?”

“뭐, 나중에 하나 지금 하나 똑같으니까요. 그리고.”

인터뷰는 형식적인 거니까.

권도언은 언제 얼굴을 찡그렸냐는 듯 황금 알을 낳는 거위를 보는 눈으로 데아를 바라보았다.

데아는 사인을 마친 계약서를 내려다보았다.

‘나… 잘한 거겠지?’

인터뷰는 그냥 형식적인 거라는 그의 말대로, 처음엔 단조로운 질문이 이어졌다.

이름, 나이, 학생이었는가?

기억이 안 나요.

그러나 조금씩 말하기가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인어가 나왔고… 저택 안의 사람들이 다 죽었다, 그 말이네요?”

“잠깐, 너무 말하기 힘들면 안 해도 돼.”

“무슨 소리야? 인어에 대한 정보는 최대한 들어야지.”

데아는 괜찮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숨 쉬기가 조금 힘들었다. 절망적이었던 6년 전의 시체들, 3일의 생존,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서던 붉은 머리카락의 인어.

“인어가 사람 말을 하던가요?”

너무 인터뷰를 가볍게 봤다.

―너 내 말이 들려?

“드, 들려요. 잘 들려요.”

―와, 이건 또 무슨 일이지? 진짜 들려?

“아뇨.”

“방금은 인어가 말을 했다고…….”

“아뇨. 그냥 이상한 소리였어요. 던전 안에서도 봤던 키에엑, 하는 그런 소리.”

확신에 가까운 예감이었다. 아직까지도 생생한 인어의 목소리를 저 멀리 비밀로 남겨 둬야 할 것 같다는.

어두운 창고 안의 윽박지르는 사람들과 손가락만으로도 모두를 몰살시킨 붉은 인어. 살해당한 사람들, 죽은 가족, 아무 이유 없이 파도 속으로 질질 끌고 간 인어, 갑작스럽게 몰려온 해일, 살아남기 위해 했던 모든 노력들.

혀가 굳은 것처럼 잘 움직이지 않았지만 말해야 했다. 어쩌면 6년 전의 일이 거짓이 아니었다고 알릴 유일한 수단이었으므로.

“아하… 가족이 인어에게 살해당했다고, 미안해요. 말하기 힘들었을 텐데.”

“…아니에요. 그런데 길드장님은 제 말을 믿으세요?”

6년 전의 모두가 정신 이상자라 손가락질했는데.

이데아의 말에 권도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안 믿으면 이렇게 적고 있을 리가 없죠.”

“…….”

“걱정 마요. 거짓말을 구별할 정도는 되니까.”

“그렇군요…….”

“그런데 인어의 공격 방법도 그렇고, 파도에 닿자마자 변했다는 부분이 조금 특이하네요? 사람과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의 인어라…….”

“…….”

“인간 흉내를 낼 수 있는 인어가 실존한다는 말이네요.”

그 순간 날카로운 소름이 전신을 관통했다. 권도언이 짙게 미소했다. 가만히 듣던 백리서의 미간에도 음영이 졌다.

“확실히…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으로 둔갑해서 사람들 속에 섞여 있는 인어가 있을 수도 있겠네. 데아야, 혹시 그 붉은 머리카락을 가졌다는 남성형 인어, 더 자세한 특징 기억나? 말하기 힘들면 안 해도 돼.”

백리서가 물었다. 데아는 말을 이었다.

“머리카락은 목까지 오고 피부는 희었어요. 눈 색도 붉었던 것 같고 키는 커요.”

데아의 말을 신중하게 듣던 권도언이 자세를 바로 했다.

“인간으로 둔갑한 인어는 물이나 바닷물에 닿으면 다시 변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네요.”

“확실히…….”

“뭐, 말도 못하고 물에만 닿으면 변하는 인어라니. 그런 위험 부담이 큰 방법을 쓸 것 같지는 않지만… 대비해도 나쁘지는 않죠. 물론 저는 여파 길드원들을 믿지만, 이데아 씨가 말한 그 붉은 머리카락과 꼬리를 가진 인어는 우리가 봐온 여타 인어들보다 지능이 높아 보이거든요.”

이제까지 던전에서 발견된 인어의 종류는 다양했다. 크기가 손가락만 하지만 날카로운 이빨을 가져서 사람을 물어뜯는 인어부터, 대형견 정도 크기의 심해 생물을 닮은 징그러운 모양의 인어. 사람을 닮았지만 같은 곳을 빙글빙글 돌며 사람을 낚아채는 인어와 온몸에 아가미가 달린 인어까지.

그들은 모두 똑같이 강했고, 공격적이었지만 낮은 지능을 가졌었다.

“그동안 인어들이 가진 욕망은 식탐과 생존 본능이 전부인 것처럼 보였죠.”

그런데 지능적으로 둔갑해 저택에서 사람들을 몰살하고 납치까지 시도하는 인어?

권도언이 느리게 턱을 괴었다.

“조만간 길드원들이 바닷물을 한 명도 빠짐없이 뒤집어쓰게 만들어야 하나…….”

“믿으신다면서요?”

“말만 그렇게 하는 거죠. 걱정 마요. 저랑 백리서도 뒤집어쓸 거니까. 윗물부터 믿음을 보여 줘야죠.”

“뭐어, 그래.”

“아, 예에.”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간단한 인터뷰를 마친 권도언은 만족스럽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잘 가라고 직접 엘리베이터까지 마중 나온 그와 백리서는 곧 등급 측정기의 테스터가 나오는데, 그걸 조작해 B등급처럼 보이게 해줄 방안을 준비해 놓겠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핸드폰도 새로 개통해 놓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데아는 눈을 깜빡이며 감사하다 거듭 인사하다가 중얼거렸다.

“직접 발로 잘 뛰시네요.”

“네?”

“아뇨, 부지런하시다고요.”

“권도언은 원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서는 길드장으로 유명해.”

닫히는 엘리베이터 너머에서 백리서가 유쾌하게 대꾸했다. 그러자 권도언이 그런 말을 처음 들었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그 순간 이데아는 그의 나이가 그렇게 많지 않음을 실감했다.

띵,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데아는 측면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을 가리는 검은 앞머리, 가로로 길게 찢어진, 냉정해 보이는 눈, 짧은 머리카락, 창백한 피부에 깊은 음영을 가진 피곤한 눈가. 까슬한 입술.

띵, 다시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이데아는 훈련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권도언.

어린 나이에 각성해 곧바로 길드를 세운 사람. 대외적으로 그는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데아는 그가 사실 소문과는 다르게 조금 나쁘고, 조금 껄렁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건 수수께끼 그 자체였다. 재벌 3세다, 물려받은 유산이 어마어마하다, 권도언에 대해 떠도는 소문은 많았지만 무엇 하나 확실한 건 없는 것만 봐도.

“…….”

그런 그가 세운 길드, 여파.

그 안에 안주하며 착실히 훈련장을 돈 지 한 달이 되던 날, 이데아는 등급 측정을 하러 오라는 각성자 연구 센터의 공문을 받았다.

등급 사기 행각을 저지를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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