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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9화 (9/223)

※ 009화

모든 인어들의 공격을 한 번에 받지만 그만큼 다른 헌터들에게 인어를 공격할 틈을 벌어 줄 수 있는 미끼 스크롤, 즉 어그로꾼.

다시 보니 계곡 앞에서 죽어있는 다섯의 시체 안에는 정혁규도 있었다.

마음을 그렇게 먹으니까 골로 가지, 나쁜 놈.

‘길동무 데려가니까 좋냐…….’

사실 그가 크게 원망스럽지는 않았다. 그는 그냥 혼자 빠져나가는 상대가 싫었을 것이다. 데아도 그런 자신이 싫었다.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목소리가 울먹거렸다.

데아는 짧은 생의 마침표를 예감했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사람 다섯을 보내버린 인어다. 미끼 스크롤을 찢었으니 똑같은 것을 두 개 연달아 찢지 않는 이상 남에게로 표적이 옮겨지지는 않을 것이다.

“피해!”

그 순간 물렁한 바닥을 뚫고 칼날이 불쑥 튀어 올랐다. 정확하게 데아를 겨냥한 공격이었지만 필사적으로 달려온 백리서의 검과 맞부딪쳐 약간 비켜 나갔다. 강력한 힘의 반동에 밀려 바닥을 구르던 데아는 문득 백리서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착한 사람. 그래도 이번엔 6년 전의 가족처럼 혼자 안보내고 대신 내가 가니까 얼마나 다행이야.

“이데아 씨, 이 이동 스크롤 써요.”

“하지만 그러면 백리…, 릴… 공격대, 아니 리서 언니가 쓸 게 없잖아요.”

이런 상황 속에서는 어떻게 그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백리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자기 스크롤을 이렇게 선뜻 주다니, 역시 그는 마지막까지 너무 착했다.

생각해 보면 처음 만날 때도 그랬다.

이제 보니까 당장 일꾼이 필요할 법한, 아주 신생 길드도 아니던데 그는 왜 처음부터 날 스카우트했을까? 부탁까지 해가면서, 조건까지 다 들어주면서. 역시 천사인가.

같이 탈출하면 안 되는 걸까. 공략이 1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고 해도 저 절망적인 죽음의 인어에게 살해당하는 것보다는 그게 더…….

그때 붉은 점이 시야 가장자리에서 반짝였다.

백리서를 향해 고개를 든 데아의 몸이 움찔 굳었다. 자신의 상태 창이 무단으로 켜지더니 한 스킬이 붉게 타오르듯 빛났기 때문이다.

온몸의 피부에 소름이 스쳐 지나갔다. 참았던 숨이 뱉어졌다. 훈련장에서 쓸모없다고 욕만 했던 스킬, 그냥 넘어갔던 스킬이었다.

“말도 안 돼.”

시야의 가장자리에 모여 있던 붉은 점은 보스 인어가 얼굴의 절반을 담그고 있는 계곡, 그 밑. 인어의 턱 아래에 하나둘 모여들고 있었다.

데아는 본능적으로 상 태창에 시선을 돌렸다.

저건 아마 보스 인어의 유일한 역린, 단숨에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갈 붉은 신호.

오직 그만이 가지고 있는 기적. 오직 이데아의 눈에만 보이는…….

[심해의 눈(A) : 당신은 승리할 것입니다.]

침묵은 짧았다. 벼락같은 깨달음이 머리를 스친 그 순간 데아는 소리쳤다.

“턱 밑!!”

“뭐? 잠깐, 이데아 씨 눈이…….”

“계곡에 담그고 있는 턱 밑이라고요!!”

그게 약점이라고!

유일한 파훼 방법이었다. 악몽 같은 거대한 인어의 머리를 걷어내고 던전의 밖을 볼 수 있는, 단 일격에 모두에게 절망을 선사했던 저 괴물에게 죽음을 안겨 줄 수 있는.

인어의 눈동자는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물살이 강한 계곡 밑에 사람이 들어갈 수는 없으니 어떻게든 인어를 밖으로 끌어내야 한다.

데아는 이미 찢긴 손안의 스크롤을 내려다보았다. 낡고 꼬깃꼬깃한 하얀 종이, 미끼 스크롤.

‘어떻게든 할 수 있지 않을까?’

비이성적인 사고가 그의 머리를 지배했다. 갑작스럽게 맥박이 빨라졌다.

내가 구할 수 있지 않을까? 6년 전과는 다르게, 날 지켜 주려 했던 사람의 죽음을 허무하게 목도하고 인어의 밑에 엎드려 빌다가, 나 자신 또한 어두운 파도 쪽으로 질질 끌려가던 그때와는 다르게, 어떻게든 내가…….

그때 의식에 반응하듯 상태 창이 환하게 빛났다. 이미 있는 세 개의 스킬 아래, 새로운 스킬이 새롭게 쓰였다. 자세히 보니 미획득 스킬 중 하나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인어와의 조우―완료!]

[타고난 ○○○](A)

[바다의 ○○](S)

[○○버린 ○○를 ○○○](??)

[○○○](??)

[우리의 ○○○ ○○○](?)

[○○○ ○○○ ○○](??)

그중 가장 상단에 있는 ‘타고난 ○○○(A)’ 스킬이 사라진다. 그리고 습득한 스킬 맨 아래에 새롭게 글씨가 쓰이는 광경을 지켜보며 데아는 호흡을 잊었다.

그가 습득한 세 번째 스킬은.

[타고난 몰이꾼(A) : 인어의 주목을 받는 동안 속도가 +60 증가합니다.]

속도 +60!

‘어그로 끌라고 판을 까냐!’

그러나 지금은 이런 것이라도 급했다. 데아는 빠르게 상태 창을 확인했다.

마력 : 21

체력 : 20

생명력 : 30

속도 : 21(+60)

엄청난 스킬이었다. 보스 인어의 시선을 받고 있는 지금, 속도는 80을 돌파했다. 평균 S급 헌터의 속도가 80~100 사이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현재 데아의 속도는 평범한 S급 헌터와 맞먹었다.

헌터로 각성해 속도 21인 상태로 달렸을 때도 각성 전과 비교도 할 수 없는 빠르기로 달릴 수 있었는데, 그 속도가 81이 되니까 그야말로.

“아악!”

“뭐야!”

데아는 백리서의 손을 꼭 잡고는 놓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인어의 앞까지 이동했다. 갑작스러운 데아의 등장에 맨 앞에서 인어를 경계하고 있던 헌터들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렇게 데아는 보스 인어의 눈과 정통으로 마주쳤다. 코앞까지 다가온 먹잇감을 본 인어는 칼날과 꼬리를 사용할 필요 없이 혀로 자신을 휘감으면 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데아는 인어가 입을 벌림과 동시에 바닥을 박차고 위로 뛰어올랐다.

그 모습을 권도언이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각성을 했네. 무슨 일이지? 눈도 변하고.”

권도언이 즐겁게 묻자 곁까지 다가온 백리서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칼을 크게 휘둘러 푸른 피를 털었다.

“나도 몰라. 중요한 건…….”

“약점을 파훼했다는 거지.”

백리서가 입을 꾹 다물었다. 권도언의 입가가 비죽 호선을 긋고 있었다.

“새로운 스킬이 생긴 걸 수도 있고, 원래 있던 스킬이 두각을 드러낸 걸 수도 있고. 사실 네가 갑자기 스카우트를 해서 데려왔다는 것 외에는 별 볼 일이 없었거든. 그런데 갑자기 쓸 만한 패가 됐잖아?”

저러면 스카우트 제의를 한 게 이해가 가지.

“싸움을 못해도 상관없어. 약점을 파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옆에 달고 다닐 가치는 충분하거든. 죽지만 않게끔 가끔 들여다보기만 하면 돼. 저것 봐. 다리 하나는 빠르잖아.”

백리서는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은 것 같은 표정을 짓는 권도언을 무시하고, 시선을 데아에게 돌렸다.

데아는 인어의 공격을 순식간에 피함과 동시에 계곡 위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 뒤를 인어의 혀가 쫓았지만 데아에게 계획이 있음을 눈치챈 다른 헌터가 서둘러 막아 주고 있었다.

그것을 감안해도 놀라운 속도였다.

‘새로운 속도 관련 스킬을 습득한 건가? 그새에?’

백리서가 채도가 옅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위로 가야 해.’

데아는 숨이 차오르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생각했다. 어떻게든 계곡 밖으로 고개를 유인하기 위해서는 미끼를 쫓아 높은 곳으로 오르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마침 계곡의 위에는 아찔한 협곡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저곳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데아는 그 허공을 날아 그 앞까지 이미 당도해 있었다.

“이데아, 뒤!”

“……!”

그때 인어의 꼬리가 첨벙, 계곡에서 솟아올랐다. 간신히 몸을 굴러 피한 데아는 협곡 벽에 바싹 붙어 올랐다. 목표는 인어의 머리보다 더 높이 있는 큰 바위 위였다.

“넌 계속 올라! 여기는 우리가, 윽! 막아 줄게!”

하영주가 주먹에 낀 너클을 땅땅 두드리며 소리쳤다. 그 소리를 듣자 데아의 마음 한구석이 든든해졌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머리는 서늘해졌다.

암벽 타기는 6년 전 해일이 몰려왔을 때도 한 적이 있었다. 붉은 인어가 어린 열다섯 살의 그를 잡기 위해 무섭게 뒤를 쫓아오고, 자신은 해일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든 기어오르고, 손가락을 베여 한 번 미끄러지고…….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 스킬 하나 각성했다고 영웅 흉내라도 내고 싶었던 건가? 이렇게나 무모하게, 약속까지 어겨가면서, 목숨을 내던지고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며 앞까지 달려서…….

작게 파인 홈을 잡고 오르는 손바닥에 처음으로 땀이 고였다.

“아악!”

그때 튀어나온 돌에 무릎이 맞부딪쳤다. 바지 속에서 피가 흐르는 감각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식은땀이 죽 흐르고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떨어지면 계곡이야. 떨어지면 안 돼.’

그때 인어의 칼날이 데아의 팔을 스치고 또 솟아올랐다. 반사적으로 피했지만 한쪽 손을 놓쳐서 대롱대롱 매달렸다.

턱, 데구루루…….

첨벙!

추락하던 돌멩이 하나가 이내 계곡의 물살에 쓸려 사라졌다.

땀에 젖은 시야가 흐릿했다. 그러나 돌아가기엔…….

저 멀리 인어의 시야가 미치지 않는 곳, 헌터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어떻게든 인어의 주의를 끌기 위해 모든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하지 않을 요란한 공격들이 무수하게 쏟아졌다. 원래 자신에게 가해져야 할 인어의 공격을 대신 방어하고, 앞으로 나서서 막아 주고, 거대한 실드를 쳐주고…….

그러니까 지금 돌아가기엔…….

“그럴 수는 없어!”

벌써 죽은 사람만 다섯인, 당장 누구에게 속아 죽게 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언제까지고 도망칠 수는 없었다. 미끼 스크롤은 이미 찢어졌다. 지금은 물러설 때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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