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8화
처음으로 던전에 들어와 깨어난 감각은 후각이었다. 눅진하고 습한 느낌마저 주는 물 냄새가 지천에 깔려 있었다.
바다가 고인다면 이런 냄새가 날까.
데아는 크흥, 숨을 내쉬고는 개인에게 배부되었던 손전등을 꺼내 들어 전원을 켰다.
그곳은 너른 늪과 같았다. 바닥을 밟은 다리를 들자 운동화 아래로 진흙이 꾸덕꾸덕하게 늘어졌다. 어두컴컴한 흙빛 하늘과 웅덩이처럼 군데군데 고여 있는 늪.
“조심해. 이 늪에 빠지면 못 올라와.”
처음 보는 헌터가 등을 받쳐 주며 말했다. 간단하게 감사를 표한 뒤, 데아는 곧장 최적의 장소를 찾기 위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인어가 나오기 전에 얼른 비교적 안전한 자리를 찾아야 한다.
“어어, 신입, 신입! 어디 가!”
“냅둬, 다 허락받고 관찰하는 거여.”
“아하, 관찰 스킬~?”
아니었다. 그냥 자리 찾는 거였다.
곧 데아는 계곡과 늪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최적의 자리를 찾아내 그 위 바위에 걸터앉았다. 사방이 어두웠지만 아주 안 보일 정도는 아니었다.
부엉이 소리가 저 멀리 들려오고, 나뭇잎이 사락거리는 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왔다.
‘던전 안에도 새가 있구나. 신기하다.’
이윽고 모든 소리가 멈췄다.
동선을 정리하던 헌터들의 몸에 긴장이 들어갔다.
끼아악!
“나타났다! 다들 공격해!”
늪 안에서 창백한 회색빛 손이 불쑥 튀어나오더니, 이내 인어가 알 수 없는 소음을 내지르며 헌터들을 습격하기 시작했다.
데아는 퍼뜩 스크롤이 들어 있는 안주머니 안으로 손을 넣으며 침음했다.
확실히 6년 전의 그 인어와는 많이 달랐다. 곡선을 그리며 휘는 인어의 상체와 밖으로 나와 기어 다님에도 강하게 펄떡이는 꼬리.
동시에 등장한 인어 수십 마리는 이쪽 늪에서 나와 저쪽 늪으로 숨어들어 가는 정신없는 행동을 계속하다가 불시에 헌터의 허리를 잡아채곤 했다. 그때마다 놀라 벌떡 일어나게 되는 자신의 다리를 탓하며 데아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제 저것들과 싸워야 한다.
하지만 두 번째 공략을 시도하고 있는 정예 팀이라는 그들의 말대로 헌터들은 당황하면서도 능숙하게 인어를 사냥하기 시작했다.
저 인어는 머리를 찌르면 죽는다. 머리가 약점인 걸까?
데아는 한 헌터가 장창으로 늪에서 기어 나온 인어를 죽이고 뒤에서 습격한 인어를 곧장 넘어뜨려 꼬리를 찍어대는 장면을 손에 땀을 쥐고 바라보았다.
저 멀리 백리서와 권도언의 모습도 시야에 잡혔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두 사람이 휘두르는 흰 검의 잔상을 따라 파란 액체가 튀는 인어의 꼬리가 똑똑히 보였다.
파란 액체. 인어의 피는 파란색이었다.
‘그리고…….’
S급 헌터에게는 두드러진 능력이 하나씩 있다던데, 진짜였다. 대표적인 예시로, 백리서는 흙과 관련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발밑의 흙과 모래를 자유자재로 다뤘다. 층층이 겹쳐 쌓인 흙 계단을 밟고 뛰어올라 인어의 정수리에 군화 굽을 맞추고는 그대로 찍어 내린다. 날렵한 몸이 허공을 돌고는 다시 착지했다. 백리서를 공격하는 인어들이 분노해 뛰어들어도 솟아오른 흙더미에 공격이 늘 막히곤 했다.
[대지의 평온(A) : 그 어떤 황폐한 땅도 결국은 평원이 되겠지.]
늪에 한 번 들어간 인어는 두 번 다시 나오지 못했다. 그 위로 흙을 퍼부어 바로 늪을 메꿔버렸기 때문이었다.
하나둘, 백리서가 지나갔던 모든 길의 늪이 메워지자 뒤를 따르던 헌터들도 당당하게 사냥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권도언.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그는 바람을 다루는 S급 헌터였다.
그의 곁에는 언제나 바람이 불었다. 전투 중일 때는 더더욱. 특히 지금은 사방에서 짜증스러울 만큼 거센 광풍이 일었는데, 그 이유는 아마…….
“왜 또 지랄이야?!”
난데없이 바람에 머리를 후려 맞은 백리서가 어이없어하며 소리쳤다.
“뭘?”
“성질 좀 죽여. 보스 인어가 언제 나올지 몰라 초조한 건 알겠는데.”
“안 초조해. 그래 봤자 생선이 뭘.”
“아… 그래?”
백리서는 눈동자를 한 번 굴리고는 자리를 떴다. 데아의 눈에도 권도언은 초조해 보이진 않았다. 단지 약간… 찜찜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권도언이 손가락을 까딱였다. 휘몰아치던 바람이 잔잔하게 가라앉았다.
[폭풍전야(A) : 수천의 칼날이 적의 숨통을 꿰뚫을 것입니다.]
“이런 미친.”
백리서가 다급하게 뒤쪽을 향해 신호를 주자 뒤따라오던 헌터들이 겁을 집어먹고는 동시에 몸을 숙였다.
키아아악!!
키에에엑!!
늪 위로 고개를 들었던 인어들이 모조리 회오리에 휩쓸렸다. 허공에 속절없이 떠올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인어들의 아래, 권도언이 우뚝 서있었다.
그때 기습처럼 인어가 뛰어올랐다.
“……!”
하지만 권도언은 능숙하게 인어의 이마를 밟고 목을 벰과 동시에 허공에서 한 바퀴를 돌았다. 그리고 그는 계곡에서 첨벙 뛰어오르는 인어의 몸에 구두를 끼우곤 그대로 차올렸다.
끼아아아악!!
최후를 예감하듯 경악한 인어의 마지막 표정이 서릿발 같은 수면 위에 잠깐 비쳤다 이내 고꾸라졌다.
그 위로 백리서의 나긋한 검선이 이어졌고, 누군가의 ‘와!’ 하는 소리와 함께 또 그 하얀 빛에 목숨을 달리한 인어가 바닥에 엎어졌다. 뉴스에서 봤던 무시무시한 모습과는 사뭇 다른 존재감이었다.
뭐야, 잘 싸우잖아.
생각보다 그 붉은 머리의 인어와 비슷하지도 않고, 헌터들도 잘 싸운다. 이 정도면 나도 바로 나서서 싸워도 되겠는데?
모든 걱정이 한 번에 녹아내리는 것을 느끼며 데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무리 몸을 사리기로 결심을 했다지만… 숨어서 남을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무력한 순간은 6년 전으로도 족하다.
“보스 인어는 언제 나오는 거야?”
헌터들도 사냥이 수월하다 생각했는지 표정이 밝았다. 그 어떤 보스가 나와도 사기만으로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전 공략대에게 정보를 들었는데, 아마 계곡 끝까지 가서 몸을 담갔나? 그랬을 거예요. 원래 던전 안의 물에는 절대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우선 가보죠.”
헌터들은 순식간에 계곡까지 이동했다. 조심스럽게 백리서가 앞장서 계곡에 발을 담갔다.
“별 이상 없는데?”
째깍째깍, 누군가의 손목시계 소리가 들려왔다. 한참을 기다려도 보스는 나타나지 않았다.
데아는 그쯤에서 일어섰다. 그 누가 봐도 상황은 ‘안전’해 보였으므로.
어차피 인어의 수는 많이 줄어 있었다. 늪의 인어는 이제 별로 없고, 계곡의 인어를 처리하는 헌터에게로 가서 손만 좀 보태면…….
그때 갑자기 바닥이 흔들렸다.
“흐, 으아아악!!”
“뭐야!!”
갑작스러운 진동에 무릎이 꺾여 픽 쓰러지길 잠깐.
퍼억!!
데아는 자신의 볼을 할퀴고 옆을 스쳐 지나간 누군가의 시체를 보았다. 피가 느리게 튀었다. 붉은 피였다. 온몸이 수축했다. 손끝이 급속도로 차가워졌다.
“아.”
데아의 옆에 나동그라진 시체는 방금 전까지 가장 앞에서 계곡의 인어를 사냥하던 B급 헌터였다. 한 번도 말을 섞어본 적 없지만, 눈인사만 했던…….
그런데 갑자기 왜, 잘 하고 있었는데.
“이데아! 스크롤 찢어!”
고개를 들어보니 폐허였다. 고성이 사방을 찢는 아수라장이었다. 그동안의 인어와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사람 머리가 계곡 밖으로 반쯤 나와 있었다.
눈동자 색이 하얗고 흰자 색이 검다는 것 외에는 다를 것 없는 사람의 얼굴이 도르륵, 소름끼치도록 하얀 눈동자를 굴려 헌터들을 바라보았다.
던전의 보스였다.
보스의 모습도 5년 전의 붉은 인어와는 많이 달랐다. 얼굴은 사람이었지만 정돈되지 않은 물고기 비늘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애초에 저건 높은 지능을 가진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보스 인어의 등장에 압도된 헌터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있었다.
‘…저걸 어떻게 이겨?’
“이데아, 스크롤!”
백리서의 고함이 다시 귀청을 찢었다. 그는 다급한 얼굴로 사방에서 솟아오르는 인어 꼬리와 칼날을 가까스로 막아내는 중이었다.
본인도 여유롭지 않으면서 이상하리만큼 날 신경 써주는 사람. 이런 와중에도 내 탈출을 염려해 주다니.
하지만 내가 여기서 나가면 당신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다들 대열 맞추고 힐러는 뒤로 물러서!”
“당황하지 말고 공격해!”
전 공략 팀에게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확실한 지휘 아래 유능한 헌터들이 일사불란하게 대열을 갖췄다. 그러나 상대가 너무 강력해 보였다.
‘이길 수 있을까?’
정답을 알면서도 이데아는 스크롤을 찢는 손을 멈출 수가 없었다. 6년 전의 잔상이 아른거렸다. 죽음에 뛰어드는 가족을 보면서 흐느끼면서도 움직이지 않았던 그 순간이, 결국은 무서워서 나뭇잎 사이에서 숨을 죽이던 본인이 사무치게 원망스럽던 그 순간이.
손이 땀으로 젖어 번들거렸다. 6년 전 가족의 야윈 얼굴이 뇌리에 가득 차올랐다. 하나뿐인 가족이었던 사람. 결국 혼자 살아남은 동생의 기억에서조차 흐릿한 사람.
찌익!
마침내 스크롤이 찢어졌다.
그러나 게이트는 생기지 않았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원래라면 눈앞에 게이트가 생겼어야 맞는데. 미동도 없는 상황에 심장이 멎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인어의 거대한 눈동자가 데아를 향했다.
“어?”
“뭐야?!”
“잠깐, 저거 설마……!”
정혁규가 자신에게 잘못 줬다며 바꿔 준 스크롤…….
‘설마 이동 스크롤이 아니었던가.’
왜 의심하지 못했던 걸까. 백리서와 권도언과 아무렇지 않게 말을 섞던 자신을 향해 보내던 남자의 어두운 시선을 그때는 왜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걸까.
그 시선의 끝에 묻어 있던 건 명백한 질투였는데,
그냥 구경만 하고 나온다는 상대에 대한 미움, 그리고 생겨난 저열한 감정.
그러나 데아는 아무도 탓할 수 없었다. 그럴 여유가 없었다. 거대한 인어의 눈동자가 자신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기 때문이다. 머리가 하얗게 탈색되는 것 같았다. 최악의 가능성 하나가 슬그머니 존재를 드러냈다.
설마 이 스크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차라리 이동 스크롤이 단순한 가짜였길 간절하게 바라는 순간이 올 거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지만.
제발, 부디, 내가 찢은 이것이 그 스크롤만은 아니길.
“맙소사, 미끼 스크롤!”
그러나 저 멀리서 백리서가 그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놀란 낯빛의 권도언과 하얗게 질려버린 하영주, 그리고 다른 길드원들을 보니 그들도 전혀 몰랐던 일인 것 같았다.
어쩌면 이건 벌일 수도 있어.
첫날, 훈련장에 앉아 가장 먼저 외워야 했던 게 스크롤의 종류였다. 수많은 스크롤 중에서도 협동 작전을 위해 우수한 탱커가 가장 먼저 찢어 사용한다는 그것.
미끼 스크롤.
“…….”
데아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