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6화
“괜찮아요. 안심하세요. 우선 길드로 돌아가서 능력치 테스트를 좀 하고, 결과에 맞춰서 조작할 등급을 정해 보자고요.”
세단이 멈춘 곳은 서울 선릉의 높은 빌딩 아래였다.
거리를 지나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데아는 저도 모르게 몸을 굳혔다.
그 순간, 권도언이 조수석에서 휙 내렸다. 딸깍, 뒷좌석 문이 열렸다.
“힘들게 모셔온 상전은 직접 열어 드려야지.”
‘그래, 스카우트는 내가 했고 생색은 앉아만 있던 네가 낸다’는 듯한 표정의 백리서가 뒤에 언뜻 보였지만 데아는 곧장 코트를 벗는 권도언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코트를 왜?’
의아함을 가지기 전에 보인 건 세단 너머 숨어 있는 기자의 카메라였다.
‘아, 카메라.’
렌즈와 데아의 눈이 마주침과 동시에 찰칵, 렌즈가 돌아갔다. 코트를 벗어서 데아의 위로 드리우던 권도언이 쯧, 혀를 찼다.
“늦었네.”
그 순간 얇지만 강력한 힘이 옆을 훅 스쳐 지나갔다.
‘바람?’
그때 카메라를 든 기자가 ‘어?’ 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이내 태풍에 밀려나듯 우당탕 넘어지고 말았다. 힘없이 놓친 카메라가 아스팔트 바닥을 긁으며 몇 번 구르더니 권도언의 구두 아래에서 멈췄다.
흐르듯 가벼운 바람이 연속해서 불었다. 거리를 지나가던 사람들이 선선하게 부는 바람을 느끼고 수군거렸다.
권도언은 카메라를 줍고 데아의 머리 위로 코드를 휙 씌웠다.
“설마 숨어 있는 간 큰 카메라가 있을 줄은 몰랐네요. 있었으면 내리기 전에 코트 먼저 줬을 거예요. 그런데 이걸론 얼굴이 다 드러나는데, 혹시 마스크도 쓸래요?”
“아, 감사합니다.”
콰직!
권도언이 카메라 내부의 메모리칩을 꺼내 부쉈다. 그때 백리서가 옆으로 다가왔다.
“모자도 쓸래요? 이왕 하는 거, 확실하게 싸매야지.”
“그렇게까지는…….”
하지만 분명 언론이 싫다는 자신을 배려해 준 것이리라.
데아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걸 느끼며 마스크와 캡 모자를 쓴 다음 주섬주섬 코트를 머리 위로 올려 손으로 동여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왼쪽에는 권도언, 오른쪽에는 백리서. 그리고 가운데에는…….
“이거 아무래도 그림이 이상한데.”
권도언의 떨떠름한 음성을 배경으로 사람들이 조금씩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뭐가?”
“아무리 봐도 지금 범죄자 연행 장면이거든, 지금.”
“지금 이데아 씨가 범죄자라는 거야?”
“아니, 그림이 그렇다고.”
작은 체구의 데아는 큰 사이즈의 검은 코트를 머리끝부터 뒤집어쓰고 커다란 S급 헌터 사이를 오종종 걸어 나갔다.
주눅 든 범죄자가 잔뜩 허리를 숙이고 가는 장면을 연상하게 하는 장면에 사람들의 미심쩍은 눈빛이 한층 더 깊어졌다. 가뜩이나 주목받는 길드, 여파의 앞이다. 모든 사람들의 핸드폰 촬영과 소문은 완벽하게 잡을 수 없을 것이다.
후일에 신비주의 헌터 ‘샤샤’, 이데아의 몇 없는 사진이라며 돌아다니게 될 ‘샤샤_여파로_연행당했다면_권도언을_흔들어_줘_짤_jpg’가 생겨나는 순간이었다.
◈ ◈ ◈
생긴 지 3주밖에 안 되었다던 길드, 여파의 시설은 상상 이상이었다.
헌터로 활동하는 길드원들을 위한 넓은 지하 훈련실, 식당, 오락실, 그리고 깔끔한 휴게실에 정원까지 배치된 빌딩 안에서 데아는 본인이 쓰게 될 1인용 기숙사를 안내받았다.
짐은 없었기에 곧바로 훈련실로 올라가 등급 확인을 위한 간단한 훈련을 진행했고, 결과는…….
“음… 나쁘지 않네요. 무난하게 B 정도?”
“하, 하아… 그렇군요.”
있는 스킬이 A등급인데 총평이 B라니.
내심 기대했던 데아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도 F등급 아래 아래가 아니라 다행이라 해야 하는 걸까.
[물속의 발자취(A) : 물속에서 제약 없이 빠른 행동력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심해의 눈(A) : 당신은 승리할 것입니다.]
물속의 발자취는 그야말로 물속에서만 특화된 스킬이었다. 물 밖에서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그래서 수영장에 가서 냅다 뛰어들어 실험해 봤지만…….
“오… A급 스킬이면 굉장히 희귀할 정도로 높은 스킬인데, 왜…….”
스킬을 실행하면 물속에서도 부력의 영향 없이 빠르게 걸어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물속에서 인어를 만나면 더 쉽게 싸울 수 있지 않을까요?”
“물에서 인어는 그 누구보다 빠르고 강한데 남들보다 조금 더 잘 걸을 수 있는 정도로는…….”
“하지만 한번 직접 싸워 보면…….”
“제정신입니까?”
“아, 예에…….”
권도언의 따가운 시선을 받자 병동 생활 6년 차, 사회성 바닥인 데아는 쭈그러들었다.
그리고 심해의 눈.
“…….”
이건 정말 뭔지 모르겠다.
“눈이라…….”
한참 생각하는 권도언을 버려두고 데아는 눈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물론 헛수고였다. 설명이 너무 부실하다.
물론 현 스킬을 제외하고도 미획득 스킬이 있었지만 데아는 입을 다물었다.
획득 스킬도 이따위인데 미획득 스킬은 얼마나 한다고.
습득할 거라는 보장도 없고, N등급으로 이미 특이한 취급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더 튀는 요소는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남은 건 순수한 스탯을 이용한 운동 신경인데.
“악!”
“그 옆이지, 옆!”
“좋아, 막았어! 그런데 밑이 뚫렸잖아!”
“아악!”
“아이고, 우리 신입 날아가네!”
훈련장에 모여 있던 헌터들의 응원 소리가 요란했다.
데아는 자신의 힘을 과신했지만, 나무 협탁을 종이 우그러뜨리듯 구겨버리는 사람은 천지에 널려 있었다.
자신의 등급이 A라고 잘 부탁드린다며 사람 좋게 나온 하영주라는 헌터는 딱 10초도 되지 않아서 데아를 처참하게 바닥에 엎어뜨렸다.
데아가 소중하게 간직해 왔던 작은 자존심에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하영주는 전직 유도 선수였다. 데아의 자존심이 다시 살아났다.
“인간적으로, 처음부터 전직 유도 선수를 상대하게 하는 건 너무했어요.”
삐꺽거리며 데아가 항의했다.
“인어는 전직 유도 선수보다 강해요. 뭐, 사무직도 있으니까 상심 말아요.”
권도언이 냉정하게 말했다. 차가운 미남이 융통성 없는 꼰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데아는 등급 측정기 조작 등급을 B로 하자는 것에 동의하고 말았다.
데아를 딱 찌그러진 스티로폼처럼 엎어치기했던 하영주의 나이는 고작 스물두 살이었다.
사교성이 뛰어난 그는 곧장 데아에게 자신의 헌터명을 알려 주며 서로 언니 동생 하는 사이로 편하게 말 놓고 지내자 실실거렸고, 데아는 몇 번 눈을 끔뻑이다가 갑자기 팔짱을 끼는 하영주의 친화력에 발려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하영주의 헌터명은 ‘영영’이었다.
“오늘은 편하게 쉬세요.”
그러나 그날 저녁, 1차 게이트 공략권이 갑자기 넘어왔다며 긴급하게 여파의 공략 팀이 꾸려졌다.
◈ ◈ ◈
“왜 갑자기 공략권이 넘어온 거예요?”
“이전에 공략을 나섰던 길드, 프리하의 공략 팀이 대부분 전멸했다고…….”
“뭐? 전멸할 난이도는 아니었잖아요? 곧장 탈출하지, 왜?”
“거대한 인어가 나왔다는 소문이 있어. 그리고 그 인어는 아마… 사냥하면 게이트가 클리어되는 보스 인어일 가능성이 높대.”
보스.
공략을 위해 호출됐던 사람들 위로 순식간에 침묵이 드리워졌다. 생존자의 말에 따르면 인어가 어느 정도 처리되자 갑자기 땅과 파도가 출렁이더니 거대한 인어의 머리가 불쑥 튀어나왔다고 했다.
생전 처음 보는 거대한 압박감에 당황한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던 것도 잠시, 순식간에 사방으로 솟아오르는 인어의 꼬리와 날붙이에 공략 팀은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사망했다는 생존자의 증언에 많은 사람들이 탄식을 금치 못했다.
“던전 난도가 많이 높나요?”
데아의 물음에 주변에 있던 헌터가 그를 돌아보았다. 차갑다 못해 서늘한 인상의 하얀 피부, 길게 그어진 눈매 아래 다물린 붉은 입술, 목덜미 아래까지 내려오는 짧은 단발.
갑작스럽게 여파에 나타난 신인이다.
“어, 어, 그러니까.”
헌터가 버벅거렸다. 그는 데아의 앞에서 난처하게 눈을 굴렸다.
그 헌터다. 권도언 길드장과 공격대장 릴림이 직접 데려왔다는, 소문만 무성하게 도는 수수께끼의 헌터. 입단 하루 만에 바로 공략 팀에 투입되어 모두의 경계와 의심을 산 그 헌터!
‘등급이 뭐래?’
‘B급이라는 소문이 있어.’
‘오, 높긴 한데 특혜를 받을 정도는 아닌데?’
사람들은 의심스러워하며 쑥덕거렸다. 그러나 모두가 데아를 경계하는 건 아니었다.
누가 빨리 가서 말 좀 걸어 봐. 야, 네가 가봐.
몇 명의 사람들은 신입과 친해지기 위해 서로의 옆구리를 찔렀다. 우연을 가장해 인사를 하기도 했고, 책을 떨어뜨리거나 일부러 부딪치기까지 했지만 데아는 흐느적거리는 한 마리의 해파리처럼 그 모든 장애물을 지나쳐 유일한 ‘친구’인 하영주의 옆으로 갔다는 목격담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