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3화
데아의 팔을 쥔 남자의 손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해일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규모에 겁에 질린 남자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너… 설마.
남자의 손에 힘이 풀린 순간에 맞춰 이데아는 곧장 손을 뿌리치고 바위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해일에 어이없이 죽을 순 없었다. 하나뿐인 가족이 살려 준 목숨이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었다.
―잠, 잠시만, 잠시만요!
갑자기 인어가 존댓말을 시작했다. 전신에 오소소 돋아나는 소름을 모른 척하며 데아는 암벽을 올랐다.
―뇌, 뇌를 먹었, 드셨나요?
붉은 인어의 눈은 언뜻 간절하게까지 보였다. 데아는 고개를 가로로 강하게 저었다.
“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기억이 안 나시나요? 괜찮아요. 저와 함께 가면 모든 게 다 기억나실 겁니다. 도망치지 않으셔도……!
“싫어요!”
항상 살고자 했다. 처음 눈을 떠 창고 안의 사람들을 바라보던 순간에도, 죽음보다 더 공포스러운 인어의 존재를 마주했을 때도, 가족이 대신 목숨을 잃을 때도, 자연재해가 코앞에 들이닥친 이 순간에도.
―싫…으시다니.
뒤를 돌아보자 빠른 속도로 달려오던 남자가 우뚝 서서 자신을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악!”
그때 바윗돌의 날카로운 단면에 손가락을 베였다.
―조심……!
절벽에서 미끄러져 맨발로 다시 중심을 잡은 순간 남자의 번뜩이는 손톱이 이데아의 발을 향해 날아들었다.
“아악!”
―아, 아니, 난 이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붉은 인어는 발목을 잡아 주려 한 것 같았지만 의도가 어떻든 데아의 발목은 붉은 피로 점철되었다. 욱신거리는 통증이 전신을 지배했다. 데아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하자 붉은 인어가 혼란스럽게 손을 떨었다.
그것마저 데아에겐 공포로 다가왔다.
―제가 일족들에게 당신에 대해 전부 말할게요. 그러면 바로 인어들이 올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
“제발, 하지 마세요.”
데아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어떤 것도 말하지 마시고,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그냥 저에 대해… 잊어 주세요. 살려만 주세요…….”
데아가 덜덜 떨며 가냘프게 웅얼거리자 붉은 인어가 암벽을 오르던 걸 중단하고 손을 떨궜다. 그의 표정이 조금 멍했다.
그때 머리 위로 그림자가 졌다.
남자는 얼굴 위로 떨어지는 서늘한 물방울에도 여전히 멍하니 서있었다.
―당신이 그러면… 나는 지킬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해일을 본 남자가 가망이 없다 판단했는지 한숨을 쉬다가 이내 이데아를 향해 입술을 움직였다.
―결국은 만나게 되겠죠. 또 봐요.
아가리를 벌린 해일이 절벽을 통째로 삼키고 입을 다물었다. 온 사지를 부러뜨리는 폭력적인 물살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떠밀려 가는 붉은 인어의 잔상을 마지막으로 데아는 정신을 잃었다.
◈ ◈ ◈
강원도 해일.
강원도 해안 절벽 해일 생존자.
강원도 해일 실종자 102명, 생존자 1명.
국회 의원 정영철 실종.
정영철.
강원도 별장.
[단독] 강원도 별장 휴가 중에 닥쳐온 해일. 비극적인 참사
사람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해일에 희생된 국회 의원이 평소 올바른 행실과 청렴한 태도로 높은 인기를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102명의 실종자를 낸, 전례 없는 강원도 해일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한반도에 해일? 강원도에 해일이요?
실시간 검색창이 무섭게 불타올랐다. 판이 달라진 게 아니냐, 설마 이걸 예측 못 했냐, 인근 해변에는 영향이 없어서 다행이다, 이게 말이 되냐, 아니다, 이건 음모다.
화살의 방향은 해일을 예측하지 못한 기상청과 국토교통부, 재해관리청, 그리고 한국 과학기술 정보연구 센터로 향했다. 그러나 그들 또한 공식 발표에서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러자 언론은 유일한 생존자 한 명에게 주목했다.
해일의 규모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툭 튀어나와 있던 해안 절벽 하나를 집어삼키기에는 충분했다.
모든 것이 쓸려 나간 폐허 속에서 단단하게 박힌 바위를 붙잡고 덜덜 떨고 있던 15세의 여자아이. 당시의 정황을 듣기 위해 언론은 아이에게 마이크를 들이밀고 정신없이 질문했다.
부모님은 어디 가신 겁니까? 별장을 사용 중이었던 사람이 몇 명이나 있었나요? 정영철 의원의 마지막 모습을 보셨습니까? 혼자 살아남으셨는데 기분이 어떠십니까?
아이의 처참한 사진은 무단으로 찍혀 인터넷을 떠돌았다. 네티즌들은 온몸이 부러지고 발목이 절반쯤 너덜거린다는 아이를 동정하다가도 어떻게 해일이 왔는데 바위를 잡고 살아남을 수가 있었냐면서 의아해했고, 동시에 아이에게 악질적인 질문을 퍼부었다.
그리고 하루 뒤, 기사에 올라온 아이의 대답은 그 도화선에 기름을 부었다.
인어가, 인어가 그랬어요. 인어가 별장에 있던 사람들을 다 죽이고……!
인어는 동화책에나 나오는 전설 속의 존재였다. 사람들은 아이가 충격에 그만 미쳤다고 넘겨짚었다.
인어가 또 보자고 했어요. 그 많던 사람들이 다 죽었어요. 제 오빠도 죽었고. 저도 그 인어한테 죽을 뻔했는데……!
수술실에서 갓 깨어난 아이의 횡설수설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선 해일 때문에 남아 있는 증거라고는 없었다.
사람들의 우울한 동정표를 마지막으로 강원도의 자연재해 이슈는 그렇게 막을 내리는가 했으나.
그 별장 안의 사람들이 저를 죽이려 했어요.
이 한마디에 다시 여론이 무섭게 들끓기 시작했다. 강원도 별장은 평소 촉망받던 정영철 의원의 개인 별장이었다. 그 안에서 15세 여자아이가 폭력을 당했다는 증언 하나만으로도 정치계가 들썩이긴 충분했다.
15세 아이의 목에 손바닥 자국이 있습니다!
심지어 생존자의 목에는 누가 조른 듯한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생존자는 기억에 없는 상흔이라 진술했다. 그러자 그야말로 한반도가 발칵 뒤집혔다.
정치계 안에서는 이 사건을 걸고넘어지는 자와 정신적으로 온전치 않은 어린 학생의 헛소리일 뿐이라는 의견을 가진 자들이 서로를 물어뜯었다.
그러자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생존자를 향한 도 넘은 인신공격이 성행하기 시작했다.
간신히 생존한 15세 아이답지 않게 말하는 게 당차다, 생존자라는 건 거짓이 아니냐, 정치계에 연줄이 있는지 봐야 한다, 해일에서 살아남은 것 자체가 수상하다.
그렇게 생존자는 여론과 언론 속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뭇매를 맞고 강제로 정신 병동에 감금되었다.
“인어는 있어요. 제발 저를 좀 밖으로 내보내 주세요! 아무도 인어는 못 이긴다고요! 또 찾아올 거라고요! 제발!”
차가운 창문의 철창을 두드리며 데아는 쉰 목소리로 악을 질렀다. 눈만 감으면 허무하게 죽어 나가던 사람들과 절벽 아래로 추락하던 가족의 모습이 생생했다. 마지막으로 또 봐요, 라고 읊조리던 붉은 인어 또한.
증오스럽고 공포스러운 끔찍한 인어.
그를 죽이고 싶어. 여기서 나가고 싶어.
그러나 정신 병동의 문은 굳건했고, 금방 끓어오르다 식는 냄비처럼 국민의 관심은 빠르게 흩어졌다. 강원도 해일의 생존자와 별장에 관련된 기사는 디지털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그 사건에 대해 잊는 것 같았다.
6년 후, 게이트가 터지기 전까지.
◈ ◈ ◈
한강 인근 공원, 가을, 오전 세 시경. 하얀 빛무리와 함께 거대한 원형의 문이 생겨났다. 훗날 전 세계 사람들을 공포에 질리게 할 게이트였다.
그러나 최초로 생성된 게이트에 대처하는 법을 사람들은 몰랐고, 더불어 시간은 오전 세 시경이었다. 그렇게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방치된 게이트 밖으로 꾸물거리며 나오기 시작한 건 상반신은 사람이고 하반신은 물고기인 인어였다.
크기도 생김새도 다양한 인어 수십 마리가 느릿하게 기어 나와 한강 속으로 몸을 감췄다.
다음 날 아침, 사람들은 공원에 둥실 떠있는 게이트를 보고 태평하게 놀라워하며 그 광경을 사진으로 찍어 순수 미술이나 홀로그램 태그를 걸어 SNS에 업로드했다.
그러던 중 나들이를 즐기던 20대 남성 한 명이 한강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인어에 의해 질질 끌려가 사망했다.
건장하고 젊은 남성이 무력하게 끌려가 괴생명체에게 잡아먹히는 잔인한 광경이 담긴 동영상에 네티즌들은 경악했다.
CCTV를 돌려 원인이 게이트에 있음을 안 관계자는 곧장 주변 강에 폐쇄령을 내렸지만 이미 수많은 괴생명체가 한강에 숨어들어 갔음을 안 시민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그리고 그날 새벽, 또다시 게이트 안에서 적은 개체의 인어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게이트를 경계하던 경호원과 경찰 관계자는 인어가 점액질 흔적을 남기며 질질 한강까지 기어가는 동안 공포에 질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음을 다음 날 진술했다.
시민들은 절망했지만, 그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밥을 먹다가, 출근을 하다가, 거리를 걷고 운동을 하다가 ‘각성’을 하는 사람들의 사례가 속출한 것이다.
그들은 일명 ‘초능력’과 비슷한 힘을 쓸 수 있었으며, 각자에게만 보이는 상태 창과 인벤토리가 존재했다.
겉으로 티가 나지 않아도 힘도, 속도도 각성하지 않은 일반인보다 월등했으며, 무엇보다 그들에게는 등급이 매겨져 있었다.
자신의 상태 창 위에 떠오른 빛나는 알파벳.
F등급부터 S등급까지.
게이트는 한국에서만 발생하지 않았다. 첫 게이트가 발생된 이후,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생겨난 게이트만 수십이었다. 그리고 각성한 사람들의 숫자 또한 수천수만 명이 넘어갔다.
그러나 S등급 각성자는 그중에서도 100명이 되지 않은 극소수였는데, 그들은 각자 독립해서 ‘길드’를 꾸리고 길드에 가입할 각성자, 즉 ‘헌터’를 모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롭게 설립된 ‘인어 생체 연구소(Mermaid Biological Lab, MBL)’의 연구원들은 전 세계적으로 생성된 게이트에서 나오는 몬스터의 종류가 하나라는 사실과, 그것의 생김새가 ‘인어’와 상당히 흡사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러자 다시 화두에 오르게 된 것은 6년 전 ‘인어’의 출현을 예고한 15세 생존자의 증언이었다.
6년 전에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정신병자였지만 지금은 갑자기 온갖 강, 계곡, 바다에서 튀어나와 사람을 질질 끌어당겨 죽이고 먹는 ‘식인인어’에 대해 더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그리고 그 동아줄, 이데아는 낡은 정신 병동 홀의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시청하고 있었다.
인어가 나왔다는, 흥분한 앵커의 목소리가 따갑게 귓가를 찔렀다. 3주째 같은 이슈였다.
인어가 등장한 지 3주. 세계는 급변하고 있었다. 빠르게 세워진 길드하며, 헌터로 각성한 초능력자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티브이에 나와 들뜬 목소리로 인터뷰를 했다.
어제는 각성한 E급 헌터 다섯이서 간신히 인어를 한 마리 죽였더니 동그란 마석이 나왔고, 그것을 정제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 중이며, 그 가치는 상상을 초월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쏟아져 나왔었다.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을 두려워함과 동시에 열광했다. 빚에 허덕이며 살던 사람이 높은 등급으로 각성해 단숨에 사람을 습격한 인어 둘을 물리치고 영웅으로 추앙받게 된 인생 역전 스토리도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어쩌면 나도?
이건 모든 사람들의 공통 관심사였다. 적막했던 병동 안에서도 그 얘기가 나오면 한참 시끄러웠다.
하지만 스물한 살의 이데아는 무감정하게 티브이를 껐다. 순식간에 주변이 고요해졌다.
“이데아 환자분, 면회 요청이 들어왔는데…….”
그때 간호사가 데아에게 면회가 들어왔다는 말과 함께 이것저것 말을 걸어 주곤 자리를 떠났다. 데아는 면회를 수락하고는 방으로 돌아갔다.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한 뒤 얇은 카디건을 걸치고 면회실로 향하는 동안 데아는 아무도 그를 보지 못하는 틈을 타서 허공에 손가락을 갖다 대었다.
데아의 눈에만 보이는 불투명한 상태 창이 시야에 가득 펼쳐졌다. 상태 창 위에 떠오른 등급 알파벳은 S등급도 F등급도 아닌 N.
이데아는 첫 게이트가 열리던 날 새벽 각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