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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2화 (2/223)

※ 002화

그렇게 남자와 데아는 3일을 더 생존했다. 저택 안의 사람들을 모조리 죽이기라도 할 것처럼 굴던 붉은 머리카락의 남자가 데아를 발견하는 데 3일이 걸렸다는 뜻이었다.

저택 앞은 절벽이었고, 뒤는 숲이었다.

쏴아아아.

3일 동안 폭풍우에 몸을 숨기며 들짐승이 나오는 숲속을 헤맸다. 저택 지하에 있는 부엌에 숨어들어 가 간단한 음식을 무작정 주머니에 쑤셔 넣고 나왔기에 그 정도라도 버틸 수 있었다.

남자는 데아에게 기억이 없다는 걸 알고 잠깐 굳었지만 머리를 맞아서 그렇다며 애써 위로했다.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모든 것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가족이고, 부모님은 돌아가셨어. 내 이름은 이데로고, 너와는 두 살 차이가 나는 오빠야.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살아남을 거야…….

조곤조곤 설명하던 이데로는 가끔 울먹였다. 그의 나이는 고작 17세였다.

그는 위기 속에서도 다정했고, 동생에게 친절했다. 선량하게 처진 눈매가 고난 속에서도 어떻게든 동생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반짝였다. 음식을 양보해 주기도, 데아가 무릎을 다치면 업어 주기도 하면서 어떻게든 돌아다녔다.

이데로의 달램 속에 데아가 겨우 숨 쉬던 어느 날, 데아가 그의 팔을 꼭 마주 잡았다.

“우리는 살 수 있어. 저 밖을 나서면 구조대가 있을 거야. 그렇지?”

데아가 이데로에게 속삭였다. 이데로가 항상 읊조리던 말이었다. 그의 눈가에 눈물이 차올랐다.

여기서는 우리 남매뿐이다. 우리밖에 없다.

비록 그와 관련된 기억은 없었지만, 이데아는 손에 잡힌 온기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빗물을 마시며 숲속을 돌아다닌 지 3일, 그 끝은 절벽이었다.

“길을 잘못 들었나?”

부쩍 수척해진 이데로가 절박하게 중얼거렸다. 절벽 밑 파도가 그들을 잡아먹을 것처럼 넘실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 데로가 눈을 크게 떴다.

“아…….”

“왜 그래?”

그는 울 것처럼 얼굴을 찌푸리고는 곧장 숲속으로 돌아가 데아를 나무 뒤에 앉혔다. 그리고 진흙을 데아의 온몸에 덕지덕지 묻히기 시작했다.

“왜 그래?”

“가만히 있어.”

“뭔데, 갑자기 왜 그러는데!”

“조용히 해!”

데아는 대꾸할 수 없었다. 그는 거의 흐느끼고 있었다. 무언가를 예감한 듯 터져 나오는 눈물이 그의 턱 밑으로 뚝뚝 떨어졌다.

그렇게 젖은 나뭇잎까지 데아 위에 덮어씌운 그는 한 참을 멍하니 있다가 이내 벌떡 일어나 뒤로 달려 나갔다.

그곳에는 붉은 머리의 남자가 있었다.

온전한 길의 반대쪽, 절벽 쪽으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려간 이데로를 쫓은 붉은 머리카락의 남자가 느긋하게 걸어 나왔다.

―드디어 찾았네.

또 뇌로 입력되는 음성.

데아의 온몸이 차갑게 경직됐다.

‘아, 안 돼.’

이데로는 죽을 것이다. 그가 자신을 숨기고 일부러 붉은 머리의 남자에게 갔다는 것을 알면서도 데아는 뛰쳐나갈 수가 없었다.

발부터 시작된 떨림이 전신으로 전염되어 나갔다. 두려움에 잠식된 폐가 제 기능을 못하는지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그를 공격하지 마.”

데아가 작게 속삭였다. 하얀 입김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가 흩어졌다.

“그를 놔둬…….”

처음 눈을 뜬 세상 속, 온몸에 가해졌던 폭력 속에 그는 유일한 온기였다. 아주 짧은 찰나의 절박함이었다.

그와 관련된 기억이 지금의 데아에겐 없었지만 그가 제 가족이었음은 알 수 있었다. 너만은 반드시 살려 준다던 작은 속삭임이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는데, 그를 이렇게 보낼 수는……!

“제발.”

그러나 저 멀리, 붉은 머리카락의 남자가 이데로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대로 그의 가슴을 꿰뚫었다.

데아의 동공이 확장됐다. 충격적인 장면에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 숨을 멈췄다.

‘내가 나섰으면, 뭐가 달라졌을까?’

아니었다.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거다. 알면서도 데아는 죄책감에 신음했다.

‘미안해. 미안해. 내가 너무… 약해서…….’

저 괴물을 죽일 방법을 몰라서 남을 희생시켰다.

데아의 전신이 서늘하게 식었다.

그때 남자의 손에 꿰뚫린 이데로의 눈동자가 도르륵 굴러 데아에게로 향했다. 서로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의 눈에 후회는 없었다.

“아…….”

작고 마른 가족. 그가 절벽 밑으로 추락했다. 소리는 없었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입가에 흐르던 피, 이내 호흡을 멈추던 가족, 3일간의 기억.

절벽 위에 홀로 우뚝 서서 밑을 내려다보는 붉은 머리 남자는 웃고 있었다.

그 순간 데아는 뇌가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느리게 뛰고 피가 들끓듯 뜨겁게 온몸을 맴돌았다.

―아, 내 손톱에 흠집 났어.

남자는 절벽 옆, 완만한 길로 내려가 파도 가까이 다가갔다. 데아는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데아의 작은 손에 날카로운 돌이 만져졌다. 등을 돌린 그는 몹시 방심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인간의 다리뼈가 비싸게 팔렸었지? 좀 잘라 둘 걸 그랬나.

데아는 시야를 찜찜하게 가리는, 빗물인지 핏물인지 모를 액체를 손등으로 걷어내며 조용히 일어섰다.

그때 가까운 돌무더기 아래로 가볍게 착지한 그가 바위 끝에 아슬아슬하게 서서는 파도 끝에 손을 담갔다. 그러자 손등부터 붉은색의 비늘이 촘촘하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데아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데아는 남자의 손가락 사이에 반투명한 물갈퀴가 생기고, 붉은 비늘이 팔을 지나 목과 뺨까지 올라와 피부를 장식하고, 눈의 흰자가 검게 물드는 광경을 침묵하며 지켜보았다.

인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머릿속에 한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강인한 육체를 가진, 끔찍하고 아름다운 생물. 절반쯤 인어로 변한 그는 이 상황에서도 숨이 막힐 듯 아름다웠다.

그는 데아가 뒤에 있다는 사실을 아예 모르는 듯, 바위 위에 방만하게 털썩 주저앉았다. 파도에 절반쯤 잠긴 그의 다리는 어느덧 길게 너울거리는 지느러미를 가진 물고기 꼬리로 변했다. 어두운 폭풍우가 치는 밤에도 사람을 홀리는 빛을 가진 꼬리는, 분명 아침 해 아래서 더 찬란할 것이다.

그러나 이데아는 그의 모습에 집중할 수 없었다.

나를 공포에 질리게 하고. 나에게 다정했던 사람을 죽인 그가 죽었으면 좋겠다. 저주스럽고 두려운 인어. 저 이상하고도 괴상한 인어. 저자도 죽었으면 좋겠어.

‘아예 이곳이 다 먹혀버렸음 좋겠어.’

그때 인어가 뒤를 돌아봤다. 처음부터 데아가 그곳에 있다는 걸 알았던 것처럼. 소름끼치게 눈부신 미소를 지으며 다시 두 다리로 벌떡 일어난 그가 날 듯이 데아를 향해 다가왔다.

―다리뼈가 여기 또 있었네?

숲에서 몇 발자국 나오지도 않았는데, 순식간에 눈앞까지 죽음이 다가왔다. 비명을 지르는 데아를 인어가 덥석 붙잡았다.

“뭐, 놔, 놔줘!”

―얘가 마지막이겠지? 잘도 도망쳤네. 하마터면 목격자가 생길 뻔했지 뭐야.

“목격자, 아,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요.”

그 순간 남자의 몸이 우뚝 굳었다. 그러나 데아는 두려움에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말을 이었다.

“처음에, 뭐, 뭐를 찾으러 왔다고 했잖아요. 경매와 관련된……. 아직, 아직 못 찾았어요?”

그의 손아귀에 붙잡힌 순간, 그에 대한 증오심보다는 생존 본능이 앞섰다. 이데아는 남자의 한 손에 매달려 덜덜 떨었다.

‘미안해, 오빠. 그런데 아직 너무 살고 싶어.’

비참함에 손이 덜덜 떨렸다.

“아,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요. 제발, 제발.”

살려 주세요…….

처참한 구걸이었다. 데아는 남자가 묘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도 눈치채지 못한 채 계속 울었다.

―…너 지금…….

침묵 후, 남자가 말을 꺼냈다. 그는 말도 안 되는 것을 목격한 사람처럼, 괴상하고도 기이한 것을 맞닥뜨린 것처럼 데아를 보더니 이내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그리고 이내 데아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렸다.

“아악!”

곧장 목덜미에 닿아 오는 남자의 피 묻은 손톱을 보며 데아는 남자의 손목을 붙잡았다. 온몸의 맥박이 정신없이 뛰고 있었다.

―너 내 말이 들려?

이건 또 무슨 헛소리인가.

이데아는 헐떡이다가 이내 고개를 느릿느릿 끄덕였다.

“드, 들려요. 잘 들려요.”

―와, 이건 또 무슨 일이지? 진짜 들려?

“네, 네.”

남자는 당혹스럽게 인상을 구겼지만 불쾌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오히려 호기심과 미지의 것을 발견한 눈빛으로 이데아를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일순간 그의 눈빛이 낮게 가라앉았다.

―말도 안 돼. 내 말을 들을 수 있을 리가 없어. 내 말을 들을 수 있는 건…….

남자가 데아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조사가… 필요할 것 같군.

그가 데아를 가뿐히 들어 올렸다.

―너 나랑 같이 가자. 살려 줄게.

뭐?

―아까 내 모습도 다 봤지? 그러면 따로 설명은 필요 없겠고…….

그는 데아와 얼굴을 마주했다. 웃는 입가 사이로 비치는 이빨이 날카로웠다.

―난 인간이 아니야. 난 인어거든. 아마 여기 인간들은 인어를 처음 볼 거야. 놀랍지?

추측하던 게 확실해졌다. 데아는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머릿속에 정보가 더 이상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남자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곧장 파도 쪽으로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검게 일렁거리는 파도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아, 설마 같이 가자는 말이…….

“사, 살려 주세요. 죽기 싫어요!”

―어어, 나는 너 안 죽일 거야. 그냥 나랑 갈 곳이 있어서 그래. 진정해.

“제발, 제발 보내 주세요.”

작은 목소리로 절박하게 빌었지만 남자는 무시하고 데아를 이끌었다.

‘이 파도 속으로 같이 빠지자고?’

인간이 아닌 존재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 인어는 그였지, 자신이 아니었다. 데아는 눈앞에서 자신을 잡아먹을 듯 세차게 몰아치는 검푸른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를 따라가고 싶지 않아.

호흡이 크게 튀었다.

이 모든 일이 없어졌으면 좋겠어. 그가 사라졌으면 좋겠어. 난 그냥…….

한 번 바라기 시작한 소원은 데아의 가슴과 뇌를 불태울 듯 뜨겁게 달아올라 멈추지 않았다.

깊은 심해가 고요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피를 토할 것 같았다. 머리가 아득하게 조여 오는 감각에 데아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잠깐, 저게 뭐야?

당황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솨아아아…….

사방이 고요했다.

퍼뜩 고개를 들자 눈에 띄게 낮아진 해수면이 보였다. 사람을 잡아먹는 맹수처럼 포효하던 파도도 느껴지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낮아진 수면에 길을 잃은 생선이 육지 위에서 펄떡였다.

폭풍우가 잦아들어 사방이 침묵에 잠겼지만 이것이 좋은 현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잠, 잠깐. 아니, 이런 미친…….

남자의 목소리를 따라 이데아는 시선을 돌렸다.

거대한 자연의 재앙.

아가리를 벌리고 탐욕스럽게 다가오는 절망의 파도.

심해의 일렁임을 간직한 바다의 묘지.

저 멀리서 해일이 몰려오고 있었다.

―왜 갑자기?

남자가 느리게 고개를 돌려 이데아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표정이 당혹감에서 이내 의문으로, 미묘한 깨달음으로, 그리고 공포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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