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1화 【1부】
“당장 뱉어!!”
머리 위에서 명령이 떨어졌다. 아이는 헐떡거리는 숨을 주체하지 못하며 필사적으로 입안에 쑤셔 넣어진 고기를 씹었다.
퍼석한 식감이 참으로 별로라고, 아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생각했다.
“이게!!”
자신을 향해 고압적인 고성을 내뿜는 이 남자는 자신의 가족을 죽인 남자였다.
자신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이유로 사업에 대한 투자를 끊고 주가를 조작해, 결국 부도의 길을 걷게 한 원흉. 사채를 쓰게 하고 갚지 못하자 가족 전체를 납치해 이런 외딴 별장에 가두고, 평생을 노예처럼 살게 한 인간.
높은 사람들은 추악한 일면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고, 살아 있을 때의 부모님은 자신과 오빠에게 넌지시 말했었다.
그 말은 역시나 눈앞의 이 남자를 두고 한 말이겠지.
겉으로는 선량한 국회 의원을 연기하면서 가끔 이런 외지의 별장 안으로 들어와 유통되어서는 안 되는 고기 요리를 즐기는, 추악하고 괴악한 위선자.
“어서 뱉으래도!”
아이의 멱살이 잡혀 올라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 ◈ ◈
어느 날 별장 안에서 설거지를 하던 아이는 고용인들이 하는 대화를 엿듣고 말았다.
“들었어? 그 사람들이…….”
실망스러운 만찬을 만든 죄로 쫓겨나듯 어선에 오른 주방 사람들이 실종되었다는, 조심스러운 대화였다. 그중엔 아이의 부모님도 있었다.
15세가 된 아이가 알아듣기엔 충분한 대화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저 의원이 죽인 거나 다름없었다.
고민은 짧았다. 아이는 체념했고, 망설이지 않았다. 주방엔 널리고 널린 게 칼이기에 아이는 날카롭게 벼려진 칼을 아무것이나 하나 집어 들었다. 마침 의원은 곧 새로운 만찬을 즐기기 위해 이곳으로 올 터였다.
하지만…….
코앞으로 다가온 살인의 냄새에 아이는 결국 걸음을 멈췄다. 심장이 거침없이 뛰고 있었다. 두통이 일었다.
그때 한 상자가 눈에 띄었다. 상자 안에 들어 있는 건 이상한 모양으로 뭉쳐진 고기였다. 익은 것도, 그렇다고 날고기도 아닌 이상한 상태의 고기는 주방장이 이번 경매에서 비싸게 들여온 고가의 재료라며 으름장을 놓던 것이었다.
그때 주방의 문이 열렸다. 들어오는 사람은 많았다. 그 끝에 있는 건 싱글거리는 미소로 의원을 안내하고 있는 주방장이었다.
아이는 저도 모르게 칼을 휘둘렀다.
“으아악!!”
주방 안은 바로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주방장이 자신의 팔을 움켜쥐고 데굴데굴 굴렀다.
의원을 죽였어야 했는데!
아이는 후회했지만, 바로 잡혔다. 이제 꼼짝없이 죽겠구나 싶었을 때, 의원이 갑자기 소리쳤다.
“재료를 먼저 지켜!”
그는 뛰어가고 있었다. 상자 안에 들어 있던 고기를 향해서였다. 그의 얼굴은 절박했다. 어떻게든 이런 상황 속에서 고기를 사수하고, 또 지키려는 것 같았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주방장보다, 비명이 난무하는 사람들보다 더 중요한, 그의 만찬 재료.
그리고 그 고기는, 아이에게 더 가까운 곳에 있었다.
생각의 시간은 짧았다. 의원에게 절망을 안겨 주고 싶었다.
아이는 뛰었다. 그보다 아이가 더 빨랐다.
고기를 낚아챈 아이는 주방 밖으로 달렸다. 15세 아이는 그 어떤 어른들보다 빨랐다.
타앙!!
“아악!!”
종아리에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아이는 철퍽 고꾸라졌다. 비가 오는 날, 뒤에선 사람들이 고함을 지르며 자신을 쫓아오고 있었고, 날은 어두웠다.
“고기, 고기가 훼손되면 안 돼! 고기 먼저 뺏어!”
아이는 기이한 예감에 고개를 들었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그냥 그래야 한다는 듯이, 의원의 절망 섞인 얼굴을 보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고기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입을 벌렸다.
왜 그런 충동에 휩싸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하여 지금이었다. 아이는 겁에 질린 것 같기도 하고, 분노로 제정신이 아닌 것 같기도 한 의원의 얼굴을 마주하며 고기를 잘근잘근 씹었다.
꿀꺽.
맛없는 고기가 목구멍 너머로 넘어갔다.
그때 피를 흘리는 팔을 꼭 쥔 주방장이 주춤거리며 의원의 곁으로 왔다. 그의 안색 또한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의, 의원님. 죄송합니다. 저 애가 뭘 가져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금방 재료를 충당해서 식사 준비를…….”
“…뇌다.”
“네?”
의원이 거무죽죽한 얼굴로 주방장을 돌아보았다.
“이, 이 애새끼가 먹은 게 인어의 뇌라고!!”
주방장이 야차 같은 시선으로 아이를 돌아보았다.
“설마 그, 경매 물품……!”
“그래!!”
“죄, 죄송합니다! 제가 관리를 잘 하지 못하고……!”
“이, 이 망할 것이……! 그게 얼마나 힘들게 구한 건데!! 그게 얼만지는 알아?!”
주방장이 바닥에 머리를 대고 빌었지만 의원은 성난 풍랑처럼 끊임없이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아이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마르지도 않은 눈물자국을 그대로 간직한 채 아이는 자신의 뒷주머니를 뒤졌다.
혹시 몰라 챙겨 두었던 날붙이가 선명하게 만져졌다. 목표는 저택이 떠나가라 고성을 지르고 있는 의원의 목이었다. 손안에 땀이 가득 차올랐지만 아이는 고민 없이 곧장 손을 휘둘렀다.
푸욱!
“커, 커흑.”
“흐……!”
짧은 찰나에 칼이 그대로 의원의 목을 파고들었다.
“허, 허, 이, 이게……!”
아이의 머리 위로 뜨거운 액체가 쏟아져 내렸고, 당황한 눈꺼풀을 경련하며 덜덜 떨던 의원은 머지않아 뒤로 넘어갔다.
“으아악!! 의원님!!”
“저, 저 애가!”
놀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아이와 의원에게로 달려왔고, 아이는 곧장 사람들에게 포위되었다.
‘내가, 사람을, 내가 의원을……!’
복수에 성공했다. 의원은 죽었다.
‘이제 오빠를 데리고 여길 나가야 하는데……!’
퍼억!!
하지만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아이는 둔탁한 통증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낡은 나무 문이 삐걱이는 창고 안에서 아이는.
“야, 뭐야, 살아 있잖아! 분명 죽었다며!!”
“하, 하지만 분명 숨이 멎었었는데, 어떻게……!”
모든 기억을 망각한 채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냐는 듯, 당신들은 누구냐는 듯, 동그랗게 뜨인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렸다. 아이는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비척이며 상체를 일으켰다.
“하… 하아……!”
그리고 벼락처럼 호흡을 시작했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의 소음이 딱 그쳤다.
“일단 경찰에 신고는 저 애 죽이고, 증거 다 없애고 해.”
“네!”
“안 돼, 안 돼요! 제발 저희 데아를 살려 주세요!! 제, 제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에요!”
“얘는 또 뭐야?! 얼른 안 끌어내?!”
온몸이 뜨거웠다. 아이는 비명을 질렀다.
사위가 이내 또렷해졌다. 주변을 둘러보는 찰나 누군가 아이의 팔을 잡고 우악스럽게 당겼다. 가벼운 몸은 쉽게 끌려갔다. 사방이 소음이었다. 귓가가 웅웅거렸다.
“다시 끌고 가!”
“데아야!!”
낡은 면직 티를 입은 아이는 자신이 있는 곳이 낡은 창고 안이라는 것과, 자신을 끌고 가는 사람들의 손에 위협적인 도구가 하나씩 들려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어두운 사방에서 누군가가 아이를 향해 손전등을 비췄다. 번쩍, 눈앞이 점멸했다.
“미친 것, 온몸에 피 좀 봐.”
아이는 반사적으로 자신의 옷을 더듬었다. 찐득거리는 액체가 전신에 눌어붙어 있었다. 혀로 입술을 축이자 비릿함이 훅 올라왔다.
‘왜지? 왜 피가 묻어 있지?’
누군가의 피 냄새, 비린내. 인생의 첫 기억은 그렇게 각인되었다.
“데아야! 이데아!”
“저리 비켜!”
“데아가 그랬을 리 없어요, 데아가 얼마나 착한 앤데!”
저 멀리서 어떤 남자가 자신을 보며 처연하게 소리치고 있었다.
이데아, 아마 자신의 이름일 것이다.
데아는 그제야 상황을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 비가 오는 창밖. 그 너머로 보이는 어두컴컴한 바다. 강한 폭풍우에 파도가 넘실거리는 절벽 위의 창고.
아이는 쉽게 자신의 상황을 눈치챘다. 자신은 곧 죽을 것이다. 비 오는 이 낡은 창고 안에서 사람들에게 맞아 죽을 것이다.
“아니요, 제발 우리 데아 좀 살려 주세요. 데아 제 동생이에요. 하나밖에 없는 가족이라고요!”
“비켜!”
“아악!”
데아는 큰 둔기를 휘두르는 사람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흔들리는 전등 아래, 역광을 받은 둔기가 시야에 담겼다. 죽음의 향취에 눈이 번뜩였다.
“우리 부모님도 죽였으면서 하나 남은 동생도 죽이려 하냐! 이 나쁜 놈들아!!”
선량한 눈매의 남자가 오열하듯 내뱉은 고함을 마지막으로 다시 시야가 암전됐다.
쨍그랑!
그때 전등이 깨졌다. 바다의 비린내가 훅 사방에 끼쳤다.
데아가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여 몸을 웅크리자 빗나간 둔기가 그 옆에 있던 나무 상자를 으스러뜨렸다.
철퍽.
그때 물에 젖은 발소리를 들었다고, 데아는 자신을 낚아채는 누군가의 온기를 느끼며 생각했다.
다시 눈을 감았다 떴을 때는 그 선량한 눈매의 남자에게 안겨 정신없이 도망치고 있었다.
“데아야, 도망치자, 넌 내가 지켜 줄게. 내가 어떻게든 넌 살려 줄게…….”
단단하게 자신의 등을 붙잡은 손이 뜨거웠다. 데아는 그 체온에 몸을 기댔다.
“나는 네가 정말로 죽은 줄 알았어. 살아 있어서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번쩍!
창 밖에서 번개가 내리치는 그 찰나의 순간, 창고 속의 광경을 본 데아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처음 보는 붉은 머리카락의 남자가 창고 안에서 사람들을 죽이고 있었다.
‘우리를… 도와주러 온 건가?’
데아는 온몸의 통증도 잊고 그 광경을 홀린 듯 바라보았다. 길게 뻗은 손톱이 사람들의 가슴을 뚫고 사지를 비틀자 큰 덩치를 가진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맥없이 쓰러졌다.
인간이 아닌 것 같은 몸놀림으로 어느덧 창고 안의 사람들을 모조리 몰살한 붉은 머리카락의 남자는 저 멀리 도망치고 있던 데아와 남자를 보더니 이빨을 보이며 씩 웃었다.
숨이 멎을 것 같은 광경이었다.
―등신들. 밖에 나가면 내가 더 유리한데.
붉은 머리카락 남자의 목소리였다. 뇌에 울려 퍼지는 음성에 데아의 온몸이 반사적으로 뻣뻣하게 굳었다.
‘우리를 도와주러 온 게 아냐.’
데아는 자신을 안고 뛰고 있는 남자를 향해 필사적으로 속삭였다.
“밖, 밖에 나가면 안 돼요.”
“데아야, 정신이 들어?”
“실내로 들어가요. 밖에 나가면 안 돼!”
남자의 유순한 눈매가 조금 놀란 듯이 커지더니 그가 이내 몸을 틀어 곧장 거대한 저택 안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데아와 남자가 실내로 들어가는 것을 본 붉은 머리카락의 남자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뿐이었다. 상관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한 그는 긴 다리로 성큼성큼 곧장 걸어왔다.
“누구냐!”
밝은 샹들리에가 빛나는 저택 안, 분주한 발걸음을 놀리고 있던 고용인들이 밖으로 뛰쳐나왔다.
“누, 누구.”
그들은 빗물과 피투성이인 붉은 머리카락 남자를 보고 총을 뽑아 들었지만 그가 손을 휘두르자 모두 사지가 잘려 쓰러지고 말았다.
끔찍한 현장에 계단 밑에 숨어 있던 데아는 입을 손으로 막았다. 눈앞이 흐려졌다.
“하아… 지금이야. 나가자.”
데아의 코앞에 얼굴을 들이밀며 남자가 속삭였다.
“2층 테라스가 있어. 그쪽 나무를 타고 뒤로 도망치자. 데아야.”
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그 둘은 계단 뒤쪽의 작은 창문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그때 붉은 머리카락 남자의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그러게 ‘그걸’ 왜 가져갔대…….
귀를 통한 음성이 아닌, 뇌에 곧바로 입력되는 허공의 목소리였다.
‘그거?’
데아는 번쩍 고개를 들었다. 심드렁한 표정의 붉은 머리카락 남자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감흥 없이 살해하고 있었다.
―이렇게 죽기 싫었으면 경매장에서 ‘그걸’ 가져가면 안 됐지.
붉은 머리카락의 남자가 죽은 사람들을 한심하다는 듯 내려다보았다.
곡선을 그리며 튄 피가 데아의 팔에도 묻었다. 데아는 발작하듯 팔을 긁었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무서워.’
숨이 덜덜 떨려 나왔다. 그래서 데아는 자신을 꼭 껴안고 탈출할 수 있을 거라고 조곤조곤 읊조려 주는 사람의 체온에 의지했다.
여기서는 그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