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1 외팔이 마법사
대륙 최남단 마턴즈베크의 야만족 정벌은 헬무트 황제의 뒤를 이은 게오르그 마이어스의 뜻대로 이루어졌다.
아버지 헬무트 마이어스를 독살해 죽이고, 형인 테오도어 마이어스를 암살하며 황권을 거머쥔 게오르그.
그는 궁내 대신들과 봉국의 왕들이 자신에 대해 품고 있는 독살에 대한 의심을 바깥으로 돌리고 싶어 했다.
때마침 마턴즈베크의 야만족들이 라마바담을 침공했다.
그것은 게오르그에게는 내부권력을 공고히 하고, 자신에 대한 반발자들을 전장으로 내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곧바로 황제의 복마령이 가동됐고 숱한 왕국의 기사들이 마턴즈베크 정벌 전쟁에 동원되어 죽어갔다.
기사들이 흘린 피가 바다들 메울수록 게오르그 정권은 공고해졌다.
게오르그 마이어스력 2년.
미트라카 제국의 수도 아몬.
게오르그는 집권 2년 만에 드디어 동방의 이교도 집단 이스트리 제국을 제외한 파이오니아 대륙의 모든 왕국과 공국들을 미트라카 제국의 발아래 두게 되었다.
“흐하하하! 내가 뭐랬더냐. 스타안 왕국 놈들, 지들이 아무리 버텨봐야 이번 주 안으로 항복을 선언할 거라고 하지 않았더냐!”
제국의 황궁은 대소신료들이 채워야 할 자리를 면사만 걸친 늘씬한 미녀들이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면사 안으로 하얀 속살이 훤히 내비치는 여인들의 허벅지를 주무르며 게오르그는 웃고 있었다.
“역시 황제폐하의 예지력은 대 예언자를 능가하십니다.”
“하하하하, 이제 모든 왕국들이 내 발아래 무릎 꿇었으니 남은 것은 동방의 이교도 놈들 이스트리뿐이구나.”
“하하하. 그렇습니다, 폐하. 이제 동방의 이교도 무리만 박살내면 이 모든 대륙이 폐하의 것이 됩니다.”
제국의 교육원장이자 게오르그 마이어스의 충복 하라고네스.
그는 눈가에 비굴한 웃음을 가득 머금은 채 게오르그 마이어스에게 아첨을 떨었다.
“스타안 왕국의 항복문서가 수리되는 대로 대 동방전을 선포하겠다.”
“폐하, 그전에 먼저 하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라고네스의 눈에 광채가 서렸다.
“뭐냐, 하라고네스?”
“일찍이 선대제셨던 헬무트 대제께서는 교권을 분리해 제국을 통치하는 바람에 왕권의 약화를 불러오셨습니다. 이것은 우리 제국 내에서만 행해지는 독특한 정치적 행태로 동방의 이스트리 같은 경우는 왕권과 교권을 통합해 왕권 아래 두고 있습니다.”
하라고네스의 말에 게오르그가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하여, 동방원정을 시작하시기 전에 법황청 놈들을 손봐줘야 할 것입니다.”
“흐흐흐흐, 어쩜 하라고네스 너의 뜻은 나와 그리도 일치하는지 모르겠구나. 그렇지 않아도 내 입만 살아 있는 법황청 놈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작정이었다. 하라고네스, 네 뜻대로 시행해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말을 끝마친 하라고네스는 뒷걸음으로 황제의 어전을 빠져나갔다.
“흐흐흐. 내쉬, 천하가 내 손안에 있다.”
“소녀도 폐하께서 기뻐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환하게 웃는 면사녀의 허벅지 속으로 게오르그의 시커먼 손이 독사처럼 파고들었다.
* * *
헬벤타리아.
달루시아 대륙 중 버림받은 대륙으로 불리는 저주의 대륙.
헬벤타리아와 파이오니아 대륙을 잇는 문명의 문을 제외하면 나머지 대륙은 불모지나 다름없는 곳이 바로 대륙이다.
특히 동편에서 서편으로 이어지는 비오트 숲은 종족 대전 후 도망쳐온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는 곳으로, 가끔 유황온천을 즐기는 귀족들을 제외한다면 인간의 왕래 자체가 없는 곳이었다.
녹림이 우거지다 못해 까맣게 보일 정도로 푸른 정글 속.
그 초록의 나뭇잎과 흡사한 피부색을 가진 몇 마리 오크들이 비 오듯 땀을 흘리며 비오트 숲을 통과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그들은 이스트 비오트 숲에 자리 잡고 있는 오크들의 요새, 바로우에 도착했다.
“취익! 계집을 데리고 왔습니다.”
콰악!
별안간 날아드는 장창이 오크의 목을 꿰뚫었다.
“감히 어둠의 여왕님께 계집이라니, 무례한 놈 같으니라구!”
하제든.
동편 비오트 숲과 서편 비오트 숲의 지배자이자 오크족의 샤먼.
그는 지체 없이 장창으로 오크 파이터의 목을 꿰뚫어버렸다.
“시간이 없다. 아족, 여왕님을 소멸 협곡으로 모셔라.”
“취익, 알겠습니다.”
하제든의 말 한마디에 수십 마리의 오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아족. 동편 비오트 숲의 오크로드이자 오크 정예군의 군단장.
그가 손수 오크 전사들을 이끌고 소멸 협곡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멸 협곡.
세인들은 그곳을 가리켜 죽음의 땅이라 불렀다.
헬벤타리아의 최북단.
버그베어 같은 포식형 몬스터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생명체도 살지 않는 불모의 땅.
그 얼음산 같은 땅덩어리 중 유일하게 빙산이 덮이지 않은 곳이 소멸 협곡이다.
“서둘러라. 인간들이 강마의식을 눈치 채면 끝장이다. 더구나 일렉트라 님을 모셔오는 동안 엘프의 습격이 있었다고 했다. 이미 저 간사한 무리들은 또다시 동맹을 결속시키려 할 것이다. 그들이 힘을 규합하기 전에 어둠의 지배자 위리놈 대왕님을 부활시켜야 한다.”
“취익, 제까짓 것들이 이곳까지 올 수 있겠습니까?”
“허튼소리. 벌써 그들에게 세풀투라 님이 당하셨다.”
“취익, 하지만…….”
“잔소리 말고 어서 서둘러. 만에 하나 인간들뿐만 아니라 천족들까지 대왕님의 강마의식을 눈치 챈다면…….”
“…….”
웨어울프.
말보다 높이는 낮지만 전체적인 근골과 힘이 훨씬 뛰어난 오크들의 이동수단이 바로 웨어울프였다.
달리는 웨어울프 위에서 아족은 부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보인다. 드디어 소멸 협곡의 봉우리가 보여.”
두두두두두!
소멸 협곡의 13개의 봉우리가 눈에 들어오자 웨어울프가 더욱 더 빠르게 질주했다.
빼애액!
그때 하늘에서 고막을 찢을 듯한 그리폰의 사자후가 들려왔다.
“무슨 소리지?”
그제야 오크들이 허공을 보며 두리번거렸다.
“그리폰이다.”
“그리폰이 이 척박한 땅에 왜?”
“자, 잠깐! 누군가 그리폰 위에 타고 있습니다.”
빼애애액!
“뭐, 뭐야?”
“크링스, 하룩, 너희들은 저놈을 맡아라. 우리는 소멸 협곡으로 간다.”
“제길, 이럴 줄 알았으면 서머너들을 데리고 올 걸 그랬습니다. 공대지라면 저희들이 너무 불리합니다.”
빼애액!
금속성에 가까운 울음소리와 함께 그리폰이 활강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그리폰의 위에서 고삐를 잡고 있는 사람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냈다.
외팔이 마법사 프란츠.
대륙 최고의 마법사인 오퍼도버의 손자인 그가 마법 수업을 끝마친 것일까?
그도 아니면 이미 일렉트라가 소멸 협곡에 나타날 것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일까?
거칠게 활강하는 그의 표정이 사뭇 비장했다.
“취익! 막아라!”
수직으로 하강하던 그리폰이 강철부리를 쫘악 벌리며 오크들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프란츠의 오른손에 들린 마법 완드(Wand-지팡이)의 수정구에서 화염이 형성되었다.
빼애애액!
“취이익!”
오크 전사들의 쇼트 액슬(Short axle)이 화살비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직격탄처럼 날아드는 도끼날 속을 그리폰은 곡예를 넘듯 피하며 빠르게 비행했다.
쌔애애액!
퍼억!
쇠망치보다 단단한 그리폰의 날개에 달린 발톱은 겁 없이 달려드는 오크들의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끄아악!”
동시에 강철 같은 그리폰의 부리는 오크들의 머리를 부숴버렸다.
“홀리 플레임(Holy flame)!”
그리폰의 활강하는 가속력에 덧붙여진 프란츠의 마법 완드에 걸린 불꽃덩어리.
그것은 오크들에게 지옥의 화염보다 뜨거웠다.
초록 피부가 찌그러진 깡통처럼 오그라들었다.
“으아아악!”
슉슉슉!
또다시 수십 개의 도끼날이 희번덕거리며 프란츠를 덮쳤다.
하지만 그리폰은 날아오는 도끼날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가파르게 수직으로 상승하며 오크의 공격을 모조리 피해버렸다.
허공에서 360도 회전한 그리폰은 또다시 오크무리들을 향해 하강했다.
“취익! 멍청이들, 그리폰 말고 그리폰 위에 탄 외팔이놈을 죽여라. 그렇게 하면 그리폰도 힘을 쓰지 못할 것이다.”
슉슉슉!
바람개비처럼 회전하며 날아드는 도끼날.
그리고 수백 개의 암기들을 바라보며 프란츠가 미소를 지었다. 마치 가소롭다는 듯.
“아이스 실드(Ice shield)!”
이번에는 프란츠의 마법 완드가 노스랜드의 빙하를 뜯어온 것처럼 둥근 방패를 만들어냈다.
퍽퍽퍽!
오크전사들의 공격은 어김없이 얼음의 장막에 막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쌔애애액!
또다시 금속성의 울음소리가 대기를 갈랐다.
“피, 피해랏!”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날카롭게 날이 선 그리폰의 발톱과 강철 같은 부리는 말 그대로 창이었다. 그리고 검이었다.
스치는 것은 모조리 두 조각이 났고, 부딪치는 것은 모조리 찢어발겨졌다.
“꿰액!”
그사이 아족은 몇 명의 오크 전사들을 이끌고 소멸 협곡에 다가가고 있었다.
“저 다리, 저 13개의 다리만 건너면 된다. 그러면 대왕님의 암흑투기가 우리들을 보호해주실 것이다.”
아족은 그리폰을 타고 있는 마법사와 싸우는 것보다 일렉트라를 소멸 협곡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것이 급선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뒤에서 터져 나오는 부하들의 비명소리를 애써 외면하며 13개의 다리를 향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리폰이 또다시 몇 번의 곡예비행을 끝냈을 때 척박한 땅은 오크들의 피로 물들었다.
“그리폰! 저들을 쫓아라. 특히, 저 여자를 붙잡아야 해!”
삐애액!
황금 깃털을 번뜩이며 커다란 그리폰의 날개가 힘차게 활갯짓을 했다.
그리고 어느새 그리폰이 아족 일행의 뒤에 바짝 다가갔다.
“막아라, 막아! 이 멍청한 것들아!”
“일렉트라 님을 깨워라. 혼자서라도 다리를 건너시게 해야 해!”
그때까지 오크의 등에 업혀 있던 일렉트라가 땅바닥에 놓여졌다.
아족은 주머니를 꺼내 일렉트라의 얼굴에 하제든의 주술이 담긴 가루를 뿌렸다.
피르르르!
일렉트라의 얼굴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몇십 일간의 강행군으로 고왔던 일렉트라의 얼굴은 그 형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악의 근원적인 힘이 가까워서인지 대륙 최고의 미녀로 꼽히기에 손색이 없었던 용모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녀의 모습은 흡사 악마와 같았다.
“끄응!”
하제든의 주술 가루가 얼굴에 덮이자 일렉트라가 오랜 잠에서 깨어났다.
“아아악!”
일렉트라는 변해버린 자신의 용모에 기겁하고 말았다.
그토록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일어나고 말았다는 사실에 그녀는 좌절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전부였던 딜란의 배신을 떠올렸다.
꾸욱!
일렉트라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하지만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일렉트라 여왕님, 저 무도한 인간 마법사가 여왕님을 해치려 하고 있습니다. 어서 저 다리를 건너 소멸 협곡으로 들어가셔야 합니다.”
일렉트라는 여왕이라 부르며 자신을 호위하고 있는 자들이 초록색 몬스터 오크라는 사실에 기겁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리폰의 쇄도였다.
이대로 부딪친다면 살점 하나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다.
더구나 다리 건너편에서는 알 수 없는 힘이 자신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우우우웅!
또한 환청 같은 울림이 자신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어서 오라고.
어서 다리를 건너라고.
일렉트라는 딜란에게 받았던 상처를 곱씹으며 다리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인간들, 가장 사악한 생명체인 인간들의 씨를 말려버리고 말 거야!”
백옥 같던 피부가 악어의 등껍질처럼 딱딱하게 변해가는 것을 느끼며 일렉트라는 인간들에 대한 저주를 쏟아냈다.
“저 여자를 잡아라, 그리폰!”
쌔액 쌔애액!
오크들을 덮칠 기세로 비행하던 그리폰이 몸을 틀어 일렉트라를 향해 날아갔다.
“막아라! 저놈이 일렉트라 님을 잡지 못하게 막아! 몸을 날려서라도 저놈을 막아라!”
슉슉! 슉슉!
오크들의 일렉트라를 보호하기 위한 저항은 끈질겼다.
투박한 석궁의 화살촉들이 연거푸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육탄 돌격하듯 달려오던 아족이 그리폰을 향해 힘껏 도약했다.
“이, 이런… 그리폰, 위험하다! 피햇!”
휘리릭!
하늘 높이 도약한 아족은 자신의 애병 더블 블루문(Double bluemoon)을 꺼내 들었다.
츄킹!
초승달 모양을 한 두 개의 도는 시퍼렇게 날이 서 있었다.
“죽어랏, 애송이!”
바람을 가르며 아족의 더블 블루문이 매섭게 프란츠의 심장에 파고들었다.
“흥! 네놈부터 죽여야 할 것 같구나.”
그리폰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직감하고 몸을 옆으로 돌려 지면과 수직이 되게 만들어 빠르게 날아올랐다.
슈각!
아족의 더블 블루문의 간발의 차로 그리폰의 깃털을 잘랐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그리폰의 날개는 몸체에서 분리되고 말았으리라.
“천한 오크놈이 감히 대마법사 프란츠 님의 앞길을 막아? 너를 전기구이로 만들어주마!”
콰츠츠츠!
프란츠의 마법 완드로 대기 중의 전격계 원소들이 응축되었다.
쩌저적! 쩌정!
시퍼런 스파크가 뇌전을 토하며 아족을 덮쳤다.
빠지지직!
뒤이어 하얀 연기가 아족의 몸에서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짐승의 털과 살갗이 타들어 가는 냄새가 사방에 진동했다.
폭사된 뇌전에 오그라들던 아족의 몸뚱이가 한 줌의 재로 변해버렸다.
“취익!”
놀라는 것은 오크 전사들이었다.
군단장급인 아족이 프란츠의 전격계 마법 한 방에 즉사해버리자 오크들은 전의를 상실했다.
기세에서 밀린 오크들은 무너져버린 제방처럼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병장기를 집어 던지고 달아나기 바빴다.
“그리폰! 여자를 잡아야 해!”
삐액!
잠시 오크들의 도망치는 모습을 보며 웃고 있던 그리폰이 또다시 양 날개를 펄럭였다.
때마침 일렉트라는 13개의 다리 중 13번째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저 여자를 낚아채!”
쉬이익!
먹이를 향해 돌진하는 독수리처럼 그리폰이 일렉트라의 등을 노리며 덮쳐 들어갔다.
콰악!
날카로운 그리폰의 발톱이 일렉트라의 양어깨를 감싸 쥐었다.
“됐어! 그대로 솟구쳐 올라라!”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분명 세 번째 다리를 건너고 있던 일렉트라의 모습이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일렉트라는 어느새 다섯 번째 다리 위에 놓여 있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프란츠뿐만 아니라 그리폰도 당황스러웠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번에는 절대 저 여자를 놓치지 마라!”
펄럭!
또다시 그리폰은 허공으로 껑충 뛰어오르며 일렉트라를 덮쳤다.
콰악!
하지만 이번에도 그리폰이 낚아챈 것은 한 줌의 공기.
“이, 이런… 결계다. 다리 위에 결계가 걸려 있어.”
그제야 프란츠는 누군가가 다리 위에 결계를 걸어놓았다는 것을 눈치 챘다.
‘누구지? 누가 저 여인을 보호하는 것인가? 힘을 잃어버린 위리놈이 저 여인을 보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 다리에 결계를 걸어놓았단 말인가?’
당혹성을 흘리던 프란츠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뭔가를 결단했을 때 하는 특유의 습성이었다.
“쳇, 할아버지가 여자는 절대 때리지 말라고 했는데. 하지만 저 여자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이제 뭐 거의 괴물이니까!”
그리폰 위에서 프란츠는 눈을 감았다.
마법 완드의 수정구를 이마에 갖다 댄 프란츠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마법을 캐스팅했다.
“불의 힘으로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소멸할지니… 파이어 볼트(Fire bolt)!”
화르륵!
꺼지지 않는 마법의 불화살이 용의 모양을 이뤄내며 다리를 거의 다 건너간 일렉트라를 노렸다.
“끝장이다!”
하지만 그것은 프란츠의 바람일 뿐이었다.
13개의 다리로 이뤄진 소멸 협곡의 계곡 아래에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얼음사자가 솟구쳐 올라왔다.
“저, 저건 또 뭐지?”
순백의 얼음 덩어리로 만들어진 얼음사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수정 같은 얼음사자가 입을 쩌억 벌리며 날아오르더니 프란츠의 파이어 볼트를 삼켜버렸다.
“말도 안 돼! 꺼지지 않는 마법 화살을 삼켜버리는 소환체라니! 도대체 누, 누가!”
프란츠의 불화살을 삼켜버린 사자는 그길로 일렉트라를 향해 뛰어오르더니 일렉트라의 어깻죽지를 물고 하늘로 도약하고 말았다.
파앗!
한 번에 50m를 뛰어오른 얼음사자는 기어이 소멸 협곡으로 일렉트라를 내려놓았다.
일렉트라가 건너편으로 건너가 버리는 순간, 거짓말처럼 13개의 다리가 무너져 내렸다.
또한 신기루처럼 얼음사자가 사라져버렸다.
“이, 이건 도무지… 어둠의 왕이 권능을 되찾았다는 말인가? 크, 큰일이다!”
한동안 망연자실하며 사라져버린 일렉트라의 잔영을 바라보고 있던 프란츠는 그리폰의 고삐를 당겼다.
“제길, 문명의 문으로 가야 해. 수문장 츠바이 한더에게 종족전쟁이 직면했음을 알려야 한다. 문명의 문이 무너지면 대륙의 뒷마당을 저들에게 내주는 것과도 마찬가지야. 가자, 그리폰!”
쌔애애액!
프란츠의 명령에 그리폰이 힘차게 허공으로 비상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