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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4 외팔이 마법사와 난쟁이 감론 (35/51)

chapter 34 외팔이 마법사와 난쟁이 감론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몸 안의 탁기를 순화시켰기 때문일까?

수혁은 비응신보를 이용하여 날다람쥐가 나무를 타고 날듯이 밀림 위를 내달려 순식간에 불빛들의 진원지에 도착했다.

수혁은 조심스레 넝쿨로 우거진 수풀의 천장에 구멍을 뚫어 아래 오솔길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지켜보려고 했다.

“헉, 헉.”

실타래처럼 뒤엉킨 넝쿨들을 걷어버리고 아래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바라본 수혁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거기엔 기껏해야 자신의 엉덩이에나 닿을 듯한 작은 키, 머리는 보통 인간들의 두 배 가까이 되는 것 같은 사람, 아니 난쟁이 두 명이 있었다.

나이를 헤아리기 힘들 만큼 풍성한 수염이 얼굴을 뒤덮고 있으며 잘 익은 가지만 한 크기의 코를 달고 있는 사람, 아니 난쟁이 두 명은 숨을 헐떡였다.

그들은 어두운 횃불을 의지하여 도망치고 있었고 그들의 뒤에는 십여 마리의 늑대들이 시퍼런 안광을 번뜩이며 그 둘을 쫓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늑대들은 잿빛 터럭이 아닌 핏물이 돋는 듯한 터럭을 가지고 있었다. 즉, 붉은 늑대들이었다.

‘나, 난쟁이? 영화 속에서나 봤던 난쟁이 아닌가?’

수혁은 헛바람을 삼켰다.

컹, 컹.

수혁이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을 때 난쟁이들의 뒤를 따라잡은 늑대들은 허공을 향해 힘껏 뛰어올랐다.

그런데 두 명의 난쟁이와 붉은 늑대, 숲 위의 수혁을 제외하고 또 하나의 신형이 있었으니… 이제 사춘기를 갓 넘긴 듯한 사내였다.

특이하게도 그 어린 사내는 일반인들과는 다른, 팔이 하나 없는 외팔이였다.

그런데 난쟁이와 늑대들에 신경을 쓰느라 수혁마저 그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감노, 엎드려라.”

한 명보다 나이가 더 된 것 같은 난쟁이는 등 뒤에 메고 있던 도끼를 꺼내 들었다.

자신의 옆에 있는 난쟁이를 옆으로 밀쳐버렸다. 그 난쟁이는 허공으로 치솟아 오른 늑대들을 향하여 날카롭게 둔기를 휘둘렀다.

커엉! 컹!

그러나 늑대들은 허공에서 몸을 틀며 방향을 바꿔 날아오는 도끼날을 피했다. 그리고 나이 든 난쟁이의 목덜미를 물어버렸다.

“삼촌!”

그 모습을 본, 손길에 밀려 나가떨어져 있던 다른 난쟁이가 울부짖으며 등에 메고 있는 도끼를 꺼내 들었다.

크르르르.

한 마리 늑대가 난쟁이의 목덜미를 물자 나머지 늑대들도 기다렸다는 듯이 나이 든 난쟁이에게 달려들어 그의 사지를 물고 늘어졌다.

“이 더러운 늑대 새끼들! 삼촌을 내버려둬!”

조금 어려 보이는 난쟁이는 등에 멘 짐을 내려놓은 후 두 손으로 기다란 도끼를 쥔 채 삼촌을 물고 있는 늑대들을 향해 달려갔다.

크르르르.

어려 보이는 난쟁이가 도끼를 들고 달려들자 살점을 뜯어먹던 늑대 한 마리가 서서히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커엉! 컹컹!

푸른 안광을 번쩍인 그 늑대는 어린 난쟁이를 향해 비상했다.

“죽엇!”

나이 든 난쟁이의 조카로 보이는 드워프는 도끼를 들고 늑대의 정수리를 찍어 들어갔다.

뻐걱.

그러나 늑대는 날카로운 이빨로 도끼날을 밀쳐버리고 난쟁이의 몸통을 머리로 받아버렸다.

털썩.

삼촌을 구하기 위해 달려들던 난쟁이는 한참을 뒤로 밀려나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크르르르.

그러자 다른 늑대들이 서서히 다가와 넘어진 난쟁이를 에워쌌다.

“멈춰라, 똥개들아.”

그때 하늘에서 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수혁이었다.

수혁은 신장이 강령하듯 넝쿨을 뚫고 수풀의 안쪽으로 거칠게 내려왔다.

‘저런 멍청한 놈, 붉은 늑대들이 달빛을 받게 만드는 거야? 이제 모든 게 끝장이구나. 이제는 드워프나 인간의 힘으로 버서커가 된 붉은 늑대를 상대할 수 없다.’

늑대들에게 쫓기던 난쟁이를 뒤따라오던 외팔이 사내는 수혁을 바라보며 고개를 심하게 가로저었다.

수혁이 넝쿨로 뒤덮인 달빛이 스며들지 않는 비오트 숲의 천장을 뚫고 내려오는 것을 본 것이다.

크어엉.

호통소리와 함께 인간이 숲 위에서 별안간 내려오자 눈앞의 난쟁이의 신선한 살점에 군침을 삼키던 늑대들은 몸을 돌려 일제히 그곳을 바라봤다.

일순 늑대들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기쁨과 희열이 일렁거렸다.

붉은 늑대들은 핏물이 묻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가 싶더니 수혁이 숲의 천장을 뚫어버린 탓에 자로 그은 듯 똑바로 들어오는 달빛 광선을 향해 달려들었다.

난쟁이들을 물어뜯던 늑대들이 자신의 호통을 듣고 달려오자 수혁은 입술 끝을 살짝 말아 올렸다. 그만큼 늑대들을 얕잡아보고 있다는 뜻이었다.

어릴 적부터 버릇없이 으르렁거리던 황구들을 발길질 한 번에 쫓아버리곤 했던 수혁이었다.

이미 마도의 무공을 익힌 수혁에게 개보다 조금 큰 늑대들은 추억 속의 황구와 다름없는 것이었다.

“훗! 똥개들, 오늘 네놈들 살로 영양탕이나 한 솥 끓여서 먹어야겠구나.”

수혁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늑대들을 외면하듯 고개를 돌리며 비웃었다. 그러다가 늑대들의 예상치 못한 동작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봤다.

“뭐, 뭐야? 이 미친개들이 왜 달려들다 마는 거지?”

수혁은 미친 듯이 달려들던 늑대들이 달음질을 멈추자 의아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수혁은 늑대들이 뜀박질을 멈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늑대들이 직선으로 내리꽂히는 달빛 속에 멈춰 서자 붉은 털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그리고 털갈이하는 개들처럼 붉은 늑대의 털들이 비산했다.

‘놈들이 각성에 들어갔어.’

웨스트 비오트 숲에 서식하는 비스트 형과 휴머노이드 형이 혼합된 몬스터, 붉은 늑대!

이 빨간 털을 코트처럼 감고 있는 늑대들은 달빛을 쬐면 휴머노이드 몬스터 계열의 늑대인간으로 변하는 습성이 있는, 즉 폭주하는 습성이 있는 몬스터였다.

외팔이 청년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섣불리 싸움에 끼어들지 않고 팔짱을 낀 채 관망하고 있었다.

‘저 사내, 늑대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건 사실이지만 알 수 없는 강함이 느껴진다.’

외팔이 청년은 그렇게 생각하며 늑대인간으로 변신하는 늑대들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몸을 나무 뒤로 감췄다.

불룩불룩.

새빨간 털이 모두 빠지자 늑대들의 피부는 창자처럼 꿈틀거렸다. 그리고 땅을 짚고 서 있던 뒷다리는 길쭉하게 늘어나고 땅과 수평을 이루고 있던 척추는 하늘을 향해 곧추섰다. 또한 작다란 머리통은 흉측한 야만인 같은 모습으로 변모했다.

늑대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두 팔을 자유자재로 이용하고 두 발로 직립 보행하는 늑대인간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붉은 빛깔의 몸은 군더더기 없이 잘 발달된 탄탄한 근육으로 뒤덮였고 팔뚝과 허벅지는 어지간한 사람의 몸통만큼이나 굵어 보였다.

특히 쫙 벌어진 가슴은 바늘을 찔러도 들어가지 않을 듯했는데, 마치 붉은 기암괴석을 가슴에 달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단단해 보였다.

-크르르륵.

신형을 바꾼 늑대의 입에서 타액이 흘러내렸고, 그들이 숨을 내쉬자 검은 연기가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크륵… 오랜만이군, 비오트 숲에서 달빛을 구경하는 건.

-케르르륵, 저 멍청한 인간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가?”

-사례는 우선 저놈과 멍청한 난쟁이들의 살점을 뜯어먹은 후에 하는 게 어때?

십여 명의 늑대인간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눈앞의 먹잇감들을 번갈아 바라봤다.

수혁은 눈앞에 일어나는 광경을 보며 넋이 나간 사람처럼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동물들이 말을 하는 것은 구천에서 만난 똥개 이후로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혁은 눈앞의 늑대들이 영화 속 장면처럼 늑대인간으로 변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만 것이다.

-저 인간, 정신이 나간 것 같은데… 케륵.

-아마 지금쯤 우리 모습을 보면서 오줌을 저리고 있겠지.

-인육을 먹어보는 게 얼마 만인가?

늑대인간들은 자기들끼리 말을 주고받으며 수혁을 포위했다.

“이런 똥개새끼들이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수혁은 알아들을 수 없는 늑대인간들의 말을 들으며 두 손에 힘을 불어넣었다.

두두둑.

주먹의 뼈마디가 정렬되는 소리가 비오트 숲에 가득 울려 퍼졌다.

수혁은 늑대들을 향해 손을 뻗으며 손목을 까닥거렸다.

-케르륵.

수혁의 손동작이 늑대인간들의 광기를 불러일으켰다.

-크어어엉!

십여 마리의 늑대인간들의 몸놀림은 인간의 것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그것은 소용돌이였다.

숲 안의 모든 것들을 휩쓸어버릴 듯한 강렬한 소용돌이의 틈바구니 속에서 수혁의 동공이 팽창했다.

그는 자신을 에워싸고 달려오는 폭풍의 한가운데서도 일말의 당황함도 없이 웃고 있었다.

“후후… 재밌군, 재밌어. 내 앞길을 막는 것들… 미영이를 구출해 지긋지긋한 대륙을 떠나려는 나를 막는 것들은 다 죽여 버리겠다! 그것이 신이라 해도!”

수혁의 두 눈에서 불꽃이 일렁였다.

-카오오오!

그때였다. 커다란 침엽수림의 몸체만큼이나 육중한 붉은 늑대인간의 주먹이 수혁의 몸통을 찢어발길 기세로 날아들었다.

그 순간 팔꿈치가 접힌 상태로 뒤로 젖혀지던 수혁의 주먹은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늑대인간의 손을 향해 직선으로 뻗어 나갔다.

수라분광권.

뇌천마공의 권법 중 직권 제일식인 수라분광권이 시전되었다.

한 줄기의 강렬한 빛은 달빛이 스미는 곳을 제외하면 어둠뿐인 숲 안에 뻗어 나갔다.

그러자 수혁을 향해 주먹을 뻗었던 늑대인간의 얼굴은 순식간에 수천 개의 공포의 주름이 생기며 출렁거렸다.

터져 나오는 늑대인간의 고통에 찬 포효.

-크아아악!

늑대인간은 뼈마디가 분질러지고 근육과 심줄이 모두 찢겨버린 자신의 주먹을 부여잡고 뒹굴었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고통.

자신들의 체구와 비교하면 어린아이 체구나 다름없는 왜소한 인간이 내뻗은 주먹에 박살나버린 손. 선공을 펼쳤던 늑대인간은 피범벅이 된 자신의 손을 보며 울부짖었다.

까닥까닥.

수혁은 기세 좋던 선봉이 무너져 일순 당황하고 있는 늑대인간들을 향해 손을 까닥거렸다.

‘노, 놀랍다. 인간 중에 맨손으로 레드 울프맨의 주먹을 부러뜨리는 자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 저 사람… 도대체…….’

한편 늑대의 몸에 받쳐 나가떨어져 있던 좀 더 어려 보이는 난쟁이는 몸속에 도사리고 있는 통증을 제어하며 수혁과 그를 둘러싼 늑대인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혁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경외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제법이군, 저 사람. 어쩌면 저 늑대들을 모두 물리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 오우거도 상대할 수 있을지 몰라.’

나무 뒤편에서 신형을 감추고 있던 외팔이 청년도 수혁과 늑대인간들의 싸움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크워워… 형제를 짓밟다니 용서할 수 없다.

늑대인간들의 눈이 가로로 좁아졌다. 그리고 그들의 푸른 눈동자는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불쑥.

동시에 붉은 늑대인간들의 손에서 30cm는 족히 되어 보이는 손톱이 빠져나왔다.

-네놈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주마! 크르릉!

“뭐라고 짖어대는 거냐, 변견들아! 잡소리 말고 덤벼! 덤비지 않으면 내가 먼저 공격하마!”

타앗!

왼발로 대지를 한 번 밟았을 뿐인데 수혁의 몸은 어느새 늑대인간의 가슴 앞까지 다가가 있었다.

천마지보의 전방속출이면 못 따라잡을 적이 없다고 구일행이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가슴 앞까지 다가간 수혁은 팔꿈치로 강판을 두른 것 같은 늑대인간의 가슴을 찍어버렸다.

맹웅이십사로권.

야수와 싸우는 불곰이 적을 제압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면 한 번의 공격으로 스물네 번의 앞발길질을 한다고 한다. 그 동작에서 연유되었다는 뇌천마공 권법 중 붕권식인 맹웅이십사로권.

쩌어어엉!

맹수들의 뼈 중 가장 단단하다는 가슴뼈.

체내의 오장육부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신의 안배로 가장 탄탄하게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게 가슴뼈였다.

비오트 숲의 각성한 붉은 늑대들은 내구력이 미노타우르스나 리자드맨의 비늘과도 비교될 수 있는 만큼 강한 가슴뼈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가슴뼈는 지금 금이 가다 못해 유리조각 파편처럼 깨졌고 깨지는 소리는 사방에 울려 퍼졌다.

-쿨럭!

그와 동시에 가슴뼈가 분질러진 늑대인간의 입에서 한 움큼 핏덩이가 게워져 나왔다.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수혁은 팔꿈치 가격에 이어 스물네 번의 주먹을 휘두르며 주변의 늑대인간들을 휘젓고 다녔다.

‘마, 맙소사. 좀 전의 말은 수정이다. 저 정도 실력이라면 오우거뿐만 아니라 웨스트 비오트 숲의 몬스터 왕 고르곤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할아버지의 이계 여행기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어느 대륙은 소드 마스터들이 발길에 채일 정도로 많다고 했어. 또 그들은 주먹으로 오러 블레이드를 막아낸다고 했어. 설마 저자가 바로 그…….’

외팔이 청년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부우우웅.

한편 동료들이 쓰러지는 것을 목격하던 붉은 늑대인간들은 어금니가 부서져라 이를 악물며 손톱을 세운 팔을 휘두르며 수혁을 향해 달려갔다.

‘이크! 스치기만 해도 뼈를 도려내겠구나. 실로 무시무시한 손톱이다.’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어린 난쟁이는 쓰러진 삼촌의 상처를 지혈하며 헛바람을 삼켰다.

숲의 공기를 가를 듯한 날카로운 공격이었지만 수혁은 그것을 한 발 차이로 피해냈다.

좌우이사.

구일행은 항상 보법과 신법을 전수하며 작은 보폭을 강조했다.

“걸음과 신형이 크면 상대의 공격권에서 벗어나긴 쉽지만 그만큼 역습을 당하기 쉽고 상대를 제압하기 어려워진다. 단 한 걸음이면 적의 공격을 피해낼 수 있다. 또한 피했다는 것은 곧 역습을 의미한다. 이때 작은 움직임만이 큰 공격을 가능하게 한다. 크게 움직일 필요 없다. 왼쪽으로 두 번, 오른쪽으로 네 번이면 고금의 모든 공격을 피해낼 수 있느니라.”

수혁은 경전처럼 구일행의 가르침을 되새겼다.

늑대인간들의 날카로운 손톱은 어김없이 한 걸음, 두 걸음 차이로 수혁의 신형을 놓쳤고 그럴 때마다 숲의 침엽수들은 뿌리 잘린 나무처럼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정말이지 늑대인간들의 저 손톱은 명불허전이로구나. 마나에 의한 강기 없이 순수한 외공만으로 저런 파괴력을 낼 수 있는 병장기는 이 대륙에는 없을 거야.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저 사람이다. 몸 안에 축적된 기운은 분명 마나라고 생각했는데 마나가 아니다. 알 수 없는 기운이야. 도대체 저자의 정체는 뭐지? 왜 저런 자가 미트라카 제국이 아닌 이런 버림받은 숲에 있는 걸까?’

외팔이 사내는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며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크워워… 쥐새끼 같은 놈.

늑대인간들은 공격이 자신들의 뜻대로 되지 않자 늑대 특유의 조급성을 드러냈다.

처음부터 수혁의 상대가 되지 않는 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평상심을 잃어버린 상태라면 그 싸움은 절반은 끝난 것과 다름없었다.

어김없이 수혁은 늑대인간들의 날카로운 손톱을 간발의 차이로 피해냈다.

날카롭다는 건 단지 보는 사람의 생각일 뿐이다. 지금 수혁은 호흡 한 번 흐트러뜨리지 않고 늑대인간들의 공격을 비켜내는 중이었다. 여전히 그의 주먹은 무쇠처럼 단단하게 뭉쳐져 있는 상태다.

수혁은 남은 늑대인간들을 향해 용맹스런 불곰의 앞발길질 같은 공격을 가했다.

콰아앙!

수혁의 주먹에 부딪친 늑대인간들은 늑골과 경추, 요추가 부러져 나가고 근육과 인대가 파열되었으며 뼈마디가 분질러지고 살점이 뜯겨 나갔다.

-크아악!

순식간에 다섯 마리의 늑대인간들이 숨 한번 제대로 못 쉬고 즉사해버렸다.

가슴을 찍는다 싶던 수혁의 주먹이 여세를 몰아 상단으로 치솟아 오르며 턱뼈를 으스러뜨리고 동시에 옆에 있던 늑대의 목을 휘감아 뛰어오르며 납천와슬을 이용해 늑대인간들의 머리통을 박살내버린 것이다.

그 모든 동작들은 마치 하나의 동작처럼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연결되었는데, 공격하는 데 걸린 시간은 3초도 되지 않았다.

-크륵, 크륵… 인간 중에 이렇게 강한 인간이 있었나?

마지막 남은 늑대인간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땅 위에 지탱하고 있던 두 다리에 힘을 주었다.

-크합!

힘찬 기합소리와 함께 늑대인간은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가서 동료들을 더 불러와야 해. 그렇지 않아도 난쟁이들이 두랑(頭狼)을 죽이고 가죽을 훔쳐 달아나던 판에 저런 괴물 같은 놈까지 나타나다니… 우리 인랑족들은 결코 난쟁이 놈과 네놈을 용서치 않을 것이다.’

늑대인간은 2m가 훨씬 넘는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탄력을 이용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그러더니 침엽수림의 가지들을 발판 삼아 달아났다.

순간 늑대인간이 나뭇가지를 밟으며 달빛이 들지 않는 곳으로 내달리자 두 발로 뛰던 늑대인간은 다시 네 발의 붉은 늑대로 변했다.

폴짝폴짝.

늑대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간 늑대는 인간의 모습일 때보다 훨씬 빠르게 수풀을 헤쳐 나갔다.

“놈을 도망치게 해선 안 됩니다. 살려두면 종족들을 이끌고 개떼처럼 달려올 거예요.”

그러자 쓰러진 일족을 살피고 있던 난쟁이가 수혁을 향해 울부짖듯 외쳤다.

“어차피 놈은 내 손 안을 빠져나갈 수 없어.”

그렇게 말한 수혁은 무릎을 굽히고 하체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달아나는 늑대의 뒷모습을 보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수혁은 금방이라도 놈의 뒤를 따라잡을 듯한 기세였다.

‘놈은 능공허도로 쉽게 따라잡을 수 있는 거리에 있어. 그러니 뛰어봤자 벼룩이다.’

수혁의 두 눈에 광채가 서렸다.

그때 맞은편 수풀 뒤에서 한 덩이의 빛무리가 일렁거렸다.

초록색과 진한 청색이 결합된 청아한 빛무리는 춤추듯 꿈틀거리더니 달아나는 늑대를 향해 포탄처럼 뿜어져 나갔다.

“대지의 기운으로 명하노니 놈의 몸을 포박하라. 리스트레인트!”

그리고 달아나는 늑대를 향해 나뭇가지 같아 보이는 지팡이를 겨누는 팔이 하나 없는 청년의 모습이 수혁의 눈에 들어왔다.

“저놈은 또 뭐냐?”

수혁은 장탄식을 내뱉으며 딸꾹질을 하듯 헛바람을 삼켰다.

한편 지팡이에서 빠져나간 빛무리는 늑대의 몸을 감싸더니 이내 칡넝쿨 같은 것들이 생기며 놈을 감싸버렸다.

균형을 잃은 늑대의 신형이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캐앵, 캥캥.

중력 가속도로 처박힌 늑대는 내장이 터지고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으로 깨갱거렸다.

‘맙소사… 속박마법. 저자는 또 누구란 말인가? 엘프도 아닌 인간이 마법을 쓰다니… 대륙에 흑마법사들을 제외한 다른 마법사들이 아직도 존재한단 말인가?’

난쟁이는 점점 눈앞의 현실을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끼잉, 끼잉.

늑대는 살려달라고 애원하듯 눈물 머금은 눈으로 외팔이 청년을 바라봤다.

“나 역시 너에게 유감은 없다. 하지만 너를 살려 보낸다면 우리가 위험해질 수 있기에 어쩔 수가 없구나.”

외팔이 청년은 들고 있는 나뭇가지를 힘껏 들어 올렸다. 그러자 늑대를 칭칭 감고 있던 넝쿨에 바짝 힘이 들어가더니 늑대의 몸을 순식간에 죄어버렸다.

뿌지직.

뽀가각.

늑대의 가죽이 죄어들어가는 넝쿨에 의해 찢어지더니 이내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고통으로 신음하던 늑대의 눈은 생기가 점점 사라졌다.

‘고급 속박마법이다. 단순하게 몸을 옭아매는 데 그치지 않고 신형을 파괴시켜버렸어. 저 정도 실력이라면 상당한 수준의 마법사임에 틀림없다.’

난쟁이는 가쁜 숨을 몰아쉬는 나이 든 난쟁이의 상처를 지혈하며 수혁과 외팔이 청년을 번갈아 바라봤다.

“넌 누구냐! 왜 날 도와준 거지?”

수혁은 날카로운 눈으로 외팔이 청년을 쳐다보며 물었다.

“당신을 돕다니? 난 그저 나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을 뿐이야.”

‘이런 X만 한 새끼가! 나이도 어려 보이는 게 어디서 반말 짓거리야.’

수혁은 화딱지가 났지만 꾹 참았다. 청년은 말을 이었다.

“멍청한 사람, 저들은 비오트 숲의 서열 5위 안에 드는 레드 울프들이야. 만약 저들이 일족을 데리고 온다면 당신의 그 무시무시한 체술도 어쩔 수 없을걸.”

“하하핫! 저런 똥개들은 한 트럭 몰려와도 무섭지 않아.”

“트럭? 그게 뭐지?”

“아, 그런 것이 있다. 근데 아까 내 물음에는 왜 대답을 하지 않지?”

“당신의 질문에 대답해야 할 의무가 없는 것 같은데.”

‘만만찮은 놈이다. 어린놈이 정말 싸가지가 없구나.’

“그래, 좋다. 그럼 적의는 없는 것 같은데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서로 통성명이나 하는 것이 어떨까?”

“먼저 말해라. 네 정체가 뭐지? 생긴 건 인간인데 왜 이런 버려진 오지에 있는 거지? 외모도 동방인처럼 생겼는데…….”

“동방인? 훗! 그럼 너는 서방인이냐?”

“……?”

“내 이름은 박수혁, 한국에서 왔다.”

“뭐? 바수크?”

순간 수혁의 이맛살이 오므라든다.

“박수혁! 그것도 발음 못하냐?”

“팍스헉?”

외팔이 청년은 수혁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다.

“이런 씨발놈이… 정말 뒈지고 싶어?”

“이름이 뭐 같은 걸 보니 동방인인가? 나는 프란츠. 평민이기에 성은 없다. 그냥 프란츠라고 불러라.”

열여섯에서 열일곱 정도 돼 보이는 청년의 이름은 프란츠였다.

이자가 바로 대륙에 마지막 남은 마법사이자 시간과 공간을 떠돌아다니며 자신의 경험담을 저술한 파이오니아 대륙의 역저 ‘타임 앤 스페이스’의 저자 오퍼도버의 손자였다.

할아버지 오퍼도버는 교권제국인 미트라카와 파이오니아 대륙의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법황청에 끌려가 지하 감옥에 투옥되었다.

그 후 프란츠는 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제국의 총사령관인 헤르라트 마틴을 찾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헬무트 황제의 갑작스런 서거로 인해 프란츠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다.

할아버지가 남겨둔 책을 보며 마법 공부를 하던 프란츠는 결국 마나의 공명을 증진시키기 위해 스쿠타투해를 건너 헬벤타리아 대륙의 북단인 비오트 숲까지 찾아와 마법 수련을 하던 중이었다.

훗날 대륙과 우주의 운명을 결정할 건곤일척의 승부에서 이 외팔이 마법사는 수혁의 편에 서서 마계 연합군과 맞서 싸우게 된다.

어찌 됐든 오퍼도버의 손자이자 할아버지와 함께 대륙에 마지막 남은, 흑마법사나 네크로맨서들을 제외한 마법사 프란츠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뭐? 불러라? 이런 존만 한 새끼가 보자보자 하니까 이제는 아예 하대하네. 너 정말 뒈지고 싶냐?”

“훗, 네 체술이 보통 인간보다 뛰어난 것은 사실이다마는 정녕 한번 붙길 바라면 나도 피하진 않는다.”

프란츠와 수혁의 옥신각신 말싸움이 계속되자 지켜보고 있던 난쟁이가 그들 중간으로 걸어 나왔다.

“두 분 모두 저를 살려주신 은인, 다툼은 그만두시는 게…….”

난쟁이는 수혁의 허리에도 안 차는 작은 키 그리고 외모와 어울리는 맑고 깊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이게 다 땅딸한 네놈들 때문에 생긴 일이다. 저 팍스헉인가 바수큰가 하는 놈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도 내가 너희들을 구해주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프란츠의 깔보는 듯한 말투에 주눅이 든 드워프가 그를 바라봤다.

“저와 삼촌을 지켜보고 있었군요. 언제부터 지켜본 거죠?”

“후후, 너와 저 나이 든 드워프가 붉은 늑대의 두랑(頭狼)에게 독침을 쏘고 그의 가죽을 벗길 때부터.”

“그, 그랬군요.”

“붉은 늑대의 가죽은 왜 벗긴 거지? 갑주를 만들기 위해서였나?”

끄덕끄덕.

난쟁이는 고개를 상하로 움직였다.

“역시 예상대로군.”

“비오트 숲에 있는 붉은 늑대의 가죽은 내구성이 미노타우르스나 리자드맨의 비늘과 비교될 정도로 그 내구성이 우수하죠. 하지만 미노타우르스나 리자드맨의 가죽은 너무 무겁기 때문에 갑주로서의 상품성이 떨어집니다. 이 붉은 늑대, 그중에서도 늑대들의 우두머리인 두랑의 가죽은 갑옷의 재료로, 드래곤의 비늘과 맞먹을 정도로 우수하죠.”

“그러니까 늑대들이 당신들을 쫓아온 이유가 당신들이 늑대의 가죽을 벗겼기 때문이고 이 새파랗게 어린놈이 반말 찍찍하는 싸가지 없는 녀석은 그걸 보고 쫓아오던 중이었다, 그런 건가?”

“그렇습니다.”

수혁의 질문에 난쟁이가 대답했다.

“제 이름은 감론, 드워프의 나라 테라랜드 출신이고요. 아시다시피 다른 드워프처럼 대장장이 일을 천직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평범한 드워프입니다. 팍스크 씨와 프란츠 씨께 생명을 구해준 은혜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팍스크가 아니라 박수혁이라구, 박. 수. 혁.”

“예예… 팍스헉.”

“젠장.”

수혁은 발동을 구르며 성질을 냈다.

“저기 프란츠 님, 가능하시면 저희 삼촌을 좀 구해주시죠.”

“그렇군. 그 생각을 못하고 있었어.”

난쟁이 감론의 말에 수혁과 프란츠는 나이 든 드워프가 쓰러져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이런… 상태가 심각하군.”

늑대에게 목덜미를 비롯해 몸 이곳저곳을 물려 살점이 뜯겨 나간 수염 덥수룩한 난쟁이는 숨을 할딱거리고 있었다.

늑대에게 물린 목덜미는 이빨자국이 깊게 박혀 있었으나 다행히도 동맥이 상한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팔다리, 몸통은 살점이 뜯겨 빨리 지혈하지 않으면 출혈과다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프란츠 님, 어떻게 안 될까요?”

“이런… 난쟁이들에게 내 할아버지의 보물을 쓰게 될 줄은 몰랐네.”

프란츠.

할아버지 오퍼도버가 마성을 드러내기 전의 일렉트라를 제거하기 위해 히에나 마을에서 공동묘지로 떠난 후 돌아오지 않아 반 고아가 된 소년.

그는 지금까지도 제국의 총사령관을 맡고 있는 헤르라트 마틴을 찾아 황궁으로 갔지만 궁중의 썩은 모습과 새로운 황제의 야망을 보고선 실망하여 황궁을 나왔고 지금까지 홀로 지냈다.

그래서인지 그의 말투에는 독설이 섞여 있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비뚤어져 있었다.

드워프를 향해 말끝마다 난쟁이라고 부르는 모습에서도 충분히 그런 냉소적인 시선을 읽을 수 있었다.

말을 마저 뱉은 프란츠는 봇짐을 뒤져 조그마한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가죽으로 만들어진 그 주머니에는 인간의 언어가 아닌 엘프들의 언어로 뭐라고 쓰여 있었다.

프란츠는 주머니의 주둥이를 벌려 은색으로 빛나는 가루를 꺼내더니 쓰러져 있는 드워프의 상처에 그것을 부어주었다.

‘이럴 수가… 저렇게 젊은 인간이 엘프들의 엘리멘탈 더스트를 지니고 있을 줄이야… 도대체 저자는…….’

감론이라는 난쟁이는 경외 섞인 눈으로 프란츠를 바라봤다.

프란츠의 손을 떠난 가루는 상처 입은 드워프의 몸에 진드기처럼 들러붙었다.

그러자 상처에 닿기가 무섭게 그 은색 가루는 광채를 뿜어냈다.

그것은 마치 스스로 빛을 발하는 야광생명체처럼 온화한 빛을 뿌려대더니 꿈틀거리며 상처 안으로 스며들었다.

“쿨럭쿨럭.”

그리고 채 십 분도 지나지 않아 숨을 할딱거리던 나이 든 난쟁이가 기침을 하며 눈을 부릅떴다.

“감론… 어, 어떻게 된 거지?”

“감노 삼촌! 살아났군요. 다행이에요, 엉엉엉!”

어린 드워프는 쓰러진 삼촌의 상체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터뜨렸다.

“저, 저 사람들은 누구냐?”

“우리 생명을 구해주신 분들이에요, 흑흑.”

“고, 고맙소. 감, 감론… 춥구나.”

‘오한이 드는 게로구나.’

수혁은 감노라 불리는 나이 든 드워프를 안쓰럽게 쳐다봤다.

“삼촌, 제가 따뜻하게 해드릴게요.”

감론은 삼촌에게서 팔을 떼더니 재빠른 동작으로 벗어둔 등짐을 뒤적거렸다.

그 등짐 안에는 양피지 같은 것으로 둘둘 말아둔 뭉치가 있었는데 감론은 신속하게 두루마리를 펼쳤다.

두루마리가 다 펼쳐지자 그 안에서는 만개한 흑장미의 꽃잎을 연상시킬 정도로 시뻘건, 핏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붉은 늑대 가죽이 나왔다.

“허… 말로만 듣던 붉은 늑대의 두랑 가죽이구나. 정말이지 탐스럽다.”

프란츠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남발했다.

수혁 역시 경외의 시선으로 늑대의 가죽을 바라봤다.

감론은 재빨리 그 가죽을 펼쳐들고 달려가 삼촌의 몸을 감싸 안았다.

“후후, 난쟁이에게는 너무 큰 가죽인걸.”

프란츠는 가죽이 감노를 덮고도 남자 비웃듯 말했다.

“정말이지, 너 싸가지 밥 말아먹은 놈이구나. 어린 자식이 말하는 싸가지가 그게 뭐냐?”

“내가 너한테 그렇게 말한 것도 아닌데 무슨 참견이야.”

“이런 개자식! 말하는 것 좀 보게.”

수혁은 실력으로 프란츠의 기를 꺾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두 분 제발 그만 좀 싸우세요. 우리 삼촌은 지금 환자라구요.”

감론.

달루시아 항성의 소수 종족인 드워프.

대장장이 신이자 불의 신인 발카누스의 축복을 받아 태어난 종족.

염마대전에서는 천계의 대열에 합류했고 종족전쟁에서는 인간연합군에 섰던 그들은 평생 병장기 등을 만들며 살아가는 종족이다.

성품이 성실해서 달루시아의 역사에서 수많은 지하 수로와 통로들을 건설해왔는데 천지창조 시절, 땅에 숨결을 불어넣은 것도 그들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이만 각설하고 어쨌든 수혁과 난쟁이족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 *

며칠 후 서쪽 비오트 숲에 있는 이름 모를 동굴에서 사람들의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대략 서너 명으로 추측되는 그 목소리들의 주인공은 수혁과 프란츠 그리고 감노, 감론 드워프 일행이었다.

“감론, 베히모스의 실을 다오.”

“예, 삼촌.”

감노.

테라랜드의 손꼽히는 장인 중 하나인 감노는 프란츠가 준 엘프의 더스트 덕분에 상처가 거의 아물고 정상적인 활동이 가능해질 정도로 몸 상태가 좋아졌다.

그는 감론의 보조를 받으며 동굴 안에서 뭔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베히모스라면 베리사드에 서식한다는 대형 포유류를 말하는 것 아닌가? 도대체 저 난쟁이들의 장인정신이란 것은 어떤 거지? 설마 갑주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항성의 최북단인 베리사드까지 가서 베히모스의 털을 구해온다는 말인가?’

그랬다.

드워프 일족이 만들어내는 병장기와 각종 공예품등은 품질과 미적인 면에서 단연 최고로 손꼽혔다.

발카누스의 축복을 받은 종족이라는 모태적 이유 때문에 성품이 깐깐하고 꼼꼼한 그들은 주머니 하나를 만들더라도 꼼꼼하게 박음질을 했다. 그러니 갑주를 만드는 일이라면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 섬세함과 장인정신은 각종 영약들과 포션을 만들어내는 엘프들의 정신과도 비교가 될 정도였다.

지금 붉은 늑대의 두랑 가죽을 이용해 갑옷을 만들고 있는 감노와 감론은 전체 길이가 15m나 되는 거대한 포유류인 베히모스의 털로 실을 짜 늑대의 가죽에 박음질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드워프들이 베히모스의 실을 애용하는 이유는 다른 털로 만든 실에 비해서 내구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특이하게도 베히모스의 실은 박음질이 끝나면 그 흔적이 남지 않아 마치 전혀 박음질이 되지 않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 실로 만든 갑옷을 착용했을 경우 재질의 본성을 그대로 살릴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수혁과 프란츠는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 채로 박음질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감노를 바라보았다.

“으이구, 속 터져. 무슨 갑옷 하나 만드는 데 저렇게 시간이 오래 걸려? 지금 며칠째 이러고 있는 건 줄 알긴 아는 거야?”

수혁은 감노와 감론의 작업을 바라보며 답답하다는 듯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좋은 갑옷을 만들기 위해 그러는 거 아냐. 무슨 사람이 그렇게 참을성이 없어?”

“너 끝까지 반말할래? 이 자식이 오냐오냐하니까…….”

“이거 왜 이래? 어색하게 존댓말 하느니 반말하는 게 더 빨리 친해지고 그러는 거야. 너무 그러지 마. 나이 많이 먹은 것이 큰 공이라도 되는 줄 아나봐?”

“이봐… 젊은이들, 좀 조용히 해줄 수 없겠나? 작업하는 데 방해되는군.”

“그래요, 우리 감노 삼촌은 작업하실 때 주위가 산만하면 작업을 못하신다구요. 그렇게 떠들려면 나가주세요. 그리고 팍스헉 씨, 이 붉은 늑대의 갑옷 세트가 완성되면 생명을 구해주신 당신께 선물한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떻게 해요? 그럼 삼촌이 당신께 줄 선물을 대충대충 만들어도 된다는 말이에요?”

움찔.

수혁은 감론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속이 터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게 누가 갑옷 만들어 달랬어? 나는 갑옷 같은 거 없이도 어떤 공격이든지 막아낼 수 있어. 내 실력 봤잖아. 그 똥개들 두들겨 패는 거. 내 실력 몰라서 그래?”

“훗, 조용히 좀 합시다. 나이도 많이 먹은 사람이 뭐 그렇게 말이 많아.”

찌릿.

프란츠의 말에 수혁은 그를 노려보며 프란츠의 멱살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너 존만 한 새끼… 정말 계속 달랑거릴래?”

“이거 이러다 사람 치겠네.”

부르르르.

수혁은 마음속 화기를 누르려 애썼다.

감노와 감론 일행이 자신을 위해 붉은 늑대의 갑옷 세트를 만들어준다고 했을 때 프란츠는 그 갑옷에 자신의 마법을 불어넣어준다고 말했다.

‘뭐, 뭐였더라. 웨어링 뭐라 했는데 잘 생각이 안 나는군.’

오토 웨어링 마법은 자연의 기운과 마나를 공명시킬 수 있는 재질로 된 갑옷들에 거는 착용 마법이다.

그 마법이 시전된 갑옷은 주인의 의지에 따라 자동으로 탈착이 가능해진다.

특히 드워프들이 만들어내는 갑옷은 미스릴이나 풀메탈, 와이번의 비늘, 각종 몬스터의 가죽 등 그 재료에 구애받지 않고 자동 착용마법이 걸려 지위가 높은 귀족들이나 마스터급 이상의 기사들이 애용했으며, 우드스탁 엘프들의 지도자들도 대부분 그런 갑주를 착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너, 이 애린 자식! 웨어링인가 뭔가 하는 마법만 캐스팅되면 가만 안 두겠어. 위아래도 없는 자식.’

수혁은 잡고 있던 멱살을 풀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거 보아하니 오토 웨어링만 끝나면 나를 두들겨 팰 분위긴데? 갑옷에 관심 없다더니 사실은 그렇지도 않은가봐. 자꾸 까칠하게 나오면 마법이고 뭐고, 문명의 문으로 가는 길이고 뭐고 없는 일로 하는 수가 있는데?”

뜨끔.

수혁은 마치 자신의 속이 유리지갑처럼 훤히 보이는 것 같아 뜨끔했다.

“아, 아니… 그럴 리가 있겠어. 갑옷이야 갑옷이지만 문명의 문인가 뭔가 하는 곳으로 가는 길은 꼭 알려줘야 해. 알았지?”

“뭐, 하는 거 봐서 기분 좋으면 몇 가지 더 인챈트 해줄 수도 있고.”

부르르르.

수혁은 두 손이 심하게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남자란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 한국 속담에 참을 인(忍)자 세 개면 살인도 면한다고 했다.

‘참자, 참어.’

“감론, 이쪽 끝을 잘 잡고 있어라.”

“예, 삼촌.”

감론은 며칠째 아무런 불평도 없이 감노의 지시대로 재단하는 일을 돕고 있었다.

수혁은 그들의 작업을 보면서 감탄사를 연방 터뜨렸다. 마치 늑대가 살아 있는 것처럼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갑옷 모양을 만드는 정교한 솜씨 때문이었다.

붉은 늑대의 갑옷은 수혁이 파이온 게임을 할 당시에 애용하던 갑옷 세트였기에 남다른 애정이 있는 것이다.

가죽에 박혀 있는 시뻘건 털들의 원형을 살리면서도 미스릴 갑옷처럼 비늘각을 살리는 능수능란한 손놀림이 계속되자 갑옷은 점점 모양을 갖춰갔다.

감노 일행은 붉은 늑대의 두랑 가죽으로 갑주의 본체를 만들고, 수혁의 손에 맞아 죽은 나머지 붉은 늑대들의 가죽을 벗겨 각반과 견대를 만들 예정이었다.

이제 붉은 늑대의 갑옷 세트 제작이 9부 능선을 넘는 단계에 이르렀다.

“자, 이제 마지막 박음질만 하면 갑옷의 본체는 제작이 끝납니다.”

며칠 동안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수혁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일행이 마지막 박음질을 뚫어져라 지켜보았다.

“훗, 제법이군. 완성하고 나니 그럴듯한데.”

프란츠는 여전히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프란츠 님, 드워프의 갑옷을 보며 그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처음이군요. 그럴듯하다니요. 우리 감노 삼촌의 기술은 대륙을 통틀어 최고 수준이라고요. 미트라카뿐만 아니라 오이로파, 스타안, 라마바담의 수많은 기사들도 우리 삼촌에게 갑옷을 의뢰한단 말이에요.”

“그래, 프란츠. 너는 말하는 것이 항상 삐딱선이야.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는 저들의 장인정신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야.”

“알았어, 알았어. 누가 뭐래?”

수혁의 말에 프란츠는 또 퉁을 놓았다.

“자, 이제 각반과 견대만 만들면 되겠군요.”

감노는 이마와 콧잔등에 맺힌 땀을 닦았다. 그의 몸은 땀으로 절어 있었다.

“후웁! 프란츠 씨, 오늘부터 이틀간 응달진 곳에서 이 갑옷 본체를 말릴 겁니다. 건조 작업이 끝나면 바로 착용 마법을 걸어주시겠어요?”

“그러지, 뭐.”

프란츠는 팔짱을 낀 채 대수롭지 않다는 듯 감노의 요구에 대꾸했다.

“자… 그럼 나머지 갑주 세트를 계속해서 만들어볼까.”

“삼촌, 조금 쉬었다 해야 하지 않아요?”

“아니다. 쇠뿔도 단김이 빼랬다고, 지금 근육이 작업하기에 최적화되어 있는 것 같으니 이 느낌을 계속 살려 마저 세트를 완성해야겠어. 그러니 감론, 너도 농땡이 부릴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치잇.”

감노의 엄포에 감론은 혀를 삐죽 내밀었다.

“기다리기 지루하시면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오세요. 나는 감론과 함께 계속해서 작업을 해나갈 테니.”

“그러죠, 뭐.”

수혁은 프란츠를 한번 바라본 후 동굴 밖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런 수혁의 뒤를 프란츠가 따라 나섰다.

동굴 밖에는 햇빛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들은 며칠 전 길고 긴 밀림을 뚫고 나와서야 이곳에 당도할 수 있었는데 그나마 이곳은 햇빛이 들어 견딜 만한 곳이었다.

“여기서 문명의 문까지 가는 데 보름 넘게 걸린다고?”

“그렇다니까. 내가 몇 번 말했어? 당신의 그 신공인가 보법인가 하는 걸로 하루도 쉬지 않고 달려가도 보름 정도 걸린다고. 세 번도 넘게 말한 것 같은데…….”

“보름이라… 도대체 이 밀림의 끝은 어디야!”

“그래도 당신이나 되니까 보름이지, 일반인은 두 달도 넘게 걸릴걸? 물론 길을 모르면 숲 속에서 미아가 되고 말겠지만… 아니면 몬스터의 한 끼 식사가 되겠지.”

그러자 수혁이 여전히 차가운 프란츠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 모습을 본 프란츠가 수혁에게 물었다.

“왜?”

“그러는 너는 왜 이런 곳에 있는 건데?”

“그 역시 이미 대답한 것 같은데. 나는 지금 마법 수련 중이라고. 우리 할아버지를 잡아간 그놈들에게 복수할 거야.”

“흥! 그 법황청인가 뭔가 하는 놈들 말이지?”

수혁은 얼마 전에 프란츠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법황청은 몰락했어. 제국의 새로운 황제 게오르그는 교권을 붕괴시키고 법황청 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시작했어. 머지않아 그는 모든 권력을 손아귀에 넣으려고 할 거야. 그리고 대륙을 전쟁으로 몰아가겠지. 하지만 할아버지는 이미 그 모든 일들을 예견하고 계셨어. 그리고 일렉트라 그 계집을 제거하려고 하셨지. 만약 그들이 끝까지 할아버지를 감금시킨다면 달루시아는 어둠의 세력들에게 점령당할 거야. 나는 느낄 수 있어, 달루시아에 커다란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져가고 있다는 것을. 어둠의 세력이 외연을 확장시키고 있어. 비오트 숲의 오크들만 봐도 알 수 있지.”

“네 말대로 오크가 비오트 숲의 실질적인 지배자라면 왜 지금까지 이 밀림에 오크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거지?”

수혁은 프란츠에게 물었다.

“당신이 오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긴 알아?”

“이 자식은 걸핏하면 나를 무시해. 초록색 피부에 걸핏하면 ‘취익’ 하는 소리를 내는 몬스터 아냐. 생김새는 꼭 킹콩이나 고릴라처럼 생겼고.”

“킹콩? 그게 뭐지? 암튼 초록색 피부라는 건 맞아. 현재 오크들은 웨스트 비오트 숲보다는 이스트 비오트 숲에 군락을 이루고 살고 있어. 물론 서쪽 비오트 숲에도 군락들이 있긴 하지. 아직까지 오크 종족들은 부족을 통일하지 못하고 있어. 하지만 머지않아 위리놈이 부활한다면 그들은 그의 밑으로 들어갈 거야. 어차피 오크들의 신인 니바스도 일개 악마교단 악마에 불과하니까.”

수혁은 악마교단에 관한 이야기를 프란츠에게 들었다.

악마교단.

베에모트, 샤모스, 니바스, 벨리알, 바알 등 각종 악신과 마물들로 구성된 악의 집단.

그들의 우두머리가 원래는 벨제붑이었으나 위리놈이 마성을 얻어 벨제붑을 위폐시키고 자신의 악마교단의 교주에 등극했다고, 하지만 염마대전에서 천계의 세력에 날개가 꺾여 현재는 지옥에 수장되어 있다고 했다.

그리고 프란츠에게 할아버지인 오퍼도버는 위리놈이 부활할 것이라 경고했다고 했다. 그가 부활한다면 달루시아를 비롯한 중간계는 물론이고 천계까지도 위험해질 거라는 말과 함께.

중간계니 천계니 마계니 하는 것들이 잘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분명한 것은 위리놈이라는 녀석이 부활한다는 것이 썩 달가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수혁은 이 대륙에서 미영을 찾아 떠나야 할 처지. 그런 무시무시한 놈이 부활한다면 자신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니 달가울 리 없었다.

수혁이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때 프란츠가 입을 열었다.

“나 역시 인간이지만 그들을 이해할 수 없어. 모두의 지혜를 모아 어둠의 부활을 막아야 하거늘 그들은 오히려 어둠의 세계를 부추기고 있어. 모든 게 권력 때문이야. 더러운 인간들! 그래서 이 대륙은 당신 같은 강한 자들을 원하고 있어.”

프란츠는 마지막 말을 끝으로 수혁의 얼굴을 바라봤다.

“무슨 소리야. 일전에도 말했다시피 나는 여자 친구를 찾으면 이 지긋지긋한 땅을 바로 뜰 거야.”

수혁은 단호했다.

자신은 이곳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이방인. 이곳을 위해 누군가와 적이 될 이유도, 싸울 이유도 없다. 적어도 수혁은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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