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0 시공의 경계가 무너지니
‘노인네? 푸훗!’
수혁의 입에서 실소가 터져 나오더니 헛바람이 대기와 융화된다.
“나 말고 이곳에 두 분을 노인네라 부를 수 있는 자들이 있는 줄 몰랐군. 네놈들이 공간과 시간의 파수꾼인가?”
“네… 네놈들……!”
수혁이 자신들을 업신여기듯 쉽게 말하자 글라우베가 등 뒤에 찬 기다란 낫의 손잡이로 손을 가져갔다. 그 순간 프란시스코의 손이 글라우베의 동작을 제지했다.
시간의 파수꾼. 프란시스코. 로브 너머로 무저갱보다 깊은 그의 은청색 눈동자가 드러났다.
“보고 있자니 네놈의 체술 실력이 보통이 아니더구나. 나 역시 제우바 님의 은총과 카이버 님의 은혜를 받아 이곳 구천에서 무위로 치자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 내가 너를 상대해주마.”
스르릉.
시간의 파수꾼 프란시스코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검집을 빠져나오는 검신이 사마귀의 다리만큼이나 민첩했다.
‘검(劍)!’
수혁의 시선이 탁하고 둔탁해 보이는 시커먼 검날에 고정되었다. 언뜻 보기에는 검이라기보다는 메이스나 몽둥이 같아 보이지만 날은 시퍼렇게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그 날이 자신의 살을 엘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수혁은 오른손바닥을 프란시스코를 향해 펼쳐 보인 후 네 손가락을 자신의 방향으로 까닥거렸다.
마치 그 동작이 어른이 응석받이 아이를 달래는 듯 보였다.
“이… 쌍놈의 자식, 내 너를 죽여 너의 피로 샤워를 할 것이다.”
프란시스코의 옆구리에 있던 검이 세차게 뽑히며 수혁의 가슴을 향해 수직으로 뻗어왔다.
슈슉!
수혁은 아무런 동요 없이 오른쪽으로 일곱 번 걸음을 옮겼다.
고금의 모든 검 공격을 회피할 수 있다는 우칠칠이 펼쳐진다.
자신의 검을 미꾸라지처럼 피해내는 수혁을 향해 프란시스코가 이번에는 수평으로 검을 휘두르며 찔러 들어왔다.
수혁의 단전에 쌓였던 기가 폭발적으로 그의 왼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콰아악!
수라분광권.
자신을 향해 일직선으로 찔러 오는 검을 수혁 역시 가장 정직하고 바르다는 직권 제일식 수라분광권으로 맞받아쳤다.
“……?”
수혁과 프란시스코의 눈이 동시에 화등잔만 해졌다.
‘좀 전에 조무래기들이 들고 있던 낫과는 내구성에서 큰 차이가 있구나.’
3할의 내공을 불어 넣은 적수공권이건만 프란시스코의 검은 여타 파수꾼들의 낫처럼 청아한 소리를 내며 부러지지 않았다.
놀라기는 프란시스코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구천을 지배해오면서 맨손으로 검을 막아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어린놈이 대단하구나. 내 검을 한 번 피해낸 것도 대단하다마는 오히려 맨손으로 막아내다니… 하지만 이제 그만 죽어야겠다.”
프란시스코는 수혁의 수라분광권에 튕겨 뒤로 조금 밀려났다가 또다시 허공으로 뛰어오르며 수혁을 향해 대각선으로 찔러 들어갔다.
순간 수혁의 눈에는 프란시스코의 검이 머리카락처럼 가늘게 보였다.
무시무시한 쾌검이었다. 검의 신형이 마치 대기와 하나가 되기나 하는 듯 모습을 감추었다.
“분혼사권(紛混蛇拳).”
극성까지 익힐 경우 손날로 천하의 강검도 막아낼 수 있다는 신체의 일부를 물체화하는 패도적인 와권.
파창!
수혁의 주먹과 프란시스코의 검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육중한 파공음이 심곡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프란시스코의 몸이 주춤거리며 뒤쪽으로 물러났다.
‘이… 이놈 봐라…….’
찌릿찌릿.
검을 들고 있는 오른손으로 뇌전에 맞은 듯한 충격이 전해져 왔다.
눈앞에서는 수혁이 자신과는 대조적으로 미동도 없이 웃고 서 있었다.
“이… 이놈, 네 오늘 너의 목을 반드시 몸통과 분리시켜주마.”
통증이 흐르는 오른손에 반동을 주자 검끝이 허공에서 몸을 돌리더니 수혁을 향해 파고들어갔다. 그 기세가 어찌나 매섭던지 구천에 뜬 두 개의 달을 가르고도 남음이 있어 보였다.
자신을 향해 파고드는 검을 보던 수혁의 눈이 입술처럼 열렸다.
“검기.”
수혁은 구일행에게서 천마구령심법과 뇌천마공, 천마지보를 익힌 후 고금 제일의 검제(劍帝)라는 나차태자 장삼병에게서 검술을 배웠다.
그때 수혁은 손목을 타고 장삼병이 들고 있던 나뭇가지로 검기가 흐르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제법이구나. 한낱 저승사자에 불과한 줄 알았더니…….”
수혁의 양손이 뒤로 빠져나갔다.
그 순간 눈앞의 검기가 사각 모양으로 변해갔다.
방형의 검기가 워낙 빠르게 짓쳐오는 데다 검광(劍光)까지 발하니 눈을 뜨고 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네 개의 모서리 중 어느 하나만 스쳐도 살점을 뜯어낼 기세다.
수혁의 목젖을 타고 묵직한 것이 흘러들어갔다.
이번 공격에는 그 역시 제법 긴장한 것 같아 보였다.
수혁은 뒤로 뺀 양팔을 뺄 때보다 곱절의 속도로 앞으로 뻗어갔다.
합권(合拳).
그의 두 팔이 닭의 부리와 발가락처럼 뻗어 나갔다.
철계투합권.
파차차창!
수혁의 주먹이 네 개의 검환을 튕겨버렸다.
그와 동시에 수혁의 양발에서 자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승룡연타십이각.
구일행이 살아생전 화산논검에서 북해궁주 혈마흔을 일초에 무너뜨린 전설적인 각법이라 불리는 승룡연타십이각. 일각분지, 십이각파천이라 하여 한 개의 다리면 땅을 가르고 열두 개의 다리면 하늘을 찢어발길 정도로 강력하다는 각술이 프란시스코의 몸을 분해할 기세로 파고 들어갔다.
순간 수혁의 철계투합권에 밀려 나갔던 검방(劍房)이 허공에서 급회전하며 전보다 가열 찬 기세로 수혁의 몸을 파고들었다.
마치 물 흐르는 듯한 연결동작.
그러나 고수들의 싸움에서는 먼지 하나가 승부를 결정짓고도 남았다.
프란스시코의 검이 허공에서 회전하는 찰나가 그 먼지 같은 차이를 가져왔다.
순식간에 승룡연타십이각이 프란시스코의 목덜미를 후려쳤다.
뻐억!
4할의 내공이 실린 공격에 프란시스코의 목덜미가 부러진 나무처럼 꺾어졌다.
그나마 연환식으로 들어왔던 검방 덕분에 승룡연타십이각이 열두 번을 마저 시연하지 못했기에 이 정도였다.
“아깝군. 보내버릴 수 있었는데.”
목이 부러진 프란시스코의 눈에 수혁의 모습이 직각으로 꺾여 보였다.
“이… 이럴 수가… 이런 애송이에게 내가 이리 무참히…….”
수혁의 오른손으로 단전의 기가 빨려 들어갔다.
“놈, 프란시스코를 내버려두고 나와 자웅을 겨루자.”
수혁이 적수공권으로 부러진 프란시스코의 목을 뜯어버릴 기식을 취하자 글라우베가 큼지막한 낫을 들고 빨려들듯 달려들었다.
“수혁아, 목 부러진 놈을 먼저 없애라. 두 놈을 상대하긴 벅차다. 더구나 그 목 부러진 놈은 특이한 도술을 쓰는 놈이다. 시간을 자유자재로 역전시키고 정지시키는 마물이니 놈을 먼저 처치해라.”
전음(轉音)이었다. 내공이 4갑자 이상 되는 자들은 멀리에 있는 사람에게도 자신의 의사를 전할 수 있고 또한 입을 빌리지 않고서도 의지를 천명할 수 있다.
심곡에서 일어난 소란과 돌아오지 않는 제자 때문에 초로를 나온 구일행과 장삼병.
그들은 글라우베와 프란시스코를 보자 전음을 통해 수혁에게 시간의 파수꾼을 먼저 제거하라고 일러주었다.
쐐애액.
바람을 양분하는 격렬한 파공성과 함께 글라우베의 낫이 실처럼 가늘어졌다. 그리고 그 무식한 낫에서 시퍼런 검강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직 30센티미터 정도밖에 안 되는 검강이지만 선명한 색을 발하는 게 내공을 단단히 실은 모양이었다.
수혁은 프란시스코의 머리를 노리다가 등 뒤를 파고드는 사슬낫 때문에 허공에서 몸을 돌려 프란시스코와 글라우베로부터 떨어졌다.
허공을 향해 헛손질을 한 글라우베가 다시금 자세를 가다듬으며 뚫어질 듯 수혁을 바라봤다.
지금껏 어린놈으로 얕잡아봤던 수혁.
그것은 태산(泰山)이었다.
양 주먹을 불끈 쥐고 한 다리를 학처럼 들고 선 사내.
그것은 신이 아니면 뽑아 옮길 수 없는 능선과 계곡이 험한 웅장한 산맥이었다.
글라우베는 수혁의 목을 취하겠다는 의지와는 다르게 몸이 오그라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놈, 이제 그 잘난 체술을 할 수 없으니 이 결투는 끝난 거나 다름없구나.”
여전히 목이 직각으로 꺾인 프란시스코의 눈에 수혁은 옆으로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경추가 부러져서 손이 마비되는 것을 느꼈다. 신경을 타고 흐르는 통증 때문에 어깨와 팔이 바늘로 쑤셔놓은 듯했다.
“글라우베, 시간 마법을 캐스팅할 동안 놈을 좀 막아다오.”
“그래, 걱정하지 말고 마법을 캐스팅해라. 저놈은 접근전이 아니면 아무것도 못하는 놈이다.”
피식.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수혁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오더니 이내 허공에 묻혀갔다.
“체술, 뇌천마공의 권법을 말하는 모양인데 그것이 설마 내 능력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냐? 그렇다면 그건 실로 중대한 오판이랄 수밖에.”
수혁의 말이 끝나자마자 글라우베와 프란시스코의 눈이 급속도로 팽창했다.
“저… 저건…….”
“위험하다.”
그들의 세포와 혈관이 위기를 알려왔다.
수혁의 양 손으로 자색 기체가 빠르게 몰려들었다.
“뇌천마공 장법 제일식 천마후호장(天麻吼虎掌).”
양 손바닥을 향해 빨려 들어가던 자색의 기체는 신속하게 구체를 형성하더니 수혁이 팔을 내뻗기가 무섭게 포효하는 호랑이의 모습을 한 자색의 기(氣) 무리가 글라우베와 프란시스코를 향해 비행해 들어갔다.
퍼어엉!
강렬한 파열음.
그리고 심곡의 대기가 천마후호장이 파열음을 일으키는 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포효를 끝낸 호랑이가 먹이를 덮치듯 수혁의 장법이 작렬했다.
푸슈슈슈.
글라우베는 허공으로 치솟아 오르며 간신해 수혁의 장력을 피했으나 목이 꺾여 시야가 흐려진 프란시스코는 마치 폭격을 받은 대지처럼 온몸이 움푹 꺼져 들어갔다. 더구나 간신히 지탱하고 있던 목은 몸과 분리되어 땅바닥을 굴렀다.
수혁은 천마후호장이 뿜어낸 연기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진 프란시스코의 신형을 향해 빠르게 나아갔다.
천마지보 전방속출(前房速出). 말 그대로 걸음 하나로 순식간에 빠르고 경쾌하게 프란시스코에게 다가선 수혁의 손에서 이내 흰 연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얼핏 보기에 하얀 빛무리였다.
하얀빛은 강렬한 기를 내뿜으며 수혁의 단기(短氣)를 배열했고, 곧이어 장강을 얼려버릴 듯한 끔찍한 냉기(冷氣)가 수혁의 손에서 뻗어 나왔다.
“뇌천마공 장법 제17식 천마한빙장(天麻寒氷掌).”
천마한빙장은 본래 북해빙궁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절기였으나 마교의 7대 지존이던 구일행이 북해빙궁의 궁주 제갈엽과의 논검(論劍)에서 흡성대법을 이용해 그의 진기를 빨아들이며 체득한 후 자기화한 무공이다.
천마구령심법과 결합한 한빙장은 심법을 극성까지 익힐 경우 한 여름의 황하를 얼릴 수 있다고 할 정도로 가공할 위력을 자랑한다 하였다.
쩌저저적.
수혁의 손을 떠난 천마한빙장의 냉기는 프란시스코의 너덜너덜해진 몸을 급속 냉동시켜버렸다. 체내의 혈류가 다 얼어버린 프란시스코의 몸을 향해 수혁의 적수공권이 뻗어 나갔다.
“뇌천마공 곡권 제6식 곡류구궁(曲流九穹).”
뱀처럼 꿈틀거리던 수혁의 손은 얼어붙은 프란시스코의 몸을 유리조각 파편처럼 박살내버렸다.
쩌어엉!
눈앞에서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쪼개져 사라지는 프란시스코의 모습을 보며 글라우베의 눈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내 오늘 너를 죽이지 못한다면 다시는 살아서 공간과 시간의 마스터인 카이버 님을 뵙지 못할 것이다.”
천마후호장을 피해 있던 글라우베는 도약해 오르며 지면을 향해 있던 사슬낫의 끝을 어느새 수혁의 명치를 향해 뻗어갔다.
파앗!
수혁 또한 글라우베를 향해 들소처럼 돌진해 들어갔다.
2미터에 육박하는 글라우베의 사슬낫이 가슴을 파고드는데 그 검기는 손가락만큼이나 작아 보였다. 그만큼 글라우베의 낫 술(術)은 경쾌했다.
수혁은 글라우베의 사슬낫을 향해 바르고 빠른 주먹을 뻗어갔다.
빠아악!
태산거권과 글라우베의 사슬낫이 마주 달리는 기마병처럼 맞부딪쳤고 곧이어 천지를 뒤흔드는 벽력음이 폭발한다.
쿨럭!
태산거권과 맞부딪힌 후 글라우베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초록의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태산거권. 반듯한 주먹하나가 태산을 들어 올린다고 하였다.
그 위력은 실로 명불허전이었다.
다행히 글라우베의 사슬낫은 강한 내구성 덕분에 산산조각 나진 않았다. 그러나 그의 내공은 몸을 받쳐주지 못했다.
‘주먹 한방에 온몸의 마나가 흐트러지다니… 마치 모든 혈관이 끊어진 듯한 충격이다.’
벌써 두 번 공수를 섞어보았기에 글라우베는 눈앞의 어린놈이 자신의 적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집채 같은 바위, 태산 같은 거산, 눈앞의 수혁은 자신에게 그런 존재였다.
글라우베는 마지막 진기를 사슬낫으로 끌어 모았다.
이미 몸 안의 모든 임독맥이 끊어져버렸으나 남은 진기가 사슬낫으로 빨려 들어가며 무려 1미터 정도 길이의 검강이 뿜어져 나왔다.
수혁 역시 글라우베의 검강을 보며 놀라는 눈치였다.
‘검강이 선명하고 기다란 게 스치기만 해도 뼈가 잘려 나갈 것이다.’
글라우베는 진기를 끌어 모으자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전능한 제우바신과 위대한 카이버 님을 위하여. 이야압!”
그는 기합소리와 함께 몸 끝까지 전해오는 통증을 견뎌내며 사력을 다해 검강을 뿌리며 낫을 대각선으로 그어왔다.
글라우베의 사슬낫이 허공에서 멈춘 듯하더니 하나의 사슬낫이 무려 12개로 쪼개지며 우박처럼 수혁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씨클 샤우어(Sickle shower)!”
푸른빛을 발하는 검강의 낙하.
그것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청기(靑氣)로 된 소낙비 같았다.
“죽어라, 애송이! 피할 곳은 없다!”
진기를 끌어 모아서인지 글라우베의 입에서는 연신 초록 선혈이 터져 나왔다. 그 와중에도 글라우베는 사슬낫을 소낙비처럼 뿌리며 수혁을 향해 달려들었다.
창룡승권(蒼龍昇拳). 여의주를 물고 날아오르는 용의 모습에서 착안된 승권으로 한 번의 일격으로 허공에 뜬 백무리를 잡아내고도 남음이 있다는 상승 권법이다.
수혁은 글라우베의 검강을 창룡승권으로 맞받아 쳤다.
빠가가강!
정확하게 하나의 주먹이 하나의 검강을 빗겨냈다.
연이어 수혁의 몸동작이 하나의 몸짓인 양 창룡승권과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어갔다. 마치 수혁의 몸이 무릎을 이용해 오동나무를 찍으며 올라가는 원숭이처럼 보였다.
뇌천마공 슬권 제일식. 납천와슬.
일반적으로 발은 주먹의 두세 배의 파괴력을 가지고 무릎은 그 발의 세배에서 다섯 배의 위력을 가진다 하였다.
수혁의 사부인 구일행이 천축의 포달랍궁을 정복할 때 최초이자 최후로 사용했다고 하는 그 슬권이 바로 납천와슬.
강력한 무릎 차기가 글라우베의 낫을 뚫고 그의 명치를 강타했다.
뻐어엉!
승부는 끝났다.
뇌천마공의 권법 중 파괴력으로는 최강인 납천와슬은 글라우베의 가슴에 사람 머리만 한 구멍을 내버렸다.
무저갱처럼 깊은 글라우베의 두 눈이 구멍 난 가슴을 허망하게 쳐다봤다. 그의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부들부들 떨려왔다.
파수꾼으로 태어나서 처음 경험해보는 공포와 충격이었으리라.
“이… 이럴 수가… 도대체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허무한 두 눈 사이의 미간으로 수혁이 어느새 다가와 있었다.
“끝이다.”
수혁은 한마디를 남기며 오른손을 지긋이 들어올렸다.
그의 식지(識指)가 떨고 있는 글라우베의 양미간에 걸쳐졌다.
수혁의 오른팔을 휘감아 돌던 자색의 기운이 손가락으로 쏠려 들어갔다.
일양지(一樣指).
수혁의 손가락에서 기의 빛무리가 일직선으로 뻗어나갔다.
그 빛무리는 글라우베의 머리를 관통해 천장단애의 계곡을 건너 저 멀리까지 뻗어나갔다.
글라우베의 머리에서 뇌수가 터져 나왔다.
“끄으으으…….”
비명 한번 제대로 지르지 못한 글라우베의 커다란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수혁은 쓰러진 글라우베를 바라보며 옷매무새를 단정히 했다.
그의 표정에 기대 이하라는 듯한 실망감이 역력했다.
[놈, 거만해졌구나.]
[그러게, 저 표정 좀 봐. 거만 그 자체구먼.]
“하하하, 잘 보셨죠? 사부님의 수제자 수혁이 공간과 시간의 파수꾼을 잠재워버렸습니다.”
츠츠츠.
그제야 제자의 대결을 관망하던 장삼병과 구일행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나저나 귀신같은 놈들일세. 분명 저번에 내 탄지산탄과 자네의 태극검술에 죽었다고 생각했거늘, 다시 살아나다니.”
구일행이 눈알을 굴리며 장삼병을 바라봤다.
“그러게 말일세. 목숨이 두세 개는 되는 놈들인가 보지. 참 이 동네는 희한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곳이야.”
수혁은 손을 털며 두 사부에게 다가갔다.
“어떻습니까? 사부님. 제자의 실력이 이 정도면 거의 생사경의 경지가 아닐는지요.”
“예끼, 놈! 감히 뚫린 입이라고 네놈이 생사경을 들먹거린단 말이더냐?”
“하하하하!”
구일행의 일갈에 수혁이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허나 수혁이 네 무공이 진일보했음은 내 인정한다.”
구일행과는 달리 장삼병은 쉽게 수혁의 실력을 인정해줬다.
“이제 제법 내 외공과 보법, 신법을 막힘없이 구사하는 경지에 이르렀어.”
두 사부와 수혁은 몸을 띄워 천장단애의 계곡을 산보하듯 걸어 내려갔다.
공간과 시간의 파수꾼들과의 오랜 싸움 때문에 수혁의 호흡이 일전과는 달리 고르지 못했고 이마에도 땀이 송골송골 묻어났다.
허나 천마구령심법과 천세보혈주의 영허함 때문인지 그의 발걸음은 좀 전과 다름없이 가볍고 날렵했다.
장삼병과 구일행의 앞장을 섰고 수혁이 두어 걸음 떨어져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이 천장단애의 깊은 계곡으로 사라져 들어갈 무렵 때 아닌 안개가 계곡 위에 드리워지기 시작하며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다.
“그흐흐흐.”
“으하하하.”
중저음으로 낮게 깔리는 비릿한 웃음소리.
안개를 실어 나른 바람이 글라우베와 프란시스코의 몸을 감쌌다.
그리고 죽은 글라우베의 시체 아래에서 육방형의 문신이 초록빛을 발하며 뿜어져 올라왔다. 또한 같은 육방형 문자는 얼어붙은 채 산산조각 난 프란시스코의 신형 조각들에서도 빛을 발했다.
썩은 나무에서 새싹이 돋아나듯 초록색 빛은 육방형 문자를 더욱 짙게 만들어갔다.
십여 초가 지났을까 안개가 걷히고 바람이 줄어들자 초록빛도 점점 사그라졌다.
그리고 알아볼 수 없는 문자들이 육방형 안에서 사라져가자 죽어 있던 글라우베의 몸에서 열기가 흘러나왔다. 또한 산산조각 난 프란시스코의 몸체들 역시 스멀거리는 벌레들처럼 꿈틀댔다.
그리고 그 둘은 자석의 양극처럼 서로 강하게 끌어당겼다.
“카이버 님의 몸종, 공간의 파수꾼 글라우베가 주인을 알현하옵니다.”
“카이버 님의 몸종, 시간의 파수꾼 프란시스코가 주인을 알현하옵니다.”
소멸해버린 줄 알았던 두 영혼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공명소리처럼 울려 퍼지던 두 사내의 목소리는 하나라 합쳐 들어가며 메아리쳤다.
마치 그들의 신형처럼.
스멀거리던 프란시스코의 조각난 몸들이 글라우베의 시신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스스스스.
수십, 수백 개의 얼어붙은 조각들이 봄날 아지랑이처럼 흐물거리더니 글라우베의 시체와 결합해갔다.
그리고 남은 몇 조각의 살덩이가 글라우베의 몸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갔을 때 잿빛 로브 안에서 노란 안광이 서서히 뿜어져 나왔다.
이윽고 잿빛 로브의 황광이 광활한 빛을 뿜어내더니 고장 난 장난감이 재조립되듯 글라우베와 프란시스코의 합성된 육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2미터를 훨씬 상회하는 커다란 키에 마치 절벽처럼 탄탄해 보이는 근육들. 그리고 어깨와 가슴, 복부를 둘러싸고 중요한 곳까지 뻗어나간 구릿빛의 강철 갑주. 송곳처럼 솟아 있는 정강이의 각반 안으로 파충류의 살갗 같은 우둘투둘한 피부.
그리고 바알의 뿔을 연상시키는 이마 위에 솟아난 두 개의 뿔 아래로 강철 투구가 광채를 발했다.
그 안에서 스멀거리는 끔찍한 황색 안광.
커다란 몸집에 어울리는 3미터가 넘는 거대한 검.
두 번의 실패를 용서하지 않는 공간과 시간의 지배자 카이버가 글라우베와 프란시스코의 몸을 빌려 부활했다.
제우바 신을 추종하는 천계의 무리들 중 서열 9위인 공간과 시간의 지배자 마스터 카이버.
그가 눈을 뜨자 사위가 숨을 죽였다.
“그흐흐흐흐.”
그의 입에서는 비릿하면서도 육중한 비웃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멍청한 것들, 한낱 인간을 제압하지 못하다니. 오늘부로 네놈들의 권한을 박탈한다.”
[위대한 카이버 님, 제발 자비를…….]
이미 하나로 합해진 글라우베와 프란시스코의 영혼은 카이버를 향해 자비를 요청했다. 공간과 시간이 찌그러지며 왜곡 현상이 발생해서였을까, 둘의 음성은 늘어난 테이프처럼 불규칙하고 느렸다.
“닥쳐라.”
카이버의 위압적인 한마디에 하나가 된 영혼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내 친히 저 무리들을 처벌하여 제우바 신의 질서가 살아 있음을 만천하게 과시할 테다.”
[크흐흐, 못 다한 저희들의 한을 풀어주옵소서.]
[헛.]
파수꾼의 혼은 헛바람을 삼켰다.
무슨 말 실수를 한 것도 아닌데 그들의 영혼이 갑주를 걸친 카이버의 몸 안에서 완전 용해되어 버렸다.
“쯔쯔… 무능한 것들…….”
3미터가 넘는 대검(大劍)을 든 공간과 시간의 마스터 카이버는 천장단애의 절벽 끝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심연 속으로 그의 눈이 빨려들듯이 쏠렸다.
“그흐흐흐, 오늘부로 네놈들의 구천 도피 행각도 끝이다.”
그는 마치 물속으로 다이빙하는 사람처럼 천장단애로 뛰어내렸다.
끝이 안 보이는 심연 속을 카이버의 신형이 번개처럼 쓸려 내려갔다.
한편 심곡 안의 초로로 돌아온 장삼병과 구일행, 수혁은 초로가에 있는 폭포에 입을 가져다 대고 물을 마셨다.
특히 수혁은 미친 듯이 물을 빨아들였다.
조금 전 파수꾼들과 싸우느라 심하게 갈증이 났기 때문이다.
“수혁이 이놈, 머지않아 현경의 경지에 완벽하게 다다를지도 모르겠어.”
“허허허, 어디 그게 수혁이 능력 때문인가. 다 진마 자네가 잘 가르친 덕이지.”
구일행을 바라보며 말하던 장삼병의 표정이 급속도로 굳어갔다.
“뭐… 뭐지? 이 강렬한 기운은.”
장삼병의 표정을 살피던 구일행은 장삼병과 동시에 허공을 바라봤다. 천장단애의 상공에서 무시무시할 정도로 빠른 것이 낙하하듯 쏟아져 내려왔다.
“수혁아, 피해라.”
하늘에서 빠른 속도로 낙하하던 카이버가 3미터 길이의 검을 젓가락 휘두르듯 휘둘렀다. 그리고 그의 검 끝에서 무서운 검강이 뿜어져 나왔다.
콰콰쾅!
세 갈래의 검강은 장풍처럼 뻗어 나와 폭포수 주변을 초토화 시켰다.
파열음과 함께 폭포수가 유리알처럼 비산했다.
수천 개의 물방울들이 흩어지면서 동시에 장삼병과 구일행, 수혁의 몸도 흩어져 나갔다.
“이런 미… 미친…놈이.”
수혁은 후방완출하며 허공에서 내려오는 신형을 바라봤다.
그 주인공은 바로 카이버였다.
투구 안에서 번뜩이는 놈의 얼굴은 마치 공간의 파수꾼 글라우베와 시간의 파수꾼 프란시스코를 합쳐 놓은 것처럼 보였다.
이윽고 번개처럼 내리 꽂히던 카이버의 두 발이 심곡에 착지했다.
파콰콰콰.
엄청난 속력으로 낙하한 데다 카이버의 몸무게가 보통이 아니어서 마치 핵폭탄이 작렬한 것처럼 흙먼지가 비산했다.
짙은 안개 같은 흙먼지가 걷히자 그 속에서 카이버가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의 입이 기분 나쁘게 웃고 있다.
“그흐흐흐.”
손에는 물경 3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무시무시한 검이 들려 있었다.
“네, 네놈은 도대체 누구냐?”
“마… 맙소사, 천근추보다 더 강력하고 위력 있는 착지였다.”
구일행과 장삼병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수혁은 아무 말 없이 카이버를 향해 천마지보를 밟아 전방속출로 달려 나갔다.
“수혁아, 안 된다.”
그때까지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카이버를 만만하게 바라보던 수혁은 그제야 두 사부님의 당황하는 표정을 보고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허나 이미 쏴버린 화살.
수혁은 허공에서 기수식을 취하며 뇌천마공을 전개했다.
“뇌천마공 직권 제일식 수라분광권.”
온 어둠을 꿰뚫는 직선의 빛처럼 수혁의 주먹이 카이버를 향해 파고 들어갔다.
쩌어엉!
“느낌이 다르다… 이건 뭐지?”
“맙소사.”
수혁의 얼굴에 당혹감이 짙게 베어났다.
태산도 박살낸다는 뇌천마공의 적수공권은 분명 카이버의 육중한 몸에 작렬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놈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순간 카이버의 발이 살짝 움직이는 것 같았다.
수혁의 눈이 녀석의 발을 좇았다.
순간 녀석의 발이 채찍처럼 휘어지더니 수혁의 몸통을 걷어찼다.
“수혁아, 피해라! 놈은 네 상대가 아니다.”
뻐엉!
수혁은 두 팔을 십자가 모양으로 교차해 맹합연환권의 방어식을 취하며 놈의 발길질을 막아냈다. 그러나 수혁의 몸은 마치 가랑잎처럼 날아올라 절벽에 가 부딪쳤다.
푸수수수.
수혁의 머리 위로 부서진 돌가루가 우수수 떨어졌다.
쿨럭!
그리고 수혁의 입에서 붉은 선혈이 터져 나왔다.
‘이… 이럴 수가. 맹합연환권으로 방어를 했거늘. 저놈은 도대체…….’
수혁이 당황하고 있는 동안 카이버의 입에서 비열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흐흐흐, 오늘이야말로 너희 같은 변종 쓰레기들을 청소할 날이다. 타합!”
짧은 기합과 함께 카이버가 널브러진 수혁을 향해 뛰어 올랐다.
“놈, 어딜 감히 내 수제자를 건드리려 드느냐.”
구일행의 오른손이 부챗살처럼 펼쳐졌다.
그리고 그의 손가락에서 구슬 모양의 기체들이 카이버를 향해 뿜어져 나갔다.
슈슈슈슈슈!
“탄지신통.”
수혁을 향해 내뛰던 카이버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구슬모양의 구체들을 바라봤다.
숑숑숑숑숑!
다섯 개의 탄지신통이 카이버의 몸통에 적중했다.
“크흣, 별거 아니구만.”
구일행은 자신의 탄지신통이 카이버의 몸을 뚫고 나갔을 거라 확신하며 만면에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녀석의 몸속에 청아한 울음소리를 내며 박혔던 탄지신통들이 마치 낡아빠진 납덩이들처럼 뽑혀 나오는 것이 아닌가.
“마… 말도 안 돼. 마계진마의 3할의 내공이 담긴 탄지신통이… 네놈은… 도대체…….”
구일행을 비웃듯이 쳐다본 카이버는 몸을 툭툭 털며 구일행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수혁을 향해서 파고들어갔다.
녀석이 허공에서 장검을 뒤로 젖혔다가 재빠르게 뻗어나갔다.
콰오오오!
파열음과 함께 붉은 광채가 수혁이 기대던 절벽에서 쏟아져 나왔다.
“……?”
카이버의 두 눈이 의문스레 빛났다.
천마지보 표홀신보.
수혁은 어느새 자신의 머리 위로 솟구쳐 올라 절벽의 양쪽을 교차로 밟으며 뛰어올라 도망 중이었다.
“그흐흐, 쥐새끼 같은 놈.”
카이버는 달아나는 수혁을 외면하며 이제는 구일행을 쏘아봤다.
“뭐…뭐야…이런 존만한 새끼가 내가 만만하다 그거야? 어디 한번 덤벼봐라. 존만한 새끼야.”
고금제일의 최고수, 중원 무림의 패왕. 제7대 천마지존 마계진마 구일행.
그의 자존심에 상처가 났다. 자신을 같잖게 쳐다보는 카이버의 시선 때문이었다.
“이 애비, 애미도 모르는 호로 자식아. 네까짓 게 키만 크고 덩치만 좋으면 다라고 생각하냐? 어디 한번 마계진마 구일행 님께서 너와 함께 몇 수 섞어 보여주마.”
파오오오오
구일행이 단전에서 내력을 끌어 모으자 그의 발 아래에서 구름 같은 기운들이 뿜어져 나오고 마치 그가 밟고 있는 땅이 꺼져가는 것 같았다.
구일행의 얼굴에 노기가 가득 찼으며 그의 머리털이 마치 지구의 중력을 비웃듯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순식간에 구일행이 선 자리에서 기의 회오리가 대기를 삼킬 듯 빨려 들어갔다.
천마구령심법 제11식 천마대라공이 시현된 것이다.
중원인들은 마도의 천마대라공을 지상천하유일역발산공(地上天下唯一力挬功)이라 하였다. 그것은 강호에서 천마구령심법의 천마대라공만이 태산을 거꾸로 들어올릴 수 있다는 의미다.
구일행의 변모하는 몸을 보며 카이버도 흠칫 놀라는 기색이다.
까닥까닥.
한번 덤벼보라는 듯이 구일행이 손을 까닥거렸다.
“그흐흐흐흐, 공간과 시간의 마스터로 재탄생한 이래 가장 즐거운 일이 벌어졌구나. 피가 펄펄 끓는다. 오랜만에 적수다운 적수들을 만났구나.”
카이버가 무식한 칼을 한 손으로 들고 구일행을 향해 매섭게 쏘아져 들어왔다.
구일행의 두 손이 움직일 때마다 그의 양손에서 아지랑이 같은 어지러운 기운들이 뿜어져 나왔다. 이미 그는 기수식을 끝낸 상태.
“제자야, 잘 봐둬라. 뇌천마공의 진정한 위력을.”
구일행의 몸이 흡사 일전 파수꾼들과 싸우던 수혁의 모습과 닮아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동작에 국한된 것이었고 유연함과 강렬함에 있어서는 수혁의 몸짓을 넘어서고 있었다.
“뇌천마공 맹합연환권(猛蛤連環拳)!”
구일행의 몸이 마치 파리를 쫓는 두꺼비의 모습을 닮아갔다.
맹합연환권. 뇌천마공의 곡권 제일식으로 부드러움이 강함을 제압한다는 능유제강(能柔制强)의 원리로 착안된 무공이 바로 그것이다.
구일행의 주먹과 카이버의 검강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콰르르르, 쿠웅!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소리가 심곡을 쩌렁쩌렁 울렸다.
실로 가공할 만한 고수들의 싸움이었다.
태산이 울고 하늘이 찢어질 듯한 둘의 기세가 충돌하자 강렬한 파열음과 함께 불꽃과 뇌전이 튀어나왔다.
움찔.
타다닥.
구일행의 맹합연환권이 카이버의 검을 튕겨내 버리자 카이버의 신형이 허공에서 회전하며 뒤로 수십 걸음을 물러났다.
구일행 역시 충돌로 생기는 기공의 뒤틀림을 막기 위해 후방완출로 느긋하게 물러났다.
카이버는 검을 쥔 손으로 전기가 흐르는 듯한 찌릿한 통증이 어깨까지 전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구일행 역시 방금 충돌로 내기가 뒤틀리는 것을 느꼈다.
‘역시 나이 든 탓인가… 오래간만에 천마구령심법을 구현했더니 몸이 받쳐주질 않는구나.’
잠시 숨을 고르던 카이버의 머리 위로 폭포수 같은 장력들이 쏟아져 내렸다.
“천마일천쇄비장.”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장력들이 카이버의 신형을 포위하듯이 내리 꽂혔다.
“이런 쥐새끼 같은 놈을 봤나.”
카이버는 3미터의 장검을 들어 머리 위에서 풍차를 돌리듯 돌려 휘돌려 저었다.
파카카캉!
검이 이뤄내는 연환막에 허공에서 수혁이 뿌려대는 장력들이 튕겨 나갔다. 그중에서 힘 좋은 장력들이 카이버의 연환막을 뚫고 그의 신형에 적중했다.
“크읏, 이 찢어 죽일 놈을 봤나.”
비늘로 덮인 살을 뚫고 들어오는 강렬한 통증에 카이버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오늘 너희 세 놈들을 기필코 갈아 마셔버리겠다.”
카이버는 그렇지 않아도 구일행과 일합을 섞으면서 그에게 밀려나자 화가 치밀어 올랐는데 그 틈을 노리고 수혁이 공격을 해오자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다.
카이버가 검을 들지 않은 한 손을 수혁이 있는 허공을 향해 들어올리자 그의 손을 타고 황색의 기운이 마치 회오리처럼 빨려 들어가더니 한 번의 손짓에 태풍같은 마공이 뿜어져 나갔다.
“수혁아, 피해라. 이노옴! 내 제자를 건드리지 마라.”
수혁은 천마지보의 우칠칠로 카이버의 마공을 어렵게 피해냈다. 그리고 동시에 구일행의 몸이 번개처럼 카이버의 가슴까지 파고들었다.
천마지보의 구천비운종이었다.
순식간에 카이버의 몸 안으로 파고든 구일행의 팔꿈치가 카이버의 복부를 가격하고 부드럽게 연환식으로 들어간 그의 두 주먹이 카이버의 턱을 올려쳤다. 이미 구일행의 양손은 맨드라미 잎보다 더 붉게 물들어 있었다.
뇌천마공 곡류구궁과 창룡승권이 연식으로 뻗어나간 것이다.
빠각.
퍼엉!
복부에서 전해오는 폐부가 찢어질 것 같은 고통에 이어 턱뼈가 으스러질 듯한 위력.
카이버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맥없이 떨어져 나갔다.
그의 허공에 뜬 몸을 구일행의 신형이 뒤쫓았다.
맥아리 없이 허공에 떠 있는 카이버의 몸이 무방비로 열렸다. 그 사이를 구일행의 뇌천마공이 뚫고 들어갔다.
“뇌천마공 맹웅이십사로권.”
맹웅이십사로권은 먹이를 노리는 불곰이 먹잇감을 만났을 때 하찮은 토끼를 잡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연유된 붕권이다.
구일행의 맹웅이십사로권이 정확하게 스물네 번 카이버의 열린 몸통을 가격했다.
물론 하나의 주먹에는 물경 7할의 공력이 실려 있었다.
“쿠울럭!”
카이버의 입에서 초록선혈이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맹웅이십사로권에 맞은 몸통이 포격당한 강판처럼 뭉개져 있었다.
‘이럴 수가, 저 노인네가 진정 나의 사부님 마계진마 구일행이란 말이야? 미… 믿을 수가 없다. 내가 펼쳐 보이는 뇌천마공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노인네… 왜 내겐 저런 심오한 마공을 전수해주지 않는 거지?’
수혁은 허공을 맴돌다 제비처럼 심곡으로 치달았다.
이미 구일행의 뇌천마공으로 내장이 뒤틀려버린 카이버의 머리에 난 두 뿔을 수혁이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향해 뇌천마공 납천와슬이 들어갔다.
일전에 파수꾼들의 몸통을 꿰뚫어버린 뇌천마공 권법 중 가장 강한 위력을 자랑하는 납천와슬이었다.
뻐어엉!
무릎치기가 카이버의 뇌골까지 흔들어 놓았다.
절벽의 끝까지 맥없이 날아간 카이버의 육중한 신형이 바위에 부딪히며 굉음을 토해냈다.
“그흐흐흐, 이… 이놈들. 재밌구나, 재밌어. 허나 놀이는 이제 끝이다.”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일으키며 카이버는 몸에 뿌려진 흙먼지를 털어냈다.
‘믿을 수가 없다. 천하제일의 고수인 나도 저렇게 강한 맷집을 가진 놈은 본 적이 없다. 도대체 이곳 구천에는 불가사의한 일들이 너무 많구나.’
구일행은 혀를 내둘렀다.
그 옆에 수혁이 나란히 서 있었다.
“그흐흐흐, 어디 이것도 한번 막아봐라.”
카이버의 비릿한 웃음소리.
그리고 그와 함께 그의 정강이 보호대에 뿔처럼 솟아 있던 스파이크들이 구일행과 장삼병을 향해 화살시위라도 하듯 거칠게 날아들었다.
송곳처럼 삐죽하고 코끼리의 상아처럼 단단한 스파이크에 맞기라도 한다면 그 자리에서 즉사할 것만 같았다.
파앗!
싹둑싹둑.
구일행과 수혁의 등 뒤에서 인영이 구름처럼 일렁이더니 재빠른 신법과 함께 검기가 춤을 추었다.
그리고 구일행과 수혁을 향해 날아오던 카이버의 등뿔이 두 동강이 난 채 바닥에 떨어졌다.
수혁과 구일행이 뒤를 돌아보자 둘의 어깨 너머로 흰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장삼병이 나타났다.
“이보게, 태자. 어디 갔다 온 게야?”
장삼병은 말없이 자신의 손을 가리켰다.
그의 손에는 묵직한 검 한 자루가 들려 있었는데 그것은 예전에 구일행이 파수꾼들의 탑에서 훔쳐 온 파이오니아 대륙의 인간들의 왕, 키나비의 검이었다.
“오, 그렇지 않아도 저 괴물을 어떻게 처치할까 고민 중이었는데 자네의 태극검법이라면야 무서울 게 뭐란 말인가?”
장삼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그렇지 않아. 지금 저 모습이 저놈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게. 저놈의 몸속에 도사리고 있는 가공할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인가?”
수혁은 고개를 돌려 장삼병을 바라봤다.
지금까지도 상상할 수 없을 위력인데 그것보다 더 강한 힘이 카이버 저놈에게 있다는 장삼병의 말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수혁의 시선을 외면하며 장삼병은 검을 쥐지 않는 손을 절벽에 기대고 선 카이버를 향해 들어 올렸다.
고요하면서 부드러운 기의 흐름이 장삼병의 단전을 빠져나왔다.
‘오, 나차태자 사부님의 기는 마치 밤하늘의 별빛처럼 고요하고 아이들의 눈망울처럼 맑구나.’
수혁은 장삼병의 기공을 느끼며 속으로 감탄성을 연발했다.
“오… 태자의 장지건곤이구나.”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무당의 무공들.
장지건곤 역시 인위적이지 않으며 가식적인 힘이 들어가지 않은 비단 같은 장력(掌力).
그러나 장삼병의 팔에서 뻗어 나간 장지건곤의 위력은 집채도 한방에 날려버릴 듯 노기를 띠고 있었고 승천하는 용도 집어 삼킬 듯한 강렬함이 서려 있었다.
파콰콰콰콰!
카이버의 두 눈에 공포가 어렸다.
처음 시작은 미약했으나 장삼병의 손을 떠난 장력이 자신에게 다가올수록 성난 파도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저도 모르게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구천의 공간과 시간의 지배자, 시공의 마스터인 자신의 한낱 인간이 쏘는 장력에 겁을 집어먹은 것이다.
“우아아악!”
그의 비명이 심곡에 울려 퍼졌다.
퍼어엉!
천지를 개벽할 것 같은 파열음과 함께 용광로 같은 화염이 카이버의 몸을 덮쳐버렸다.
괴물처럼 단단한 비늘로 된 카이버의 근육질 피부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끝인가?’
수혁은 뒤틀린 몸 안의 진기를 바로잡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으며 눈앞에 쓰러져가는 카이버를 바라봤다.
“불길해… 알 수 없는 기운이 서려 있어.”
구일행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그의 옆에서 나차태자 장삼병은 불길 같은 눈으로 키나비의 검을 거칠게 쥐고 카이버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다.
그리고 장삼병과 구일행, 수혁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바라봐야만 했다.
용광로에 빠진 철처럼 녹아내리던 카이버의 몸이 허물을 벗는 독사처럼 꿈틀거리더니 형체가 없어진 머리 사이로 좀 전 보다 열 배는 큰 뿔이 뻗어 나오는 것이 아닌가.
뿔의 길이만 해도 30cm는 넘어 보였다. 기다란 뿔과 함께 사람의 모습이 아닌, 마치 지옥의 괴물을 연상시키는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되새김질하는 황소처럼 연방 타액이 흘러내리는 큼지막한 입. 그리고 그 입에는 위 아래로 네 개의 송곳니가 칼처럼 솟아 있었다. 머리를 덥수룩하게 덮고 있는 머리칼은 하나하나가 철침처럼 강한 바늘로 구성되어 있었고 눈에서는 지옥의 불길을 뿜어내고 있었다.
또한 오그라지던 팔에서는 인간의 것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무식한 팔이 파충류의 비늘처럼 뒤덮여 있었는데 팔 하나의 길이만도 2미터는 돼 보였다.
직립보행하던 인간처럼 우뚝 솟아 있던 척추는 마치 포유류처럼 굽어버렸는데 그 몸통 안에서 네 개의 발이 뻗어 나왔다.
야수의 두상에 파충류의 몸.
두 개의 팔에 네 개의 다리.
그리고 몸통에서 뻗어 나오는 기다란 꼬리는 족히 7미터는 돼 보였다.
손과 발에서 뻗어 나온 발톱은 마치 전설속의 괴물 그리폰을 보는 것 같았다.
이마에 난 것보다 훨씬 커다란 뿔들이, 목 뒷덜미를 타고 흐르는 척추 마디마디에 솟아나 있었고 그의 온몸을 뒤덮고 있는 피부는 용의 비늘처럼 탄탄하고 매끈했다.
“마… 맙소사… 저… 저게 대체 뭐야?”
“요… 용이 아닌가? 아… 아냐. 용은 저렇게 생기지 않았잖아.”
수혁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설마… 드래곤?”
그러나 그것은 드래곤도 용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미노타우로스도 오우거도 아니고 공룡은 더더욱 아니었다. 구천의 지배자인 카이버의 모습이 마계의 마물을 소환한 것으로밖에…….
두둥.
신형을 완전 탈바꿈한 카이버가 한 걸음 발을 내딛었다.
쿠웅.
쿠웅.
고요하던 심곡이 요동치듯 흔들렸고, 심곡(深谷) 안에 격렬한 파문이 퍼져나갔다.
“뿌오오오!”
귀청이 떨어져 나갈 날카로운 괴성.
괴물로 변해버린 카이버의 무식한 눈동자가 빛을 토해냈다.
그 무시무시한 야수의 눈동자가 셋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수혁은 두 다리가 떨리고 있음을 느꼈다.
그 순간 무지막지하게 자라난 양팔이 채찍처럼 장삼병과 구일행을 향해 뻗어 나갔다. 또한 도마뱀의 그것만큼이나 길게 자라난 꼬리는 수혁을 뭉개버릴 기세로 뻗어 나갔다.
콰아아앙!
폭음이 작렬한다.
카이버의 신형이 닿는 곳은 어김없이 거목이 부러지고 웅덩이가 파였다.
실로 무시무시한 파괴력이었다.
일격은 실패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저 무시무시한 괴물의 공격을 피해낼 수는 없을 것이다.
장삼병과 구일행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수혁 역시 꼬리가 일으키는 파괴를 피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자신의 공격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카이버의 양팔과 꼬리가 허공으로 사라졌다. 그 무지막지한 살상무기는 어느새 다시 하늘로 솟구쳤다.
“흩어지자.”
장삼병은 다급하게 외치며 몸을 틀어 왼편으로 내달리고 구일행은 장삼병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맞은편으로 달아났다.
수혁은 그 둘과는 다른 수직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뿌오오오오!”
또다시 질그릇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카이버의 무지막지한 꼬리는 수혁을 향해 재차 내리 찍히고 있었다.
수혁은 고성을 듣고 이미 짐작했다는 듯이 몸을 날려 방향을 틀었다.
츠파파!
카이버가 휘두른 꼬리는 수혁의 귓바퀴를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꼬리가 귓가를 스치자 고막이 터질 것처럼 대기가 응축되었다가 폭발했다.
파콰콰!
연이어 폭발음이 울리며 땅거죽이 무겁게 움푹 팼다.
그 육중한 꼬리는 가벼운 회초리처럼 날렵하게 움직였으나 그 파괴력은 폭탄에 버금갔다.
지축이 진동하고 흙먼지가 비산했다.
만약 저 꼬리에 한 번 후려 맞으면 뼈도 추리지 못할 것 같았다.
카이버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정신없이 네 발을 굴려 수혁을 짓밟아 죽이려고 들었다.
콰앙, 쾅쾅!
연속해서 폭음이 터져나갔다.
땅바닥이 거북 등처럼 쫘작 갈라졌다. 그때마다 흙먼지가 비산해 안개처럼 시야를 덮었다.
구일행은 카이버의 미친 듯한 공격을 피하면서 연방 두 손에서 장력을 뿜어댔다.
천마구령심법을 이미 11성까지 끌어 올린 구일행의 장력이었지만 카이버의 강한 비늘을 뚫지는 못했다.
푸시시시.
허망한 연기만이 카이버의 몸에서 피어오를 뿐.
수혁은 천마지보를 밟아 카이버의 등 뒤로 올라탔다.
그리고 양손에 8할의 기를 불어 넣어 그의 등을 후려쳤다.
“뇌천마공 태산거권.”
빠앙!
수혁의 두 주먹이 카이버의 등에 꽂히자 막대한 카이버의 몸이 꿈틀거렸다.
태산도 뽑아낸다는 위력 때문이었을까, 카이버의 야수 같은 얼굴에 노기가 서렸다.
그러더니 등 위에 솟아 있는 뿔들이 꿈틀댔다.
“이… 이런.”
수혁은 재빨리 천마지보를 밟아 후방속출로 물러나며 좌우이사로 어지럽게 몸을 날렸다. 그의 비행하는 몸을 향해 카이버의 등에 나 있던 뿔이 미사일처럼 날아들었다.
슈확.
“타합!”
수혁은 철계투합권으로 날아드는 뿔을 비껴 쳐냈다.
그사이 장삼병이 카이버의 얼굴까지 다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서 또다시 장지건곤을 발사했다.
퍼어엉!
“뿌오오오오!”
무당의 장력인 장지건곤에 맞은 한쪽 눈이 통증으로 뜰 수 없게 되자 카이버가 외마디 비명을 질러댔다.
카이버는 허둥대며 입에서 불을 뿜어댔다.
화르르륵!
장삼병을 향해 새빨간 화염이 거칠게 쏘아졌다.
무쇠도 녹여버릴 것 같은 강렬한 화염이다.
아마 정통으로 맞는다면 살점이 다 타버릴 것이다.
장삼병은 허공에서 재빨리 발을 바꿔 나아가는 방향을 틀었다.
그는 갑자기 빙글 돌면서 날아오는 화염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허리까지 닿아있던 흰 머리는 그러나 안타깝게도 화염에 녹아버렸다.
장삼병은 땅에 착지함과 동시에 반사적으로 뒤로 튀어올랐다.
화르륵.
카이버는 미친 듯이 화염을 뿜어댔다.
그런 그의 머리 뒤로 수혁이 잠행술로 다가왔다.
귀령유은보(鬼令誘隱步). 귀신과 도깨비도 속일 수 있다는 천마의 잠행술이 수혁의 발에서 펼쳐졌다. 과연 사파의 태두다운 잠행술이었다. 순식간에 수혁은 카이버의 등 뒤를 타고 올랐다.
그리고 그의 양손에서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천마한빙장.”
북해빙궁의 절기인 한빙장이 카이버의 머리에 난 30cm의 뿔을 얼려버리기 시작했다.
“뿌오오! 뿌오오오오!”
카이버가 미친 듯이 날뛰었다.
“이놈, 수혁아. 이 노부가 그렇게 가르치더냐?”
어느새 구이행 역시 카이버의 등 뒤를 밟고 뛰어올랐다.
“이것이 진정한 천마한빙장이니라.”
노기를 뿜은 두 눈에서 광채가 서렸다.
그리고 그의 온몸이 석빙고만큼이나 차가워졌다.
그랬다. 구일행은 온몸으로 냉기를 발산해냈다.
자신이 북해빙궁의 제갈엽과의 결투에서 흡성대법을 이용해 절기를 빨아들여 재탄생시킨 마공 한빙장이 카이버의 머리를 송두리째 얼려버렸다.
카이버가 미친 듯이 날뛰자 수혁은 얼어붙은 카이버의 뿔을 각법으로 걷어찼다.
빠가각!
카이버의 머리에 난 뿔이 봄날 녹아내리는 고드름처럼 부러졌다.
“뿌오오오오!”
그리고 구일행의 태산거권이 카이버의 목덜미를 후벼왔다.
빠강!
카이버는 목에 통증을 느끼며 몸을 뒤틀었다.
쥐새끼 같은 수혁과 구일행의 몸놀림에 카이버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사방으로 돌가루 파편이 튀었다. 산을 허무는 듯한 파상공세. 금방이라도 그 둘을 집어 삼켜버릴 기세였다.
묵직한 꼬리가 등에 올라타 있는 둘을 향해 파리채처럼 구부려졌다.
철써억!
수혁의 몸을 노리고 날아오는 카이버의 꼬리로부터 제자를 구하기 위해 수혁을 장력으로 밀어내던 구일행의 몸이 카이버의 꼬리에 맞아 가랑잎처럼 날아갔다.
쿠웅!
그의 연약한 몸이 절벽에 가 부딪혔다.
“사, 사부님!”
그제야 수혁은 천마지보를 운용해 구일행에게 다가갔다.
“나는 괜찮다. 걱정 말거라. 이딴 저급한 공격으로 나를 어쩌지는 못… 쿨럭.”
구일행의 입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나왔다.
방금 카이버의 꼬리 공격에 몸 안의 내장이 다 틀어진 것이다.
“사부님!”
“걱정 마라. 아직 임맥과 독맥, 혈도는 끊기지 않았다. 다만 내상을 조금 입었을 뿐이야.”
수혁은 구일행을 안고 절벽을 거침없이 뛰어올랐다.
그의 뒤에서 미친 카이버가 돌진하는 들소처럼 둘을 향해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푸슈슈슈.
이미 뿔이 부러져버린 카이버가 야수 같은 머리로 절벽을 들이 받자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절벽이 뒤흔들렸다.
괴물은 허공으로 치솟아 오르는 수혁과 구일행을 보며 네 발에 힘을 주었다.
그러더니 이내 그 둘을 향해 맹렬한 기세로 하늘로 떠올랐다.
“마… 맙소사, 몇 톤은 나갈것 같은 저 몸으로 하늘을 날다니…….”
수혁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을 때 어느새 장삼병이 카이버의 꼬리 뒤에 따라붙었다.
구일행의 부상을 보며 분노가 치밀어 오른 장삼병이 검을 쥔 손에 기공을 주입하자 무려 3미터가 넘는 검강이 솟구쳐 올랐다.
“마… 맙소사, 저… 저것이 바로 큰 사부님의 검강이구나.”
“그렇다, 수혁아. 저것이 바로 무당의 태극혜검의 절초 뇌응당검이니라.”
푸슛!
키나비의 검이 허공에서 갈라졌다.
3미터가 넘는 길이의 검강이 날아들었다. 그러나 그 광채는 손톱만큼도 안 되어 보였다. 그만큼 장삼병의 검이 빨랐다는 의미리라.
성둥.
구일행과 수혁의 뇌천마공으로도 뚫지 못하던 카이버의 비늘 몇 조각이 카이버의 검에 여지없이 잘려 나갔다.
장삼병은 검을 허공에서 반원을 그리며 돌려 비늘이 벗겨진 꼬리를 향해 키나비의 검을 쑤셔 박았다.
3미터의 검강이 뇌전처럼 꺾였다.
무당검법의 태극혜검 중 뇌응당검과 함께 3대 절초로 불리는 무상뇌천검이 전개되자 그 철옹성 같던 가죽이 맥없이 무너져나가며 묵직한 꼬리가 양단되었다.
잘려진 꼬리 사이로 피보라가 일어나며 분수 같은 초록 선혈이 뿜어져 나오더니 장삼병을 덮쳐갔다.
“흡!”
장삼병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
그리고 그를 덮어 들어가는 피분수…….
치이이익.
“우왓!”
카이버의 초록색 피에는 산 성분이 들어 있었다.
그 강한 침식력 때문에 피가 튀어 장삼병의 몸에 묻어 들어갔고 피가 묻은 곳은 어김없이 녹아버렸다.
“사부니임!”
장삼병은 녹아버린 부분을 감싸 쥐며 태극태청신공으로 카이버에게서 벗어났다.
그는 허공으로 물러서며 검을 바투 잡고 내력을 키나비의 검에 실었다.
풍혼검강(風魂劍姜).
무당의 태극검법을 극성까지 연마하면 검과 몸이 하나가 된다고 하였다. 온몸을 감아 도는 내력이 검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 검에서 생성된 검강이 장력처럼 카이버를 향해 날아갔다.
퍼어엉!
“뿌오오오오!”
카이버의 머리가 고통으로 뒤로 젖혀졌다.
잘려나간 꼬리 부위로 퐁혼검강이 파고들어오자 온몸이 터져버릴 것 같은 통증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사부님, 검을 제게 주십시오.”
“안 된다. 놈이 상처를 입긴 했으나 네 상대는 아니야.”
장삼병은 수혁의 말을 잘랐다.
“두 분 역시 정상은 아닙니다. 제가 놈을 해치우겠습니다. 이미 저놈도 중상을 입었습니다. 더구나 저는 천세보혈주 덕분에 금강불괴, 만독불침의 육체를 얻었습니다. 제가 놈을 해치우겠습니다.”
날일자로 입을 굳게 다문 단호한 표정.
수혁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장삼병의 손에서 키나비의 검을 빼앗듯이 잡아들었다.
수혁의 몸을 싸고도는 내기와 외공이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그의 손을 감싸 돌던 회오리 같은 기가 검으로 파고들자 장삼병의 그것에는 못 미쳤으나 거의 3미터에 가까운 검강이 뿜어져 나왔다.
“놀랍다. 수혁이 저놈이 어느새 태극혜검을 완성했단 말인가?”
구일행은 쏟아져 나오는 피를 입으로 막으며 감탄성을 터뜨렸다.
쐐애애애!
“천마지보 전방속출!”
날쌘 제비 같은 몸놀림.
“태극검법 태극혜검 제4초 무상검결(無上劍決)!”
사선으로 그어지는 두 개의 검강이 십자가처럼 허공에 드리워졌다.
허공에서 두 개의 검강이 떨어졌다. 검강 끝에 또 하나의 검강이 떨어지는 것이다.
성둥성둥.
카이버의 머리가 불에 덴 것처럼 지져지며 잘려 나갔다. 수혁의 검은 카이버의 머리를 정확하게 수평과 수직으로 양단해 네 조각으로 만들어버렸다.
“태극검법 제5초 무상무류(無上無謬).”
수혁은 이내 몸을 비틀어 카이버의 등에 올라탔다.
그리고 그의 두꺼운 피부 사이로 키나비의 검을 쑤셔 넣었다.
태극검법의 무상검결이 무당을 대표하는 쾌검이라면 무상무류는 일초에 태산을 짓누르는 일초압태산의 검이다.
쫘아아악!
키나비의 검이 성난 해일처럼, 울부짖는 뇌성처럼 카이버의 몸을 척추선을 따라 양단해 들어갔다.
파콰콰콰!
초록 선혈이 분수처럼 쏟아졌다.
치이이이.
그러나 천세보혈주의 영약으로 만독불침의 몸이 된 수혁의 몸은 염산 같은 피보라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끝이다.”
수혁은 카이버의 갈라지는 몸통 한편을 밟고 솟구쳐 오르며 두 손에서 장력을 연속적으로 날렸다.
“탄지신탄!”
마치 산탄총 같은 구슬 모양의 기공들이 소낙비처럼 쏟아졌다.
파콰쾅!
그리고 괴물 같은 카이버의 신형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망가져갔다.
수혁에 의해서 이미 일도양단된 카이버를 향해 구일행이 피를 토하며 내력을 끌어올렸다.
그의 눈빛에서 이 모든 상황을 끝장내버리겠다는 굳은 의지가 엿보였다.
“뇌천마공 화호구장(火虎口掌).”
천하의 모든 것을 태워버린다는 마교의 절대마장, 화호구장. 극성으로 연마할 경우 화염으로 이루어진 호랑이가 아가리를 벌리며 천하만물을 태워버린다고 했다.
심곡 안에 뜨거운 열기가 솟구쳐 올랐고 입에서 불을 뿜어대는 호랑이의 신형이 다 죽어가는 카이버의 걸레같은 몸을 덮쳤다.
화르르르륵
수혁은 구일행의 내력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미 카이버의 공격을 받아 심상치 않은 내상을 입은 마계진마 사부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몸으로 입신의 경지에 들지 않고서는 구현할 수 없다는 화후구장을 펼쳐 보이지 않는가.
일렁이는 불꽃 속에서 잘려 나간 카이버의 머리에 있던 한쪽 눈이 번쩍 뜨였다.
“그흐흐흐흐, 으하하하하!”
미친 듯이 웃어대는 뇌성.
아니, 어쩌면 어른의 울음소리 같기도 한 괴성.
“그하하하하하!”
카이버는 미친 듯이 웃었다.
장삼병과 구일행, 수혁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뭔가 심상치 않은 조짐이…….’
수혁은 방심하지 않고 더욱 단단하게 키나비의 검을 움켜쥔다.
“전능하신 제우바신이시여, 주님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저 자들을 벌하여주소서. 자히 자히 러토리.”
알아들을 수 없는 주술 같은 말이 카이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구천의 하늘이 먹구름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구천을 비추는 두 개의 달이 숨을 죽였다. 시커먼 먹구름은 구천의 달을 덮어버렸다. 사위가 어둠에 잠겨 들어간다.
그 시커먼 어둠은 천장단애의 심곡뿐만 아니라 멀리 떨어진 파수꾼들의 와치 타워를 덮어버렸고 더 나아가서는 망자의 강을 흑색으로 물들였으며 마치 온 구천의 공간을 뒤덮어버릴 기세로 퍼져나갔다.
그하하하하하!
카이버의 웃음소리가 마치 뒤덮인 먹구름에 반사되어 메아리치는 듯했다.
어둠이 두 개의 달을 삼켜버렸을 때 수혁의 손에 들려 있던 키나비의 검에 울기 시작했다.
검명(劍鳴)!
분명 그것은 울음 소리였다.
그리고 키나비의 검병에 박힌 청명한 사파이어가 어둠 속에서 빛을 발했다.
키나비의 검.
파이오니아 대륙을 전란으로 휘몰았던 제1차 염마대전에서 인간으로는 최초이자 최후로 천계의 신족편에 서서 마족들과 싸웠던 인간들의 왕.
대장장이 드워프들의 신이자 제우바의 여섯 번째 처남이었던 발카누스가 주신 제우바의 명을 받들어 키나비를 위해 만들었다는 그 불멸의 검이 바로 키나비의 검이다.
우주의 어떤 갑주와 방패라도 뚫을 수 있다는 전설의 검.
주인을 위해 어떤 어려움이라도 알려준다는 그 검의 검병이 눈물을 흘리며 빛을 발하는 것이다.
“위… 위험하다.”
장삼병과 구일행은 동시에 신음성을 흘렸다.
강호에서 숱한 죽음의 고비를 넘긴 그들이기에 지금의 상황이 면사(偭死)직전임을 그들은 직감하고 있었다.
울부짖는 것 같기도 하고 미친 듯이 웃는 것 같기도 한 소름끼치는 시공의 지배자의 웃음소리가 커져가자 춘장단애의 바닥이 거북등처럼 갈라지기 시작했다.
뇌전 모양으로 갈라지는 지면을 뚫고 빛이 뿜어져 나왔다.
제비꽃이 만개한 것 같은 보랏빛의 향연. 죽음과 지옥을 상징하는 보라색들이 솟구쳐 오르더니 이내 지옥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장삼병과 구일행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화등잔만 해진 눈으로 땅바닥을 응시했다.
그 보랏빛의 속에서는 수천의 악귀들이 벌레들처럼 꿈틀거렸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장삼병과 구일행을 연호했다.
“나차태자 장삼병!”
원한에 사무친 귀신의 울음소리가 어둠의 구천을 뒤덮었다.
“마계진마 구일해앵!”
그 원혼들의 목소리는 구슬프게 메아리쳤다.
“이… 이럴 수가… 네… 네놈들은… 포달랍궁의 오추마(烏騅馬)!”
구일행의 이름을 구슬프게 연호하는 이들은 마계의 지존이던 구일행이 포달랍궁을 접수할 때 끝까지 그를 막아섰던 포달랍궁의 궁주 타라이마의 가신들.
구일행은 혼이 빠진 상태에서 중얼거렸다.
“너… 너는 팽가의 가주 팽정천… 네가 어찌… 더구나 그 모습은… 이… 이럴 수가, 지옥문이 열린 것인가?”
장삼병 역시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입술을 달싹거렸다.
팽가 가주 팽정천은 무림의 공적으로 지목된 혈사와문의 문주를 보호해줬다는 이유로 당시 무림맹의 맹주였던 무당 당주 장삼병에게 패하여 무공을 폐지당하고 단전을 절단시켜야 했다.
무림인에게 있어서 무공의 폐지는 죽음보다 더한 수치. 결국 팽정천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전생의 업보 덕이었던가, 그는 지옥으로 떨어져 카이버의 죽음으로 생긴 시간과 공간의 균열 때문에 지옥문을 열고 장삼병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 외에도 북해빙궁의 궁주 혈마흔과 그의 제자 제갈엽, 남궁세가의 남궁천, 남궁탄. 화산의 악유군, 지화유, 종남파의 진산월을 비롯해 청성, 곤륜, 아미, 혈화소문 등 강호의 숱한 고수들이 장삼병과 구일행의 발밑에서 마치 보랏빛 물감이 온몸에서 뚝뚝 떨어지는 듯한 몸짓으로 그들을 향해 손을 벌렸다.
“맙소사, 이 모든 것이 전생의 업보란 말인가…….”
장삼병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지옥문이 열리며 장삼병과 구일행의 사지가 나뭇등걸처럼 뻣뻣하게 굳어갔다.
“수혁아, 피해라. 예 있어서는 안 된다.”
“그래, 이 멍청아. 어서 도망쳐.”
구일행도 장삼병과 같은 생각이었다.
“사… 사부님들… 도대체 이게 무슨 조화란 말입니까?”
수혁의 눈은 당혹으로 가득 찼고 두 입술은 두려움으로 달싹거렸다.
그때 수혁의 두 눈에 지옥문을 열고 나타난 강호의 은원인들의 손길이 장삼병과 구일행의 발을 붙잡는 게 보였다.
“나차태자, 마계진마 사부니임!”
수혁은 거의 울부짖었다.
그의 눈에서 구슬 같은 눈물이 거침없이 쏟아졌다.
구일행과 장삼병의 두 눈은 그 어느 때보다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그들은 웃고 있었다.
“도망쳐, 멍청아.”
구일행은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장삼병과 구일행은 지옥의 악귀들에게 끌려 들어가며 마지막 내공을 단전으로 끌어 모았다.
“뇌천마공 파황신장!”
“무당장법 칠정중수!”
둘은 마지막 힘을 끌어내 수혁을 향해 장력을 날려 보냈다.
그러나 그 장법에는 파괴의 기운은 실려 있지 않았다. 말 그대로 순수한 손바람이 수혁을 분수의 물기둥처럼 쳐올렸다.
“사부니이임!”
수혁의 몸이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그의 얼굴은 눈물과 침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구천에서의 1년이 넘는 시간이 주마등처럼 흘러 지나갔다.
그리고 장삼병과 구일행은 어느새 보랏빛 악귀의 물결 속으로 잠겨 들어갔다.
“그하하하하하!”
미친 웃음소리가 구천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순간 어둠이 열리고 차마 눈을 뜰 수 없는 빛이 온 누리를 덮어버렸다.
그것은 말 그대로 찰나의 순간이었다.
태양의 분열을 보는 듯한 광열, 그리고 지옥의 불길보다 더 밝은 명광이 구천의 어둠을 뒤덮었다.
뜨거웠다. 온 우주를 불사르고 온 천지를 삼켜버릴 것 같은 열기와 빛 무리. 그 빛무리가 수혁을 향해 폭사했다.
수혁이 빌렸던 허리 끝까지 금발이 뒤덮인 이십대의 젊은 색목인의 몸이 강풍에 모래가 씻기듯이 살점과 뼈가 뜯겨 나가며 가루로 변했다.
공간과 시간의 지배자 카이버의 죽음이 가져온 시공의 균열로 우주가 요동치기 시작한 것이다.
“으아아아악!”
수혁의 손이 타들어가자 키나비의 검이 지면을 향해 낙하해가더니 마치 요술처럼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수혁이 빌린 육신이 완전하게 자취를 감춰버릴 때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구천에서는 오직 광인의 웃음이 넘쳐흐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