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2 천사의 얼굴을 한 소녀
해발 2894미터의 최고봉 마로드마야산을 축으로 미트라카와 국경을 이루기까지 양쪽으로 1천여 킬로미터를 누워 있는 시나 왕국의 최대 산맥 우시 산맥.
울퉁불퉁한 골짜기 위에 밀가루를 뿌려 놓고 칼로 재단해서 빚어낸 듯한 파이오니아 대륙의 최장 산맥인 우시 산맥은 미트라카 제국과 아시리움 왕국을 경계에 두고 있는 습곡산맥임에도 불구하고 몇 번의 장구한 지질시대에 걸쳐 침식하고 지반이 깎여 낮아졌으며, 남서부는 물결 모양의 구릉성 산지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아시리움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부 우시에는 중소규모의 많은 권곡빙하(圈谷氷河)들이 있으며, 마로드야산에서 뻗어나가는 지류들은 남부 우시를 기점으로 구릉지대를 이루고 있는 곳들이 많고 히나 왕국의 중소 마을들은 대부분 그 구릉을 거점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 우시 산맥의 서부 지류의 끝자락에는 도시의 발달된 문물이나 문화와는 조금 동떨어진 시골 히에나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바로 몇 년 전 폭풍우가 쏟아지던 날 밤, 다리 밑에서 친모와 양아버지를 죽이고 태어난 일렉트라가 살고 있는 곳이 히에나 마을이다.
히에나 마을에서도 촌락과 떨어진 곳에 두 채의 오두막집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조금 더 허름한 오두막집에서 지긋한 중년 여성의 고함 소리가 퍼져 나왔고 어린 소녀의 울음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이 독한 년, 이 악마 같은 년. 네년이 그렇게 쳐다보면 어쩌겠다는 거야?”
“흐흐흑, 어머니, 잘못했어요.”
소녀는 고개를 파묻고 흐느끼며 울었고 식탁 앞에서 마른 빵을 집어 꾸역꾸역 입 안에 밀어 넣던 중년 여성은 눈앞의 딸처럼 보이는 아이의 머리를 솥뚜껑 같은 손으로 때리며 구박했다.
“잘못? 네년이 뭘 잘못했는데… 저 눈깔 봐, 저 눈깔. 저 악마 같은 눈깔. 내 남편 잡아먹은 년, 이 죽일 년.”
여인의 입에서는 딸아이에게 차마 담지 못할 욕설이 거침없이 터져 나왔다.
“어머니, 잘못했어요. 제발 때리지 말아주세요.”
이제 겨우 아홉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의 얼굴에는 멍이 가득했으며 민소매 밖으로 드러난 팔과 반바지 밖으로 드러난 다리에는 생채기들이 가득 차 있었다. 지금의 상황만으로도 그 모든 상처들을 만들어낸 주범은 소녀의 어머니일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욕설을 퍼붓고 머리채를 잡고 흔들던 여인은 분을 못 이겼는지 방구석에 놓인 빗자루를 들고 딸아이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이 죽일 년. 내 남편 잡아먹은 년. 차라리 어디 가서 뒈져 버려, 이년아.”
비명소리와 욕설이 난무하는 오두막집과는 달리 담벼락에 목재를 수북이 쌓아 놓은 옆집에서는 꼬마아이가 아버지처럼 보이는 자에게 애원하듯 매달려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아버지, 제발 수잔나 아줌마를 말려주세요. 도대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저러다 일렉트라 잡겠어요. 아버지, 예? 아버지가 좀 가서 말려주세요.”
“언제 수잔나가 내 말 듣는 거 봤냐? 아무튼 이 애비가 가여운 일렉트라를 봐서라도 수잔나를 말릴 테니 딜란 너는 빨리 안개의 숲에 가서 아침에 잘라둔 나무들을 쌓아놓거라.”
딜란의 아버지인 브루스는 아들에게 나무 짐을 챙기라고 말 한 후 먼지 묻은 옷을 털어내며 옆집인 수잔나의 집으로 향해 걸어갔다.
안개의 숲을 향해 달려가던 딜란은 그래도 걱정이 됐는지 연방 뒤돌아보면서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숲으로 돌려놓았다.
브루스는 수잔나의 오두막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들어서자 일렉트라에게 매질을 하고 있던 수잔나는 새침하게 그를 쳐다본다.
“브루스 씨, 뭔 일이단감?”
“험, 험. 일렉트라, 우리 집에 가 있거라.”
브루스는 목에 뭐라도 걸린 사람처럼 헛기침을 하다가 일렉트라에게 자신의 집으로 건너가라고 한 후 능청스럽게 수잔나의 옆에 가서 앉았다. 일렉트라는 든든한 지원군이라도 만난 사람처럼 수잔나를 한번 쳐다본 후 방문을 열고 브루스의 집으로 건너갔다.
“저, 저놈의 눈깔, 저… 저놈의 눈깔 좀 보소.”
“수잔나, 진정해요. 제가 보기에는 한없이 맑고 예쁜 어린 소녀의 눈인데 도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
브루스는 눈알을 뒤집으며 게거품을 물고 악을 쓰는 수잔나 때문에 일렉트라의 눈을 바라봤다. 그러나 어린 일렉트라의 눈은 마치 수정처럼 맑고 티끌 하나 없이 깨끗했다. 그것은 마치 제우바 신의 은총을 받은 천사의 눈처럼 아름다웠다.
“그딴 소리나 할라고 온 거면 내 집에서 당장 나가버려요.”
“수잔나, 이제 그만 할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행크가 죽은 지도 9년이 다 돼가는데 아직도 그 기억을 떨쳐버리지 못하시는 거예요? 일렉트라 저 아이를 행크가 죽으며 준 선물이라고 생각하시면 되잖아요. 도대체 언제까지 저 어린것을…….”
“집어치워요. 당장 나가요, 당장. 브루스 씨는 모른당게요. 저년이 어떤 년인지. 저 악마 같은 년, 저년의 해맑은 웃음 속에는 악마의 잔인한 미소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브루스 씨는 아직 모른다고!”
수잔나는 목이 찢어져라 고래고래 악을 쓰며 브루스의 가슴을 밀쳐버렸다.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수잔나를 안고 있던 브루스도 화가 났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도대체 언제까지 그럴 건가요?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브루스는 화를 내며 문을 박차고 집을 나와버렸다.
그리고 일렉트라가 바들바들 떨고 있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방 안에서 딜란의 인형을 안고 있던 일렉트라는 브루스가 방안으로 들어오자 방을 나가려고 한다.
“일렉트라, 왜 나가려고 하느냐?”
“딜란 오빠도 없고 해서요…….”
일렉트라는 브루스 아저씨의 눈치를 살피며 방 벽을 타고 브루스를 견제하는 듯한 조심스런 동작으로 방을 나가려고 하였다.
“일렉트라, 이리 오너라.”
“…….”
일렉트라는 수잔나에게 매 맞던 때보다 훨씬 긴장하고 겁먹은 모습으로 브루스를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불쌍한 것… 쯔쯔쯔, 너처럼 예쁜 천사를 수잔나는 왜 그렇게 못살게 구는 건지, 원.”
브루스는 혀를 차며 일렉트라에게 다가갔다.
“…….”
일렉트라의 얼굴에 짙은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며 왕방울 같은 두 눈에 공포가 자리 잡았다.
“어허, 일렉트라, 겁먹지 말거라. 이 아저씨는 수잔나처럼 때리지 않을 거야. 내가 얼마나 너를 예뻐하는데…….”
브루스는 능구렁이처럼 일렉트라에게 어느덧 다가가 있었다.
“이 불쌍한 것.”
그는 정말 일렉트라를 불쌍하게 생각하는 사람처럼 눈물을 그렁거리며 일렉트라의 두 손을 꼬옥 거머쥐었다.
그러나 곧 이어진 그의 행동은 일렉트라를 가엾게 여기는 사람의 행동이 아니었다. 그는 일렉트라의 손을 자신의 바지춤으로 가져가기 시작했다.
일렉트라는 호수 같은 두 눈을 크게 뜨면서 브루스 아저씨의 손길을 뿌리쳤다.
“어허험. 일렉트라, 겁먹지 말래두.”
일렉트라가 겁을 먹고 주저앉자 브루스는 일렉트라를 얼굴에 대고 바지를 서서히 내리기 시작했다.
“꺄아악!”
일렉트라는 비명을 지르며 브루스 아저씨를 밀쳐버린 후 방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커험험.”
브루스는 다 잡은 고기를 놓친 사람처럼 입맛을 다시며 아쉬워했다. 그 표정이 이번 일이 처음이 아니었음을 짐작하게 했다.
“고것 참, 어린것이 어쩜 저렇게 색스럽게 생겼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정말 크면 히나 왕국을 뒤흔들고도 남을 미인이 될 거야.”
그는 한번 욕정이 발동해서인지 좀체 사그라지지 않는 색욕 때문이었는지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바지춤을 만지작거리며 다시 수잔나의 방으로 건너갔다.
“그딴 잡소리나 할 거면 오지 말랬잖아요. 나가세요, 나가!”
수잔나는 브루스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고함부터 질러댔다.
“수잔나, 아까는 내가 미안했소. 그동안 행크도 없이 어렵게 일렉트라를 키워왔는데… 쯔쯔, 가여운 사람.”
브루스는 수잔나에게 다가가 슬며시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수잔나는 좀 전과는 달리 예전처럼 다정하게 다가오는 브루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고 했던가, 남편 행크가 죽은 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브루스는 자신에게 큰 의지가 되어줬다.
행크가 죽고 8개월 정도 지났을 때 브루스는 그녀에게 접근해 왔고 그 후부터 육체적 정을 나누는 사이로 둘의 사이는 발전해왔다. 깊은 밤 남자의 속살이 그리울 때면 마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브루스는 자신에게 다가왔고 수잔나는 못 이기 척 그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일렉트라가 여덟 살이 되던 해부터 브루스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다정다감한 눈빛을 주는 횟수도 줄어들어갔고 밤이면 자신의 침소를 찾던 일도 줄어들었다.
원인을 알 수 없었던 수잔나는 자신의 성적 매력이 떨어져서였겠거니 생각하며 목욕도 해보고 머리 모양도 바꿔보며 브루스를 유혹한 적도 있었다.
브루스의 아들 딜란과 양녀 일렉트라가 밖에 나가 놀 때면 은근히 집 밖에 있는 우물에서 희멀건 허벅지를 내놓고 등물을 하며 브루스를 유혹해보기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렉트라를 바라보는 브루스의 눈빛에서 수잔나는 지금까지 왜 브루스가 자신을 멀리해왔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런,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겨. 설마, 저 어린것을 브루스 저 인간이… 아니여, 아니여. 내가 미친 거신가? 자꾸 왜 이러지?’
수잔나는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했으나 어느새 일렉트라에 대한 증오와 질투심이 더해갔다.
그리고 몇 달 만에 브루스가 자신에게 다정스럽게 접근해오자 외로운 과부 수잔나의 마음은 속절없이 무너져갔다.
한편 브루스의 집에서 뛰쳐나온 일렉트라는 딜란을 찾아 마을 앞 놀이터까지 갔다. 그러나 그곳에는 동네 아이들만이 몇 명이서 소꿉놀이를 하고 있을 뿐 딜란 오빠는 보이지 않았다.
하릴 없이 집으로 돌아오던 일렉트라는 집 근처에 이르러 방 안에서 들려오는 비릿한 여성의 신음소리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것은 발정 난 짐승의 울부짖음 같기도 했고, 덫에 걸린 들짐승의 고통스런 신음소리 같기도 했다. 가끔 들려오는 사내의 거친 호흡소리와 뒤섞인 비릿한 인간들의 끈적끈적한 숨소리를 들으며 일렉트라는 한 발짝, 한 발짝 조심스럽게 자신의 집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문틈으로 방 안의 광경을 목격한 일렉트라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방 안에는 벌거벗은 두 육체가 뱀처럼 꿈틀거리며 서로의 몸을 탐하고 있었다. 그것은 짐승들의 교미 같기도 했고 언젠가 딜란과 함께 봤던 고대 영웅들이 레슬링하는 모습 같기도 했다.
“음… 아…….”
“허억허억.”
수잔나와 브루스의 거친 숨소리를 듣고 있던 일렉트라의 눈에 불꽃이 일었다. 수정처럼 맑던 일렉트라의 두 눈은 지옥의 화염으로 사로잡혀갔고 그녀의 몸 안에서 뜨거운 불기둥이 일어났다.
일렉트라의 머릿속에는 자신을 학대하고 구타하던 수잔나의 마녀 같은 모습들이 스쳐 지나갔고 자신을 성추행하던 브루스 아저씨의 모습도 교차해갔다.
그 순간 일렉트라는 심장이 방망이질 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곧바로 딜란네 집 모퉁이에 있는 겨울철 장작에 불을 지피기 위해 사용하는 지티스 나무 열매를 짜서 만든 지티스 기름이 떠올랐다. 불을 붙이면 엄청난 휘발성을 함유한 덕에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활활 타오르는 지티스 기름통을 들고 온 일렉트라는 집 곳곳에 지티스 기름을 뿌려댔다.
철철철철.
수잔나의 집 곳곳과 수잔나의 방을 중심으로 지티스 기름이 흥건하게 스며들어갔다. 그리고 연이어 일렉트라는 자신의 팔뚝만 한 쇠꼬챙이를 주워 와 문 고리 사이에 끼워 박았다. 어찌나 단단한지 안쪽에서는 힘으로 문을 열기 힘들 것이다.
브루스의 뜨거운 남성을 허락하고 있던 수잔나는 지티스 기름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브루스에게 물었다.
“브루스 씨, 어디서 지티스 지름 냄시 안 나요?”
“기름은 무슨 기름, 수잔나가 지금 극도로 예민해져서 그런 거야. 조금만 기다려.”
“가만 있어봐요. 어디서 타는 냄시도 나는디…….”
“어허,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지금 거기 신경 쓸 때가 아냐. 수잔나, 좀 더…….”
브루스는 수잔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한층 더 격렬하게 동물스런 움직임을 강화시켜갔다.
이상한 예감이 들어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수잔나는 하마터면 심장마비에 걸릴 뻔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녀의 눈이 문틈으로 보이는 일렉트라의 눈과 마주쳤기 때문이다.
“브… 브…루스 씨… 저… 저… 저기…….”
“그래, 알았어. 알았어. 거의 다 끝나간다니까.”
“그… 그…것이 아니라… 저… 저…….”
문틈으로 보이는 일렉트라의 눈빛은 지옥에서 방금 올라온 악마의 눈빛과도 같았다. 지옥의 화염과 안타크티카의 냉기가 동시에 서려 있는 일렉트라의 눈빛을 본 후 수잔나의 등에는 소름과 함께 식은땀이 퍼져 나갔다.
문틈을 응시하던 수잔나는 결국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자신과 브루스 씨를 마녀처럼 쏘아보고 있던 일렉트라의 얼굴에 잔인한 미소가 새겨졌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수잔나는 일렉트라의 손에 들려 있는 불붙은 장작더미를 보았다.
“꺄아악!”
“아, 거참! 왜 그러는 거야?”
브루스는 수잔나를 향해 화를 버럭 냈다. 그리고 곧바로 그도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헉… 부… 불이야!”
그러나 강한 휘발성을 가진 지티스 기름은 나무로 된 수잔나의 집을 유황 지옥의 불기둥처럼 순식간에 집어삼켰고 방 안에는 매연과 함께 뜨거운 화염이 수잔나와 브루스를 덮쳐 들어갔다.
“으아악!”
“브루스 씨, 뜨, 뜨거워요.”
알몸인 상태로 두 사람은 옷가지 몇 개로 중요한 곳을 가린 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 앞으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수잔나는 연기에 질식해서 먼저 쓰러졌다.
“브루스 씨, 저를 버리지 말아주세요… 저… 저 좀 살려…주세요.”
신음을 삼키며 수잔나는 브루스의 발을 붙잡았다.
퍼억
브루스는 수잔나의 얼굴을 향해 발길질을 가한 후 문을 향해 뛰어갔다.
“이… 이… 나쁜… 놈.”
수잔나는 마지막 힘을 짜내 브루스의 발을 잡아 넘어뜨렸다.
“이런 미친…….”
브루스는 넘어진 채로 문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 기어갔다.
우지끈.
그러나 그 순간 문 위의 대들보가 불기둥에 휩싸여 브루스의 등 위로 무너져 내렸다.
“으아악!”
집안을 삼켜버릴 것 같은 강렬한 화염과 질식할 것 같은 연기는 그렇게 수잔나와 브루스를 덮쳐버렸다. 그리고 죽음의 목전에서 브루스와 수잔나는 문틈으로 보이는 일렉트라의 눈빛을 발견했다.
“허억…….”
문 틈 사이로 일렉트라의 하얀 이빨이 두려울 정도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둘은 그렇게 화상을 입은 채로 고개를 떨구었다.
수잔나와 브루스의 죽음을 확인한 일렉트라는 벌겋게 달아오른 쇠꼬챙이를 수건으로 덮어 빼내었다. 그리고 자신의 집 주위에 있는 덤불숲에 쇠꼬챙이를 던져버렸다.
안개의 숲에서 잘라놓은 나뭇짐을 정리하던 딜란은 자신의 집 방향에서 불기둥이 치솟는 것을 보자 꾸려놨던 짐을 팽개치고 산비탈을 달려 내려왔다.
‘아버지, 일렉트라, 제발 무사해야 해.’
산비탈을 뛰어내려오던 딜란의 마음에는 집을 떠나올 때보다 몇 배로 강한 불안감이 똬리를 틀어갔다.
그리고 마을에서도 브루스와 수잔나의 집 쪽에서 불기둥과 연기가 솟구쳐 오르는 걸 보고 손에 물통을 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 일렉트라, 아버지는… 그리고 수잔나 아줌마는…….”
처음으로 그곳에 달려온 딜란은 불붙은 집 앞에 웅크리고 앉아 울부짖고 있는 일렉트라를 발견하고 놀라서 물었다.
“디… 딜란 오빠… 엉엉엉… 우리 엄마 살려줘. 저 안에 우리 엄마가 있단 말이야. 엉엉엉!”
일렉트라는 친모가 죽은 것보다도 더 서럽게 울었다.
“오빠… 우리 엄마 살려줘. 엉엉엉…….”
일렉트라의 눈에서는 샘물처럼 쉬지 않고 굵은 눈물이 쏟아져 나왔고 딜란의 어린 그녀를 품에 안고 위로하고 달랬다.
뒤늦게 물통을 들고 달려와서 불난 집에 물을 끼얹던 사람들도 울부짖는 일렉트라를 보며 눈물을 삼켰다.
“쯔쯔, 이제 저 어린것을 어찌할꼬. 수잔나 그 사람, 저 어린것에게 그렇게도 모질게 하더니.”
“그러게 말이야. 결국 저 어린것을 두고 행크의 뒤를 따라가고 마는구먼.”
“쯔쯔쯔…….”
“아, 뭣들 하고 있어? 불이나 끄지 않고.”
사람들이 저마나 한마디씩 하고 서 있자 마을 촌장이 그들을 나무랐다. 사람들의 손놀림이 분주해지는 동안에도 일렉트라는 딜란의 품에 안겨 울부짖다가 기절하고 말았다.
‘일렉트라… 걱정하지 마. 너는 내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줄게. 그리고 어쩌면 수잔나 아줌마가 죽은 것은 너에게 더 다행일지도 몰라.’
그때 나이 11살이던 딜란은 친동생처럼 예뻐하던 기절한 일렉트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를 평생 지켜주겠노라고 맹세했다.
그때까지 딜란은 수잔나의 집 안에 자신의 아버지인 브루스가 같이 죽어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몰랐고 그 화제를 일렉트라가 일으켰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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