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81화 〉레아2 (181/200)



〈 181화 〉레아2

몹시 곤란한 얼굴로 한참을 망설이던 그녀가 겨우 입을 뗐다.

“할머니, 우르프스 왕국까지 너무 먼데 힘들지 않으시겠어요? 가는 도중에 건강이 더욱 나빠지실까 걱……”
“두려워 말거라.”

주름이 가득한 멜라니아의 얼굴은 지쳐보였지만 그럼에도 레아를 향해 다정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네 눈을 보면 안다. 네 심장이 이미 네가 있어야할 곳을 가르쳐주고 있어.”
“제가 있어야할 곳이라뇨? 어렸을때 마족의 공격을 피해 홀로 동굴에서 지낸것 말고는  이 마을을 벗어나 본 적이 없어요.”
“에구, 딱한 것.”

멜라니아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탄식을 내뱉었다.

“이제 너도 알아야겠지. 내가 죽기 전에 줄 선물이라고는 진실을 말해주는 것 밖에 없겠구나. 이런 상태로 널 남겨두고 떠나는게 마음에 걸리니.”
“네……?”

레아의 눈빛이 흔들렸다.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음을 깨닫자 혼란스럽고 두려웠다.

‘혹시 그 꿈과 관계된 것일까?’

레아는 서둘러 입을 열었다.

“그동안 할머니께서 아프셔서 말씀을 못드렸는데…… 요즘 계속 이상한 꿈을 꾸고 있어요. 만나본적도 없는 인간이에요. 누군지도 모르겠는 인간이 계속 꿈에 나와서 저를 괴롭혀요.”

그녀는 이내 두 손을 저으며 황급히 말을 고쳤다.

“괴롭힌다는게 저한테 나쁜 짓을 한다는게 아니예요. 그냥…… 옆에서 따뜻한 미소를 지어주는 그 사람을 보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녹아내릴 것 같아요. 그게 저를 힘들게 해요.”
“늑대구나. 늑대가 맞을거야.”
“늑대요? 늑대라면 방금 전에 할머니께서 말씀하시던  사람인가요?”
“그래,  놈이란다. 널 힘들게 할 사람은 그 놈뿐이지. 못된 놈 같으니.”

멜라니아가 쯔쯔 혀를 차다 상냥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 꿈이 악몽처럼 느껴지니? 아니면 깨고 나서도 기분이 좋으니?”
“뭐라고 말씀드려야할지…… 이런 말하기 엘프로서 부끄럽지만 꿈속에서 저는 늘 인간인 그와 상관과 부하의 관계로 나와요. 어디가서 말도 못하게. 아르키나한테도 제대로 말 못했죠.”

레아는 황당하다는듯이 양손을 펼쳐보이며 오늘 새벽에  꿈을 회상했다.
꿈속에서 늑대와 무슨 대화를 나누었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때의 감정만은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

“그를 보면 마음이 아파요. 항상 엄한 표정에 농담이라곤 전혀 할줄 모르는 건실하고 우직한데다, 그 모습이 뭐랄까 왕 때문에 고생하는게 눈에 보여서 도와주고 싶다고 해야하나 곁에서 챙겨주고 싶은 욕구를 불러 일으켜요. 그리고 저도 설레이기도 하고…… 같이 있는게 기쁘기도 하고…… 사실 저는 꿈에서 깨고 싶지 않아요. 누군지도 모르는 그와 계속 같이 있고 싶었다고요. 같이 있는게 그저 좋았어요. 그렇기에 깨고나면……”

혼란스러운 레아의 시선이 멜라니아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슬펐어요.”

그녀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깨고 나면 침대에 멍하니 앉아서 한동안 눈물을 흘려요. 이유를 모르겠어요. 늑대란 인간은 대체 누구죠? 그 사람이 왜 절 아프게 하는 걸까요? 할머니.  꿈은 악몽인가요?”
“악몽이 아니야. 그건 슬픈 꿈이란다.”
“전 그 사람을  적도 없는데 왜 가슴이 아픈건데요?”

꿈속에서 느꼈던 감정이 다시금 떠오르자 레아는 북받친 나머지 금세 눈물을 흘렸다.
멜라니아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는 레아를 보며 흐뭇하게 웃더니 떨리는 손으로 힘겹게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진실과 마주할 용기가 있니? 네가 아는 삶이 파괴될 것이란다. 현재의 삶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되겠지.”
“…어째서요?”
“분명 넌…… 고민할 겨를도 없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갈테니까. 중독된 것처럼 집착하게 될거야.”
“집착이요?”

레아는 멜라니아의 눈을 마주보며 의문을 품었다.
눈물을 닦는 것도 잊은 채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눈물이 글썽거리는 그녀의 두 눈동자는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어떤 사연이 있든 인간들과 얽히고 싶지 않아요.  곧 다른 일족의 엘프와 결혼해요. 삼촌과 함께 마족을 물리쳐 부모님의 원수를 갚을거예요.”

레아는 그렇게 작별인사를 남기고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갔다.

그날 밤, 레아는 울면서 잠에 들었다.
그리고 또다시 꿈을 꾸었다.

그녀를 감싸주고 보호해주던 옷과 신발이 갑자기  수 없는 힘에 의해 모조리 찢겨져 나갔다.
두 팔로 젖가슴을 가리고 당황스러워 하는 와중에 눈앞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인간이 나타났다.
멜라니아가 말하던 늑대란 인간이었다.

“널 보살펴주는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야 해. 내게 와줘.”

늑대는 자신을 껴안고 사랑한다고 속삭여주었다.
레아는 안도하며 편안함을 느꼈다.
곧 두 사람은 널따란 침대 위에서 뜨거운 정사를 나누었다.
늑대의 페니스는 레아의 깊은 곳을 사정없이 찔러댔다.

“아흑, 흐으응!”

그와의 정사는 무척 만족스럽고 좋았다.
굵고 단단한 페니스가 자신의 하반신을 짓누를때마다 온몸에 퍼지는 짜릿한 쾌감이 너무도 생생했다.
레아는 수차례 오르가즘을 느꼈다.
그리고 마침내 늑대가 사정을 하려던 찰나 꿈에서 깨어났다.

“아……”

눈을 떴을때도, 자신을 설레게 만드는 늑대의 친근한 얼굴과 그가 맹렬하게 찌르던 감각이 사타구니에 남아있었다.

이 창피한 꿈은 대체 뭘까.
왜 인간과 정사를……?
혼란스럽고 수많은 의문이 솟구쳤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레아는 매우 아쉬웠다.
그가 사정까지 해줬다면 더욱 좋았을텐데.
제대로 끝을 맺지 못한  아쉬움이 너무나도 커 한참을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며 누워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오늘도 역시나였다.
잠에서 깨고나면 으레 눈물이 나왔다.
주체 못할 정도로 흘러나온 눈물이 그녀의 시야를 가렸다.
상체를 일으켜 세우며 두 무릎을 감싸고 우는 그때 방문이 열리며 아르키나가 들어왔다.

“언니?”

그녀는 아침부터 펑펑 울고 있는 언니를 보고 놀라더니 한달음에 침대로 달려와 레아를 껴안았다.

“왜 울어? 어디 아픈거야?”

아이 달래듯 등을 토닥이며 묻자 레아가 훌쩍거리며 말했다.

“가슴이 아파.”
“가슴 어디가? 복통이야?”
“보고 싶어……”
“응?”
“그가 보고 싶다고. 꿈속의 인간이.”

아르키나는 포옹을 풀며 정색하고 레아를 마주봤다.

“그 꿈 신경쓰지 말라니까.”
“너 혹시 그 사람 아니? 꿈속에 나오는 그 사람 알고 있지?”

아르키나는 주저없이 대답했다.

“내가 어떻게 알아? 언니  그래. 진정해.”

그러나 레아는 여동생의 말에 신뢰가 가지 않았다.
어제 멜라니아가 했던 말이 어느새 그녀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진실과 마주할 용기가 있니? 네가 아는 삶이 파괴될 것이란다.’

레아는 울음을 뚝 그쳤다.
야무지게 입술을 꾹 다문 그녀는 손등으로 남은 눈물을 훔치며 침대에서 걸어나왔다.
그녀가 대뜸 옷장으로가자 살짝 경계심이 깃든 아르키나의 시선이 따라왔다.

“어디 가려고?”
“요르가니스의 샘터에 가서 기도 하고 싶어.”

그것은 핑계였다.
레아는 밖으로 나가서 진실을 캐고 싶었다.
얼핏 차갑게도 느껴졌던 아르키나의 눈매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악몽을 꾸지 않게 해달라고 신께 기도드리게?”
“응.”
“잘 생각했어. 얼른 잊어버려 그딴 인간. 애초에 수명이 긴 엘프와 100년도 못사는 인간이 어울린다는게 말이 돼? 정말 말도 안되는 꿈이야. 걔들은 늙어도 우리한테는 꼬마나 마찬가지라고.”
“멜라니아 할머니도 꼬마처럼 보이니?”
“그 할머니 말로는 자기는 인간이 아니래. 마녀라는 특별한 종족이라며 자랑스러워 하던데?”

레아는 집을 나와 마을을  둘러보았다.
어제의 마을과 오늘의 마을이 매우 다른 기분이 들었다.
어제의 마을은 포근하고 안락한 보금자리였다면, 오늘의 마을은 모든 것이 거짓으로 만들어진 환상 같았다.

4년전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떴을때 그녀의 머릿속은 백지장이었다.
심지어 언어조차 잊어버린 상태였다.
말하는 법을 처음부터 다시 배웠다.

따라서 현재 레아의 기억은 삼촌과 아르키나, 마을 사람들이 말해준 것들로만 도배되어 있다.
그녀가 직접 겪고 느꼈던 과거는 아무것도 없다.
오로지 말로만 전해들은 공상뿐이다.

“레아야, 좋은 아침이구나.”

이웃에 사는 아저씨가 밝게 인사를 건네왔다.

“밥 먹으러 식당에 가는 길이니?”
“네, 오늘 아침 메뉴는 뭐예요?”
“네가 싫어하는거.”
“아 그 끈적끈적한 수프……”
“피부에 좋은거란다. 지금보다  예뻐지려면 챙겨먹는게 좋아.”

레아는 잡담을 나누다 슬쩍 딴얘기를 꺼냈다.

“아저씨, 제가 어렸을때 동굴에 살았다고 했잖아요.”
“그랬지. 너희 부모님은 마족의 공격을 피해 널 안전한 동굴로 피신시켰단다.”
“그 동굴의 위치가 어딘지 아세요?”
“동굴의 위치?”
“인간 세상에 있다고 들었는데 정확한 위치를 알고 싶어서요.”
“거, 거긴 왜?”

뜻밖의 질문이었는지 아저씨의 얼굴에 당혹감이 깃든다.
레아는 모른척 말했다.

“한번 가보려고요. 거기 가면 그 시절이 기억날까해서.”
“인간 세상은 위험하단다. 가지 않는게 좋아. 어, 얼른 밥 먹으러 가거라. 늦으면 못 먹어!”

아저씨는 후다닥 자리를 피했다.
빠르게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레아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수상해.’

“레아야, 거기 서서 뭐하니? 무슨 생각해?”

이번에는 건너편에 사는 아주머니다.

“식사하고 오셨어요?”
“응, 난 방금 먹었다. 너도 거기 가는 길이야?”
“네.”

레아는 밝게 인사를 건네며 그녀와 대화를 나누다 민감한 질문을 꺼냈다.

“삼촌께 듣기로는 제가 마족의 암흑마법에 걸려 10여년간 잠들어 있었다고 하는데, 마족은 왜 저를 죽이거나 데려가지 않은걸까요? 무력한 꼬마 엘프를 왜 재우기만 했는지 혹시 이유를 아세요?”
“그, 글쎄?”

아주머니 역시 당황스러워하는 기색이 엿보인다.

“갑자기 그런걸 알아서 뭐하게? 이미 다 지난 일이란다. 무시해 무시.”

그러면서 조금전 아저씨처럼 또 후다닥 도망갔다.

“아침밥이 맛이 없었나  아무도 말을 안해주는거야.”

혼자 남게된 레아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누구 하나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다.
여동생조차도 의심스럽다.
갑자기 자신이  마을에서 이질적인 존재처럼 느껴졌다.
자꾸만 마음이 흔들리는 가운데 멜라니아의 말이 계속 귓가에 멤돌았다.

‘분명 넌…… 고민할 겨를도 없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갈테니까.’

얼마 뒤, 레아는 침대에서 곤히 잠든 멜라니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할머니.”

레아가 살짝 흔들어 깨우자 멜라니아가 눈을 떴다.
노파는 반쯤 감긴 눈으로 레아를 발견하고는 희미하게 미소부터 짓는다.

“드디어 결심이 섰니?”
“……”

레아는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제게 진실을 알려주세요. 그 늑대라 불리우는 인간은 대체 누구죠?”
“현재 우르프스 왕국의 왕이란다.”
“왕이라고요? 꿈속의 그 사람이 왕?”
“그러엄 왕이지. 널 위해 죽도록 싸우다 우연히 얻어낸 자리야.”
“저를 위해 싸우다니요?”

멜라니아는 슬며시 웃기만하다 입을 열었다.

“다시 물으마. 각오가 되었니?”

레아는 아무 말없이 고개만 살짝 끄덕여 보였다.

“어제와 달리 두려워하지 않는구나. 알았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들은 전부 사실이고 무너졌던 다리가 다시 이어져, 그간 길을 잃고 방황하던 너를 인도해줄거란다.”

멜라니아는 고향이 그립지 않았으면 하지 않았을 이야기를 술술 털어놓기 시작했다.

“이 파란만장한 이야기의 시작은 네 죽음에서부터 시작한단다.”
“제 죽음이요?”

레아는 깜짝 놀랐다.

“그래, 넌 한번 죽었었어.”
“그럴리가요?”

자신이 죽었었다니?
전혀 상상치도 못한 전개였다.
그런데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너로인해 늑대는 사지가 잘렸지.”

의자에 앉은 레아는 멜라니아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고, 얼마나 몰입했냐면 멜라니아가 오늘 내일 하는 병자라는 사실도 잊은  더욱 자세히 이야기해달라고 보챌 정도였다.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녀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아울러 크게 감동 받은 구간도 있었다.
그리고 가슴이 저릴 정도로 슬픈 장면도 있었다.

“늑대는 모든 것을 다 잃고도 오직 너만 바라보며 힘을 내서 살았지. 넌 그 녀석의 하나뿐인 신이나 마찬가지였어. 솔직히 난 그놈을 칭찬하는데 인색하지만 끝까지 널 아꼈던 그 마음만큼은 대단히 칭찬해주고 싶구나.”
“지금은 어째서 저를 찾아오지 않는건가요?”

레아의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멜라니아는 주름진 눈을 피곤한듯 감았다가 다시금 힘겹게 떴다.

“놈을 마지막으로 본 날, 그날은 바람에서 피 냄새가 날 정도로 기분 나쁜 날이었지. 프레드릭왕이 자신이 가진 모든 병력을 데리고 나타났어. 늑대를 죽이기 위해. 하지만 누구도 늑대를 쓰러뜨릴 수 없었지. 결국 왕은 죽고 늑대는 복수에 성공했다. 그리고 보석상자에 들어있던 널 되찾았지.”

멜라니아는 담요 밖으로 손을 뻗어 허공을 더듬거리며 레아의 손을 찾았다.
레아가 손을 잡아주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싸움이 끝난  아공간에 들어가 너를 만나고 나온 늑대는 절망한 사람처럼 슬퍼보였단다. 그때 녀석이 눈물을 흘리는걸 처음 봤어. 그 융통성 없고 싸가지 없는 놈이 우는걸 처음 봤다고. 지 운명이 병신이 돼도 울지 않던 놈이 너랑 헤어지는게 슬퍼서 울더라니까? 늑대는 진정으로 널 사랑했단다. 하지만 엘프들과의 약속때문에  놔줘야만했지.”

레아는 눈물과 함께 흘러내린 콧물을 삼키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요.”
“응? 뭐라고 말했니?”
“가자고요 그곳에. 그 늑대란 사람이 있는 우르프스 왕국에.”
“결혼은 어쩌려고?”
“안해요, 그런거.”
“삼촌이 실망할텐데?”
“지금 삼촌을 신경쓸때가 아니잖아요. 저를 끔찍이 아껴주던 소중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데!”


***

“안왔다고요?”

왠지 모를 불안감에 레아를 찾아 요르가니스의 샘터를 찾아온 아르키나는 신자들로부터 뜻밖의 소리를 들었다.

“확실히 안왔습니다. 만약 레아님이 오셨다면 눈부시게 빛나는 그 분을 다들 보려고 난리가 났을테죠.”
“알겠습니다.”

아르키나는 요르가니스의 샘터를 뒤로하고 찜찜한 기분으로 곧장 레아의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니겠지. 설마 아닐거야……”

그녀의 걸음은 점점 빨라졌고, 이윽고 레아의 집에 도착하자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창문을 통해 따사로운 햇살이 내려쬐는 집안은 텅 비어 있었다.
그리고 급히 벗어놓은듯한 옷들이 침대 위에 흐트러진 채 널려있는게 눈에 띄었다.

“설마!”

다급히 옷장문을 열었다.
 길을 떠날때나 가끔 입는 레아의 여행복과 단검, 그리고 활과 화살통이 사라져있었다.

“언니!”

아르키나는 황급히 집을 뛰쳐나갔다.
그녀는 곧장 살라두일이 있는 정령의 회관으로 향했다.

“언니가 사라졌어요!”

책상에 앉아있던 살라두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슨 말이야?”
“아침부터 언니의 상태가 이상하길래 혹시나 해서 찾아다녔는데 아무데도 보이지 않아요! 빨리 병사들을 시켜 찾아보세요!”

살라두일은 즉시 병사를 풀어 레아의 행방을 쫓았다.
얼마 후, 한 부관이 뛰어와서 다급히 보고 했다.

“멜라니아도 사라졌습니다!”
“멜레니아까지……?”

놀란 표정을 짓던 살라두일의 안색이 점점 굳어져갔다.
그러다 순간 분노가 솟구쳤다.

“당장 레아를 잡아와! 절대 마을을 벗어나지 못하게 막아야한다!”
“예!”

부관이 나간뒤 살라두일은 구석에서 넋이 나간   있던 아르키나를 돌아봤다.

“너도 어서 준비하렴. 레아를 인간 세상으로 보내선 안돼. 거기 가봤자 또 죽기만 할거야.”

그러고는 거치대에 있던 창을 손에 쥐고는 씩씩거리며 방을 나갔다.
뒤에 남겨진 아르키나는 나직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인간의 손을 탄 엘프는 영영 자연으로 돌아올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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