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3화 〉결전3
긴 창을 든 병사들이 밀집대형으로 길을 막아섰다.
농민 출신인 그들은 화려한 갑옷을 입은 버나드를 두려워 하는듯 했으나 동시에 경멸 어린 시선으로도 쳐다보았다.
“넌 악, 악마야……!”
한 병사의 말에 주변 병사들의 눈동자에도 증오심이 차올랐다.
“넌 괴물이야!”
“신께서 우리를 보호해주실 것이다!”
“죽어라 이 악마!”
버나드는 짧게 심호흡을 한뒤 손에 쥐고 있던 마검을 고쳐 잡았다.
“와라.”
금세 비명이 난무했다.
버나드의 빠른 칼질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이리떼들을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
낫으로 풀을 베어내듯 닥치고 베어 넘기며 밀집대형을 파괴하고 거침없이 전진했다.
“오, 오지마!”
눈앞의 병사가 사색이 되어 있었다.
버나드는 그의 심장에 주저없이 칼을 박았다.
“쿨럭!”
병사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피를 토하더니 상체가 뒤로 벌렁 넘어가며 죽어버렸다.
그의 가슴에서 미처 칼을 뽑기도 전에 다른 이들의 창칼이 날아들었다.
팍!
뒤에서 누군가 도끼로 버나드의 등을 세차게 내려쳤다.
갑옷 덕에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팅!
먼 곳에서 날아온 화살이 투구를 때리고 바닥에 떨어졌다.
버나드는 신경 쓰지 않았다.
탁탁!
옆에서 병사들이 창으로 연신 옆구리를 찔렀다.
찌를수록 창촉만 부러져 버렸다.
이처럼 여기저기서 달려들었으나 전부 허사였다.
최강의 방어력을 자랑하는 이드리스의 갑옷은 무척 단단하고 견고하여 아주 미세한 흠집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버나드는 태연히 죽은 자의 심장에서 칼을 뽑아들고 자신을 공격하는 짓은 쓸모없는 행위라는 것을 증명하듯 귀찮게 달라붙은 병사들을 향해 크게 칼을 휘둘렀다.
“크악!”
주위에 있던 자들이 한방에 나가떨어졌다.
잘린 두 팔을 보며 비명을 지르는 병사도 있었다.
버나드는 한손으로 그의 뒷목을 붙잡고 배에 칼을 쑤셔 넣었다.
푹!
“끄윽!”
칼을 뽑으며 뒤로 돌았다.
그러자 중무장을 한 기사가 기다렸다는듯이 육중한 양손검을 내려쳤다.
탕!
정면으로 제대로 맞았고, 평범한 투구였다면 완전히 찌그러져 머리통이 박살날 정도로 강력한 타격이었다.
그러나 버나드는 건재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친 기사는 손목이 저릿한 감각에 당황하며 주춤거렸다.
버나드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담담히 기사를 제압한뒤 그의 머리채를 붙잡고 갑옷의 이음새 사이로 마검을 밀어 넣었다.
푸욱!
옆구리를 찔린 기사가 눈을 부릅떴다.
칼이 깊게 들어갈수록 살을 파고드는 부드러운 감촉과 함께 기사의 고통스런 비명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런 와중에도 어디선가 날아온 쇠뇌의 화살들이 투두둑 버나드의 온몸을 때리고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세 사람이 동시에 달려들어라! 칼만이라도 빼앗아!”
기사들이 고성을 지르며 연달아 칼을 휘둘렀다.
버나드는 그냥 맞아주면서 그들을 베고 찔렀다.
가끔씩 여유가 있을땐 쓰러진 그들의 투구를 벗기는 여유까지 보였다.
목이 드러나면 통째로 절단하는 일 없이 가볍게 경동맥만 잘라버리고 풀어주었다.
목이 반쯤 잘린 자들의 목에선 붉은 피가 벌컥벌컥 분수처럼 솟구쳤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움직일때마다 코끝을 찌를 정도로 피비린내가 짙게 났다.
바닥을 흥건히 적신 피들이 소리없는 아우성을 내지르는 것 같았으나 그럼에도 버나드는 무념무상이었다.
흥분하지 않고 차분했다.
그는 잔잔하게 앞으로 나아갈뿐이었다.
그런 버나드를 바라보던 병사들은 지레 겁을 집어먹었다.
“쓰, 쓰러지질 않아!”
“저놈은 악마야! 악마라서……! 제길!”
두려움에 휩싸인 병사들과 달리 버나드는 우직한 돌바위처럼 침묵을 지키며 걸을뿐이었다.
지치거나 어딘가 부상 당한 기색도 없다.
그는 처음 나타났을때와 똑같이 늠름한 모습이었다.
“뒤, 뒷놈들에게 맡기자! 우리 같은 잡것들은 애당초 무리였다고!”
약 칠십명 가량의 병력이 죽은 것을 기점으로 병사들은 쉽게 달려들 생각을 못하고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버나드가 앞으로 걸어나가도 누구하나 달려들지 못했다.
그가 가까워지면 대형을 이루고 있던 병사들이 헐레벌떡 피하며 순식간에 양쪽으로 갈라졌다.
버나드가 살짝 고개만 돌려도 자신을 쫓아오는줄 알고 가슴이 철렁하는 자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래, 물러가거라.”
버나드는 병사들이 열어준 길을 저벅저벅 걸어 나가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막지 말아라.
경고컨데 날 막지 말아라.
“나는 너희 말대로 악마다.”
그는 저 멀리 언덕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앉아 있는 증오스런 자가 그에게 무한한 힘을 제공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1진과의 싸움은 싱겁다 싶을 정도로 쉽게 끝이났다.
버나드가 지나간 자리에 남아있던 병사들은 바닥에 털썩 주저 않으며 안도의 한숨을 토해냈다.
“이, 이봐.”
“후우…… 왜?”
“싸우느라 몰랐는데 지금보니 나 오줌 지렸어. 바지가 축축해……”
***
“쳇, 오합지졸이 따로 없군.”
프레드릭왕은 어이없다며 얼굴을 찌푸렸다.
버나드 한 사람한테 1진이 맥없이 무너졌음에도 그는 당황하는 기색은 커녕 여유만만이었다.
“여보게 안소니, 저기 병신처럼 도망가는 놈들이 보이나? 저런 놈들이 멋스럽게 기사도를 들먹이며 계집들한테 꽃이나 받아처먹고 있었단 말일세.”
“적당한 조치를 취해놨으니 노여움을 푸십시오 전하. 이미 전하의 친위대가 출동해서 도망치는 자들을 사냥하는 중입니다.”
“한 놈도 놓치지 말고 붙잡아서 목을 자르라고 해. 장대에 놈들의 머리를 매달아서 군기를 바로 세워야 해.”
“옳으신 말씀입니다.”
안소니 후작은 먼 곳을 바라보고 미소지었다.
“그나저나 늑대도 곧 무너질테지요.”
그는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전설적인 업적을 남긴 마스터울프도 결국은 인간. 초반이라 기세가 살아있는 것뿐이지 지치는 건 시간문제이옵니다. 더군다나 우리에게는 왕국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영걸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을 가진 크록 경과 디아나 경이 있지 않사옵니까.”
프레드릭왕은 포도주를 한 모금 마시며 껄껄 웃었다.
“셋이 싸우는걸 어서 빨리 보고 싶군.”
“그 두 유망주에게 늑대가 아주 혼쭐이 날테죠. 아무리 잘났다한들 그의 전성기는 끝났습니다. 심지어 세븐로얄도 없고요. 이를테면 꼬리 잘린 늑대가 돌아다니는 겁니다.”
***
농민이 섞여있던 1진과 달리 2진은 고위귀족 파슬라프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한 명령 체계와 그럴싸한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휘하 부대가 전부 기사와 종자들로만 이루어져 체계적인 전략, 전술과 더불어 높은 수준의 조직력을 자랑했다.
버나드가 이백명에 달하는 1진을 상대로 몸에 흠집 하나없이 괴물같이 돌파하는 광경을 직접 눈으로 목격했지만, 2진의 병사들은 누구 하나 두려움에 떨지 않았다.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결국은 단 한 사람.
천여명을 상대로 언젠가 무너지리라는 것을 병사들은 확신하고 있었다.
물론 치열하게 싸우다 누군가는 희생을 당하게되리란 것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싸우다 죽는 것을 명예로 아는 자들이었다.
게다가 프레드릭왕은 버나드를 쓰러뜨리는 자에게 작위와 영지를 약속했다.
왕도와 무척 가까운 땅을 포상으로 내놓았기에 중앙무대 진출의 교두보나 다름없었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어쩌면 왕의 핏줄을 이어받은 공주도 덤으로 얹혀주지 않을까, 하며 2진의 병사들은 미래에 한 파벌의 대표가 된 자신의 가문을 상상하며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막상 전투가 시작되자 전투의 양상은 1진과 별반 다를게 없었다.
버나드의 방어력은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무지막지 했고, 2진의 지휘관들은 기마병, 병기, 궁수 등 온갖 것들을 총동원하여 그의 갑옷을 파괴하려 했으나 파괴는 커녕 죽는 자들만 늘어날 뿐이었다.
한 사람이라 우습게 보고 욕심내서 무너뜨리려다 전열이 흐트러지고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꼴이 앞서 1진과 매우 흡사했다.
“아악!”
“피, 피해! 크아아악!”
병사들의 비명이 쉬지 않고 들려왔다.
한쪽에서 들려오는가 싶으면 곧이어 다른쪽에서도 연이어 터져나왔다.
그만큼 버나드의 움직임은 재빠르고 칼을 휘두르는데 있어 일절 망설임이 없었다.
마치 전쟁터의 폭군을 방불케하며 자유롭게 날뛰어 다녔다.
한편, 병사들 한가운데서 회오리가 몰아치는 듯한 버나드의 활약을 보고 있자니 그때까지 멀찌감치 떨어져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크록과 디아나는 몸이 쑤셨다.
크록은 손을 가만두지 않고 계속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며 투덜거렸다.
“제기랄, 언제 명령을 주실런지.”
디아나 또한 버나드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입을 열었다.
“놈은 단단한 것도 모자라 날카롭기까지 하군. 모든걸 다 갖췄어. 마치 너와 나의 장점만 합쳐놓은 것 같다.”
크록이 비웃었다.
“무서워서 심장이 벌렁벌렁 해?”
“그 반대다.”
디아나는 눈을 부릅뜨고 미소지었다.
“놈이 날 흥분시키고 있어.”
그녀는 주먹을 꽉 움켜쥐며 더이상 못참겠다는걸 말해주듯 움켜쥔 주먹을 미세하게 떨었다.
“빨리 저자를 죽이고 싶어.”
그 와중에도 어떤 기사 하나가 버나드에게 돌진하며 세차게 검을 휘둘렀다.
버나드가 맞받아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의 몸은 칼과 함께 두 동강이 났다.
“놈은 지쳤을 것이다! 절대 물러서지 마라! 계속 두드리면 조만간 열릴 것이다!”
“가자! 끝없이 달려들어 우리의 힘을 보여주자!”
지휘관들은 목청이 찢어져라 부르짖으며 병사들을 끝없이 재촉했다.
하지만 버나드는 여전히 기세가 등등했다.
벌써 베어넘긴 자만 백명이 넘었음에도 지친 기색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었다.
‘마검이 내게 기운을 주고 있어.’
적 지휘관들이 병사들에게 힘을 내라고 외쳐대는 것처럼 마검 피의 숙청도 버나드에게 계속해서 움직이라는듯 그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있었다.
버나드가 지나가는 곳마다 바닥이 붉게 물들고 시체가 쌓였다.
로잘리나는 넋을 잃고 바라보며 자신의 입이 벌어진지도 몰랐다.
그녀의 곁에 있던 줄리안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줄곧 무표정이었다.
2군이 자랑하던 기사들이 하나씩 쓰러지는 중이었다.
버나드는 한마디로 굉장했다.
그는 능수능란하게 막고 찌르고 베거나 혹은 잡고 던지고 꺾거나 차고 비틀며 병사들을 제압했고, 싸울때 그의 눈동자는 눈앞의 사람이 아닌 다음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점점 이곳과 가까워지고 있네.”
쉬지않고 달려드는 기사들을 상대로 무난히 길을 열어가는 버나드를 바라보던 프레드릭왕의 입가에는 어느새 여유가 사라져 있었다.
“늑대가 나 모르는 새에 엄청난 힘을 가진 아티팩트를 손에 넣었나 보군.”
“저 갑옷 말입니까?”
안소니 후작이 묻자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피를 뒤집어 썼음에도 여전히 빛을 잃지 않는 저 갑옷이 아까부터 거슬리지 뭔가.”
“보통의 갑옷은 아닌게 분명합니다. 뭔가 수를 쓰지 않으면……”
“좋은 수야 이미 준비되어 있다네. 다만 언제 써야 재밌을지 간을 보는 중이었지.”
“예?”
프레드릭왕이 굳은 안색을 펴며 흐뭇하게 웃었다.
“늑대는 이미 귀신이나 다름없어. 죽은 놈이 설쳐대고 있는 꼴이지.”
안소니 후작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왕의 의자 옆에 서 있던 궁중 마법사장이 나섰다.
“1년전 세븐로얄을 봉인할때 우리 마법사단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버나드 경의 장기속에 폭발 마법을 심어놨지요.”
그가 사악하게 웃어보였다.
“전하께서 명령만 내리시면 지금 즉시 터뜨릴 수 있습니다.”
“그, 그 말인즉슨……!”
놀라는 안소니 후작을 보며 프레드릭왕이 껄껄 웃었다.
“성문을 뚫지 못하면 안을 먼저 공략하는게 병법의 기본이지.”
안소니 후작의 얼굴에 급 화색이 돌았다.
“역시 전하시옵니다! 신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가 크게 감탄하며 아첨을 떠는 사이 마법사장이 왕에게 물었다.
“언제 쓰시겠습니까?”
“지금이 적기일세. 이 정도 거리면 주문이 통하겠지?”
“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런데 벌써 쓰실 생각이십니까? 크록 경과 디아나 경의 싸움이 궁금하시다면서요.”
“생각이 바뀌었네. 병사들이 죽어나갈수록 내 힘이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지. 아껴야 하지 않겠는가. 시작하시게.”
“뜻이 그러하시다면 지금 즉시 실행에 옮기겠습니다.”
마법사장은 가볍게 예를 올린 후 마법사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버나드의 뱃속에 오래 묵혀두었던 폭발 주문을 가동할 준비가 완벽히 끝나 있었다.
같은시각.
“하, 항복! 항복이라고!”
바닥에 주저앉은 기사가 울부짖으며 자비를 바라고 있었다.
버나드는 무심한 태도로 마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곧바로 내려쳤다.
푹!
“빌거면 아까 기회줄때 떠났어야지……”
잘려나간 기사의 머리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것을 뒤로하고 버나드는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2진의 병력도 얼마 남지 않았다.
버나드의 손에 죽은 자는 그리 많지 않았으나 일부러 싸움을 회피하는 자들이 상당히 많았다.
현재로선 다음 3진을 상대할 체력은 충분했다.
“별다른게 없다면 말이지.”
단지 빈 말이었을 뿐인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갑자기 배 오른쪽에 자리한 장기인 담낭쪽이 뭐에 찔린 것처럼 슬슬 아파져왔다.
버나드는 평소에 아프지 않던 곳이 아픈 것을 보고 의아하게 여겼지만 그대로 무시한 채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걸으면 걸을수록 몸이 점점 이상해졌다.
입안에서 침이 마르며 썩은 고름 맛이 나기도 했고 이유모를 식은땀과 함께 뱃속의 통증은 점차 심해졌다.
그러다 한순간 말도 못할 극심한 통증이 찾아왔다.
“크윽!”
버나드는 제자리에 주저앉으며 한쪽 무릎을 꿂고 가슴을 움켜쥐었다.
멀리서 지켜보던 로잘리나가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왜 그러지……?”
주변에 있던 동료들의 웃음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탈이 났나보군. 그럼 그렇지 저 많은 병사들을 혼자서 상대하는게 쉬울줄 알았나.”
“분명 근육에 쥐가 났을거야. 한 시간 이상을 싸웠으니 지금쯤이면 올때도 됐지.”
내내 말이 없던 줄리안은 시선을 옮겨 왕쪽을 바라보았다.
근처에 모여있는 마법사들이 보였다.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한눈에 파악한 그는 코웃음을 쳤다.
‘전하께서 보험을 들어놓으셨군.’
좌우간 버나드의 몸 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이드리스가 다급히 캐물었다.
-무, 무슨 일이오!? 어디 다친거요? 갑옷이 파손된 곳은 없는데……?
“모, 모르겠어! 갑자기 뱃속이 이상해! 크윽!”
버나드는 헉헉 숨을 내쉬며 재빨리 먼 곳을 쳐다봤다.
왕이 자리한 언덕.
그 부근에서 흰 로브를 걸친 마법사들이 한 곳에 집결해있는 광경을 발견했다.
그들은 저마다 양손을 들고 어떤 주문을 열심히 영창하고 있었다.
그로인해 버나드는 그들이 외치는게 자신을 향한 공격 주문이라고 직감했다.
‘마법!’
버나드의 눈빛은 초조함으로 물들었고 뱃속의 통증은 자칫하다가는 기절해버릴 정도로 더욱 심해졌다.
다급했던 그가 재빨리 소리쳤다.
“이드리스! 오른쪽 완갑 열어!”
-뭐요!? 그랬다간 팔이 보호받지 못할거요!
“어서!”
버나드의 들끓는 고함 소리에 깜짝 놀란 이드리스가 즉시 오른팔의 완갑을 해제했다.
손가락을 뒤덮었던 철갑이 빠르게 위로 올라가며 흉갑의 겨드랑이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손가락 끝부터 어깻죽지까지 완전히 드러나자 버나드는 숨이 막히는 고통을 억누르며 오른쪽 겨드랑이에 칼날을 위로 향한 채 끼웠다.
-대체 어쩌려는 거요!?
“보고 있으면 알게 될거야.”
힘겹게 대답한 그는 이내 이를 악물며 힘껏 오른팔을 잘라버렸다.
-버나드!
잘려나간 팔이 허공에 비산하는 순간 뱃속의 장기가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터져버리며 그 자리서 즉사했다.
버나드의 상체가 털썩 쓰러지는 광경을 목격한 왕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 아하하하하하! 저것 보게! 저것 보라고!”
그는 황급히 빈 술잔을 시녀에게 들이밀었다.
“빨리 가서 피를 받아오거라! 생피 한잔 쭈욱 들이키고 싶구나! 한때 우리 왕국의 영걸이었던 늑대의 피니까 불로불사의 효험이 담긴 만능특효약일거야!”
기사 한 명이 가까이 다가가서 바닥에 쓰러진 버나드의 상태를 꼼꼼이 살폈다.
갑옷의 틈새 곳곳에서 핏물이 흘러나와 바닥에 번져나가는 중이었다.
“어휴 피봐라~ 엄청 나오네.”
터져버린 내장의 비린 냄새도 역하게 풍겨왔다.
“근데 뭐 때문에 죽었지? 쳇 아무튼 잘 됐나.”
기사는 한손으로 코를 막은 채 팔을 높이 들고 크게 흔들어 보였다.
“죽었습니다!”
멍하니 지켜보고 있던 병사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