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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4화 〉제국으로 향하는 여정65 (164/200)



〈 164화 〉제국으로 향하는 여정65

“대단해!”

데보라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레아 씨를 되살린다고요? 그게 가능해요?”

반면에 버나드는 침착했다.
침대에 걸터 앉아있는 아르키나를 빤히 바라보던 그는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프레드릭왕이 보냈나? 달콤한 미끼를 던져  함정에 빠뜨리라고 시키든?”
“경계하지 않아도 돼요. 전 당신을 수년전부터 추적해왔습니다. 정확히는 14년전부터죠. 당신이 우리 언니를 인간세계로 데리고간 이후부터.”

순간 버나드의 머릿속에 동굴에 살던 레아를 데리고 떠나던 광경이 뇌리에 스쳐지나갔다.
 엘프는 레아가 동굴에서 홀로 살았다는걸 알고 있는건가?

“인간 언어를 잘 구사하는군. 발음까지 정확할 정도면 인간들과 수년이상 어울려왔다는 증거지. 누가 널 교육시켰지?”
“독학입니다. 사라진 언니를 찾기위해 수년간 인간의 언어를 배우기 위해 노력했죠.  결과물입니다.”

버나드는 잠시 뜸을 들인뒤 물었다.

“레아는  무리에서 떨어져 지냈나? 어린 여자 아이를 야생에서 홀로 살게 버려놓고는 이제와서 살리겠다고?”
“버린게 아닙니다. 저와 언니가 갓난아기였던 시절, 마족들이 엘프의 숲을 쳐들어왔어요. 마을이 불타고 엘프들은 학살됐죠. 그때 부모님은 걷지도 못했던 우리를 살리기 위해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어요. 언니는 숲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동굴에, 저는 부모님이 길들이신 독수리가 요람바구니를 들고 멀리 날아가준 덕분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죠.”
“내가 레아와 처음 만났을땐, 그녀는 십대 소녀 정도의 나이였어. 최소 10년 이상을 동굴에서 혼자 지내게 했다고? 말이 되나?”
“엘프는 자연과 친구입니다. 인간은 숲에 홀로남으면 두렵겠지만, 엘프는 다릅니다. 새들이 다가와 지저귀고 풀은 흔들흔들 춤을 춥니다. 그리고 짐승은 엘프를 두려워하지 않죠. 먼저 다가와서 친근하게 인사를 해줍니다. 인간의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는건 금물입니다. 그리고……”

아르키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죽고 부모님까지 돌아가셨기에 언니와 저를 신경써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언니가 동굴에서 지낸다는 사실과 제가 독수리의 둥지에서 알들과 자라는걸 아는 이가 10여년동안 아무도 없었으니 도와줄 수가 없었던 거죠.”

그녀의 말이 끝나자 버나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르키나의 말이 나름 신빙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그 와중에 레아, 레아라는 이름을 연신 입밖으로 꺼내는 일은 언제나 힘들었다.
버나드는 입술을 깨물었다.
레아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건 괴롭지만, 그래도 해야만했다.

“너도 어려서 언니가 있었다는 것을 몰랐을텐데 독수리와 자랐으면서 어떻게 레아의 존재를 알았지?”
“간단합니다. 독수리가 알려줬으니까요.”

그녀가 재차 덧붙였다.

“엘프를 인간의 상식으로 이해하려는 행위는 금물입니다.”

그리고 말을 이어나갔다.

“제가 어느 정도 크자 독수리는 오래전 마족들에게 초토화된 고향으로 저를 데려갔죠. 그곳에서 타다 남은 기록들을 통해 제가 누구인지를 간략히 파악했고, 이후 독수리는 언니가 지내던 동굴을 찾아주었습니다. 부랴부랴 동굴에 도착했을땐, 언니는 이미 떠나고 없었죠.”
“우리가 떠난 직후에 왔나보군.”
“네, 당신이 언니를 데려가는 바람에 우리 자매는 영영 만나지 못했습니다.”

여태 차분한 설명을 이어가던 그녀에게서 처음으로 목소리에 변화가 있었다.
약간 울컥하는 느낌이랄까.

“그 후, 언니를 찾기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습니다. 무려 14년이란 세월이 흘렀죠. 그런데 지난 1년을 제외하고 13년이란 시간동안 단서 하나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버나드는 그녀의 심정을 헤아리며 입을 열었다.

“레아는 나를 따라 비밀요원이 되었지. 그 어디에도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을거야. 우리는 유령같이 살아왔으니까.”
“그렇더군요.”

약간의 일렁거림이 있었던 아르키나의 목소리는 이내 평온을 되찾았다.

“그러다 1년전 어떤 엘프가 왕비와 왕세자를 살해한 사건을 우연히 접했습니다. 언니의 행방을 찾는데 가속이 붙기 시작한건 그때부터였어요. 그때부터 양파껍질 벗기듯 하나씩 알게 되었죠. 그리고 그 노력의 결실이 지금 당신과 만난 것입니다. 아울러 최근 군사를 움직인 프레드릭왕 덕분에 당신의 위치도 쉽게 파악이 됐고요.”

버나드는 긴 한숨과 함께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불쑥 물었다.

“나를 원망하나?”
“버나드는 레아 씨한테 미안해하고 있어요!”

데보라가 끼어들며 호소하듯 말했다.

“우리 버나드를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지금도 레아 씨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

아르키나는 묵묵히 뒤를 돌아보며 데보라를 한번 응시한뒤, 다시금 창가에 서있는 버나드를 바라봤다.

“부탁이 있습니다.”
“말해. 부담없이.”
“레온왕조의 유산인 블랙드래곤의 심장에 대해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단어가 그녀의 입에서 나오자 밤하늘을 응시하고 있던 버나드는 시선을 돌려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그게 왜?”
“심장은 둘로 나뉘어져 하나는 프레드릭왕이 가지고 있고, 다른 하나는 제국의 황제가 가지고 있죠.”
“거기까지 조사했나?”
“언니를 되살리는데 꼭 필요한 소재이기 때문입니다. 신께서 그것을 원하시고 있어요.”

버나드는 혀를 찼다.

“프레드릭이 가지고 있는건 어찌 해볼 수 있다쳐도 여황제가 가지고 있는건……”

왕의 자녀들이 벌이는 2차 걷는 사자 전쟁이 여황제가 가진 블랙드래곤 심장의 반쪽을 찾는 여정이라지만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아직 확신할 수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버나드 자신은 곧 프레드릭왕과 생사를 건 결전을 치러야만했다.
그 한판 승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없을지 장담할 수 없건만 여황제가 가진 블랙드래곤의 심장 반쪽까지 신경쓰려니 참 난제다.

하지만 버나드는 각오를 다지며 살며시 주먹을 움켜쥐었다.

“레아가 살아날 수만 있다면, 제 아무리 불가능한 일이라도 해내야겠지.”

그가 물었다.

“블랙드래곤의 심장을 얻기 위해 애써 날 찾아온건가? 이제야 알았어. 네 목적은 그것이었군.”
“네, 맞습니다. 블랙드래곤의 심장은 엘프인 제가 직접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그와 밀접하게 관련된 인간의 도움이 필요한 일입니다. 만약 블랙드래곤의 심장이 아니었더라면 제가 당신과 만날 일은 단언코 없었을테지요.”

목소리에 희미한 원망이 깃들어있었다.

“한가지 알아두셔야할 것이 있습니다. 서로간의 신뢰를 위해 숨기지 않고 명백히 밝히겠습니다.”

버나드는 손짓으로 어서 말하라고 독촉했다.

“신께서는 부활에 대가가 따른다고 하셨습니다.”
“대가?”
“첫번째 대가는, 블랙드래곤의 심장을 바치는 것이니 문제 없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대가는, 우리 엘프측에서 마련한 생명의 불꽃을 바치는 것이니 이것도 문제 없습니다.”
“그 다음?”
“세번째 대가는, 언니의 기억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있습니다.”
“설마 기억으로 장난질을 치겠다는건가?”
“부활한 언니는 모든 기억을 잃게 됩니다. 신께서는 ‘고난이 없이는 기쁨을 누릴 수 없다’ 말씀하시며 언니의 기억을 지우겠다 하셨습니다.”
“빌어먹을 신이군.”

아르키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버나드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따라서 이건 제 부탁입니다. 언니가 부활하거든……”

코앞에서 발걸음을 멈추며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당신은 떠나주십시오. 언니를 데리고 엘프들이 사는 세계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언니가 있어야 할 곳은 당신 곁이 아니라 우리 엘프들의 세계입니다. 부디 언니가 영원히 당신을 모르게끔 도와주세요.”

***


아침 햇살에 눈이 떠졌다.
침대에서 나와 주전자에 담긴 물을 따라마셨다.
몇 시간전 아르키나의 말을 떠올리며 멍하니 서있는 와중에 문득 침대에서 곤히 단잠을 자고 있는 데보라가 눈에 들어왔다.
풍만한 한쪽 젖가슴을 드러낸 채 세상 모르게 자고 있었다.
그녀에게 이불을 잘 덮어준뒤 방을 나와 서쪽 성벽으로 향했다.

“앗, 영웅님 아니십니까?”

경비병과 짧게 인사를 나누고 계단을 지나 성벽 위를 올랐다.
성벽 위에서 찬 바람을 쐬며 아침 안개에 가려진 아득히 먼 곳, 조만간 왕의 군대가 올 방향을 바라보고 있자니 보라색 스카프를 머리에 두른 멜라니아가 나타났다.

“어젯밤 레아의 동생이 다녀갔다.”
“당신한테도 갔었나.”
“블랙드래곤의 심장을 손에 넣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더구나. 레아를 되살린다는데 이처럼 기쁜 일이 어딨겠느냐. 바로 그러마 그랬지.”

멜라니아는 옅은 미소를 지은 채  곳을 바라보았다.

“아침 바람에서 피냄새가 나는구나. 프레드릭이 머지 않아 당도하겠어.”
“나도 슬슬 준비를 해야겠지.”
“레아의 기억이 지워진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네 녀석과 떨어졌으면 한다는 이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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