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3화 〉제국으로 향하는 여정64 (163/200)



〈 163화 〉제국으로 향하는 여정64

샤를은 눈을 휘둥그레떴다.
멜리사는 무슨 상황인지 몰라 버나드를 빤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왕궁? 조각상……?”
“거짓말 하지마! 네가 그분일리 없어!”
“땅의 요정 우드.  얼굴은 기억 못해도 우드는 기억나시겠죠? 제가 우드로 불러달라 했으니까요.”

샤를의 눈이 더할 나위 없이 동그래졌다. 우드란 단어를 듣고 매우 놀라는 눈치였다.

“왜 말하지 않았어……?”
“전 어둠이고 당신은 빛이었으니까요. 제 삶은 당신이 상상했던 것과 많이 다릅니다. 우드는 다정하고 친절한 사내지만 버나드는 왕의 명을 받들어 수많은 사람들을 암살한 자객입니다. 샤를리나님의 기억속에 좋은 추억으로 남길 바랐습니다. 진실은 냉혹하니까요.”
“모르겠어……!”
“이베타리의 말대로 저는 왕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샤를리나님을 이용했습니다.”
“거짓말!”

샤를은 눈을 질끈 감고 외친뒤 가늘게 몸을 떨었다.

“당신이 우드일리가 없어……! 우웩!”

머릿속이 무척 혼란스러웠는지 갑자기 헛구역질을 하고 몸을 비틀거렸다.
멜리사가 서둘러 그녀를 부축하며 소리쳤다.

“영주님! 하녀들을 불러주십시오! 샤를리나님을 방으로 모시겠습니다!”
“여봐라! 샤를리나님을 방으로 모시거라!”

어른들이 소리치는 상황에 긴장한 영주의 아들의 몸에 변화가 일었다.
피부가 빠른 속도로 뱀비늘로 변해갔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눈치를 보던 딸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아이는 금세 파충류 수인인 리저드처럼 변했다.

“죄, 죄송해요! 무, 무서워서!”
“아, 안돼! 아무데서나 변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아들과 딸은 뱀꼬리를 흔들며 황급히 만찬장을 뛰쳐나갔다.
성안의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인지 누구도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샤를은 클레어와 하녀들의 부축을 받으며 방으로 돌아갔고, 만찬은 어수선하게 끝이났다.

“아내의 잘못을 너그러이 용서해주십시오. 죄송합니다!”
“신경쓰지 않습니다.  쉬십시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아내한테 단단히 일러두겠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영웅님!”
“알았으니 그만, 그만.”

거듭 사과하는 해링턴 영주를 뒤로하고 방으로 향할때 멜리사가 다가왔다.

“전부터 수상한 감이 있었지만, 역시나였네요.”

복도에서 마주친 그녀는 꽤나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규정상 신변을 구속한다음 조사를 시작하는게 맞겠지만 오히려 일만 만들뿐이겠죠. 당신이 호락호락한 사람도 아니고. 앞으로 어쩔 생각이죠? 우리가 어찌 대해주면 좋겠어요?”
“샤를리나님을 모시고 계속 제국으로 가주십시오. 저는 여기에 남아 왕의 군대와 싸우겠습니다.”
“혼자서요? 기막힌 말을 굉장히 쉽게하네요.”
“무리란걸 잘 알지만, 프레드릭왕이 노리는건 저 하나 입니다. 따라서 제가 떠나면 샤를리나님은 무사하실겁니다. 멜리사 경은 지금까지 해왔던대로만 해주면 됩니다.”
“당신만 사라지면 모두가 안전하다. 이건가요? 너무 일방적인 사고방식이네요. 우리는 따지고보면 당신 하나만 믿고 여기까지온거예요. 기억안나요? 당신이 2차 걷는 사자 전쟁에 참가하지 않으려했던 미셸님을 설득했잖아요. 그런데 이제와서 모든걸 내팽게치시겠다?”
“몸만 잠시 멀어질뿐 난 아킨테 가문을 떠나는게 아닙니다. 한 배를 탄 우리의 여정은 계속  것이고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입니다. 왕의 군대와 맞서 싸우는 것도 샤를리나님을 돕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싸움이 끝나면 돌아오겠단 말인가요?”
“산다면요.”

멜리사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터뜨렸다.

“전하한테는 왜 쫓기게 된 건가요?”
“난 한때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비밀조직을 이끌며 전하를 모셨던 사람입니다. 1년전 아말리아 왕비가 살해당한 사건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겠죠?”
“그 일을 이 나라에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요?”
“이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아무튼  일이 원인이 되어 사형을 당할뻔했죠. 하지만 하늘이 도와주셨는지 마녀 멜라니아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아, 생각났다. 밤의 늑대들?”

멜리사가 갑자기 엉뚱한 단어를 꺼내며 손뼉을 마주치자 버나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럼 당신이 밤의 늑대들의 수장?”
“마스터울프라고 하죠.”
“아까 경황이 없어 마스터울프가 뭔가 했는데 설마  마스터울프였다고요!?”

상기된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말이 다소 빨라졌다.

“미셸님께서 밤의 늑대들을 참고하여 우리 백검대를 만드셨죠. 세상에! 미셸님께서 늘 말씀하시던 사람이 지금 눈앞에 있다니!”

멜리사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시간나면 사인 좀 해주실래요?”
“예?”
“이럴때가 아니네요. 빨리가서 수정구를 통해 미셸님께 보고드려야겠어요. 난 오늘밤 벌어진 일을 전부 보고할거예요. 당신이 원치 않아도  직무이니 당장 가서 알려야겠어요!”

멜리사는 곧장 뒤로돌아 복도를 뛰어갔다.

“미셸님께서 아시면 정말 기뻐하실거야!”

그녀는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마스터울프 씨! 아니 버나드 경! 아직 얘기 안끝났으니 내일 아침에 다시 이야기해요! 잘 자구요!”

버나드는 미소를 지으며 작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러죠.”

멜리사가 떠난뒤 한동안 복도에 서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환한 보름달 아래 도시의 전망과  멀리 산자락의 풍경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영롱하면서 아름다웠다.
평화롭고 신비하다는 생각이 드는게, 지금 자신이 처한 잔혹한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 든다.
아울러 언제였을까, 달빛이 은은하게 비추던 밤 함께 달을 바라보던 레아가 떠올랐다.

‘전 영원히 단장님을 따라다닐거예요. 단장님 같은 성격은 곁에서 누가 돌봐주지 않으면 금세 마음이 메마를테니까요.’

오래전 그녀의 말이 뇌리를 스쳐지나가며 별안간 가슴이 뭉클해졌다.
한참을 우두커니 창밖 너머 밤하늘의 별빛을 올려다보며 넋을 놓고 있는 와중에 문득 누군가 소매를 잡아당겼다.

“버나드? 버나드!”
“……?”

옆을 돌아보니 이게 왠걸, 성안의 하녀들과 똑같은 하녀복을 입고있는 데보라가 서있었다.
성안에 초대받지 않는 손님인 그녀는 들키지 않으려는 것처럼 허리를 낮게 숙인채 요리조리 눈치를 보며 작게 속삭였다.

“여기 서서 뭐해?”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
“버나드가 보고 싶어서 몰래 들어왔어. 누나 잘했지?”

그녀가 해맑게 웃는다.
그렇잖아도 마음 한구석이 외로웠던 버나드, 연인을 보자 절로 미소가 피어났다.

“얼른 방으로 가자.”
“응. 근데 혼자 여기 서서 무슨 생각했어?”

발걸음을 옮기려던 버나드는 동작을 멈추고 창밖을 내다봤다.

“레아가 생각났어.”
“그렇구나.”

데보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슬픈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버나드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레아만 떠올리는 그를 향한 서운함도 담겨 있었다.

“그때 레아의 말을 들었으면 어땠을까. 레아, 밤의 늑대들, 로토…… 모두가 살아있었겠지?”

버나드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가진 힘으로…… 과연 프레드릭을 죽일  있을까?”
“난 믿어.”

데보라는 눈에 힘을 주며 그의 두 손을 맞잡았다.

“버나드는 강한 사람이야. 그리고 레아 씨가 하늘에서 도와줄거야. 그리고 나도.”

그녀의 응원은 버나드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두 사람은 이내 방으로 자리를 옮겨,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촛불도 안킨 채 서로를 부둥켜 안고 열렬한 키스를 나누었다.
한참동안이나 끈적한 입맞춤이 이어진뒤 데보라는 곧장 버나드를 침대 위로 밀쳐 넘어뜨렸다.

“오랜만에 우리 쥬니어 좀 맛볼까나~”

데보라가 장난스런 미소를 지으며 침대에 누워있는 버나드의 바지를 풀어헤치는 와중이었다.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버나드가 재빨리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멈춰.”
“응?”
“누가 있어.”

버나드는 심각한 표정으로 구석쪽을 응시하며 침대를 걸어나와 촛불을 밝혔다.
캄캄했던 방안이 환해지자 창가 근처에 누군가 서있는 것이 보였다.
몸 전체를 가리는 갈색로브에 후드를 뒤집어쓴 자였다.
체격은 건장하지 않고 아담하단 생각이 들 정도로 작았다.
침입자는 별다른 행동없이 우두커니 서있기만 했다.

“누, 누구시죠? 변태!? 치한!?”

데보라가 침대 위에서 이불을 뒤집어쓰며 소리치자 침입자는 묵묵히 머리에 쓴 후드를 뒤로 젓혔다.
긴 금발이 물결치며 길고 날카로운 귀가 드러났다.

“에, 엘프!?”

게다가 아름다운 미소녀.
그녀를 빤히 주시하던 버나드의 미간에 주름이 접혔다.

“너, 레아랑 닮았군.”
“와와, 한눈에 알아보시다니 과연 비밀조직의 수장다운 눈썰미로군요.”

그녀가 가벼운 웃음 소리를 냈다.

“처음 뵙겠습니다. 레아 언니의 친동생 아르키나 입니다. 혹시 아까 하시던거 마저 하실거면 잠깐 밖에 나가있도록 하겠습니다. 훔쳐볼 의도는 없었는데 괜히 덥네요.”

데보라가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안나가셔도 돼요!”

나름 정중한 모습을 보니 적의는 없는 것 같았다.
오히려 명랑하다고 해야할지 순수하고 밝은 느낌이 있었다.
버나드는 여동생이란 말에 놀랐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레아에게 가족이 있단 얘기는 못들었어. 네가 동생이란걸 어떻게 믿어야하지?”
“언니와 닮은 외모를 보고도 신뢰하기 어렵단 말씀이시군요. 우선 다리가 아프니 앉고나서 말을 이어가겠습니다. 아까부터 내내  있었더니 저리네요.”

아르키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이불을 뒤집어쓴 데보라가 앉아있는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았다.

“버나드 씨, 당신을 찾아온건 도움을 받기 위해서예요.”
“어떤 도움?”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단한 말을 불쑥 내뱉었다.

“전 레아 언니를 신의 힘을 빌어 부활시키기 위해 노력중이에요. 당신도 힘을 보태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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