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0화 〉제국으로 향하는 여정61 (160/200)



〈 160화 〉제국으로 향하는 여정61

이 검은 원한으로 만들어진 검이오, 라며 그녀는 검의 유래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3천년전 난세를 틈 타 지방의 군벌들이 제각기 왕이라 칭하며 세상이 혼란스러운 때였소. 이 당시 나드람은 자신이 섬기는 왕의 명령으로 한 쌍의 암수검을 만들었지. 수검은 오티롤, 암검은 라비린스 라고 불렀다오. 하지만 왕의 목적은 따로 있었소. 왕국 3대 미녀중 한명으로 손꼽히던 나드람의 아내를 빼앗을 생각으로 검 제작을 명령한 것이었지. 왕은 나드람이 어떤 명검을 만들어오든 트집을 잡아 그를 처형할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오. 그러나 나드람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두 칼을 갖다 바치는 즉시 자신이 목숨을 잃을 것을 직감했다오. 그래서 아내와 함께 이웃나라에 망명하기로 결심을 하지.”

이드리스는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 노력했으나 슬픈 운명은 피할길이 없나보오. 부부는 왕이 보낸 추격자들을 피해 도주했지만, 끝내 아내가 붙잡히고 말았지. 그리고 아내는 왕도로 이송되던중 더는 방법이 없자 자결을 선택했소. 그로인해 나드람은 왕을 향해 끝없는 증오와 복수심에 불타오른다오. 삶의 희망을 잃은 그는 크게 슬퍼하며 라비린스와 오티롤을 녹여 하나의 마검으로 만들기 시작했지. 고이 보관하고 있었던 아내의 손톱과 머리카락도 마검의 재료중 하나였단 기록이 있소. 그렇게 완성된게 바로 당신의 마검, ‘피의 숙청’이오.”

가만히 듣고 있던 버나드는 이야기에 흥미를 보이며 복수는 성공했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이드리스는 양손을 펼쳐보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복수는 커녕 칼이 칼집에서 나올 일도 없었소. 나드람은 피의 숙청을 들고 왕에게 가던  우연히 만난 미녀에게 반해 복수고 뭐고 다 버리고 이웃왕국으로 망명해 평생 잘 먹고 잘 살았지. 피의 숙청은  나라의 왕에게 바쳐졌다오. 참 어이없는 결말 아니오?”

이드리스가 웃었다.
버나드도 함께 미소를 지으며 피의 숙청을 내려다봤다.

“별난 얘기군.”

이드리스가 칼집을 가리켰다.

“확실한 고증은 없으나 우리 대장장이들 간에 떠도는 구전에 따르면 이 칼집이 수검 오티롤로 제작된 것이고 붉은 칼날이 암검 라비린스라 전해진다오. 자신이 칼집이 되어 죽은 아내를 지켜주겠다는 나드람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물이지. 한가지 분명한건, 피의 숙청을 손에 넣은 이웃나라왕은 그 후 정복자로서 명성을 떨치며 무려 열 개의 왕국을 손에 넣고 오백년동안 완전히 지배했다는구려. 사연은 허당이지만 칼의 위력만큼은 확실하다오.”

버나드는 곰곰이 생각에 잠겨있다 물었다.

“이 검이 내 힘을 빼앗고, 그런건 없을 것 같나?”
“직접 써봤으니   아니오?”

이드리스가 유쾌하게 웃어보이며 반문하자 버나드는 기억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힘을 빼간다는 느낌은 없었어.”
“마검이라고 해서 모두 사악한 힘이 들어간 타락검이 아니오. 단순히 마력이 깃들어 있어 마검이라 불릴 뿐이지. 나드람 본인이 쓰려한건데 설마 나쁘게 만들었겠소?”
“이 검의 힘은 매우 강력하다. 특히 산산이 조각나 방어막을 형성하는 칼집의 힘은 더없이 훌륭하지. 사악한 힘이 깃들어 있지 않더라도 강력한 힘에 비례해서 페널티 같은게 있지 않을까?”

이드리스는 그의 말이 타당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까진 명확히 말을 못해주겠구려. 내가 만든게 아니니…… 당신의 의견도 일리가 있소. 혹여 체력이 빠르게 지친다거나 어딘가 고통스러운 부분 같은건 없었소?”
“없었어. 오히려 힘을 발휘할수록 피로가 사라지는  같았다. 전투시 몸이 전보다 덜 지치는 것 같아.”
“흐음, 치유 기능인가. 그건 틀림없이 마검의 신성한 힘 같소. 좋은 기능이군.”

어쨌든, 그런식으로 검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가 일단락  다음  사람은 앞으로 제작될 갑옷에 대한 의견을 주고 받으며 레비아탄의 사체를 보러 자리를 이동했다.
레비아탄의 사체가 둥둥 떠다니는 아공간속에서, 이드리스는 마검 피의 숙청에 뒤지지 않는 명갑을 만들어주겠다고 맹세했고, 그녀의 눈빛에는 강한 열의가 담겨 있었다.

동시에 버나드를 향한 애정도 듬뿍 담겨 있었다.
버나드는 그녀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다정하고 따뜻함이 담긴 눈빛을 단순히 호의로만 생각했다.
그도 그럴것이 이드리스는 좋아하는 감정을 대놓고 표시하지 않았다.
첫사랑이었다.
그렇기에 서툴러서 그녀가   있는 표현방식은 딱 한가지뿐이었다.
대장장이 답게, 대장장이 다운 방식으로 가슴에 담긴 사랑이 언젠가 그녀의 작품에서 고스란히 드러나리라.

그날부터 이드리스는 사랑과 혼신의 힘을 담아 갑옷 제작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데리고온 하인 세 명은 백검대와 함께 이동하는 와중에도 수시로 아공간속을 드나들며 분주히 움직였다.
어느날 밤, 홀로 불의 신의 망치를 두들기던 이드리스는 문득 오래전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후대에 길이 남을 명작을 만들고 싶다면 장인의 혼을 갈아 넣어야 한단다.’

그리고 어느덧 20일이란 시간이 지났다.
마침내 이드리스는 세상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최강의, 훌륭한 갑옷을 완성했다.

백금처럼 하얗게 눈부신 갑옷이었다.
무게는 놀라울 정도로 얇고 가벼웠으며 혼자서 착용하기 쉽게 만들어진, 그야말로 신들이 입을법한 신갑이라 불러도될 정도로 그에 걸맞은 갑옷이 탄생했다.

“대단해.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군.”

버나드는 크게 감탄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천막으로 세워진 공방안에는  명의 하인만 있을뿐 이드리스가 보이지 않았다.

“이드리스는 어디갔지?”
“그 분은……”

이드리스가 죽었다.
하인들의 설명에 의하면, 세상에 둘도 없는 최고의 갑옷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바쳤다는 것이다.
 하인이 기다란 책상을 뒤덮은 천을 치우자 그녀의 시신이 누워있었다.
편히 잠든 모습이다.
얼굴은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갑옷을 입고 가슴에 품은 꿈을 모두 성취하기를 바란다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버나드는 이드리스의 이마에 가볍게 입맞춤을 한뒤 진심으로 그녀의 명복을 빌었다.
이드리스가 혼신의 힘을 담아 만든 갑옷에는 어째서인지 온기가 묻어났다. 기분 좋은 따스함이 있었다.

사이즈가 널널해 보이는 갑옷을 착용하자 몸에  맞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상의에서 불쑥 자동으로 철갑이 튀어나와 빈틈없이 양팔을 뒤덮었다.

며칠전 요구사항에 양팔을 뒤덮지 않게 견갑과 완갑, 건틀릿을 제거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버나드는 그 신기한 기능에 내심 감탄하면서도 아쉬워했다.
얇은 철갑으로 덮인 손을 쥐었다 폈다하며 상태를 살폈다.
마치 갑옷을 안입은듯 손가락을 움직이는데 부담이 전혀 없었다. 갑옷 자체가 내 손, 내 몸이라 여겨질 정도로 움직임이 무척 편했다.

“좋긴한데, 양팔을 덮지 말라했거늘……”
-걱정마시오.

뜬금없이 이드리스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언제든 접었다 펼쳤다 할 수 있으니까.

말이 끝남과 동시에 양팔을 뒤덮었던 철갑이 빠르게 접혀 올라가며 양어깨속으로 사라졌다.
긴팔옷을 입은 팔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건 둘째치고 버나드는 난데없이 들려온 이드리스의 목소리에 놀라며 귀를 의심했다.

“누구야. 이드리스 맞나?”
-놀래킬 생각은 없었는데 심장이 빠르게 뛰는게 느껴지는구려. 하하, 미안하게 됐소. 내 생명을 바쳐 갑옷과 한몸이 됐지.
“갑옷속에 들어가있다고?”
-그렇소. 갑옷의 방어력을 더욱 향상시키기 위해 내 혼을 바쳐야했소.

버나드가 다소 황당한 얼굴로 피식거렸다.

“당신이 이 정도로 날 끔찍히 생각한줄은 몰랐어. 목숨까지 바칠줄 누가 알았겠냐고.”
-그러게 누가 혼자 다니랬소? 수하에 부하 천명쯤은 있어야할것 아니오? 영 안쓰러워서 말이지. 쯧.
“내 탓인건가?”
-왕의 군대랑 맞서 싸우려면 그에 대적할만한 강력한 방어구가 당신에게 있어야하지 않겠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소이다.
“죽은거야 산거야?”
-양쪽 다요. 내 육신이 부패하면 돌아갈 자리가 없어 이 갑옷에 영원히 갇혀 살아야 할테니 죽은셈이고, 반대로 육신이 온전히 보존되면 돌아갈 자리가 있으니 살았다고도 볼 수 있소.

그녀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 저기 누워있는 내 육신 좀 아공간에 넣어주시오. 그래야 썩지 않을테고 나중에 모든 일이 끝나면 원래대로 돌아갈  아니오.”

버나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지었다.

“그러지.”

그는 서둘러 걸어가서 이드리스의 몸을 공주님 안기로 번쩍 들어올렸다.
순간 이드리스의 영혼이 그의 몸을 거드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귓가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힘을 보탰으니 내 몸이 무겁지 않을거요.

그녀의 목소리는 왠지 수줍어 하는 기색이 있었다.
버나드가 화답했다.

“갑옷에서 나오는데 그리 오래걸리지 않을거야. 그때까지 조금만 참아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