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화 〉제국으로 향하는 여정60
아름다운 금빛 말을 탄 버나드가 야영지 입구를 통과하자 창녀들은 꺄아 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녀들중에 버나드가 어디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고 그동안 무슨 일을 해왔는지, 어떠한 활약을 펼쳤는지에 관해서는 잘 모른다.
그저 백검대장 멜리사와 같이 다니는 모습을 자주 봐왔기 때문에 간부중 한명이겠다 예상할뿐, 일반인들에게 그의 정체가 공개적으로 소개된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창녀들이 버나드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영내에서 유달리 존재감이 빛났고 눈에 띄는 남자였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타고 다니는 라벤다는 워낙 질좋은 품종의 말이다 보니 버나드를 한층 더 빛나게 해주었다.
덕분에 창녀들 사이에서 왕족들이 타고다닐 법한 고귀한 말을 타고다니는 남자가 있다며 눈에 띈것이다.
‘멋진 말을 타고 다니는 사내.’
창녀들끼리 처음에 부르던 버나드의 호칭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창녀들은 점차 관계를 가진 기사들을 통해 버나드의 이름을 알게되었고, 게다가 백검대 안에 매음굴을 이용하지 않는 기사가 없건만 유일하게 단 한명 방문하지 않은 이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버나드였다. 그런 점으로 인해 뜻하지 않게 존재의 가치가 높아져 버나드는 어느순간부터 창녀들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온다, 온다.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
세라가 기대에 들뜬 얼굴로 먼 발치에 있는 버나드에게서 시선을 떼지못했다.
“손을 내밀면 내 손을 잡아줄까?”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는 옆에 있던 베아트리스에게 들리지 않았다.
베아트리스는 현재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굳어있었다.
버나드가 탄 금빛 말.
그 주인을 또렷이 기억한다.
‘저자…… 샤를리나 영애의 기사였단 말인가?’
자신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이가 다시금 나타나다니 당혹스러웠다.
가장 만나기 싫은 사람이 하필 약혼자의 주변에서 일을 하고 있다니!
베아트리스는 급히 후드를 뒤집어쓰며 얼굴을 가렸다.
잠시 후 버나드가 말을 타고 그녀 앞을 지나갔다.
세라는 그에게 정신이 팔려 미친듯이 외쳐댔다.
“손 좀 잡아주세요! 부탁이에요! 제발 제 손 좀 잡아주세요 나리! 병 같은건 없어요!”
하지만 버나드는 줄곧 무표정으로 일관하며 사람들을 지나쳐갔다.
창녀들은 아쉬워했지만 그 쌀쌀맞은 모습조차 마음에 드는듯 영내 안쪽으로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저마다 아련한 눈빛으로 응시했다.
“아아, 어쩜 저리도 멋지실까!”
“진심으로 마음에 드는 여자한테만 상냥하게 손을 잡아주시겠지! 로맨티스트 같아!”
기사들은 몰려나온 창녀들때문에 주변이 소란스럽자 욕설을 지껄이며 해산시켰다.
“구경 끝났으면 썩 꺼져!”
“꼬추도 작은 놈이 어디서 큰 소리야!”
“뭐!? 이게 뒈질라고! 니가 내꺼 봤어? 봤냐고!?”
“내가 봤어! 이 녀석 꼬추 작아! 하도 작아서 엄지 손가락을 빠는줄 알았다니깐!”
창녀들이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베아트리스는 창녀들과 함께 자리를 뜨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루빨리 버나드 경을 찾아야할텐데, 레온왕국 말만 할줄 알았어도……”
그녀는 새로운 고민을 떠안았다.
“제국어를 잘 하는 저자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을것 같기도 한데…… 허나 높은 위치에 있는 자이니 만큼 경계심이 철저할테고 영내의 사정을 캐묻는 내 정체를 수상히 여길지 모르니 골치아프군. 그라나딘 왕국의 영걸이 고작 십대 나이의 약혼자를 찾으러 몰래 이웃나라에 잠입해 들어왔다는게 알려지면 어린 소년에게 굶주린 음탕한 여자라고 세상이 비웃을거야. 내 개인의 명예 실추는 물론이고 우리 왕국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추문이다.”
답답한 한숨을 내쉬며 푸른 하늘을 올려다봤다.
“버나드 경, 당신은 대체 어디 있는거요. 빨리 만나 우리 함께 그라나딘 왕국으로 돌아갑시다. 당신을 위해 돈이며 집이며 땅이며 모든걸 준비해놨다오. 그리고……”
베아트리스는 수줍어하며 자신의 아랫배를 어루만졌다.
“당신의 아이를 낳을 건강한 반려자도 여기 있다오.”
***
버나드가 돌아온 그때 샤를리나는 자신의 막사에서 하녀들에게 둘러싸여 손질을 받고 있는중이었다.
하녀들은 정성스레 그녀의 머리를 빗겨주고 양쪽 귓볼과 목덜미, 겨드랑이와 가슴골, 사타구니쪽에 향수를 은은하게 배도록 뿌렸다.
“오늘은 이걸 입으세요.”
고운 드레스를 입은지 얼마 후 클레어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를 뒤따라 두 명의 기사가 무거워보이는 긴 나무상자의 양끝을 한쪽씩 들고 들어왔다.
기사들은 실내 한가운데에 나무상자를 내려놓은뒤 도로 밖으로 나갔다.
“버나드 경이 돌아왔습니다.”
“녀석이 돌아오든 말든 관심없어.”
거울 앞에 앉아있던 샤를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녀는 종종 어디론가 떠나는 버나드에게 불만이 있었다.
“저 상자는 뭐야?”
“버나드 경이 레반테 지역 출신의 대장장이들을 넷 데리고 왔습니다. 그 대장장이들이 바치는 조공입니다. 당분간 우리를 따라다닐 모양입니다.”
“무기 손질 해줄 사람들이야 우리도 많잖아? 뭐하러 데리고 왔대?”
“버나드 경이 입을 갑옷을 제작할 예정이랍니다. 솜씨가 좋은가봐요.”
“자기만 얼마나 좋은걸 입을려고.”
샤를은 못마땅한 얼굴로 투덜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일어나자 머리를 빗겨주던 하녀들이 뒤로 물러나고 샤를은 나무상자가 있는곳으로 향했다.
두 손으로 끙끙대며 나무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다양한 종류의 칼들이 들어있었다.
샤를은 인상을 구겼다.
“나보고 칼질을 하라는 거야? 이딴걸 어따 쓰라고.”
“금속은 값진 선물입니다.”
클레어가 그렇게 대답하자 샤를은 불만스러운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거울 앞으로 가서 앉았다.
“필요없으니 갖고 나가. 기왕 줄거면 내가 쓸만한걸 주던지 센스들 하고는. 당장 내쫓고 싶네.”
“상인에게 되파셔서 현금으로 만드시거나 공로를 세운 자에게 선물로 하사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귀찮아, 안해. 기사들한테 아무나 쓰라고 해.”
“그럼 멜리사 경에게 맡기겠습니다.”
“그러든지.”
클레어가 고개를 숙인뒤 밖으로 나가려 하자 샤를이 불러세웠다.
“가서 버나드한테 전해. 대장장이들이 쫓겨나는 꼴을 보고 싶지 않거든, 나를 잘 달래줘야할거라고.”
“어떤식으로 달래면 좋다고 귀띔해줄까요?”
“재밌는 이야깃거리를 들고 저녁에 내 막사로 오라고 해. 오늘 밤 샐거야.”
클레어는 밖으로 나오며 버나드를 만난다는 기대감에 들떠있었다.
아까 이미 복귀신고를 할때 그와 한차례 만났지만 다시 볼 수 있어 기뻤다.
최근 버나드의 존재는 그녀의 최대 관심사이자 지루한 여정에 활력소가 되고 있었다.
매일밤 딱딱한 침대에 누울때마다 곁에 그가 누워있으면 어땠을까하는 상상을 했고, 그러한 상상은 마치 불순한 죄를 짓는것처럼 두렵기도 했지만 짜릿한 흥분이 등줄기를 핥고 지나가는 감각을 느끼고 있노라면 머릿속은 쾌락을 얻기 위해 더욱 더 노골적이고 맹렬한 상상을 부추기며 욕망이 고개를 쳐들었다.
불순한 상상으로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때때로 그녀는 손가락을 입안으로 넣어, 강력한 정복자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버나드의 굵고 단단한 페니스를 빠는것처럼 흉내도 내보았다.
누구에게도 말못할 그러한 행위가 점점 익숙해지던 어느날, 그녀는 난데없이 경련을 일으키며 비명을 내질렀다.
단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걷잡을 수 없는 쾌감이 한차례 전신을 훑고 지나간뒤, 거의 실신에 가까운 상태까지 이르렀던 그녀는 문득 속옷이 흥건히 젖어있는 것을 깨닫고 상당히 놀랐다.
하반신에 걸친 속옷이 오줌을 싸버린 것처럼 축축히 젖은 것은 생애 처음이었기에 그녀는 무척이나 두려웠고 부끄러웠다.
서둘러 속옷을 갈아입은뒤 허겁지겁 잠을 청했다.
다음날 클레어는 잔뜩 겁을 먹은 상태였다.
그날 하루 일과가 끝나자 불안했던 그녀는 곧장 잠을 청했다.
하지만 어젯밤의 알 수 없는 경련의 감각이 그녀를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하게 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손가락은 다시 입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른 손은 그녀의 사타구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이 가진 본능과 만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절정에 이르기까지 상상력의 소재는 언제나 버나드였다.
이윽고 버나드가 있는곳에 도착했다.
요즘들어 늘 그랬던것처럼 클레어는 곧장 버나드에게 다가가지 않고 먼 발치에 숨어서 그를 유심히 지켜보며 대화를 엿듣는 일부터 시작했다.
현재 버나드는 소나무숲 사이에 나있는 오솔길 앞에서 이드리스라는 대장장이 여자와 한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갑옷 상의는 흉갑처럼 양팔을 덮지 않았으면 좋겠어. 따라서 견갑과 완갑, 건틀릿은 제작할 필요없다. 겨드랑이쪽도 가리지마.”
“그랬다간 팔이 잘려나가기 쉬울텐데?”
“그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해결할테니 요청대로 제작해.”
“별 괴상한 갑옷을 주문하는구려.”
이드리스가 웃었다.
그녀의 웃음 때문인지 둘 사이가 왠지 다정해보인다.
몰래 지켜보고 있던 클레어는 살짝 눈썹을 찡그렸다.
‘친한 사이인가……’
“그리고 저절로 사이즈를 조절하는 기능을 부여했으면 좋겠어. 할 수 있겠지?”
“살찔때를 대비하는 거요?”
“아니, 작아질때를 대비하는거지.”
“작아진다고? 아까부터 계속 이해 못할 소리만 하고 있다오.”
“묻지말고 가능한지나 말해.”
“당연히 가능하다오. 내가 무료로 제작해준다고 선언했으니 내 돈만 더 깨지겠지만. 이럴줄 알았으면 반반씩 보태자고 할걸 그랬어.”
“돈이 부족하면 얼마든지 내주겠다. 말만해.”
“처음으로 기쁜 말을 해주는구려. 하지만 됐소. 내 친동생의 복수를 해주겠다는 사람한테 돈을 받을 수야 없지. 내 알아서 하겠소.”
“돈이 부족해서 갑옷의 질이 떨어지는걸 원치않아.”
“날 뭘로 보는거요? 그 유명한 대장장이 지야크의 딸이 외다. 아버지대부터 지금까지 당신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부를 축적했지.”
“행색이 초라해서 그리 보이지 않더군. 돈 자랑할거면 옷도 좀 사입고 꾸미고 다녀.”
아무생각없이 말한 버나드의 대꾸에 이드리스가 배꼽을 부여잡고 폭소를 터뜨렸다.
“당신이 사주던지!”
그녀의 말은 클레어에게 있어 여태껏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질투심을 일깨웠다.
‘저 여자…… 왜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거야.’
이드리스의 시선이 버나드의 허리춤으로 향했다.
그녀가 마검을 가리켰다.
“그 칼, 로달코를 사냥할때 느꼈지만 왠지 범상치 않은 악한 기운이 느껴진다오. 이름이?”
“이름은 모른다. 우연히 주운 칼이야.”
“제작자는?”
“모른다. 산에서 주웠어.”
“이름도 모르고 제작자도 모르는 칼을 쓴단 말이오? 정말 기가막힐 노릇이군. 만약 악마가 깃든 검이면 어쩌려고 그러오? 허락해준다면 내 잠시 칼을 들여다봐도 되겠소? 어쩌면 나라면 칼의 유래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르오.”
“그러지.”
버나드는 마검을 허리에서 떼어내 칼집채 그녀에게 건넸다.
이드리스는 마검의 칼집을 어루만지듯 살피며 손가락으로 감촉을 확인했다.
그녀는 제법 오랫동안 칼집만 바라봤다.
칼집을 살피던 예리한 눈길이 이윽고 버나드에게 향했다.
“이 재질, 이 무늬, 이 이음매가 보이지 않는 높은 수준의 가공실력, 마지막으로 칼집에서 느껴지는 원한. 여보시오 버나드 경, 이 검…… 책에서 본적이 있는 것 같소.”
그 말과 동시에 스르릉하며 칼집에서 칼을 뽑아들었다.
그녀는 붉은 칼날을 확인하고는 확신했다.
“이 칼의 이름은 ‘피의 숙청’ 이라 한다오. 지금으로부터 3천년전에 살았던 명공 나드람이 만든 칼이지. 오, 맙소사. 내가 블러드 배스를 실제로 보게 될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