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58화 〉제국으로 향하는 여정59 (158/200)



〈 158화 〉제국으로 향하는 여정59

동굴 밖으로 나오자 한낮의 햇살이 눈을 자극했다.
이드리스는 눈을 가늘게 뜨며 뒤를 돌아보았다.
뒤따라 나온 버나드가 왼손에 들고 있던 로달코의 목을 입구 근처에 아무렇게나  집어던졌다.

“잠깐 쉬었다 출발하지.”

그는 이드리스를 지나치더니 라벤다를 묶어놓은 곳으로 가서 적당한 곳에 앉았다.
이드리스는 그 옆에 가서 앉을까했지만 잠시 망설였다.
왠지 부끄러웠다.
그도 그럴것이 동굴에 들어갈때의 마음과 동굴 밖으로 나왔을때의 마음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얼굴을 못보겠어……”

그녀는 양볼을 붉히며 조금전 동굴 안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로달코를 꾀어내겠다는 일념하에 시작한 짓이 결국 버나드와 끝까지 가버리고 말았다.
처음에는 키스만이라고 생각했는데, 상황은 점점 심각해져 키스에서 젖가슴으로, 또 젖가슴에서 아랫배 밑으로까지 내려갔다.
하반신을 벗어재끼고 유혹해도 로달코 녀석이 낄낄 거리며 구멍 밖으로 나오질 않자 끝내 버나드의  길쭉한……
마치 망치 자루처럼 두껍고 기다란 작대기처럼 생긴 그의 길쭉한 성기가 자신의 몸안에 쑤욱 들어와서 가장 깊은 곳에 잠시 머물렀다가 쓰윽 빠져나가던 당시의 아찔하고 황홀했던 기분이 다시금 떠오르자 이드리스는 즉시 얼굴이 벌개졌다.

“아…… 안돼.”

가랑이 사이가 저릿해졌다.
불끈하고 단단한 것이 내부를 찔러오던 감각이 여전히 생생했다.

극히 민망했지만 한편으로는 무척 기분 좋은 행위였다.
정말 어쩔  없이 그런 일을 벌이기는 했지만, 여태껏 맛보지 못했던 새로운 즐거움을 깨달았다.
게다가 버나드와의 관계가 많이 진전된 느낌이 들었다.
살을 섞은게 원인일까.
버나드의 얼굴만 보면 절로 미소가 나고 왠지 모르게 친근감이 느껴졌다.

로달코를 잡느라 도중에 끊기기는 했지만 분명 삽입은 되었던 것이다.
버나드는 힘껏 박아대는 와중에도 로달코의 움직임을 결코 놓치지 않았다.
인간남녀의 한바탕 정사 행위에 넋을 잃은 로달코는 자기도 모르게 구멍 밖으로 기어나왔고, 욕망에 이성을 지배당한 나머지 근처에서 바지를 내리고 자위를 하려다 번개처럼 달려든 버나드의 칼에 목숨을 잃었다.
그로인해 무사히 불의신의 망치를 되찾을 수 있었다.

“거기서 뭐해?”

이드리스가 생각에 잠긴 채 우두커니 서있자 버나드가 이상히 여기며 물어왔다.
이드리스는 허둥대며 급히 대꾸했다.

“아, 아무것도 아니오. 그냥 지쳐서……”
“이리와서 앉아.”
“그, 그러리다.”

돌아가는 길에 이드리스의 자택과 대장간에 들렸다.

“대장장이에겐 망치와 모루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화력이 제일 중요하오. 최고의 갑옷을 만들려면 아무 불이나 쓸  없지.”

그녀는 대장간에서 일하는 하인들을 시켜 무려 300여년간 꺼지지 않았다는 성화의 불씨를 투명한 유리병에 옮겨담았다.

“300여년전 드래곤이 내뿜은 브레스라오. 아버지께서 젊은 시절 운좋게 구하셨지.”

드래곤의 브레스라,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내뿜는 불씨는 유리병 안에서 푸른색으로 타오르며  빛이 따스하고 아름다웠다.
이드리스는 불씨 외에도 여러 도구를 챙겼고, 하인 세 명에게 급히 짐을 싸게해 여정에 동참시켰다.

 때문에 처음 이곳에 올때는 반나절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샤를리나에게 돌아가기까지 사흘이란 시간을 소비하고 말았다.
이드리스는 라벤다를 모는 버나드의 뒤에 탔고 하인들은 도구를 가득 실은 삼두마차를 타고 그 뒤를 따랐다.
어느덧 저 멀리 백검대의 야영지가 보였다.

지난 사흘간 이드리스는 내내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빨개지지 않았던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그녀는 계속 홍당무처럼 얼굴에 열을 달고 지냈다.

버나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지만, 이드리스에게는 그와의 정사가 개인적으로 매우 커다란 사건이었다.
가벼이 넘기지 못하고 계속 생각하고 고민하다 보니 그만 생애 처음 관계를 가진 사내를 연모하게 되었다.
버나드를 바라보는 것 자체로도 심장이 뛰며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버나드는 그녀에게 다정한 눈길 한번  일이 없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토록 마음이 갔을까.
단 한번 가진 정사가 너무나 선명하게 가슴에 박혀있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와 열렬히 나눴던 키스가 수시로 아른거렸다.

“으……! 못참겠군!”

도저히 안되겠다고 생각한 그녀는 잠시 말에서 내려 쉬는 틈을 타 버나드를 찾아갔다.
백검대와 합류하기 전에 끝장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장장이들은 하나같이 화끈한 면이 있소. 나 역시 그렇지.”
“……?”
“지난번처럼 내게 키스를 해주시오. 그럼 머릿속의 상념이 깨끗이 지워질 것 같소.”

그녀가 당당하게 요구하자 버나드는 이유를 캐묻지도 않고 곧바로 입술을 포갰다.
그렇게 서로를 부둥켜 안고 진하고 끈적한 키스가 한동안 이어졌다.
뒤에서 구경하던 하인들은 휘파람을 불며 박수를 쳤다.

“이드리스님이 드디어 짝을 만났나 보군!”
“내가 뭐랬어, 저 사내랑 뭔가 있을줄 알았다니까.”
“아무튼 축하할 일이야! 하하하!”


***


다리를 뻗기도 힘든 좁은 공간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한 소년이 찾아왔다.
소년은 서툰 제국어로 말했다.

“(세라 씨가 찾아요. 빨리 나가보세요.)”
“(알았다.)”

베아트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신인 그녀가 일어서자 소년의 고개가 뒤로 한껏 젓혀지며 신기한 눈빛으로 올려다봤다.

“(우와, 크다……)”
“(크다란 말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있으니 조심해라.)”
“(죄, 죄송해요.)”

베아트리스는 입구를 가린 천을 젓히고 내실을 나왔다.
현재 그녀는 백검대의 플랫폼을 따라다니며 창녀들이 머무는 막사에서 생활중이었다.
커다란 막사안은 그야말로 욕망만이 지배하는 쾌락의 향연이 마음껏 펼쳐지고 있었다.
야릇한 향이 피어오르는 널따란 공간에는 침대도 없고 방석만 즐비했다.
속옷만 걸친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몸을 비비며 교태를 부리느라 여념이 없다.

“아직도 적응이 안되는군.”

베아트리스는 깊게 숨을 들이내쉬었다.
현 상황이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여기를 떠나면 어디 머무를 곳도 없다.
며칠전 우연히 만난 창녀 세라 덕분에 숙식을 해결할 장소라도 얻은게 다행이었다.
물론 공짜로 신세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창녀들이 몸을 팔아 번돈으로 숙식을 제공해주는 만큼 베아트리스도 가만히 있을수는 없는 노릇, 그렇기에 그녀에게도 역할이 있었다.

“세라!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돈 떨어지니깐 이제 꺼지라 이거야?! 내가 그동안 너한테 갖다 바친 돈이 얼만데!”

어떤 남성이 세라 앞에서 진상짓을 벌이고 있었다.

“언제는 내가 좋다며 이빨까지 달라고 했잖아! 내가 보고 싶을때마다 이빨을 보며 생각하겠다고! 내가 뽑아준  이빨 도로 내놔!”

세라는 팔짱을 낀 채 비웃었다.

“아, 그 이빨?”

그녀는 구석쪽으로 가더니 자루를 들고 왔다.

“여기 있으니 찾아가보시지.”

그녀가 자루를 열어보이자  안에는 이빨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나한테 이빨 뽑아준 놈이 당신 하난줄 알아? 찾아갈  있음 찾아가봐.”

그동안 세라에게 애정의 증표랍시고 이빨을 뽑아준 남자들이 셀 수 없이 많았던 것이다.
아울러 세라는 자신과 잤던 남자들의 이빨을 한개씩 모으는 것을 좋아하는 별난 취미가 있었다.

“이……! 갈보년이  가지고 놀았어!”

남자는 자신이 농락당했다는 것을 깨닫자 크게 성을 내며 폭력적으로 변했다.
세라의 따귀를 치려는 순간 베아트리스가 나타나 잽싸게 그의 팔을 낚아챘다.

“뭐야 이년은?!”
“(적당히 하고 나가라.)”
“헐……?”

남자는 자신보다 월등히 큰 베아트리스를 올려다보며 덜컥 겁을 집어먹었다.
베아트리스는 손목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다.
남자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으윽……!”
“(나가.)”
“놔, 놔주세요! 제가 언제 안나간다고 했나요? 나가겠습니다! 나갈게요!”

베아트리스가 팔을 놓자 남자는 황급히 막사 밖으로 줄행랑을 쳤다.
지켜보던 창녀들이 베아트리스를 향해 박수를 쳤다.
세라는 미소를 지으며 베아트리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베아트리스는 그녀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상황이 종료되자 원래 있던 대기실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때였다.
창녀 한명이 다급히 막사안으로 뛰어들어와 외쳤다.

“버나드 경이야! 버나드 경이 돌아왔어!”
“정말? 며칠동안 안보이더니 어디갔다온거야!”
“뭐해! 다들 빨리나와!”

창녀들은 금세 신이났다.
한동안 떠나있던 버나드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백검대의 우두머리 멜리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남자답고 듬직한 기사인 그의 얼굴을 보기 위해 창녀들은 너나할 것 없이 상대하고 있던 손님들을 내팽겨치고 우르르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아아, 버나드 경의 손이라도 한번 잡아봤으면!”

베아트리스는 갑작스런 소란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 가게에는 왜 안오시는거야. 그의 페니스 좀 보고 싶은데.”
“그분이 우리 같은 년들이랑 노는걸 본적이 없어. 아마 평생 안올걸.”

그녀의 귀에는 창녀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하는  ‘버나드’란 이름이 ‘베르나르’로 들렸다.

“베르나르(Bernard)?”
“당신이 찾는 베른알트(Bernard)는 아니니까 걱정마.”

베아트리스가 못알아 듣자 세라는 손짓과 표정으로 다시 알려주었다.

“베른알트, 아냐아냐, 베른알트, 아.니.야.”

그러면서 그녀는 베아트리스의 손을 잡아끌며 밖으로 향했다.

“따라와. 샤를리나 님을 섬기는 기사중에 잘생긴 사내가 한명 있어. 그가 돌아왔다나봐. 같이 가서 구경하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