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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6화 〉제국으로 향하는 여정57 (156/200)



〈 156화 〉제국으로 향하는 여정57

왕은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린뒤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안소니 후작을 돌아봤다.

“며칠전 날린 전령조들은 어찌되었나?”
“전국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가 아마 오늘쯤이면 국경까지 다다랐을겁니다. 마스터울프는 이제  이름이 만천하에 알려져 우리 왕국내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겠지요. 전국토에 널리 퍼져있는 전하의 충성스러운 영주들이 그와 샤를리나 영애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었을 겁니다.”

프레드릭왕이 피식 웃었다.

“변경을 지키는 영주들이 그들을 막고 있는 사이 우리가 단숨에 뒤쫓으면 되겠군.”
“국경까지 가는 길목에 있는 영주들한테는 따로 설계도와 마법 부호(符號)를 적어보내 포탈을 설치하라 일러두었으니, 장차 우리 앞길에 있는 26곳의 영지에서 최소 5개 이상의 포탈만 완성돼도 마스터울프를 뒤쫓는데 그리 오랜 시일이 걸리지 않을 겁니다. 현재로선 포탈이 순조롭게 완성되리라 보이는 곳은 총 7곳입니다.”
“7곳? 그것 밖에 안된다고? 도움도 안되는 멍청한 놈들 같으니. 26곳 전부 포탈을 제작할 수는 없는겐가?”
“전하도 이미 아시겠지만 영지마다 재정상황이 다르니까요. 수하에 기사 2명만 데리고 사는 가난한 영주도 있답니다.”
“그런 곳들은 빨리 망하라고 해. 상인처럼 신분이 형편없어도 돈 많은 놈이 차지해야 우리 왕국도 더욱 부유해지겠지! 부려먹기도 좋고!”

왕이 의자 팔걸이를 탁치며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금세 웃음이 그치자 안소니 후작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이러나 저러나 마스터울프를 사냥하는건 시간문제입니다. 느긋하게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


샤를리나와 백검대가 주둔중인 에버런 성.
간밤의 연회 때문에 늦은 아침 식사를 마친 라쥬르 영주에게 그가 총애하는 한 가신이 다가왔다.

“오늘 새벽 전하께서 보낸 전서구가 도착했습니다.”
“전하께서?”

라쥬르 영주는 미간을 구겼다.

“무소식이 희소식이건만 불길하게 무슨 소식이람.”

그는 서둘러 식당을 나와 가신을 데리고 집무실로 향했다.
집무실에 도착하자 안에서 청소중인 하녀들을 내보내고 문을 닫았다.

“전하의 서신을 받는건 13년전 1차 걷는 사자 전쟁 이후 처음이군. 어서 줘보게. 귀찮은 일만 아니면 좋겠는데 말이지.”

가신은 소매속에 넣어두었던 서신을 그에게 건넸다.
라쥬르 영주는 서신을 받자마자 펼쳐 읽었다.

“흐음.”

서신에는 아킨테의 미셸이 악마에게 홀리게 된 간략한 사정과 그녀를 악에 빠뜨린 원흉이 버나드 라는 자라며 반드시 주의하라는 명령이 적혀있었다.
서신의 내용중 가장 이목을 끄는 것은 말미에 적힌 글이었다.

-성스러운 이 땅에서 악을 몰아내기 위해 나의 영광스런 군대가 그리로 향하고 있지. 자네의 땅에 만약 악마의 아이를 잉태한 샤를리나가 당도하거든, 내가 도착할때까지 좋은 꾀를 내어 그녀를 붙잡아두게. 물론 그 전에 자네가 먼저 샤를리나와 버나드의 목을 베어준다면 내 자네의 공적을 높이 치하하여 큰 상을 내리도록 하지. 영지와 관련된 곤란한 문제도 왕가가 나서서 속시원히 해결해줌세.

“고, 공주님을 죽여도 된다고……?”

라쥬르 영주는 믿기지 않는다는듯 크게  눈을 여러번 깜빡거렸다.

“전하의 따님이 아닌가?”

그는 혹시나 서신이 가짜가 아닌지 하단에 찍힌 인장을 수차례 확인해보았다.
책장에 꽂혀있던 먼지 쌓인 서적을 뒤져 왕가의 인장을 대조해본결과 아무리 봐도 똑같았다.
왕이 보낸 서신이 맞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가신이 뒤늦게 서신을 읽고나서 눈을 빛냈다.

“영주님, 이건 기회입니다.”
“기회라니?”
“우리 영지에서 설친 악령 때문에 사망한 안젤리나 공주의 목숨값 문제를 해결할 기회말입니다. 안젤리나 공주의 모친이 괘씸하게도 우리에게 목숨값을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당장 전하께 이 일을 알려 원만한 해결을 요청하는 겁니다.”
“서, 설마 샤를리나 영애를 살해하자는 말인가?”

라쥬르 영주가 두려운 눈길로 가신을 쳐다보았다.

“내 손으로 왕족을 죽이는 셈이라고! 난 왕족을 살해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싶지 않네! 아니 난! 왕족끼리 개싸움을 하든 말든 아예 그쪽 핏줄과 얽히고 싶지가 않아! 왕족들은 죄다 병신들이거든! 병신들은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병신짓만 해! 주변인들만 피해보지!”
“전하께서 시키신 일이란걸 대내외에 알리면 그만입니다. 언제까지 죽은 안젤리나 일로 그녀의 모친에게 시달리실 작정이십니까?”
“샤를리나 영애를 죽이면? 그녀의 엄마인 아킨테의 미셸한테  시달리라고?”
“아킨테의 미셸은 전하께서 처리하실 모양이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좌우지간 샤를리나를 순순히 통과시켜줘도 문제입니다.”
“무슨 문제?”
“샤를리나 영애가 우리 영지에서 편안히 머물다간게 알려지면 후에 이곳에 도착하실 전하께 어찌 설명하실겁니까? 심지어 저들에게 연회까지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렇게 꼬일줄 누가 알았나!”

라쥬르 영주는 한동안 고민에 빠진채 말이 없다 갑자기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제길! 영애의 병력 현황은 어떻지? 파악됐나?”
“정예로 구성된 자들이라고 해봐야 방심한 상태에선 범인(凡人)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숫자로 밀어붙이면 충분히 감당 가능한 수준이지요. 게다가 저들은 오랜 여정으로 지쳐있을 겁니다. 작전만 잘 수립하면 샤를리나 영애를 사로잡는데 큰 문제가 없을겁니다.”
“이건 어떤가? 오후에 티타임을 갖자면서 그녀와 단독으로 만나겠네. 그때 사로잡도록 하지. 응접실에 병사들을 숨겨놓게나.”
“좋은 방법입니다. 그럼 저는 야영지에 주둔중인 그녀의 기사들에게 창녀를 한명씩 선물해주도록 하지요. 우리에게 고용된 창녀들은 그들에게 수면제가 섞인 술과 음식을 선사해줄겁니다.”

가신이 어깨를 으쓱했다.
라쥬르 영주도, 그도, 둘 다  있을 대살육의 현장을 상상하며 각자의 얼굴에 긴장과 함께 묘한 흥분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때였다.

“세상에나 악마가 여기 있었시라. 순순히 보냈으면 좋았을텐디.”
“마스터울프가 역시 똑똑하제. 이럴줄 알고 우리를 보냈다요.”
“바보들이다 바보들, 큭큭.”

불현듯 머리 위에서 남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쥬르 영주와 가신은 흠칫하며 급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언제 숨어 들어온 것인지 천장에 거지처럼 허름한 옷차림을 한 세 아이들이 매달려 있었다.

“누, 누구냐!”
“당신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주워 듣는 최강의 인간을 적으로 돌렸시라.  같지도 않은 왕 따위의 말은 무시했어야제.”

순간 세 아이들의 눈빛이 굶주린 마귀처럼 붉게 빛이났다.

“바, 밖에 누구 없느……!”

라쥬르 영주는 힘껏 소리지른다고 질렀으나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아이들이 민첩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동시에 밑으로 떨어지며 여동생 루가 먼저 라쥬르 영주의 배후에서 입을 틀어막았고, 당황한 영주가 루의 손과 옷에서 나는 심한 악취를 느끼는 순간 첫째 딘의 날카로운 손톱이 그의 목을 관통했다.
솟구친 피가 영주를 붙잡고 있던 루의 얼굴을 적셨다.
루는 입술 주변에 묻은 따뜻한 피를 혀로 스윽 핥아먹으며 웃음을 지었다.

“평소에  먹고 지냈는지 마싯댜.”

둘째 샨은 밑으로 떨어지면서, 놀라 주춤하던 가신의 목을 잡고 비틀어버렸다.
가신은 목이 완전히 뒤로 돌아간채로 발작하듯 잠깐동안 저항했으나 이내 잠잠해졌다.

라쥬르 영주와 가신이 순식간에 싸늘한 주검이 되자 갑자기 철컥하고 방문이 열렸다.

“늑대의 아이들이라 그런지 일처리도 깔끔하구나.”

젊음을 되찾은 아름다운 미녀 멜라니아가 망사드레스를 휘날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의 뒤를 이어 엘레나도 긴장한 얼굴로 급히 따라들어왔다.
엘레나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영주와 가신의 시체를 보고 덜컥 겁부터 났지만 자기도 모르게 속으로 감탄을 자아냈다.

‘주인님은 어떻게 이 모든걸 예상하셨을까.’

일찍이 버나드는, 이드리스와 함께 이곳을 떠나기전 루로키나 삼남매에게 미리 지시를 해둔 상태였다.

-나를 체포하라는 왕의 명령이 전국방방곡곡, 왕가의 힘이 미치는 모든 곳으로 퍼질 것이다. 내가 없는 동안 라쥬르 영주를  감시해라. 만일 그가 왕의 서신을 통해 나의 정체를 알게된다면 그 자리서 죽여도 좋다. 단 샤를리나님이 에버런 영지를 떠날때까지 그의 죽음이 세상에 드러나선 안된다.

‘정말 대단한 분이셔.’

엘레나는 시체 주위에 모여서 히히덕대는 거지 삼남매에게서 멀리 떨어진 채 구석쪽에서 몸을 가늘게 떨었다.
다른 사람들과 모의해서 누군가를 살해하는 현 상황이 그녀에게는 낯설었다.

“영주님!”

갑자기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샤를리나 영애께서 떠나신답니다!”

엘레나는 흠칫 놀라며 멜라니아를 바라봤다.
멜라니아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해 있었다.

“뭐하니?  차례란다.”
“저, 저요? 아 그, 그렇죠.”

엘레나는 책망하듯 자신의 머리를 치며 떨리는 손으로 급히 상의를 탈의했다.
우유처럼 새하얀 피부와 더불어 젖가슴이 전부 드러났다.
그녀는 얼굴이 새빨개진채로 팔로 가슴을 가리고 얼른 문앞으로 뛰어갔다.
그대로 문을 열고 복도를 내다봤다.
건장한 체격의 한 기사가 서 있다.

“영주님 계십……, 응!?”

기사는 반나신 상태의 엘레나를 보더니 깜짝 놀라며 시선을 돌렸다.
그는 크게 당황한 기색으로 딴곳을 보면서 서둘러 물었다.

“처, 처음보는 숙녀분이군요. 성함이……?”
“저는……”

엘레나는 내키지 않은 얼굴로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영주님께 불려온 창녀입니다.”
“네? 전혀 창녀라고 생각지도 못했…… 아닙니다. 예, 알겠습니다. 안에 영주님 계십니까?”

엘레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작게 대답했다.

“주, 주무시고 계세요.”
“이 시간에요?”
“페, 페니스를 빨아서 두 번 사정시켜드렸더니 피곤하시다면서…… 가신들에게 이르시길 뒷일은 알아서들 하라는 말씀을 남기시곤 잠 드셨어요.”
“정말 알아서 처리하라고 하셨습니까?”
“네,  믿으시면 깨워드릴까요?”
“아, 아닙니다. 제가 알아서 하지요. 그럼 이만, 조,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크흠, 큼!”

기사는 정중히 인사를 건네고는 신사처럼 직접 문을 닫아주며 멋지게 물러났다.

“저런 얼굴로 창녀라니 천사라고 해도 믿겠군.”

기사는 얼굴이 벌개진 채로 홀로 복도를 걸어가면서 방금전 만난 예쁜 창녀를 떠올리며 헤벌쭉한 표정을 지었다.

“깨끗하고 매끄러워 보이는 피부는 둘째치고 머리색까지 금발중의 금발, 밝은 로얄(royal) 금발이라니 창녀 주제에 왕족인 샤를리나 님과 머리색이 똑같지 않은가! 흐흐 저 정도 미모면 나같아도 만사제쳐두고 덮쳤을거야. 영주님이 부럽도다!”

계단에서 다급히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초조한 기색이 역력한 동료들이었다.

“왜 혼자오는거야? 밖에서 샤를리나 님께서 기다리시는 중일세.”
“아아, 걱정말게나. 영주님은 아주아주 예쁜 창녀랑 좋은 시간을 보내는 중이시라네. 영애님은 우리가 정성껏 배웅해주자고. 자자, 내려가지.”

한편, 영주의 집무실 안에선 멜라니아가 우아한 몸짓으로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그녀의 한손에는 오늘 새벽 라쥬르 영주에게 도착한 왕의 전서구인 비둘기가 손바닥 위에 얌전히 앉아있었다.

“이제부터 이 녀석을 괴물로 만들어보자구나.”

새빨갛게 칠해진 그녀의 입술이 즐겁게 벌어졌다.

“전설속의 고대 괴물 레비아탄의 비늘은  녀석에게 강대한 힘과 커다란 골격을 부여해주지.”

마녀는 고이 접어놓았던 약종이를 펼쳐  안에 들어있던 레비아탄의 비늘을 잘게 빻은 가루를 정체를 알 수 없는 보라색 물이 담긴 작은 그릇에 부었다.

“왕족의 머릿카락은 이 녀석에게 마법을 부릴 수 있는 힘과 질긴 생명력을 부여해주지.”

마녀는 손을 뻗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엘레나의 머리카락 한올을 잡아 뜯었다.

“아얏.”

금색의 머리카락이 보라색 물이 담긴 작은 그릇에 담기자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를 일으키며 금세 사르르 녹아내렸다.
멜라니아는 이어 순진한 눈빛으로 멀뚱히 구경중인 거지 삼남매를 쳐다봤다.

“인간이 아닌 것들의 피부조직은 이 녀석에게 극악의 야수성을 가미해주지.”

마녀가 손을 내밀자 딘과 샨, 루는 자신들의 손톱을 물어 뜯은 다음 잘린 손톱 조각을 건넸다.
 개의 손톱 조각 역시 보라색 물에 닿자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마녀의 피는 주술을 완성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멜라니아는 송곳으로 새끼 손가락을 찔러 피를 냈다.
작은 그릇에 담긴 보라색 물에 핏방울을 세 번 떨어뜨렸다.

“마지막으로 이 녀석의 발목에 늑대가 적은 종이를 매달면 왕은 분통을 터뜨릴거야. 큭큭, 기대되는군.”

버나드가 사전에 적어서 건네준 쪽지를 비둘기의 다리에 묶은 다음, 멜라니아는 비둘기에게 보라색 물을 전부 먹였다.
보라색 물을 전부 마신 비둘기는 여느 평범한 비둘기와 다를바 없었다.
현재까지는……

“끝났구나. 가보렴.”

멜라니아는 키득대며 창문을 열고 비둘기를 날려보냈다.
비둘기는 머지 않아 프레드릭왕에게 당도할 것이다.

“훨훨 날아서 왕에게 한방 먹여주거라!”

깔깔깔!
언뜻 실성한 것처럼 들리는 마녀의 웃음소리가 잠시동안 푸른하늘에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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