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화 〉제국으로 향하는 여정56
버나드는 잠시 기다려주다 이드리스에게 재촉하듯 말을 걸었다.
“시작하지.”
“알, 알겠소. 아, 아니 잠시만! 아, 아니 알겠소……”
“긴장하지마. 내게 맡기면 돼.”
버나드는 자신있게 말했지만 그 역시 이드리스와 키스를 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그녀와 자신의 관계, 그녀의 배경 등을 생각하면 여러모로 내키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본심이다.
하지만 일이라고 생각하면 전혀 꺼림직하지 않다.
과거에 수많은 공작활동을 펼치면서 임무의 성공을 위해 여러 가면을 써왔던 그로서는 잠깐동안 사랑에 불타는 열렬한 키스쟁이 배우가 되는 것쯤이야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자, 실컷 즐겨라 난장이놈아!”
외침과 동시에 버나드는 이드리스를 와락 끌어안으며 단숨에 입을 맞췄다.
“으으읍!?”
버나드의 혀가 입안을 침범하자 이드리스는 움찔하며 눈을 휘둥그레떴다.
놀람과 충격.
반사적으로 그의 가슴을 힘껏 밀치려했으나 그간 단련된 대장장이의 두 팔로도 버나드란 사내의 완력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버나드는 그 사이 갈곳을 잃은 그녀의 혀를 감아 힘껏 빨아당겼다.
낯뜨거운 쪼옥 소리가 크게 울려퍼졌고, 이드리스는 그대로 사고회로가 정지된듯 동그랗게 뜬 눈을 연신 깜빡거렸다.
“오오왕, 오오옹!”
천장의 한 구멍에서 얼굴을 내민 로달코가 음탕한 눈을 빛내며 내려다봤다.
“이쪽으로 와봐, 이쪽으로! 내가 잘보이는데서 주둥이를 맞춰봐!”
조바심을 내며 외쳤지만 인간들이 들어주질 않는다.
버나드와 이드리스는 진한 키스를 주고받으며 로달코가 내려다보는 곳에서 조금씩 조금씩 멀어져 구석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금 키스가 첫 키스라는 이드리스는 버나드가 하는대로 바삐 입을 맞추면서도 별다른 저항없이 잘 따라와주었다.
처음 입을 맞출때야 어색하고 두려운 마음에 한순간 머리가 새하얗게 되면서 당황했지만, 그녀는 곧 버나드의 능숙한 입맞춤에 이끌려 안정을 되찾았다.
그러나 안정을 되찾은건 ‘버나드와 키스를 하게된 상황’을 당황하지 않고 받아들였다는 것이지 뜨거운 키스로 인해 육체가 달아오르리란 것은 상상도 못한 그녀였다.
“아……!”
생애 처음 하는 키스는 그야말로 감미롭고 환상적이었다.
버나드는 자신의 입술을 부드럽게 핥아주기도 하고, 혀를 포근히 휘감아 빨아주기도 했으며, 때론 희롱을 하듯 혀끝으로 툭툭 건드리며 핥아줄듯말듯 애간장을 태우는 기교도 보여주었다.
“자, 잠깐만 버나드……”
뜻하지 않게 자꾸만 욕정이 밀려들어와 이드리스는 불안했다.
촉촉히 젖은 눈동자를 게슴츠레 뜬 채 버나드를 쳐다봤다.
“이, 이 정도면 된것 같소. 그, 그렇지 않소?”
근처 구멍에서 로달코가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교미해! 빨리 교미해!”
버나드는 녀석을 힐끗 본 다음 이드리스와 눈을 마주쳤다.
“아직이야.”
그러면서 그는 다시 입술을 포갰다.
재차 입술이 맞닿자, 이드리스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으며 흐느낌 같은 신음을 토해냈다.
서로 부둥켜 안은 채 열기 띤 숨을 격렬하게 교환하며 몇차례나 혀와 혀가 진하게 얽혔다.
버나드는 점점 대담해져 그녀의 귓볼과 목덜미를 핥았다.
입술이 아닌 다른 곳을 침범하자 이드리스가 흠칫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모, 목은 왜 핥는 거요? 오, 오싹하잖소?!”
“쉿. 거의 다 왔어.”
버나드가 로달코 쪽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은밀히 눈치를 준다.
그쪽을 힐끔 바라보니 현재 로달코의 몸이 구멍에서 반이상은 나와있었다.
녀석은 헤벌쭉한 얼굴로 침을 흘리는중이었다.
‘조금만 더 하면 되겠어……!’
희망과 용기를 얻은 이드리스는 이번에는 그녀가 먼저 입술을 포갰다.
버나드는 그녀의 입술을 맞아주면서 자연스레 손을 그녀의 가슴쪽으로 가져가 보란듯이 유방을 주물렀다.
깜짝 놀란 이드리스가 눈을 크게 떴다.
“가, 가슴은 왜 만지시오?!”
“쉿, 계속 키스만 하면 놈이 이상하게 생각할거야. 더욱 자극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놈도 더욱 몰입하며 방심하겠지. 나만 믿어, 난 프로야.”
“프로……?”
이드리스는 버나드의 말을 곱씹으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오래전 로토에게 얼핏 들은 기억으로는 버나드는 한 조직의 수장으로서 정의로우며 리더십까지 고루 갖춘 믿음직스러운 남자라고 들었었다.
산전수전 다 겪어본 자이니 현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머릿속에 짜둔 계획이 있겠지.
그리고 어차피 로달코를 잡는 것은 그에게 전적으로 일임해야할 사안이니 그녀는 일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그의 요구를 따라주는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좋소. 시키는대로 다 할테니 하나만 약속해주시오. 나와 이런 짓을 했다는걸 누구한테도 말하지 마시오.”
“나도 같은 생각이야. 당신도 절대 말하지마.”
“세상이 두쪽나도 내 입에서 나올일은 없소. 꼭 우리 둘만의 비밀로 합시다.”
망치를 되찾기 위해 몸을 던지겠다는 이드리스의 당찬 각오를 확인한 버나드는, 이쯤되자 시시한 입맞춤 따위가 아닌 빨리 끝내기 위해서라도 확실한 무언가를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페니스는 키스로 인해 단단히 서버린지 오래였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욕망에 지배당한 것은 아니었다.
이성은 아주 멀쩡했다.
그는 키스를 하는 내내 구멍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로달코를 계속 의식하고 있었다.
‘누가 이기나 보자.’
몸은 의식에 반하여 달아올랐으나 그저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욕망으로 이드리스를 탐하는 것이 아닌 순전히 로달코를 꾀어내기 위한 목적으로 이드리스를 공략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로달코를 반드시 붙잡고 말겠다는 일념 하나로 버나드의 손길은 더욱 과감해졌다.
‘이래도 안나올테냐?’
버나드는 이드리스의 목덜미와 쇄골을 애무하다가 갑자기 그녀의 가슴을 풀어헤치고 유방을 부드럽게 움켜쥐며 정중앙에 봉긋 솟아있는 유두를 소리를 내가며 빨았다.
“사, 살려주시오!”
이드리스가 난데없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것은 고통스럽거나 싫어서가 아닌, 쾌락이란 감정이 한껏 고조된 나머지 기분이 좋아 어쩔줄 몰라하는 달콤한 신음이었다.
“흐흐흐, 재밌다. 아주 재밌다! 으흐흐흐!”
상반신을 깐 채 버나드에게 뜨거운 애무를 받아가며 요동치는 이드리스를 보고 로달코는 자기도 모르게 두 주먹을 꽉 움켜쥔 채 스으읍 하고 침을 꿀꺽 삼켰다.
녀석의 하반신에 달린 조그만 성기가 힘을 머금고 껄떡껄떡 일어서고 있었다.
자신의 불행한 미래도 모른채……
***
프레드릭왕이 이끄는 군대가 ‘샨달라 여왕의 의지’ 라 불리우는 터널 근처에 당도했을때였다.
선봉대에서 부랴부랴 사람을 보내왔다.
“전하! 터널 안에 거대한 뱀 한마리가 들어서 있어 길이 막혔습니다!”
“뱀이?”
프레드릭왕은 재밌는 일이라며 웃었다.
신하들이 급히 대책을 논의하고 있을때 그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다들 뭘 그리 고민하시오. 우리에게는 새시대에 걸맞는 영걸들 크록과 디아나가 있잖소. 그 두 사람을 보내면 쉽게 끝날 일을.”
잠시 후 왕의 막사에 크록과 디아나가 나타났다.
두 사람은 화려한 의자에 앉아있는 왕에게 정중히 예를 표했다.
“두 사람의 기량을 모두에게 보여주게.”
왕의 명령을 받은 크록과 디아나의 눈이 크게 떠졌다.
두 사람의 얼굴에는 먼저 기쁨이 떠올랐고, 그 다음에는 서로를 향한 경쟁심, 그리고 마지막으로 반드시 해내보이겠다는 열의로 가득했다.
“금방 끝내겠습니다.”
“전하의 앞길을 막는 것들을 모조리 부숴버리겠습니다.”
두 사람은 당당한 발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얼마 후 프레드릭왕은 막사를 빠져나와 신하들과 함께 근처의 언덕으로 향했다.
저 아래, 거대한 뱀의 꼬리가 삐져나온 터널쪽을 바라보며 그는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시작했군. 느긋하게 감상하자구.”
같은시각, 뱀의 꼬리쪽에 선 크록이 크게 기합을 외친뒤 두 손으로 힘껏 뱀의 꼬리를 잡아당겼다.
그 즉시 뱀이 앞쪽으로 기어가려고 애를쓰며 완강히 저항하는 것이 느껴졌으나 크록에게 있어 우스운 상대였다.
뱀은 점점 터널 밖으로 끌려나왔고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탄성을 내지르며 그의 놀라운 괴력에 일제히 엄지를 추켜세웠다.
그때였다.
돌연 하늘에서 무언가가 뚝 떨어지며 밖으로 반쯤 끌려나온 뱀의 몸뚱이를 절반으로 갈라버렸다.
디아나였다.
꼬리를 잡고 있던 크록은 뒤로 나가떨어졌고, 디아나는 그대로 맹렬히 칼을 휘둘렀다.
뱀의 중간부터 머리쪽으로 나아가며 살점을 산산이 조각내기 시작했다.
마치 땅굴을 파듯 앞으로 나아가는 그녀의 칼놀림은 현란하기 그지 없었다.
그녀의 빠른 칼질에 터널안에 갇혀있던 뱀의 몸뚱이가 조금씩 조금씩 조각조각 해체되며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튀었다.
“저 계집이!”
엉덩방아를 찧은 크록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력을 보여주리라 작심한 그는 빠르게 내달려서 크게 도약을 했다.
놀라운 점프력으로 터널 위 산중턱에 착지하자마자 곧바로 산을 가로질러 쏜살같이 달렸고, 이내 뱀의 머리가 있는 터널 출구쪽에 도착했다.
“머리를 차지한 자가 제일이지!”
그는 냅다 터널안으로 뛰어들어가 커다란 뱀의 머리를 주먹으로 구타하기 시작했다.
퍽퍽퍽!
뱀이 주둥이를 벌리며 사납게 덤볐으나 터널안에 꼼짝없이 갇혀 주둥이를 완전히 벌리기도 어려워 절반쯤 벌린 입 갖고는 위협이 되지 못했다.
더구나 뒷쪽에선 디에나가 분쇄기처럼 살점을 산산이 조각내고 있는중이니 내장을 잃은 뱀은 이미 죽은것과 다름없어 얼마 남지 않은 힘을 갖고 저항하는게 그저 애처로울 따름이었다.
“역시 우리왕국의 영걸 디에나님과 크록님이셔!”
“저 분들만 있으면 악마놈들이 두렵지 않다고!”
두 사람의 활약에 병사들은 상당히 고무됐고, 먼 곳에서 지켜보고 있던 프레드릭왕은 껄껄 웃음을 터뜨리며 뒤로 돌아섰다.
그는 저 멀리 제국쪽 방향을 바라보았다.
“어떠냐 버나드, 네 후배들이 이렇게나 대단하단다. 네놈이 세븐로얄의 봉인을 풀고 다시 손에 넣었다한들 저 둘을 동시에 상대하기는 버겁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