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54화 〉제국으로 향하는 여정55 (154/200)



〈 154화 〉제국으로 향하는 여정55

해질무렵, 야영지는 라쥬르 영주가 베푸는 연회에 참석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버나드는 연회때 신을 구두를 닦으면서 텐트 근처에 앉아있었다.
그때 떠난줄로만 알았던 이드리스가 불쑥 나타났다.
버나드는 반가워하는 기색도, 놀라워하는 기색도 없이 그저 담담하게 그녀를 바라봤다.

“아직도 안갔나?”

이드리스는 멋쩍은 표정으로 다른곳을 응시하면서 대답했다.

“갑자기 당신한테 부탁할 일이 생각나서.”
“뭔데.”
“내게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아티팩트 불의 신이 망치가 있다는걸 잘 알거요.”
“그래서?”
“3주전에 그 망치를 도난당했소.”

버나드가 큭큭 웃었다.

“누구한테?”
“로달코 라는 못된 괴물 녀석한테.”
“내게 의뢰를 하려는건가?”
“만일 찾아주면…… 찾아주면 보답으로 갑옷을 제작해주겠소.”

버나드는 말없이 닦던 구두를 내려놓고 신어보았다.
광이 나는 구두를 흡족하게 쳐다보던 그가 이드리스를 돌아봤다.

“녀석은 지금 어딨지?”

샤를이 연회를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 다행이었다.
그녀는 라쥬르 영주와 건배만 하고 얼마뒤 방으로 돌아갔다.

연회가 일찍 끝나자 버나드는 멜리사와 클레어에게 대충 사정을 설명한 후 서둘렀다.
이드리스를 뒤에 태우고 힘껏 라벤다를 몰았다.

라벤다는 깜깜한 어둠속에서도 바람같이 내달렸다.
이윽고 아침해가 뜰즈음 로달코가 숨어있다는 동굴에 도착했다.

밤새 달려온  사람은 피로감을 느꼈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기전 빵과 물로 허기진 배를 달래며 그 앞에서 잠시 휴식했다.
동굴 입구는 사람이 허리를 숙이고 들어가야할 정도의 크기였다.

“동굴 입구가 철창으로 막혀있군. 당신이 한건가?”
“그렇소. 놈이 못나오게 막아버렸지.”

로달코는 쭈글쭈글하고 못생긴 난장이 괴물이다.
녀석들은 교활하고 잔꾀가 많으며 특히 색을 밝혀 한밤중에 민가로 내려와 인간 여자를 겁탈하는 일도 잦았다.

“녀석은 날 덮치려고 했지만 내가 완강히 저항해서 실패했소. 그런데 하필 침실 벽에 걸려있던 망치를 들고 도망가버렸지. 급히 녀석을 쫓아갔으나 이미 동굴로 숨어버린 상태였고, 녀석을 찾으러 들어가기에는 매우 위험하다 생각해 거기서 단념할 수 밖에 없었소.”

이드리스는 로달코가 숨은 동굴에 들어가지 않는 대신 임시방편으로, 자택에서 장비를 가져와 동굴의 입구란 입구는 죄다 막아버렸다.

“녀석을 굶어죽일 생각이었지. 3주가 지났는데 지금 어떨지 모르겠소. 죽었으려나 살았으려나. 여인의 몸으로 혼자 동굴에 들어가서 살펴보긴 또 그렇고. 그렇다고 사람을 사자니, 고용한 사람들이 값비싼 망치를 보고 도적으로 돌변하면 어쩌나 무섭고. 불의 신의 망치는 대장장이가 아니더라도 모두가 탐내는 귀중한 물건이란걸 당신도 잘 알잖소.”
“난 믿을  있나보지? 언제는 세상에서 가장 싫다며?”
“그, 그건……”

이드리스는 우물쭈물하다 수줍게 대꾸했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없었소…… 사과하리다.”

버나드는 갸우뚱 거렸다.

“혹시 약을 잘못먹었나? 아니면 누구한테 머리를 맞았다든지.”
“무슨 소리요?”
“상태가 안좋아보여서.  갑자기 순한 양처럼 구는거지? 다른 속셈이 있어 날 이용하려는건가?”
“오해마시오!”

이드리스는 언성을 높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 하늘에 맹세코 당신 갑옷을 반드시 제작해주리다! 만약 내가 만들어주지 않을시 천벌을 받을거요! 내일 당장 죽어도 좋소!”

버나드는 호언장담을 하는 그녀를 올려다보며 풉하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거 듬직하군. 마음이 바뀐 이유는 모르겠지만 함 믿어보지. 누가 뭐래도 당신은 로토의 누나니까.”

그 말에 이드리스는 살짝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바쁜척 발걸음을 옮겼다.

“서두릅시다! 늦지않게 돌아가야할 것 아니오!”

이드리스는 허리에 차고 있던 도구 주머니에서 장비를 꺼내 동굴 입구를 막은 철창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버나드는 마검을 허리에 찬뒤 준비해온 횃대에 불을 붙였다.
잠시 후 이드리스는 떼어낸 철창을 한쪽으로 내던졌다.

“제거했소. 들어갑시다.”

길이 열리자 버나드가 앞장서서 걸었다.

동굴은 춥고 고요했다.
갈래길이 없어 일직선으로 쭉 걸어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동굴이 더욱 좁아져 옆으로 통과해야하는 곳도 있었다.

어느덧 동굴의 중심부에 도착했다.
마당처럼 넓은 공간이 나오자 버나드와 이드리스는 그제야 허리를 곧게 펼 수 있었다.
횃불로 주변을 비추자 두 사람은 동시에 나지막한 탄성을 흘렸다.

“뱀굴 같군.”
“맙소사.”

벽부터 천장까지 사방에 수많은 구멍이 뚫려있었다.
마치 벌집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입구의 지름이 사람 팔길이 정도인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로달코가 드나드는 구멍들로 추측되었다.

“키키킥.”

수많은 구멍중 어느 한 곳에서 갑자기 얍실하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버나드는 곧바로 소리쳤다.

“이봐! 거기 있으면 여기로 나와라!  얘기가 있다!”
“싫은데~~~”

로달코의 음성은 개구장이 같았다. 아니 개구장이 괴물이었다.

“너희한테 공손히 잡힐 정도로 내가 멍청한줄 알아?”

이드리스는 까만 구멍들을 일일 살피며 허공에 대고 대꾸했다.

“망치만 돌려주면 얌전히 돌아가리다!”
“아아, 너 안다. 그때 그 계집이구나?”

양귀가 엘프처럼 기다란 파란 괴물이 천장의 한 구멍에서 머리를 쑥 내밀고 킥킥 웃었다.
얼굴은 노인 마냥 주름이 잔뜩이다.

“나 잡으러 온거야~?”
“망치를 돌려주시오!”
“아~ 망치? 싫다니깐~”

이드리스는 초조한 표정으로 버나드에게 속삭였다.

“어쩔거요? 구멍에 숨어있는데 잡을 수 있겠소?”
“괜히 자극했다간 구멍 깊숙이 숨고 말거야. 살살 달래서 밖으로 나오게 하자고.”

버나드가 위를 보며 말했다.

“이봐, 네게 선물을 가져왔다. 망치를 돌려받는 조건으로 이걸 주지.”

버나드는 어깨에 메고 있던 보따리를 풀어서 그 안에 들어있던 것을 바닥에 쏟아냈다.
그것은 죽은 돼지였다.
아주 먹음직스럽게 살이 토실토실했다.
로달코는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키이이이이! 돼지! 돼지! 먹고 싶어!”
“망치를 돌려주면 전부 네거야.”

천장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던 로달코는 순간 구멍안으로 들어가더니 이내 벽쪽의 구멍에서 얼굴을 쑥 내밀었다.

“웃기지마! 망치가 돼지보다 더 비싼걸 누가 모를줄 아냐? 망치 하나면 돼지 수천, 수만마리는 살 수 있지! 내가 인간들 일을 모를줄 알았어? 내 말 틀려?”
“어쭈, 의외로 똑똑하군.”

버나드는 혀를 찼다.

“난 다른걸 원해! 망치를 가져가고 싶으면 돼지보다 더욱 비싼걸 가져와!”
“망치부터 보여주시오! 망치가 잘 있는지 봐야 소원을 들어줄것 아니오!”

이드리스의 요구에 로달코는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른 구멍으로 다시 나왔다.
다시 얼굴을 내민 그의 손엔 화려한 금망치가 쥐어져있었다.
로달코는 그것을 흔들어 보인다음 다시 옆에 있는 구멍안으로 던져넣었다.

“봤냐? 봤어? 으이구 인간들아 내가 니들처럼 쪼잔하게 거짓말할줄알았냐? 망치는 잘있으니 됐어! 큭큭큭!”
“그럼 네가 원하는건 뭔데?”

버나드가 묻자 로달코는 이내 다른 구멍에서 얼굴을 내밀며 말했다.

“니들이 알아서 내놔야지 왜 나한테 요구해? 내가 아주 만족할만한걸 제시해봐.”
“어마어마한 금액을 주고 싶어도, 인간들의 화폐따위 아무 쓸모없잖나?”
“으음…… 그건 맞지만.”
“이리 나와서 고민해봅시다. 같이 고민해주겠소.”

이드리스의 말에 로달코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킥킥 웃었다.

“니들 속셈을 누가 모를줄 알아?  여기가 좋아. 구멍안이 더 편해.”
“인간의 화폐처럼 망치도 당신한테 쓸모없잖소? 우리한테 돌려주면 얌전히 떠나리다. 내 약속하오!”
“아구, 아구, 아구, 싫다니깐~? 망치는 내거야. 망치 예뻐. 예쁜거 계속 보고 있으면 황홀하다.”

말을 마친 로달코는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듯 이드리스를 보며 음흉하게 웃었다.

“좋은 생각이 났다! 저 계집과 교환하자! 계집 내거다!”
“이 여자는 안돼.”
“망치 준다니깐?”

버나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여자는 안돼.”
“왜~~~ 난 여자가 더 좋다. 젖만지고 싶다. 킥킥.”
“얀마, 자꾸 헛소리하면 동굴을 죄다 박살내는 수가 있어. 나 지금 참고 있다. 좋은 말할때 망치내놔.”

로달코가 웃음을 터뜨렸다.

“네놈이 내 보금자리를 박살내면 난 땅 밑으로 숨으면 되지. 그 큰 덩치로 쫓아올 수 있을것 같아? 인간이 과연 손으로 땅을 팔 수 있을까? 어느 세월에?”
“여자 말고 다른걸 요구해라. 그럼 들어주마.”
“난 인간 여자 말고는 관심 없…… 아, 그렇지!”

로달코는 돌연 신이 난듯 이 구멍 저 구멍 빠르게 오가며 머리를 불쑥불쑥 내밀었다.

“야호! 야호! 끼얏호!”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눈빛을 음흉하게 빛내며 침을 질질 흘렸다.
구멍에서 얼굴을 내밀때마다 바닥에 침이 뚝뚝 떨어졌다.

“인간들의 교미를 보고 싶다! 너희가 보여준다면 망치를 돌려주마!”
“교, 교미?!”

이드리스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말이 되는 소릴하시오!”
“해라! 해라! 해라! 안하면 안줘! 하지만 돼지는 내꺼!”

평소 색을 밝히는 괴물인 로달코의 의지는 매우 확고했다.
다른 제안을 건네도 귀담아 듣지 않고 같은 말만 수없이 반복했다.

“망치를 돌려받고 싶으면 어서 둘이 교미해! 해라! 해라!”

버나드와 이드리스의 입장은 난처했다.

“어, 어찌해야되오?”

이드리스의 물음에 버나드는 고심 끝에 대답했다.

“좋은 방법이 있어. 일단 저 괴물의 말을 들어주는척하면서 미끼를 주듯 조금씩 조금씩 구멍 밖으로 유인해내는거야.”
“저, 정말 나와 관계를 가질 생각이오?”
“아니. 하지만 키스 정도는 해야될거야.  들어봐. 로달코에게 잘 보이지 않도록 키스를 하면 그가 답답함을 느끼겠지. 즉시 자리를 이동해 잘 내려다 보이는 다른 구멍으로 고개를 내밀거야. 그땐 우린 다시 방향을 바꿔 키스를 한다. 놈이 잘 안보이게끔. 그럼 놈은 또다시 다른 구멍으로 이동할 것이고, 그런 일이 반복되다보면 결국 답답함을 주체 못한 나머지 구멍 밖으로 기어나올지도 몰라. 우린 그때를 노려야해.”

이드리스는 근심어린 얼굴로 물었다.

“만약 끝까지 안나오면 어떡하오?”
“놈은 색마라서 욕망에 지배당하기 쉬운 녀석이야. 야한 것을 보면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질 못하지. 우리가 아주 야하게 키스만 잘하면, 놈은 금세 판단력이 흐려져 저도 모르게 구멍 밖으로 기어나올거야. 헤벌쭉한 얼굴로.”

그녀는 꺼림직한지 울상을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당신과 키, 키스라니……”
“내 입장도 생각해줘. 당신과 좋아서 키스하는게 아냐. 정확히 말하면 당신과 당신이 잃어버린 망치때문이지.”
“망치……”
“키스는 처음인가?”

이드리스는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평생 일만 하느라 사내를 사귈 시간이 없었소.”
“그럼 내가 리드할테니 잘 따라오도록.”

버나드가 그대로 등을 돌리며 로달코에게 무언가를 말하려하자 그녀가 다급히 팔을 잡으며 제지했다.

“자, 잠깐만!”
“……?”
“왜, 왜 그리 서두르는 거요! 각오를 다질때까지 잠깐 기다려주시오. 잠시 심호흡 좀 하고……”

이드리스가 긴장한 기색으로 마음을 다잡는 사이 머리 위에서는 로달코가 계속 외쳐대는 중이었다.

“교미해! 교미해! 망치 받고 싶으면 빨리 교미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