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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화 〉제국으로 향하는 여정52 (151/200)



〈 151화 〉제국으로 향하는 여정52

버나드가 선두로 나서며 빠르게 내달렸다.
뒤의  사람도 그에 뒤쳐지지 않고 그를 바짝 따랐다.
그러다 좌우 양쪽으로 갈라졌다.

여덟개의 촉수가 기다렸다는듯이 세 방향으로 날아왔다.
버나드는 로토의 정면으로 달려들다 도중에 멈추며 쏜살같이 칼을 휘둘렀다.
싹둑!
촉수 전체가 시커먼 기운으로 뒤덮여 있어 어떤 재질인지 눈으로 알 수 없지만 짐승을 베는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버나드는  느낌이 싫었다.

‘빨리 정신 차려라 로토!’

멜리사는 크게 원을 돌며 로토의 왼쪽으로 파고들었다.
세 개의 촉수가 그녀를 덮치자 재빠르게 앞뒤로 회피하며 무난하게 하나씩 처리했다.
그녀의 몸놀림은 매우 가벼워 보였기에 버나드는 안심이 되고 든든했다.

반면에 로토의 우측 후방을 노렸던 클레어는 촉수 하나는 손쉽게 처리했으나 다른 촉수에 왼쪽 발목을 붙잡혔다.
촉수는 곧장 그녀를 거꾸로 들어올렸고, 동시에 또 다른 촉수가 날아와 그녀의 몸에 더듬듯이 달라붙으며 두 팔과 허리를 휘감았다.

“큭!”

잘린 촉수에서 빠르게 새살이 돋아났다.
금세 뾰족한 원형을 되찾은 촉수는 허공에 거꾸로 매달린채 꼼짝 못하는 클레어의 입을 향해 쇄도했다.

그 순간 버나드는 마검의 힘을 해방했다.
허리에 걸려있던 칼집이 수십개의 마름모꼴 조각으로 산산이 조각나며 클레어가 있는 곳으로 바람처럼 날아갔다.

햇빛에 반짝이며 은광을 자랑하는 수십개의 마름모들은 즉시 클레어의 눈앞에서 방어벽을 형성하며 클레어의 입안으로 들어가려던 촉수를 아슬아슬하게 막아냈다.
그 틈을 타 버나드는 재빠르게 클레어의 몸을 구속한 촉수들을 잘라냈다.
버나드가 소리쳤다.

“잡히지 않게 조심해!”

바닥에 떨어진 클레어는 잘린 촉수를 떼내고 신속히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끄덕였다.

“고, 고마워!”

방어벽을 형성했던 마름모들은 다시 산산이 부서지며 클레어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촉수의 공격으로 부터 클레어를 완벽히 지켜주었다.

“날 위해서……”

클레어는 그것들을 신기하게 쳐다보며 동시에 자신을 구해준 버나드에게 왠지 모를 설레임을 느꼈다.
남성을 향해 생전 처음 가져보는 감정이었다.
갑자기 찾아온 감정은 아니었다.
평소 버나드를 향한 감정, 질투, 부러움, 동경, 스승과 제자사이, 두려움 등등 말로 다 말할 수 없는 여러 감정들이 조용히 차곡차곡 쌓여있다가, 어느새 제법 양이 쌓여있던 와중에 오늘따라 유난히 크게 복받치는 것이었다.

한편, 멜리사는 클레어 주위를 도는 마름모 조각들을 보며 감탄을 자아냈다.

“그 힘은 대체 뭐죠?! 당신 마법도 쓸줄 아나요?”
“칼의 힘입니다.”

버나드는 짧게 대답하고 곧장 로토에게 달려들었다.
로토는 단순하게도, 클레어를 지켜주는 마름모 조각들을 촉수 세 개로 뚫지못하자, 제딴에 오기가 생겼는지 여덟개 전부를 사용해서 공격하는 미련한 짓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보니 쉽게 접근을 허용했다.

하지만 등에 달린 촉수와 로토는 서로 다른 인격체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로토는 로토대로 독립적으로 움직이며 즉각 반격을 해왔다.

서로 몇 차례 칼을 주고 받은뒤 버나드는 갑자기 울컥했다.
로토가 칼을 휘두르며 오래전 자신이 가르쳐준 기술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기술을 배워 기뻐했던 그의 표정과  보답으로 그에게 받은 선물도 뇌리에 스쳐지나갔다.
그렇게 옛생각이 나는 한편, 달리 생각해보면 참 화가나기도 했다.

‘넌 로토가 아니야. 진짜 로토를 돌려줘 악령아!’

이후 세 사람이 힘을 합해 공격했으나 악령은 결코 죽지 않았다.
아무리 베고 찔러도 금세 회복하며 말그대로 무적이었다.
육신이 없는 영혼을 상대하니 당연한걸까.
멜리사는 죽지 않는 로토를 보며 ‘신관을 데려왔어야 했는데!’ 하며 반복해서 혀를 찼고, 클레어는 마름모 조각들 덕분에 촉수로 부터 안전한 나머지 무한히 재생하는 촉수들을 상대로 다양한 시도를 하며 칼질을 하는게 마치 허수아비를 상대로 훈련하는 사람 같았다.
어쨌거나 조금전 촉수에게 당할뻔한 경험이 있어선지, 윤기나는 금발이 젖어 살짝 어둡게 보일 정도로 열심히 땀을 흘리며 전의를 불태웠다.

이윽고, 그토록 기다렸던 대사가 허공에 크게 울려퍼졌다.

“신이시여, 고통받는 로토님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안식의 빛으로 그를 따스히 감싸주시기를 간절히 비나이다!”

샤를이 말을 마치는 순간, 그 즉시 로토에게서 변화가 감지됐다.
그의 온몸을 뒤덮었던 어두운 기운들이 발부터 시작해 아지랑이처럼 떨어져나가며 공기중으로 사라져버렸다.
사람의 모습을 되찾은 로토는 유령처럼 노란빛으로 밝게 빛나며 투명했다.
흐릿한 갑옷 차림인 그는 편안히 웃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버나드님. 제가 지켜드렸어야 했는데, 반대로 지킴을 받았군요. 부하로서 당신을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 불충한 부하는 당신의 신념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그렇지 않아. 넌 최선을 다했다. 오히려 내가 미안하다.”

버나드는 흐뭇하게 웃어보였다.

“뒷일은 내게 맡기고 편히 쉬도록 해. 수고했다.”
-힘든 여정이 될 겁니다. 하지만 저는 믿습니다. 당신은 우리 왕국 최고의 영웅이니까요. 우리를 배반한 왕을 제거하고 반드시 왕국에 평화를 가져와 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숙연한 마음으로 조용히 듣고 있던 멜리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음……? 여기 오기전엔 분명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굴었는데 부하라니……?’

그녀가 새로운 고민에 빠진 사이 버나드와 작별인사를 끝마친 로토는 하늘로 날아가듯 유유히 사라졌다.
그의 목소리만이 허공에 메아리처럼 울려퍼졌다.

-늘 당신을 응원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끝났군……”

버나드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한동안 파란하늘을 올려다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끝났으면 빨리 가기나 할것이지 저기서 멍하니 뭐해?”

펑퍼짐한 신녀복을 입고 있던 샤를은 바닥에 주저앉은채 빨리가자고 투덜대고 있었고, 클레어는 촉수를 베던 감각을 잊기 싫은지 계속 혼자서 검을 휘두르며 맹연습중이었으며, 멜라니아는 근처를 기웃거리며 바닥에 널브러진 백골들을 하나씩 들춰가며 그 밑에 살고있는 구더기들을 병속에 주워담느라 바빴다.
멜리사는 버나드의 등을 지그시 쳐다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겉으로는 모든걸  드러낸 것 같으면서도 꼭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단 말이지.’

그때였다.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한 기사가 다가왔다.
판금갑옷을 걸친 중무장에다 투구까지 쓰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멜리사와 클레어는 즉시 샤를이 있는 곳으로 모여들었다.
낯선 기사는 일행들의 경계어린 시선속에 아무렇지 않게 주변을 두리번 거리더니 이내 버나드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런데 걸음걸이가 약간 이상했다.
갑옷이 크고 무거워서 그 무게에 못이겨 비틀대는  같았다.
폼이나지 않고 엉성했다.

“당신이 여기 있었을줄이야. 놀랐어.”

여자 목소리.
버나드를 아는  같았다.

“본지 10년이나 지난  같은데 변함없는 얼굴이군.”

 기억이 나지 않는 음성이다.
버나드는 고개를 갸웃하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날 모르겠어?”

기사는 코앞까지 다가와 서더니 닫혀있던 면갑을 들어올리고 밝게 웃어보였다.

“나요, 이드리스. 당신한테 따귀 맞았던 계집.”

버나드는 눈을 크게 떴다.

“로, 로토의 누나?”
“기억해줘서 고맙군.”
“놀라운 우연이군. 여긴 어쩐 일로 왔지?”
“별일 아니요. 그냥  멍청한 동생이 죽어서 사람을 해친다는 소문이 있길래 직접 처리하려고 왔지. 근데 상황을 보아하니 당신이 말끔히 처리해준것 같군. 고맙소.”

남자 말투를 흉내내는건 여전했다.
이드리스는 개구장이처럼 웃으며 견갑에 달린 가죽 카트리지에 들어있는 약병들을 꺼내 흔들어보였다.
악령을 퇴치하는데 쓰이는 신성한 약들이었다.

“신전에서 비싸게 주고 사왔는데 환불해야겠네. 갑옷도 이번 일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건데  기사가 아니라 입고 다니기 힘들어 죽겠소이다.”
“갑옷?”

버나드는 그 순간 좋은 생각이 번뜩였다.
프레드릭왕과 싸우기전 서둘러 제작해야하는 자신의 갑옷, 불의 신의 망치를 가지고 있는 대장장이인 그녀에게 제작을 부탁해보면 어떨까?

***

란바이어 평원을 뒤로하고 일행들은 에버런 영지로 돌아왔다.
소식을 접한 라쥬르 영주가 환하게 웃으며 관저에서 뛰쳐나왔다.

“역시 대륙의 대명문 아킨테 가문! 샤를리나님, 과연 훌륭하오!”

라쥬르 영주는 크게 기뻐하며 하인들에게 지시했다.

“악령이 나타난 이래 처음으로 크게 웃어보는구나! 오늘밤엔 악령이 사라진 것을 경축하는 연회를 열자! 어서들 준비하거라!”
“예!”

같은시각, 버나드는 일행들과 함께하지 않고 본대의 야영지에 머물고 있었다.

수많은 별빛이 보이는 밤하늘 같은 공간에 버나드와 이드리스가 나란히 둥둥 떠있다.
 사람의 눈앞에는 악어처럼 생긴 거대한 괴물이 전혀 미동도 없이 유유히 떠다니는 중이었다.

“전설속 괴물인 레비아탄이 실제로 존재했을줄이야. 엄청난 재료를 손에 넣었구려.”

연갈색 긴 머리를 리본으로 질끈 묶어 포니테일을 한 이드리스가 호기심으로 눈을 빛내며 탄성을 자아냈다.

“감촉이 아주 좋소이다.”

한참동안 레비아탄 주위를 날아다니며 꼼꼼이 살펴보던 그녀는 갑자기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버나드에게 빨리 밖으로 나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허공에 떠있는 것 때문에 멀미를 느끼며 힘들어보였다.
더구나 발밑은 시꺼먼 어둠이 끝없이 펼쳐져 있어 혹시나 추락하면 어쩌나 하고 두렵고 아찔한 기분이 드는 곳이 바로 아공간이다.
버나드는 아공간을 처음 경험한 그녀를 부축하며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상자밖으로 나오자 비좁은 텐트안이었다.
이드리스는 답답하다며 텐트밖으로 잽싸게 기어나갔다.

밖은 해가 중천이었다.
텐트 주변은 오가는 사람들로 시장처럼 시끌벅적했다. 대부분 플랫폼을 이용하는 여행자들이다.
이드리스는 나무상자에 걸터앉으며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후우…… 땅을 밟아도 부유감이 바로 사라지질 않는군.”
“물  드릴까요?”

텐트 앞에서 대기하던 율리아가 그렇게 묻자 이드리스는 그녀를 힐끗 쳐다본 다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율리아는 양동이의 덮개를 열고 그릇으로 물을 퍼서 이드리스에게 건넸다.

“물에서 좀 냄새가 날거예요. 아침에 떠온건데 이 지역 물이 맛없더라구요.”
“괜찮소.”

이드리스는 사내처럼 쭈욱 들이켰다.
그때 텐트 밖으로 나온 버나드가 그녀가 있는곳으로 곧장 다가왔다.

“빙빙 둘러대지 않고 본론을 말할게. 레비아탄으로 갑옷을 제작해줘. 당신이라면 저 괴물의 가죽을 찢어 가공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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