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8화 〉제국으로 향하는 여정49 (148/200)



〈 148화 〉제국으로 향하는 여정49

프레드릭왕은 강하다.
그 강함이란 신체적 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진 모든 것들을 포함한다.
강력한 군대, 신성한 힘이 깃든 왕가의 유물, 전국에서 앞다퉈 모여든 인재, 왕가를 맹신하는 일부 백성들의 지지 등등.
그가 소유한 모든 것과 싸워 이기지 못하는 한 결코 프레드릭왕을 쓰러뜨릴 수 없다.

시간은 촉박하지만 하나씩 하나씩 준비해 가자고, 우선 버나드는 수백, 수천명과 싸워도 거뜬한 튼튼한 갑옷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플랫폼이 열리자 버나드를 비롯해 그 일행들 역시 바빠졌다.
마크는 사람들에게 그림을 그려주며 돈을 벌었고, 데보라는 율리아를 데리고 각종 말린 산나물을 팔았다.
멜라니아는 정력제를 팔았는데, 신분 가리지 않고  나갔다. 그녀의 정력제는 시장 최고의 인기상품이었다.

버나드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여행중인 대장장이를 찾아다녔다.
우리 플랫폼에 솜씨 좋은 대장장이 한명쯤 찾아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으로 사방을 두리번 거리며 열심히 수소문했다.

 와중에 느닷없이 클레어가 나타났다.
함께 인근 계곡에 가지 않겠느냐며 느닷없이 생뚱맞은 제안을 해왔다.
하지만 버나드의 머릿속엔 오로지 대장장이 찾는 일밖에 없었기에 거절했다.
클레어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왠지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그녀와 헤어진뒤에도 계속 대장장이를 찾아다녔다.

다행히도 한명 있었다.
현장에서 즉시 그에게 갑옷 제작을 의뢰하며 텐트로 데려왔고, 낡은상자속 아공간에 죽어있는 레비아탄을 보여주었다.

버나드와 함께 아공간속을 헤엄치던 대장장이는 어두운 밤하늘 같은 공간에 둥둥 떠다니는 레비아탄의 사체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낡은상자에서 빠져나오자 대장장이는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으며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냈다.

“헉, 헉……! 믿기지 않는군요. 저 전설속의 고대 괴물을 어찌 잡으신겁니까? 허…… 내가 대체 뭘 본거야……!”

안타깝게도, 대장장이는 능력밖의 일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제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어요. 괜히 건드렸다가 재료만 망칠겁니다. 더 나은 장인을 찾아보십시오.”

대장장이가 떠나고 난뒤 텐트 앞에서 홀로 고심에 잠겨있을때였다.

“오오!  모습으로 돌아오셨군요! 축하드립니다.”

불쑥 이야기꾼 랜턴이 찾아왔다.
그에게는 예전에 버나드가 발급해준 특별 통행증이 있었기에 심사없이 마음대로 영내를 드나들 수 있었다.

“란님의 서신을 전하러 왔습니다.”

며칠전부터 수정구를 사용해 직접 연락을 할  없게된 란이 다른 연락 경로인 랜턴을 보낸 것이었다.
버나드는 건네받은 편지를 그 자리에서 읽어내려갔다.

-소녀를 구출했어. 그곳으로 향하는 중. 그리폰 정말 빠르네.

소녀는 요한나고, 그곳은 제국이다.
그런데 그리폰이라……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괴물 중에 그리폰과 히포그리프는 그나마 순한 기질이 있어 길들이기가 쉬웠고, 그로인해 교통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교통수단은 일반 백성, 하물며 왕조차 쉽게 누릴 수 없는 특권이었다.
말보다 몇배나 빠른 그리폰을 탈 수 있는 이들은 오로지 제국 황제와 주변 고위귀족들뿐.
란이 탄 그리폰은 아마도 그 요한나라는 소녀가 일행들과 레온왕국에 올때 타고온 것이라 예상됐다.

“좋은 선택을 했군.”

이동중에 태풍을 만난다든지 별다른 일이 없는한 란이 자신보다 훨씬 빠르게 제국에 도착할 것이다.
사실 요한나 라는 소녀를 제국으로 데려가는 행위는 도박이었다.
요한나에게서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황제가 대노할 것은 충분히 예상가능한 일.
어쩌면 분풀이 삼아 란이 제일 먼저 희생당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버나드는 사전에 란에게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버나드 경이 보내서 왔다고 해라. 그리하면 나와 안면이 있는 황제는 입밖으로 말을 내기전에 한번 더 고민할 것이다. 너는  틈을 타 황제에게 바로 직언을 올려야해. 우리는 지금 프레드릭왕을 몰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또한 한없이 부끄럽고 수치스런 레온 왕조를 역사에서 지우는중이라고. 그러면서 제국의 협조를 요청해라. 미친왕 프레드릭을 몰아내고 새로 들어선 왕조는 제국에 절대적인 충성을 약속할 것이라며 힘을 빌려달라고 해.”

버나드는 그렇게 말했던 얼마전 일을 떠올리며 편지를 접었다.

“말괄량이 란이 부디 덤벙대지 않고 잘 해주길.”

그때까지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랜턴이 편지를 접는 모습을 보고 입을 열었다.

“저, 버나드님. 실례가 안된다면 다음 행선지가 어딘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에버런일세.”
“역시나…… 그럴줄 알았습니다.”
“……? 왜?”
“에버런 말고 다른 곳을 경유해서 가면 안됩니까? 최근 그쪽 상황이 무척 안좋답니다.”
“이미 정해진 일이라 변경이 어려워. 에버런으로 향하는 플랫폼 이용자들도 들어와 있고 갑자기 행선지를 변경하면 그들이 불만을 가질거야. 또 우리 역시 형편상 먼 길을 돌아갈 수가 없네. 빠듯한 경비며, 여러가지로.”
“물론 에버런으로 가는게 국경에 빨리 당도하는 유일한 길이지만……”

랜턴은 걱정되는 얼굴로 말했다.

“최근 그곳에 무시무시한 악령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얼마전 왕의 자식도 그곳을 지나가다 악령한테 잡혀서 전멸 당했다고 하더군요.”
“왕의 자식이라면 누구? 사실인가?”
“사실 같긴 한데, 저도 뜬소문처럼 들은거라 누가 죽었는지 이름은 잘 모릅니다. 무식한 백성들이 귀족들에 대해서 뭘 아나요.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는 얘기만  지역 주민들한테 전해들었습니다. 근데 말이죠. 떠도는 소문중에 이런 얘기도 있더군요. 여기서부터 중요합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버나드가 계속 하란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랜턴이 신속히 이어말했다.

“1년전 왕의 군대에게 쫓기던 자들이 에버런 지역에 숨어들었는데, 결국엔 발각돼서 국경으로 가는 길목인 란바이어 평원에서 왕의 군대 대 쫓기는 자들 간에 대대적인 전투가 벌어졌었다고 합니다. 당시 왕의 군대가 싸움에서 이겼고, 쫓기던 자들은 전부 몰살당했다고 하는데요. 왕의 군대가 떠난 후  처참한 현장에서 깃발이 나왔는데, 글쎄.”

랜턴은 다급히 주위를 둘러보더니 밀어를 속삭이듯 말했다.

“포효하는 늑대의 머리가 그려진 깃발이었다고 합니다.”

 말을 듣자마자 버나드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정말인가……?”
“예, 깃발 나온건 확실한가 봅니다. 제가 자세히 알아본 결과 본 사람이 여럿있어요.”

포효하는 늑대의 머리 문양은 다름아닌 ‘밤의 늑대들’의 문장기였다.
그 말인 즉슨, 왕의 군대에게 쫓겨 달아나다 몰살된 자들은 바로 밤의 늑대들이란 소리가 된다.

밤의 늑대들 수장인 버나드가 체포된 이후 왕실은 후환이 두려워 밤의 늑대들을 완전히 말살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로인해 조직은 와해, 구성원 대다수가 도망치듯 전국으로 흩어졌고 그중 일부가 에버런 지역으로 숨어들었던 모양이다.
그러다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는 이야기.

보나마나 다들 아는 인물들일터.
오래전 자신이 직접 고르고 골라 받았던 젊고 당찬 대원들의 밝은 얼굴들이 뇌리에 스쳐지나갔다.
버나드는 얼굴을 쓸어내리며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어깨가 더욱 무거워지는 기분이군……”
“무슨 말씀이십니까?”
“혼잣말이야. 다른 얘기는 없나?”
“당연히 있습니다. 제가  마을 저 마을 떠돌면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다 수집하고 다니는 이야기꾼 아닙니까. 흥미로운 얘기를 제가 놓칠리가 없죠. 더욱 자세히 캐봤습니다.”

그러면서 랜턴은 말을 이었다.

“밤의 늑대들이 왕의 군대에게 쫓길 당시 잠시 머물렀던 마을이 있습니다. 여기 오기전 그곳에 잠시 들렸었죠. 버나드님의 앞길에 행여나 도움이 되는 정보가 있을까봐서요.”

랜턴의 말에 의하면 밤의 늑대들은 해당 마을에서 숨어지내며 순박한 성품을 가진 마을 주민들과  어울려지낸듯 했다.
밤의 늑대들은 자신들을 숨겨준 주민들에게 감사의 보답으로 의학과 과학지식 및 언어교육 등 모든걸 아낌없이 전수해줬고, 그 과정에서 주민들과 허물없이 지내며 그들 개개인의 삶과 사연들까지 고백한 모양이다.

“뭐하러 정체를……”

버나드는 순간 의아했지만 곧바로 수긍했다.
밤의 늑대들 모두 정보원 출신.
자신의 정체를 타인에게 절대 밝히면 안된다는 것을 모두 자각하고 있었을터.
하지만 절망적인 미래 앞에 합리적인 판단이 어렵고 슬프지 않을 사람은 없을것이다.
즉, 마을 주민들에게 굳이 정체를 밝혔다는 건, 오랜 도피생활로 심신이 극도로 쇠약해진 나머지 결국 죽음을 기다리며 자포자기한 심정이 아니었을까?

죽음이 눈앞에 닥치면 살아온 날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누군가 자신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따라서 나라에 헌신했던 자신들을 누군가 오래도록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에 정체를 밝혔던게 아닌지……

조국은 레온왕국이지만 비밀 정보원이라는 직업때문에 서류상에도 기록되지 않는 유령 같은 삶을 살았다.
그들이 조국을 위해 해낸 일들은 더할나위 없이 굵직하고 명예롭지만 그에 비해 아무도 그들의 존재를 몰랐다.
그들이 일궈낸 업적은 모두 프레드릭왕의 차지였다.

죽음직전 그들은 전부 배신감에 치를 떨며 억울한 마음에 크게 분노했을 것이다.
버나드도 직접 당해봤기에 그 심정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다.
그런 결론에 도달하자 버나드는 자못 숙연해졌다.

“너희의 원한은 내가 다 갚아주마…… 모두 편히 잠들기를……”

죽은이들이 누구누구인지 명단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것까진 무리겠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때쯤 랜턴이 재차 입을 열었다.

“마을 사람들이 하는 말이 우두머리 이름은 ‘로토’ 라는 자였다는군요. 혹시 아십니까?”
“로토?”

버나드는 오랜만에 들은 이름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는 담담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지. 레아가 내 오른팔, 줄리안이 내 왼팔이었다면, 로토는 내 두 다리였어. 지시하면 앞뒤 안가리고 제일 먼저 나섰지.”
“와…… 버나드님과 엄청 가까웠던 사람이군요.”
“그래, 총애했던 부하중 한명이었네. 아무튼 로토가 이 먼 곳까지 왔었다니……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론 슬프군.”

버나드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로토와의 추억을 짧게나마 곱씹었다.
랜턴이 슬쩍 눈치를 보다 말을 꺼냈다.

“죄송하지만,  사람…… 죽고나서 악령이  것 같습니다. 왕가에 원한을 품은 악령이요. 얼마나 원통했으면……”
“로토가 악령이라니 말도 안돼.”

버나드는 황당하다고 웃으면서도 동시에 목이 메이는지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랜턴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사람들 말로는, 얼마전 왕의 자녀를 살해했다는 악령의 행색이 로토의 생전 모습과 무척 닮았다고 합니다. 혹시 모르니 샤를리나님의 안전을 위해 에버런 지역 말고 다른 길로 돌아가시는게 좋지 않을까요? 그 악령은 왕가와 관련 깊은 사람들만 공격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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