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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0화 〉제국으로 향하는 여정41 (140/200)



〈 140화 〉제국으로 향하는 여정41

“(거절한다.)”

무척이나 깔끔하고 단조로운 대답에 릭이 자기도 모르게 코웃음을쳤다.

“이년봐라. 꼴에 자존심을 세우네.”

그는 다시 말했다.

“(그러지 말고 한잔 합시다. 귀찮게 안해요. 여행자인 당신도 우리 도움이 필요할 것 아닙니까? 어이 주인장! 어서 나와서 주문안받고 뭐해! 이래갖고 장사하겠어?)”
“(내 자리서 떠나라. 혼자마시겠다.)”
“(부담 갖지 말아요. 우리가 사준다니까요?)”
“(말로해선 안되겠군.)”

몸은 돌덩이처럼 크고 단단해도 뇌속까지 근육으로 똘똘 뭉쳐있는 것은 아니었다.
비록 말이 안통할지라도 베아트리스도 제법 눈치가 있는지라, 자신을 둘러싸고 앉아있는 청년들이 어떤 흑심을 품고 다가왔는지 진작에 알아채고 있었다.

다섯 청년들이 불운했던건, 그녀는  사람의 생명따위를 우습게 아는 전장에서 사는 장수였다.
전장에서의 그녀는 사납고 용맹하며 냉혈한  자체였다.
대화라고는 양보와 타협이 아닌 오직 상대를 죽이고 쟁취하는 무력의 대화밖에 몰랐다. 양보와 타협은 정치인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녀는 장수로서 그녀가 아는 방법으로만 적을 상대할뿐이다.
더욱이 보잘것 없는 신분을 가진 동네 불량배들과 술을 마시는 행위는 일국의 장군인 그녀의 자긍심이 허락지않았다.

“(눈앞에서 비웃어가며 날 모독했으니 너희에겐 죽음뿐이다.)”

별안간 들려온 말에 릭이 미간을 좁혔다.

“(예? 무슨 소리세요?)”

순간 베아트리스가 팔을 쭉 뻗으며 근처에 앉아있던 친구의 머리를 위에서  움켜쥐었다.
머리를 완전히 감쌀 정도로 그녀의 손이 컸다.

“(무, 무슨 짓입니까!)”
“아아! 릭! 아아! 머리가 뽀개지겠어! 빨리 놓으라고해! 으아아!”

난데없이 머리를 붙잡힌 친구가 두 손으로 힘껏 베아트리스의 손목을 꺾어 보려하지만 어림없다.
쭉 뻗은 그녀의 팔은 단단하고 굵은 통나무처럼 꿈쩍도 안했다.

“(내 친구를 놓으시죠! 지금 뭐하는 겁니까!)”
“(날 모독한 너희에게 벌을 내리고 있다.)”
“(헛소리 마세요! 언제 모욕했다는 겁니까!)”

릭이 성을내며 벌떡 일어나는 찰나였다.
베아트리스의 팔에 우직끈 힘줄이 튀어나오는 순간 친구의 머리가 팍 터지며 뇌수가 사방에 흩뿌려졌다.
가까이에 있던 모두가 기겁하며 피를 뒤집어 썼다.
멀리서  광경을 지켜본 손님들은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경황없이 부엌으로 도망치거나 그나마 제정신인 사람들은 밖으로 뛰쳐나갔다.

“씨, 씨발!”
“으아악!”

경악스러운 광경에 릭과 친구들의 입이 잠시동안 떡 벌어졌다.
곧 정신을 차린 그들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 미친년이!”

한 친구가 품에서 투척나이프를 꺼내 그녀에게 던지려하자, 베아트리스는 테이블을 정면에 앉아있던 친구들쪽으로 세게 밀쳐버렸다.
테이블 모서리에 맞은 친구 세 명이 그대로 의자와 함께 뒤로 벌러덩 넘어갔다.

곧바로 투척나이프가 그녀의 얼굴을 향해 날아왔으나 그녀는 쳐다보지도않고 고개만 옆으로 까딱하는 수준의 동작으로 가볍게 피해버렸다.
불량배들이 보기에 엄청난 기예였다.
그들은 순간 상대를 잘못골랐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즉시 도망치고 싶었으나 누구도 그녀를 벗어날 수 없었다.

베아트리스는 민첩하게 움직여 투척나이프를 던진 청년의 목을 한손으로 움켜잡고 그대로 들어올렸다.

“놔, 놔! 우웁! 윽!”
“(죽어라.)”

그녀가 손아귀에 힘을 주자 이내 목뼈가 부러지는 소리가나며 청년의 머리가 한쪽으로 축 쳐져 덜렁거렸다.
베아트리스는 쥐고있던 시체를 벽쪽으로 집어 던진 다음 다른 청년에게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녀는 흥분하지 않았고, 무척이나 평온한 얼굴이었다.
그래서 더욱 무서웠다.

“죽어 개년아!”

콰직!
뒤에서 청년이 나타나 의자로 그녀의 후두부를 가격했으나 소용없었다.
베아트리스는 담담히 뒤를 돌아보더니, 곧장 손날을 휘둘러 그의 목을 쳐버렸다.
청년은 옆으로 날아가 벽에 처박히고는 그대로 목이 부러진 채 즉사했다.

“사, 살려줘……!”

친구들이 하나씩 죽어나가는 광경을 보고 겁을 집어 먹은 나머지 구석에 웅크린채 벌벌 떨고 있던  친구는 판금 장화를 신은 베아트리스의 발에 사정없이 짓밟혀 얼굴을 알아볼  없을 정도로 짓뭉개진 채 죽어버렸다.
차갑고 냉정한 전사인 베아트리스에게 자비란 존재하지 않았다.

“마, 맙소사……! 흐흑!”

순식간에  친구가 죽었다.
홀로 남은 릭은 절망감을 느끼며 바지에 오줌을 지렸다.
그는 빨리 이 지옥에서 탈출하고 싶었으나 그럴 수도 없는 것이 현재 베아트리스에게 멱살을 잡힌  질질 끌려다니고 있었다.

베아트리스는 조용히 자신의 짐을 챙긴뒤 릭의 멱살을 움켜쥐고 카운터쪽으로 걸어갔다.

“(주인 불러라. 통역해.)”
“(사, 살려주십시오. 제발 부탁입니다. 다신 안그럴게요 흑흑!)”
“(주인에게 계산하겠다고 전해.)”
“주, 주인장, 빨리나와봐요!”
“(더 크게 말해라.)”
“주, 주인장! 계, 계산!”

부엌은 잠잠했다.
아무도 없는 것마냥 주인이 나오질 않자 베아트리스가 천천히 부엌쪽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주인이 행주로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으며 헐레벌떡 튀어나왔다.

“계, 계산이요? 잠시만요!”

주인이 카운터에 서자 베아트리스는 작은 돈 주머니를 꺼냈다.

“(아까 주문한 요리는 가져갈테니 술과 함께 최대한 담을  있는 만큼 포장해주시오. 그릇값은 내겠습니다. 통역해.)”
“주, 주문한 요리를 포장해달랍니다…… 그리고……”

릭은 계속 베아트리스의 말을 통역했다.

“여, 영주님께도 전해달랍니다.”
“뭐, 뭘 전해드릴까요?”
“당신의 영지민이 귀족인 날 모욕하였소. 이에 나는 명예를 지키기 위해  욕보인 자들을 처단하였소. 신께 맹세코 이곳에 소동을 벌이고자 온게 아니오. 잠시 지나가는 중이었을 뿐이외다. 급한 일정으로 인사조차 못드리고 떠나는걸 이해해주시오…… 라, 라네요.”
“꼭 전해드리겠습니다.”

이마에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주인이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리고 또……”
“네네, 또 말씀주십시오.”
“내 행위가 정당하다고는 하나 영지의 노동력이 줄어든 것은 부정할  없소. 따라서 그 피해액을 배상하고자 하는 바요. 본인이 살해한 자들은 한낱 보잘 것 없는 불량배들이고, 시장에서 노예  사람의 값이 평균 금화 1닢씩이니, 당신의 영지에서 뜻하지 않게 소란을 벌인 송구함으로 이보다 더욱 값을 매겨 한 사람의 목숨당 금화 다섯닢씩 계산하겠소.”

릭의 말이 끝나자 베아트리스는 돈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상인에게 건넸다.
포장해가는 술과 음식값과 더불어 죽은 불량배들의 목숨값이었다.

“나, 나중에 사람을 보내 확인할테니 반드시 전하랍니다.”
“에구, 물론입니다. 우리 영주님께 꼭 돈과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빠르게 돈을 세어보던 주인이 고개를 들어 베아트리스를 쳐다봤다.

“저기…… 돈을  주신것 같습니다. 총 네 사람이 죽었으니 목숨값은 금화 20닢이 아닙니까? 저한테 5닢 더 주셨습니다. 총 25닢 받았습니다.”

그 말을 들은 릭이 베아트리스에게 벌벌떨며 전하자, 베아트리스는 무표정으로 릭을 쳐다보더니 갑자기 그의 두 눈을 손가락으로 찔렀다.

“으아악!”

릭이 두 눈을 감싸고 비명을 지르는 사이 베아트리스는 그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벽으로 끌고갔다.

쾅!
쾅! 쾅쾅!

몇번인가 벽에 세차게 때려박자 릭은 머리가 터져 죽어버렸다.
벽에서 흘러내리는 핏줄기.

베아트리스는 왠지 모르게 후련함을 느끼며 손을 털었다.
자신을 욕보인 청년들에게 응당한 대가를 선사해서 시원함을 느낀건 결코 아니다.
그냥 무언가를 파괴하는 행위가 타고난 전사인 그녀를 즐겁게할뿐이다.

그녀는 큰 충격을 받아 제자리에서 얼어버린 주인을 쳐다봤다.

“(포장 안하고 거기서 뭘하나?)”
“네, 네?”
“(술과 요리 포장. 술과 요리를 포장해라. 술, 요리. 내 말 모르겠나?)”

그녀는 부엌을 가리키더니 먹는 시늉을 했다.
뒤늦게 알아차린 주인이 서둘러 부엌쪽으로 뛰어갔다.

“어, 얼른 내오겠습니다! 기다려주십시오!”

얼마뒤 베아트리스는 한손에 커다란 보자기를 든 채 식당을 떠났다.
음식 냄새를 맡은 동네 개들이 그녀가 마을을 떠날때까지 뒤따라다녔다.

다음날, 살인사건 소식을 접한 영주의 기사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식당 주인이 건네는 말과 돈을 받고는 영주에게 고스란히 전했다.
거저 들어온 목돈을 보자 영주의 입가엔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누군지 모르겠으나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잘 배운 것만은 틀림없군! 그자의 여행길이 순탄하기를 기도하지!”


***

높이 솟은  아래로 길게 펼쳐진 계곡은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겼다.
우거진 숲과 계곡이 잘 어우러져 있어 호수의 경관이 한층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바닥까지 비치는 맑은 호숫물이 베아트리스를 반겼다.
마음속까지 맑고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베아트리스는 한참을 호수속을 바라보다 이윽고 말에서 내렸다.
내리면서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국적인 풍경속을 노니는 여행은 흥분되고 즐겁지만, 한편으로는 무척 고된 일이다.
잠자리부터 식사까지 불편한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으니까.

사흘이 지난 음식에서 상한 냄새가 났다.
식당에서 싸온 것을 지난 삼일간 몇 차례 나눠서 먹었으나 이제 한계다. 못먹을 수준이다.
부피가 컸음에도 귀찮게 들고 다녔던 술통도 오늘부로 바닥을 드러냈다.

“아까워라.”

커다란 술통을 두 손으로 번쩍들고 꿀꺽꿀꺽 마신 베아트리스는 손등으로 입술을 닦으며  술통을 멀리 내던졌다.
장정 한 명이 두 손으로 들어야하는 무거운 빈 술통따위 그녀는 한 손이면 충분했다.

“또 마을을 찾아봐야겠군……”

솜씨 좋게 나뭇가지를 모아와 모닥불을 피웠다.
썩은내가 진동하던 나무그릇은 깨끗이 씻어 모닥불 근처에 놔뒀다. 여행용 음식 그릇으로 계속 재활용할 생각이다. 아마도 버나드란 소년을 만날때까진 계속 쓰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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