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화 〉제국으로 향하는 여정32
“그러게 말이다.”
버나드는 길게 한숨을 내쉰뒤 쓰게 웃었다.
잠시 땅바닥에 시선을 두던 그는, 품속에 손을 넣더니 금화 한닢을 꺼냈다.
“위로금이다. 사과는 이걸로 대신하지.”
금화를 그녀의 코앞에 내려놓았다.
“그지 같은 새끼들.”
바닥에 놓인 두 개의 금화를 바라보던 웬디가 깔깔 웃어댔다.
“이거라도 주니 다행이네. 금화 세 닢이면 도망쳐서 어디서든 그럭저럭 살 수 있겠어.”
“내 의뢰를 받아주면 금화 두 닢을 더 얹어주지. 그럼 총 다섯닢이야.”
“황송할 정도군. 기분 째지겠어. 하지만 나도 마침 부탁할게 떠올랐지.”
바닥에 얼굴을 대고 있던 그녀가 혀를 길게 내밀어 혓바닥으로 금화를 버나드쪽으로 스윽 내밀었다.
혀에 묻은 흙들을 퉷퉷 털어낸뒤 말했다.
“당신 의뢰를 받아주는 조건으로 나도 부탁이 있어. 금화 한닢을 줄테니 사람 한 명만 죽여줘.”
“제안을 해올줄이야 뜻밖이군.”
“사람 한명 죽이는건 밤의 늑대들한테 식은 죽 먹기잖아? 만약 거절하면 나도 당신 부탁을 안들어줄거야. 죽는 일이 있더라도. 자, 선택하시지. 아, 혹시 협박할 생각이라면 그만둬. 내 인생이 이미 막장이라 아무것도 두렵지 않지.”
“난 아무나 죽이지 않아. 그리고 넌 내게 거래를 제안할 상황이 아니지.”
버나드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웬디의 하얀 엉덩이 위에 신발을 신은 채 발을 올렸다.
“잊지마. 넌 내 발밑에 있어.”
“개새끼.”
웬디가 짜증난다는 얼굴로 근처 바닥에 침을 뱉었다.
“아무나가 아니야. 날 매일밤 동료의 침대에 집어넣고 돈을 챙기는 포주 새끼라고. 그 새끼 손아귀에서 그만 벗어나고 싶어. 맞고 살기도 질렸단 말이야. 그간 몸팔아 번 돈도 전부 돌려받고 싶고. 제발, 부탁이야.”
울먹이며 애원하는 웬디의 요청에 버나드는 한참 그녀를 내려다 보다 갑자기 바지를 풀고 성기를 꺼냈다.
다시금 세상 밖으로 나온 성기는 흘러나온 정액과 아까 묻은 애액으로 번들거렸다.
“이 시간부로 우린 동지다.”
버나드는 웬디의 얼굴쪽에 무릎꿇고 앉으며 그녀에게 작아진 성기를 흔들어보였다.
“서로 동지가 된 기념으로 동지애나 확인해볼까? 깨끗하게 빨아줘. 끈적거려서 바짓속이 불편하군.”
“그새 또 하고 싶어졌나보군. 쓰레기 자식.”
웬디가 킥킥 웃더니 머리를 쭉 빼고 버나드의 가랑이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녀의 혀는 짐승처럼 난폭하게 정액으로 더러워진 성기를 빨아대기 시작했다.
“후…… 좋군.”
버나드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은 채 짜릿한 전율을 음미했다.
“얼굴은 별로더니 입안이 아주 매력적인 여자였군. 날 만족시킨 대가로 소원을 들어주지. 어서 놈의 인상착의를 말해봐.”
***
그날 저녁 버나드는, 웬디에게 늘 강압적인 성매매를 강요하던 사내의 뒤를 밟아 은밀히 살해해버렸다.
시체의 뒷처리는 그의 부름에 한달음에 달려온 루로키나 거지 삼남매가 맡았다.
삼남매는 그 자리에서 그들이 발견한 키클롭스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여기서 하루정도 걸리는 거리라요. 덩치가 이따만허요!”
“마스터울프 먹을때 우리도 한입 거들고 싶제!”
“나 칭찬해주요. 기특하디.”
현재 소년의 몸인 버나드로서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삼남매에게 얘기를 듣자마자 주먹을 움켜쥐며 키클롭스 사냥을 서두르리라 속으로 다짐했다.
“잘했다. 이 시체는 너희가 알아서해.”
“울 셋이 먹어불면 아무도 모르지라. 킥킥.”
“간만에 포식이랑게.”
“오빠들, 갈비뼈는 내꺼디.”
샨과 딘, 루가 시체를 들고 사라진 후 버나드는 밤중에 웬디와 다시 만났다.
그리고 죽인 사내의 신체 일부와 소지품을 건넸다.
“그의 페니스와 주머니속에 들어있던 돈이다. 얼마 안되는 돈이지만 당신에겐 소중하겠지?”
“내놔.”
웬디는 동전들을 가로채듯 낚아채 가슴골에 숨겨진 주머니속에 얼른 쑤셔넣었다.
버나드를 향해 설핏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그가 들고 있던 쇠꼬챙이를 건네받아 그것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가늘고 날카로운 꼬챙이에는 뿌리부터 절단된 성기가 꽂혀져 있었다.
“흐음, 그 녀석 것이 확실하군. 흉측하고 징그럽게 생긴 귀두 모양이 녀석의 것과 똑같아. 사내들은 저마다 귀두가 다르게 생겼거든. 마치 얼굴처럼.”
“네 부탁을 들어줬으니 이제 내 의뢰를 행할 차례다.”
“의뢰를 행하라니 마치 부하다루듯 명령하시네.”
웬디는 꼬챙이에 꽂혀있던 성기를 땅에 떨군다음 발로 콱콱 짓밟았다.
“속이 후련해! 그래서 당신 의뢰가 뭔데? 내가 뭘 해주면 돼? 왕의 피를 물려받은 여섯번째 왕자이자 내 주인님이신 블레어 공의 방에 침입하라는 소리만 빼고 다 들어줄게.”
“블레어 공의 방에 잠입해서 그가 진짜 블레어 공인지 알아봐봐.”
“빌어먹을!”
“약속은 지켜야지?”
“밤의 늑대들 개자식들 전부 지옥에나 가버려!”
다음날 오전, 웬디는 귀족들의 배변통을 치우는 일을 하면서 블레어의 숙소에도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한시간 가량 빈 침실을 뒤적이고 나온 그녀는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버나드와 구석진곳에서 만났다.
양팔로 몸을 감싼채 잔뜩 긴장한 그녀를 보고 버나드가 조용히 주의를 줬다.
“진정해. 얼굴에서 티가 나잖아.”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걸리면 내 목이 날아가는 일이었어!”
“전에 자주 했던 일이잖나. 익숙할텐데?”
“자주한다고 달라질줄 알아? 게다가 오랜만이라 심장이 더더욱 떨렸다고!”
“아무튼 그래서. 그래서 결과는?”
“네놈들은 늘 그렇듯 결과만 중시하지.”
“그리고 당신은 보수를 받아 기쁘고.”
웬디는 체념한듯 몸을 감쌌던 팔을 내리며 크게 심호흡을 한뒤 말했다.
“서랍이며 옷속이며 침대 밑바닥까지 전부 찾아봤는데 그가 가짜라는 것을 증명할만한 단서는 하나도 없었어.”
“아무것도?”
“아무것도.”
“실망스러운 결과군.”
“난 시킨대로 열심히 일했어!”
웬디가 진심이라는듯 언성을 높였다.
버나드는 별다른 말없이 금화 두 닢을 튕겨서 그녀에게 건넸다.
금화를 본 웬디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돈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
“보수는 제대로 지급했다. 가봐.”
“설마, 이게 끝?”
“끝.”
“거짓말.”
“왜? 더하고 싶나?”
“미쳤어?”
“그럼 왜 머뭇거리고 있어. 그만 떠나라.”
“너무 간단해서 수상해.”
“그 정도의 일이었다.”
“솔직히 불어. 혹시 그거 아니야? 내가 뒤돌아서 걸어갈때 뒤에서 몰래 칼로 찌를 속셈이지? 줬던 돈 전부 뺏어갈려고!”
버나드가 피식 거렸다.
“앞으로 정보원으로 쓸 생각이다. 그럴 일은 없어.”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루테니아 가문을 훔쳐볼 귀한 정보원을 죽여서야 쓰나. 이만 헤어지자. 낮이다. 둘이 붙어있는걸 보는 눈이 있을지도 몰라.”
“앞으로도 애용할 생각?”
“애용과는 거리가 멀지만 어쨌든 너와의 관계는 지속적으로 유지할 생각이다.”
안심이 되는지 웬디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나도 사실 당신을 더 알고 싶다고 느끼던 참이었어. 어린 주제에 어른 같은 분위기하며 꼬추가 참 매력있었거든.”
버나드가 인상을 찌푸렸다.
“또 저질스런 짓을 할 생각은 없어. 너와 단숨에 친분을 쌓기 위해 필요했을뿐이다. 육체를 섞는 일은 처음 만난 남녀를 금세 친해지게 만들지.”
“언제부터 섹스가 최고의 사교 기술이 됐지? 알고 나서 하는게 아니라 하고 나서 알고 지낸다?”
“공작원들 사이에서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대표적인 포섭 기술이다.”
“날 언제 포섭했다는거야? 난 계속 내 의지로 움직였어. 지금도 내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고. 날 조종한다는듯이 쳐다보지 말아줄래? 그 눈빛 매우 기분 나쁘거든?”
버나드는 순순히 먼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튼 추후 연락은 ‘현재 키클롭스 한마리째’라는 가명으로 하도록 하지.”
“현재 키클롭스 한마리째? 특이한 가명이네.”
“너도 기억에 남아서 편하잖아. 작별이다.”
버나드가 몇발자국 멀어졌을때,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던 웬디가 다급히 소리쳤다.
“당신한테 받은 돈으로 루테니아 가문을 떠날수도 있어! 언제 도망칠지 모른다고! 조만간 여기서 꼭 탈출할거야!”
“그럼 새로 이주한 지역에서 내 정보원으로 일하면 된다.”
“내가 어딨는줄 알고 연락할건데?”
“네가 먼저 편지로 내게 보고해. 난 당분간 아킨테 가문의 영애 샤를리나님과 같이 다닐테니까.”
“아킨테 가문의 샤를리나님……, 잠깐! 난 당신한테 포섭당하지 않았다고! 내 마음대로 행동할거야! 자유롭게!”
“큰돈 벌고 싶으면 계속 나랑 연락하는게 좋을거다.”
“돈!”
웬디는 그대로 입을 다물며 더이상 아무것도 따지지 않았다.
버나드의 말에 수긍한듯 그녀의 얼굴엔 미소만이 피어있었다.
***
“준비가 끝났습니다!”
아킨테 가문과 루테니아 가문, 양가문의 수많은 사람들이 골짜기 아래를 내려다보며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골짜기 아래, 터널 밖으로 삐져나온 거대한 뱀의 꼬리 주위에는 수많은 장작이 쌓여있었고, 어제 버나드가 제시한 의견에 따라 장작에 불을 지펴 뱀을 터널밖으로 쫓아낼 계획이었다.
꼬리 부위에서 열기를 느낀 거대한 뱀이 얌전히 터널을 빠져나가 어디론가 떠나주기만을 바랄뿐.
지켜보는 모든 사람이 숨죽여 소망했다.
“불화살 준비!”
양가문을 대표하여 백검대장 멜리사가 손을 들며 크게 외쳤다.
“발사!”
그녀의 외침에 따라 골짜기 주변에 진을 치고 대기하던 양가문의 병사들이 시위를 당기자 곧, 오십발 남짓한 불화살이 거침없이 날아가 뱀의 꼬리 주변에 쌓인 장작더미에 우수수 내리꽂혔다.
“실수없이 전발 명중했습니다!”
한 기사의 외침에 조용히 지켜보던 귀족들이 흡족해하며 조용히 박수를 쳤다.
화르륵!
기름을 칠한 장작더미에 붙은 불길은 순식간에 주변을 집어 삼켰고 뱀의 꼬리 주변에서 온전히 활활 타올랐다.
그 와중에 블레어는 나란히 골짜기 밑을 내려다보던 샤를리나 옆에서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뱀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버나드 경의 주장이 옳은지 틀린지 곧 알게 되겠군요. 만약 틀렸다면 뱀만 화나게 할뿐이고 큰 피해를 볼텐데…… 후후.”
그때까지 말없이 구경만하고 있던 샤를이 그의 말에 탐탁치않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비록 틀렸다할지라도 시도라도 해본게 어딘가요?”
“예, 옳으신 말씀입니다. 다만 한번의 실패로 큰 인명피해가 생긴다면……”
블레어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 책임은 당연 버나드 경이 져야겠죠.”
말이 끝남과 동시에 누군가 소리쳤다.
“우, 움직인다! 꼬리가 터널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어!”
“뭐라고? 그럴리가.”
블레어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골짜기 아래를 똑바로 쳐다봤다.
불길 한가운데 놓여있던 거대한 뱀의 꼬리가 터널속으로 기어 들어가며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허탈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서, 성공인가……?”
누군가에게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주변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크게 환호성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성공이다! 성공이야!”
“버나드 경의 주장이 옳았어!”
멜리사가 한손에 검을 들고 크게 외쳤다.
“방심하지마라! 아직 끝난게 아니다! 다음 조! 주의를 경계하며 신속히 밑으로 내려가 꼬리가 지나간 터널 안에도 불을 지펴라!”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