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화 〉제국으로 향하는 여정25
버나드가 소년의 몸으로 되돌아온지 이주일이 지났다.
그 사이 그와 백검대는 왕국의 남북으로 이어지는 애팔레티나 산맥의 얀데스 산을 지나고 있었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애팔레티나 산맥의 장엄한 풍경이 일행들의 시야에 끝없이 펼쳐졌다.
천계를 거닐고 있는 것만 같은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에 일행들은 저마다 노곤함을 잊고 감탄을 자아내며 넋을 잃고 걸었다.
또한 하루 10시간씩 행군하는 와중에도 버나드는 클레어의 훈련을 꾸준히 챙겼다.
자고 일어난 이른 새벽 및 중간중간 휴식을 취할때마다 클레어와 만나 그녀의 검술을 봐주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이른 새벽에 일어나 훈련을 끝마친 참이었다.
“수고했어.”
“너도. 고마워……”
“고마워할 필요없다. 내가 싸울때 도움되라고 가르치는거니까.”
무심하게 대꾸한 버나드는 수건으로 얼굴에 맺힌 땀을 닦으며 가죽 수통을 입가에 가져다댔다.
클레어는 그가 물을 마시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금발 머리카락이 땀으로 흥건히 젖은 그녀였지만 닦는 것도 잊은 채 버나드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버나드 껀 훌륭해. 그런걸 달고 다닌다는게……’
클레어는 요즘 큰 고민에 빠졌다.
전에 목격한 버나드의 위풍당당한 성기가 자꾸만 머릿속에 떠올라 그녀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 또 보고 싶었다.
버나드의 성기는 상상만으로도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멋지고 훌륭했다.
자꾸만 보고 싶게 만드는 중독성이 있었다.
이런 마음은 결코 저질스러운 감정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거대하고 웅장한 건축물을 보라.
보는 이로 하여금 경외심을 가지게할뿐이지 그외 다른 감정은 일체 들지 않는다.
클레어가 느끼는 감정도 그와 똑같았다.
훌륭하게 조각된 경이로운 성기를 다시 한번 눈에 담고 싶은 욕심이 스멀스멀 피어오를 뿐이었다. 그와 몸을 섞고 싶다거나 하는 등의 저질적인 감정은 전혀 품고 있지 않았다.
아울러 그녀는 남성의 성기에 반한게 아니다.
오직 버나드의 성기에 반한 것이었다.
천재적인 실력을 가진 버나드였기에 그가 달고 다니는 물건이 멋져보일 뿐이었다.
정복자가 가진 강력한 무기처럼 보였기에!
어린시절부터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녀는 자신보다 강한 남성을 보면 위축되어 고분고분해지는 성격을 가지게 되었고(그녀의 어머니도 아버지에게 복종하고 순종했다), 그런 아버지는 그녀에게 위대한 검사가 되라고 명했기에ㅡ, 클레어는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버나드와 만나게 되면서 자신의 한계를 느꼈다.
그녀는 버나드에게 뒤쳐지는 원인으로 자신에게 훌륭한 남근이 없어서라 여겼고, 자신에게 없는 남근을 가진 버나드를 최근 동경하게 되었다.
또 동경하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집착하게 된다.
버나드의 행동 하나하나가 그녀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가죽 수통에 든 물을 단숨에 다 마신 버나드가 떠날 채비를 했다.
“밥 맛있게 먹어. 간다.”
“응…… 너도. 잠깐만.”
“왜?”
“샤를님은……?”
숙소에 틀어박혀 잘 나오지 않는 샤를을 달래줘야할 것 같은데 버나드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 클레어는 안타까웠다.
따라서 신경써달라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버나드는 무심했다.
“가신으로서 샤를리나님께 너무 가까이 다가서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라고 본다. 더구나 주군이 여성이면 가신은 구설수도 주의해야해. 아무튼 샤를리나님도 하늘이 내려준 왕의 핏줄을 물려받은 분이시니 적정선에서 말씀드리면 나머진 알아서 생각하시겠지. 그 분은 평범한 인간이 아닌 선택받은 사람이니까 우리 같은 자들의 조언이 계속되면 잔소리만 될뿐이야. 지난번에 말씀드렸으니 그분도 생각이 있으실거야. 별말 없이 잘 따라와주시니 이 이상 더 할 것은 없다고 생각해.”
“……”
클레어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 분은 우리와 달리 특별한 신분을 가진 분이니까.”
“만약 아킨테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시면 내게 말해줘. 바로 달려갈테니까.”
“응.”
“간다. 이따봐.”
“잠깐만.”
버나드는 뒤돌아섰다가 다시 뒤를 돌아봤다.
“또 왜?”
“저기……”
클레어는 입술을 달싹이며 얼마전 있었던 일을 상기했다.
그녀의 머릿속에 인적이 없는 숲속 바위 위에서 버나드가 멜라니아의 육체를 탐닉하던 광경이 떠올랐다.
“괜한 참견인지 모르겠는데……”
“괜찮아, 말해봐.”
“저번에……”
클레어는 뜸을 들이다 용기를 내서 물었다.
“데보라 씨하고는 헤어진거야?”
“응?”
버나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무슨 말이야? 안헤어졌는데?”
“그럼 왜 그때……”
그녀가 또 입술을 망설이며 시간을 지체하자 그 사이 무슨 말인지 눈치챈 버나드가 웃으며 먼저 말을 꺼냈다.
“마녀랑 왜 관계를 가졌냐고?”
“어, 어……”
클레어는 눈치를 보며 무안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그녀의 자궁에 네 씨를 뿌렸어?”
“곤란한 질문을 하는군.”
버나드가 한숨을 내쉬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 일이 네게 중요한건 아니잖아?”
그가 정색하며 대꾸하자 클레어는 속으로 뜨끔했다.
“마, 맞는 말이지만……”
“그럼 신경꺼.”
“알았어……”
“더 물을건?”
“물을거?”
클레어는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대답했다.
“지금은 없는것 같아……”
“다음에 질문할땐 우리 훈련에 관한거였으면 좋겠다. 갈게.”
버나드는 손을 한번 들어보이고 자리를 떠났다.
클레어는 제자리에서 잠자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훈련에 사용했던 목검을 얼른 챙기며 뒷정리를 한뒤 그의 뒤를 슬그머니 밟았다.
‘버나드는 남성적인 매력이 강해…… 자꾸만 그를 바라보고 싶어……’
버나드는 그녀와 만나는 일정을 끝냈지만 클레어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클레어는 은근 기대하고 있었다.
버나드를 조용히 따라가다보면…… 잘 하면 그의 연인인 데보라 혹은 멜라니아와 밀회를 가지는 광경을 훔쳐볼 수 있지 않을까. 지난번처럼.
그녀의 가슴에 두근두근 호기심이 일었다.
‘날 짓누르는듯한 그 위압적인 페니스를 또 볼 수 있기를……’
그러나 그녀의 바람과 달리 버나드는 숲을 나온 직후, 그의 일행들이 머무는 텐트에 도착해 음식이 담긴 접시를 들고 꺼진 모닥불 앞에 앉아 아침식사를 했다.
별것 없는 아침 일상이었다.
실망스러웠지만 혹시 모른다는 기대감에 멍하니 엿보고만 있었다.
버나드의 옆에 앉아 함께 식사중인 데보라가 쉼없이 떠들어대는 소리만 들렸다.
“버나드~ 우리 천막은 언제 살거야? 돈 많이 벌었잖니. 며칠전에 산다며~”
“이번에 걷다가 마을이 나오면 거기서 사야지.”
그 앞에서 식사중이던 마크가 반기며 끼어들었다.
“야야, 너희꺼 사는 김에 내꺼도! 내꺼도 하나 사주라!”
“오라버니는 걍 밖에서 자도 되잖아요?”
“아냐아냐! 나도 개인공간이 필요하다고!”
“천막 거둘때 힘만 더 쓰게 뭔 개인공간이에요? 그렇잖아도 멜라니아 할머니도 사달라던데. 야영지 철수할때 무지 피곤하게 생겼어. 우린 힘센 하인도 없어 우리가 다 해야한다구요.”
클레어는 한참동안 그 모습을 지켜보다 이윽고 발길을 돌렸다.
새벽부터 체력을 소진한 까닭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무심코 배를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그는 누구를 더 좋아하는걸까.”
***
정오가 막 지날무렵, 앞서 나갔던 정찰대가 다급하게 본대 행렬에 복귀했다.
“대장님! 샨달라 여왕의 의지에 거대한 뱀 한마리가 들어가서 길을 막고 있습니다!”
“얼마나 크길래?”
“그 크기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합니다! 직접 눈으로 보셔야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나 크더냐? 터널을 통과하는 와중이 아니고?”
“제 두 눈으로 몇 차례 확인한바, 터널 밖으로 큰 꼬리만 내놓은 채 가만히 멈춰있었습니다.”
“환장하겠군. 우리가 지나려할때에 하필……”
정찰대장에게 보고를 받은 멜리사는 귀찮은 일이 생겼다며 혀를 찼다.
‘샨달라 여왕의 의지’란 건축물은 애팔레티나 산맥을 동서로 관통하는 터널의 이름이었다.
레온 왕조의 1대왕 시리우스의 뒤를 이어 왕위를 물려받은 2대 샨달라 여왕의 이름을 따 붙인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레온 왕국과 아케르니아 제국은 서로의 국경을 수시로 침범하며 치열한 전쟁을 벌였고, 샨달라 여왕은 대대적인 아케르니아 침공을 계획하며, 좀 더 확실히, 좀 더 전략적으로, 좀 더 수월하게, 이동에 걸리는 시간을 대폭 단축하기 위해 드워프들을 동원하여 애팔레티나 산맥에 긴 터널을 뚫었다.
그것이 바로 제국 침공에 대한 여왕의 강력한 열망을 보여주는 ‘샨달라 여왕의 의지 터널’이 탄생하게된 계기였다.
좌우지간 정찰대장은 큰 뱀이 터널을 막고 있다는 사실 말고도 왕의 자녀로 보이는 세력이 그 주변에 주둔중이라는 것까지 덩달아 보고했다.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터널을 통과하려다 길을 막고 있는 뱀 때문에 진군을 멈춘듯 싶습니다.”
“왕의 자녀라…… 그들의 깃발 문양은 무엇이었느냐?”
“흰색 바탕에 회색 투구를 쓴 기사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경쟁관계인 왕의 자녀와의 조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여행중에 가능하면 마주치고 싶지 않은 상황이었다.
“인명 사전을 가져와라.”
멜리사는 그 즉시 말에서 내려 참모들과 함께 열권짜리 레온 왕국 귀족 인명 사전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잠시 후, 깃발에 새겨진 문장을 통해 상대의 정체를 알게된 멜리사가 미간을 찡그렸다.
“루테니아 가문이군. 그렇다면 프레드릭왕의 피를 물려 받은 서자 블레어가 이끄는 군대인가……”
한편, 순조로이 길을 나아가던 와중에 갑자기 선두의 행렬이 멈춰서자 그것을 이상히 여긴 버나드가 말을 몰아 앞으로 달려나왔다.
“무슨 일입니까?”
“아, 버나드 경.”
멜리사는 그를 보자 절로 반가운 표정이 지어졌다.
이 막막한 상황에 버나드는 좋은 논의 상대였다.
지역 사람들로부터 칭송이 자자한 것 하며 버나드가 지금까지 해낸 일들이 그녀에게 기대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런 이유로 빨리 현상황을 알리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다.
하지만!
그에게 애걸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는 판단하에, 한순간 풀어졌던 그녀의 표정이 다시금 새침하게 굳었다.
“저 앞에 골치 아픈 일이 발생한 모양이네요. 한가하시면 같이 가볼래요? 귀찮으시면 뭐 어쩔 수 없고요.”
그에 버나드는 진지한 표정으로 전방의 먼 곳을 주시하더니 다시 멜리사를 돌아보며 말했다.
“같이 갑시다. 무슨 일인지 저도 살펴봐야겠군요.”
“어머? 왠일이래요 거절하실줄 알았는데.”
“당연한걸요. 위기 앞에 우리는 하나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샤를님의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그 말에 멜리사는 겉으로는 별것 아닌듯이 행동했지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잘했어요 버나드 경! 난 당신과 문제를 의논하고 싶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