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화 〉제국으로 향하는 여정23
프레드릭왕이 홀안에 들어섰을때 크레치만 일행은 그를 보고 충격을 금치 못했다.
“좀 늦었소이다.”
프레드릭왕은 알몸에 황금 가운만 달랑 걸친 채 왕좌에 앉았다.
앉으면서 저절로 가운이 벌어지며 그의 성기를 비롯해 그 주위에 자란 노란털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크레치만 일행은 천박한 그의 복장을 보고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모두 위대하신 황제님 앞에 무릎을 꿇으라!”
발끈한 크레치만이 인사따위 생략하고 다짜고짜 황제의 책명(策命)이 적힌 양피지 두루마리를 꺼내 높이 들어보였다.
그 즉시 홀안의 모든 사람들이 칼같이 한쪽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였다.
단 한명을 제외하고.
프레드릭왕은 팔걸이에 기대어 턱을 괸채 무심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아서 말이오. 살이 디룩디룩 쪄서 무릎이 아프니 양해바라오.”
“저, 저런!”
크레치만의 뒤에서 무릎 꿇고 앉아있던 일행들이 무례하다며 웅성거렸다.
크레치만 역시 왕을 괘씸하게여겼으나 지금 이 자리에서 그런걸 따질때가 아니었다.
“지금부터 황제 폐하의 칙명을 전하겠소!”
그는 단호한 표정으로 양피지 두루마리의 매듭을 푼뒤 양쪽으로 펼치고 크게 읽어내려갔다.
“프레드릭. 일찍이 짐은 그대를 구원하며 레온 왕국의 번영을 바랐으나 그대는 짐의 은혜를 부덕함으로 갚았다. 이 의미를 알겠느냐? 그대의 자식들이 짐의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으니 군신의 예를 다하여 더 이상 짐이 신경쓰는 일이 없도록 하라. 블랙드래곤 심장 절반의 주인이 누구인지 이미 온 천하가 아는 바로, 마땅히 짐의 후손들이 이어받아 만세에 전해져야 할 것이니라.”
크레치만은 다 읽고 나서 하품을 하고 있는 프레드릭왕을 올려다봤다.
“황제 폐하의 칙명을 따르지 않을 생각이라면 지금 즉시 우리와 함께 ‘자하 뤼베르덴(제국의 수도)’으로 가주셔야겠소.”
프레드릭왕의 입술이 씰룩거렸다.
“폐하의 칙명을 기꺼이 받자옵고 순복하는 마음으로 명에 따르겠소. 내게 큰 은혜를 내려주셨던걸 어찌 잊으리오.”
그 말에 크레치만은 크게 안도했다.
그의 음성이 한결 누그러졌다.
“폐하께서 기뻐하실거요.”
“그럼 기뻐해야지. 갈보년 주제에 뭘 더 바래.”
“뭐요?”
뜬금없이 터져나온 말에 크레치만이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바라보았다.
“방금 뭐라고 했소?”
프레드릭왕이 비웃음을 띄우며 대꾸했다.
“계집을 황제로 모시느라 수고가 많소. 차라리 돼지를 모시고 말지 나 같으면 당장 때려치울거요.”
좌우에 줄지어 늘어선 기사들이 낄낄 웃음을 터뜨렸다.
결코 입에 담아선 안될 막말에 놀란 크레치만과 그 일행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양피지 두루마리를 쥔 크레치만의 손이 덜덜 떨렸다.
“미, 미쳤군……!”
그의 얼굴이 새빨갛게 붉어졌다.
“감히 폐하를 모욕하다니 네놈들은 모두 미쳤어!”
요한나가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크레치만의 손을 잡아끌었다.
“아버지, 어서 나가요. 여기 있으면 안될 것 같아요.”
하지만 그때 뒤쪽에서 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났다.
기사 세 명이 문을 막아섰다.
동시에 프레드릭왕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보고 미쳤다는구나. 미쳤다고 하니 미쳐줘야지. 시작해라.”
왕이 손짓하자 그 즉시 기사들이 달려들며 크레치만 일행을 둘러쌌다.
“이, 잊었느냐! 우린 황제 폐하께서 보낸 사신들이다! 목숨이 아깝지 않은 것이냐!”
“뭐, 뭔 짓이야! 소, 소국이 어찌 대국을 건드는 것이냐!”
“반역을 일삼다니! 황제 폐하께서 대노하……! 커억!”
기사들의 칼날이 사신들의 목과 가슴을 사정없이 관통했다.
“끄악!”
“아악!”
몇몇 기사는 요한나를 구석으로 데리고 가서 옷을 찢고 단체로 윤간을 자행했다.
“꺄악! 아버지! 꺅!”
한 기사의 흉측한 페니스가 그녀의 하반신을 꿰뚫자 음부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바닥을 적셔나갔다.
“이놈들아 내 딸을 건들지마라! 요한나! 흐흑! 요한나! 아흑!”
그렇게 일행들이 죽어나가는 동안 크레치만은 양팔이 붙들린 채 프레드릭왕 앞으로 끌려갔다.
기사들은 그의 바지를 벗긴뒤 상체를 짓누르며 뒤돌려 세웠다.
훤히 드러난 그의 엉덩이를 보며 프레드릭왕이 잔인한 미소를 띄웠다.
“널 그년이라고 생각해주마. 제국의 여황제가 나한테 따이는거라구.”
왕은 천천히 가운을 벗어던졌다.
살덩이에 파묻힌 성기를 시녀들이 손으로 잡고 꺼내 발딱 일으켜 세워주었다.
크레치만은 기겁을 하며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무, 무슨 짓을 하려는게야……? 아, 안돼! 안돼에에!”
그 순간 프레드릭왕의 발기한 성기가 그의 항문에 푹 파고 들었다.
크레치만은 항문이 찢어지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제국따위 실컷 짓밟아주지! 아하하하하!”
“크, 크윽! 폐하께서 너흴 가만두지 않을것이다아아아!”
“오냐오냐, 마음껏 떠들어대거라!”
프레드릭왕이 힘차게 허리를 흔드는 사이 총사령관 사이먼이 칼을 들고 크레치만의 머리쪽으로 점잖게 다가왔다.
사이먼은 크레치만의 목에 칼을 대고 빙그레 웃어보였다.
“미안하네. 주군의 명령이라서 말이야. 분노한 황제가 제국 수도에 도착한 주군의 자녀들을 모조리 붙잡아 처형하길 원하시지. 이후 우린 왕자와 공주님들을 잃은걸 핑계삼아 자네들의 죽음을 얼버무리면 되고. 뭐, 서로 하나씩 주고 받는거야. 이만 잘가게.”
그가 바스타드 소드를 높이 들어올렸다 단숨에 내려치자 피가 뿜어져 나오면서 크레치만의 목이 떨어졌다.
***
현재 버나드에게 필요한 것은 ‘쓸만한 방어구’였다.
아티팩트인 시리우스 1세의 독 정화 갑옷을 보유하고 있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독을 막는데만 쓰일뿐이었다.
방어력은 시중에 팔리는 고급 갑옷보다 못했다.
그렇다고 고급 갑옷을 덥썩 사자니 그것으로는 앞으로 닥칠 시련들을 헤쳐나가기엔 역부족이란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장차 어떤 암살자들이 자신을 막아설지 모른다.
그들은 하나하나가 강할 것이고 평범한 갑옷으로 상대하다간 목숨을 잃을 뿐이다.
따라서 아티팩트 라든지 아니면 그에 준하는 아주 강력한 방어구가 필요했다.
희귀한 방어구 없이는 자신의 목적을 이룰 수 없다.
그런 생각으로 그는 보물상자 속으로 뛰어들었다.
레비아탄의 가죽을 벗겨 아주 특별한 방어구를 제작할 계획이었다.
고대의 왕들이 그랬던 것처럼.
-크오오오!
무한히 펼쳐진 밤하늘과도 같은 공간에 떠있길 십여분.
마침내 놈이 모습을 드러냈다.
독 정화 갑옷을 입고 있던 버나드는 녀석이 지근거리까지 접근하기만을 얌전히 기다렸다.
레비아탄은 유유자적하게 헤엄치며 사냥감을 향해 나아갔다.
잠시 후 버나드와 가까워지자 길다란 주둥이를 쩍 벌렸다.
‘지금이다!’
버나드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오른손으로 죽은 뉴베리의 머리채를 붙잡고 있던 그였다.
썩은내를 풀풀 풍기며 독가스를 발산하고 있는 뉴베리의 몸뚱이를 재빨리 레비아탄의 입속으로 던져넣었다.
휙!
아공간은 중력이 없는 것처럼 던지는데 힘은 별로 들지 않았다.
방향만 잡고 팔만 휘둘렀을뿐인데, 허공에 떠있던 뉴베리의 시체는 빙글빙글 돌면서 레비아탄의 입속으로 수월하게 흘러들어갔다.
버나드는 황급히 자리를 이탈했다.
시체가 목구멍 깊숙이 들어가자 레비아탄이 주둥이를 닫고 삼켜버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은 그렇게 스스로 독약을 퍼먹었다.
그리고 중독되는데 오래걸리지 않았다.
뉴베리의 시체는 그야말로 고대 괴물도 가뿐히 죽이는 맹독성 물질이었다.
레비아탄이 파충류의 두 눈을 부릅뜨더니 갑자기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고막이 찢어질 정도로 고통에 가득찬 괴성을 질러댔다.
버나드는 두 귀를 막고 피해있어야만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
1분 정도 지났을까.
그제야 레비아탄의 몸부림이 멎었다.
맹독에 중독된 녀석의 가죽에서 전에 없던 희미한 보랏빛이 감돌았다.
죽은 채로 무한한 밤하늘속을 둥둥 떠다녔다.
버나드는 그 광경을 흡족하게 바라보면서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성공했군. 이제 좋은 기술을 가진 갑옷 장인만 구하면 되겠어.”
어디서 구해야할까.
그런 숙제를 안고, 레비아탄의 사체를 내버려둔 채 그대로 보물상자속을 빠져나왔다.
밖에 나오니 네명의 여자가 보였다.
“버나드! 기다렸어!”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라는 표정을 짓는 연인 데보라,
“사, 살아돌아오셔서 기쁩니다.”
시중을 든답시고 갑자기 분주해진 하녀 율리아,
“어찌됐느냐?”
“성공했다.”
“그래? 잘됐구나.”
요염한 미소를 짓는 마녀 멜라니아,
그리고……
멜리사가 찾아왔다.
그녀의 표정에 불만이 가득 서려있다.
“북귀했으면 나한테 신고해야하는거 아닌가요? 사람들한테 듣고 알았어요.”
“내가요? 왜죠?”
버나드가 뻔뻔하게 대꾸하자 멜리사가 양손을 벌리며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왜라뇨? 내가 부대 지휘관이니 당연히 당신의 행방을 일일이 보고 받아야죠!”
막 화를 내려던 그녀는 문득 버나드에게 위화감을 느끼고 멈칫했다.
“어? 왜 이리 작지……?”
버나드의 키가 자신보다 작아졌다는걸 그제야 눈치챘다.
“뭐하느라 또 작아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