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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5화 〉제국으로 향하는 여정16 (115/200)



〈 115화 〉제국으로 향하는 여정16

갈테르가 그를 노려보며 검을  쥐었다.

“더욱 화가 나는군요. 당신이 이길 수 있을거란 생각을 하는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오늘 이 사단이난건 누가 이기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란 말입니다. 참회ㅡ, 참회가 핵심이거늘.”
“참회? 그건 네가 해야할 일이다.”
“뭣이……?”

버나드의 말에 발끈한 갈테르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버나아아드으으으!”

그가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달려들었다.
반드시 죽여버리겠다는듯 그에게서 느껴지는 살의가 그야말로 대단했다.

“끄아아아악!”

전신이 지옥불에 휘감긴 악귀가 온갖 질병을 달고 달려오는 느낌이었다.
저 기세라면 아무리 영걸이라할지라도 두려움을 느끼며 떨기 마련이다.

하지만 버나드는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검붉은 마검을 한손으로 움켜쥔 채 입술을 굳게 다문 그의 표정은 일말의 불안함 따위 조금도 엿보이지 않는 단단한 얼굴이었다.
자신과 혼연일체가 된듯한 마검이 주입해주는 힘은 엄청났다.

“죽어라 버나드!”

단숨에 지근거리에 도달한 갈테르가 번개처럼 칼을 휘둘렀다.
이전 같으면 자신보다 월등한 체격과 힘을 가진 그의 칼솜씨를 버나드가 감당하기 어려웠을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피하는 동작조차도 불필요했다.
버나드는 단지 가만히 서있었을 뿐이다.
휘둘러지는 갈테르의 칼날을 막은건 마름모꼴의 금속 조각들이었다.

버나드의 몸 주위를 빙빙 돌던 금속 조각들이 빠르게 한곳으로 뭉치며 갈테르의 칼날을 손쉽게 막아냈다.
챙!

“뭐야 이거?”

마름모꼴 조각들은 칼날을 막은뒤 아무일도 없었다는듯이 다시 버나드의 몸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갈테르는 인상을 쓰며 재차 칼을 휘둘렀다.

“뭔 수작을 부린거냐!”

이번에는 버나드의 목을 가를 생각으로 칼을 휘두르자,  즉시 마름모꼴 금속 조각들이 재빨리 날아오더니 버나드의 목 주변으로 몰려들어 방어벽을 형성했다.
챙!
또다시 벽에 막히며 칼날이 튕겨져 나갔다.

“빌어먹을!”

얼굴을 심하게 일그러뜨리며 분통터져하는 갈테르를 향해 곧바로 버나드의 마검이 날아왔다.
타앙!
갈테르가 간신히 막았으나 전과 다른 강한 힘에 밀려 뒤로 밀려났다.
갈테르의 시선이 검붉은 칼날에 향했다.
칼날에서 예사롭지 않은 마력을 느꼈다.

“네놈! 악마에게 영혼을 판것이구나!”
“……”

버나드는 굳이 대답할 필요성을 못느꼈다.
그러나 이것만은 확실히 알려주고 싶어 해탈한 사람처럼 씁쓸히 읊조렸다.

“레아를 죽인 내가 오래 살아서 뭐하겠느냐.”
“함부로 레아님을 팔지마라! 그분은 너와 달라! 당신은 대체 어디까지가 진짜였는가! 모든게 거짓과 위선이었어! 선한척 굴더니 악마랑 계약을 맺다니!”
“그만 좀 징징대라 갈테르!”

버나드가 불같이 화를 내며 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제멋대로 떠들어대는 갈테르에게 짜증이났다.
채앵!
쉴 새 없이 몰아부치며 갈테르를 숨가쁘게 조여댔다.
채앵! 탁! 퍽!

“큭!”

갈테르는 계속 구석으로 밀려나면서 처맞고 베이고 갑옷이 찌그러지고, 그가 할  있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방어밖에 없었다.
버나드의 공격은 마치  사람이 아닌 세 사람이 달려드는 것처럼 폭우 같이 쏟아졌다.
챙! 딱! 퍽! 퍼버벅! 탁! 푹!

“커억!”

눈부신 속도로 연달아 갈테르에게 육탄공세를 퍼붓는 버나드.
 칼질에 용서란 없다.
지금까지 당한것들을 한꺼번에 되갚아줄 심산인지 갈테르를 사정없이 몰아부치며 계속해서 맹격을 가했다.

‘제기랄! 그렇게 수련하고도 부족했단 말인가!’

갈테르는 분했다.
어느덧 체력이 소진돼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러다 이윽고 버나드의 발길질에 가슴팍을 가격당하고 뒤로 나뒹구는 순간, 그는 완전히 끝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패배였다.
결국 복수는 실패했다.
갈테르는 먼지가 풀풀 날리는 바닥에 쓰러져 눈물을 흘렸다.

“애당초 세상에 정의따윈 존재하지 않았어……!”

자신한테 부당한 짓을 한 사람이 어떻게 이길 수가 있느냐고.
그는 끝까지 억울해했다.

“여전히 어리광쟁이군. 몸만컸지 정신상태는 예전 그대로야. 넌 아직도 애다 갈테르.”

검붉은 칼날이 갈테르의 목에 드리워졌다.
칼날은 놀랍도록 차가웠다.

방금  같다는 버나드의 말이 갈테르를 자극했는지, 그는 자포자기한 사람처럼 조용히 일어나더니 그대로 무릎을 꿇은 다음 고개를 숙이며 목을 내밀었다.
그가 눈을 감으며 나직이 말했다.

“베십시오. 당신이 이겼습니다.”

버나드는 한때 냉정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 마음가짐은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옛정이 있다한들, 또 오해가 있다한들, 굳이 풀고 싶지도 않고 자비를 베풀 여유도 없었다.

갈테르는 기사답게 자신의 명예를 걸고 승부를 걸어왔고, 버나드 또한 기사답게 그의 도전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갈테르가 패했다.
기사 대 기사간 목숨을 건 대결에서 패배한 자는 죽음으로 대가를 지불한다.
봐주고 뭐고 없다.
명예와 영광, 명성에 얽매여 사는 그들만의 방식이다.
이긴 자는 더욱 빛나고 패배에 승복하고 깔끔하게 죽은 자는 존중받는다.

“우연히 너를 만나, 이런 꼴이 되어 유감이다.”

씁쓸한 어조의 그 말을 끝으로 버나드는 칼을 두 손으로 쥐고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기, 기다려주십시오!”

갑자기 먼 곳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마스터울프님! 잠시만요!”

소리가  방향을 돌아보자 이야기꾼 랜턴이 허겁지겁 말을 타고 달려오는 중이었다. 그의 뒤에는 어떤 여자가 타고 있었다. 빠르게 달리는 말 때문에 겁을 집어 먹고 몸을 움츠린 채 랜턴의 허리를 꽉 붙잡고 있는 여자. 언젠가 본듯한 얼굴이다.

‘누구더라. 누구지……? 아…… 이 녀석과 닮았군.’

버나드는 들어올렸던 칼을 내리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무릎끓고 얌전히 목을 내밀고 있는 갈테르를 향해 살짝 미소를 띤 채 입을 열었다.

“갈테르, 여동생이 마중나왔다.”
“예……?”

갈테르가 눈을 뜨고 고개를 들며 무슨 말이냐는듯 연신 눈을 껌뻑거렸다.
한달음에 달려온 랜턴이 다급히 말을 멈춰 세우며 그의 눈앞에서 멈춰섰다.
랜턴의 뒤에 타고 있던 여자를  순간 갈테르의 눈이 커졌다.

“레길라!”
“오라버니!”

버나드의 몸 주위를 빙글빙글 돌던 마름모꼴 금속들은 순식간에 하나로 합쳐져 화려한 금빛 문양이 새겨진 검은색 칼집으로 변했다.
버나드는 마검을 칼집에 꽂아 넣고, 말에 다가가서 여자의 양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번쩍 들어올려서 밑으로 내려주었다.
여자는 버나드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한뒤 이내 갈테르를 돌아봤다.

“바보 오라버니! 그동안 어디 있었어요!”

그녀는 곧장 갈테르에게 달려가 그를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갈테르도 눈물을 터뜨리며 오랜만에 만난 여동생을 꽉 안았다.

어떻게 된일일까.
버나드 옆으로 말에서 내린 랜턴이 나란히 섰다.
그가 흐뭇한 표정으로 남매를 바라봤다.

“못 만나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네요.”
“여긴 어떻게 알고 왔나. 그리고 저 여자애는 어떻게 만났어?”
“란네르케님의 지시로 왔습니다.”
“란이?”
“예, 저 레길라란 여성분을 왕도에서 보내셨더라구요. 그녀의 오빠가 마스터울프님을 해치려 들고 있으니 여동생이랑 빨리 가서 막으라고 하시길래 숨도 쉬지 않고 뛰어왔습니다.”

사연은 이랬다.
밤의 늑대들에서 추방당한뒤 종적을 감춘 오빠를 찾기 위해 집을 나선 레길라.
2년간의 수소문 끝에 마침내 당도한 곳은 바로 데들리 베놈 뉴베리가 이끄는 도적 길드였다.

“흐흠, 저 년은 뭐하는 계집일까나……?”

그때 도적길드를 감시하던 란의 눈에 뻘쭘한 기색으로 도적 길드 앞을 서성거리는 레길라가 우연히 눈에 띄었다.
호기심 많은 란이 가만 놔둘리 없었다.
잠자코 기회를 엿보다 레길라를 납치했고, 조용한 곳으로 데려가 겁 먹은 그녀를 잘 달랜뒤 자초지종을 캐물었다.

그 후 얻어낸게 갈테르의 존재였다.
때마침 란은 도적 길드에서 소란을 피운 흑기사의 정체를 궁금해하던 참이었고, 레길라 덕분에 그의 정체를 파악했다.

“오빠가 오해하고 있단 말이지?”
“네, 저희 오라버니는 마스터울프님을 원망하고 있어요. 제가 빨리 가서 오해를 풀어드려야해요!”
“알았어. 나한테 맡겨.”

그 무렵, 데블리 베놈 뉴베리와 함께 버나드가 있는 곳으로 떠난 흑기사를 막기위해 란은 서둘러 그녀가 아는 루트를 통해 레길라를 빠르게 랜턴에게 보냈다.
그녀가 재빠르게 조치한 덕분에, 갈테르가 죽기 직전 레길라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레길라로 인해 지난 3년간 쌓이고 쌓였던 버나드를 향한 갈테르의 원망과 증오심, 배신감 또한 눈녹듯 싸그리 풀려버렸다.

“오라버니는 바보예요! 마스터울프님께서 오라버니를 내보낸건 어머니랑 제가 부탁해서였다고요! 저분은 잘못 없으니 원망하지 말아요!”
“뭐!? 그, 그게 사실이냐……?”
“제가  거짓말을 하겠어요! 마스터울프님과 저랑 아무 상관도 없는데! 저분은 그저 오라버니가 심장병으로 죽을까봐 걱정했을 뿐이라고요! 한마디로 좋은분이세요!”
“이, 이럴수가……! 내가 아픈걸 알고 계셨다니!”

갈테르는 입을 벌린  눈물을 글썽거리며 버나드를 돌아봤다.

“저는 그것도 모르고 당신께 큰 죄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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