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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화 〉제국으로 향하는 여정15 (114/200)



〈 114화 〉제국으로 향하는 여정15

그의 칼은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로 빨랐다.
정면으로 찔러들어오는가 싶더니 금세 방향을 바꿔 옆구리를 노리며 날아들었다.
매우 깔끔한 방향전환에다 자세, 속도, 힘, 거리, 수비, 모든 것이 완벽해서 특별히 무엇을 흉잡아 나무랄 것이 없었다.

버나드는 재빨리 마검을 움직여 옆구리를 보호했다.
하지만 갈테르는 그새 다른 공격을 내밀었다.
옆구리로 날아오던 칼은 미끼였다.
육중한 힘이 실린 그의 철갑 주먹이 작은 회오리를 일으키며 쏜살같이 날아와 버나드의 복부를 가격했다.
퍼억!

“허억!”

순간 버나드의 눈이 동그랗게 떠지며 눈앞이 새하얘졌다가 다시 선명해졌다.
빌어먹을 녹색 갑옷, 그러니까 현재 버나드가 입고 있는 ‘시리우스 1세의 독 정화 갑옷’ 은 독을 상대할땐 완전 무결한 무적이건만 갑옷의 방어력이 낮아 물리적 타격까지 보호해주지는 못했다.
복부에서 시작된 고통이 손끝, 발끝, 머리끝까지 번져나갔다.

갈테르의 주먹이 얼마나 매서운지 버나드는 저항조차 못하고 일직선으로 튕겨져 날아갔다.
그대로 여관 벽을 뚫고 건물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다 겨우 멈추었다.

“컥! 크아, 으……!”

지옥 같은 고통 때문에 바로 일어나지 못했다.
주변에 몰려와있던 주민들은 비명을 지르며 저마다 어디론가 급히 대피했다.
저벅.
저벅.
바닥에서 허우적대는 버나드에게 갈테르가 싸늘한 눈동자로 다가왔다.

“싱겁군요.”

배를 움켜쥔 버나드가 거칠게 숨을 내쉬며 그를 향해 힘겹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훌륭하구나. 많이 늘었어. 헉, 헉!”
“내가 는게 아니라 당신 수준이 떨어진 느낌입니다. 어째서죠?”
“헉, 헉. 그럴리가 있나.  최선을 다 하고 있다고.”

버나드는 마검에 몸을 기대며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비죽거렸다.

“다시 해보자.”

버나드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난관을 헤쳐나가기가 자신의 실력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갈테르는 강했다.
장비도 체력도 실력도 모두 그가 우위였다.

‘버티는  밖에……’

유일한 희망이라면 갈테르의 약점을 파고드는 것.
비겁한 방법이지만 어쩔 수 없다.
갈테르로 하여금 많이 움직이게 만들어 그의 심장에 무리가 가도록 할 생각이었다.

‘기회는 단 한번이다. 단 한번……’

과도한 운동으로 인해 갈테르가 갑자기 인상을 찡그리며 심장을 움켜쥐는 장면만을 계속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몸을 움찔하는 순간의 빈틈을 파고들어 승부를 결판낼 작정.
하지만 갈테르의 심장은 그가 입은 흑갑처럼 꽤나 단단했던 모양이다.

다시 재개된 전투에서 갈테르는 사정없이 버나드를 쥐어팼다.
일방적으로 때리며 묵은 감정들에 대한 한풀이를 하듯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난 당신을 좋아했어! 당신은 내게 절대적인 존재였다고! 당신이 하는 말이라면 뭐든 믿고 따르고 싶었단 말입니다!”

버나드가 칼싸움으로 확연히 밀리자, 갈테르는 거만해지며 칼을 아예 땅에 꽂아놓고 맨주먹으로만 상대했다.
그럼에도 무기를 들고 있는 버나드쪽이 계속 얻어터졌다.
근력, 기술, 속도, 모든면에서 갈테르가 압도적이었다.

버나드가 힘을 잃고 난뒤 처음으로 마주한 레온 왕국 상위 1% 안에 드는 실력자.
그런 갈테르를 가르친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따라서 갈테르의 싸울때의 버릇과 허점, 그를 공략할 수 있는 갖가지 방법등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면서도 맞았다.
맞을 수 밖에 없었다.
서로간 비슷한 힘을 가졌다면 모를까, 강대한 힘 앞에서 지혜와 기술은 무용지물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체격부터 현저히 다른 어른과 청소년의 싸움이었으니까.
아울러 무기와 방어구도 형편없는 그였다.

몇번을 날아가고 몇번을 굴렀다 다시 일어섰는지 모른다.
퍽퍽퍽!
퍼벅! 퍽!

“날 매몰차게 버리는걸 보고 큰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당신은 내 우상이고 스승이며 인생의 인도자였다고!”

갈테르의 분노는 식을줄을 몰랐고 그가 내뻗는 증오의 주먹은 버나드의 몸을 끊임없이 난타했다.
어느 순간이 되자 하도 맞아 피할 기력도 없었다.
결국 연이은 정타를 허용한 버나드는 몸을 비틀 거리다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그 광경을 근처에서 지켜보고 있던 딘과 샨은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굴렀다.

“우째부로! 일났디! 일났디!”
“마스터울프 죽음 어쩐다오! 말려야는디!”

루로키나 거지 삼남매는 암살자로서 출중한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한번 겁을 집어먹으면 한심할 정도로 정신줄을 놔버리는 백치(白癡) 같은 면도 있었다.
앞서 갈테르에게 호되게 당한 그들은 감히 끼어들 생각을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며 울먹이면서 지켜보는게 전부였다.

다른쪽에서는 건물뒤에 숨어있던 엘레나가 초조한 심정으로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어쩌지. 검정 갑옷 입은 사람으로 갈아타야하나.’

애당초 버나드를 응원하고 있던 그녀는 그가 맥없이 당하기만 하자, 여행 동반자로서의 가치가 금세 하락해버렸다.
누가봐도 갈테르가 강해보이니 훗날 그와 같이 다니는 상상을 벌써부터 하는중이었다.

‘저 버나드란 사람은 나보다 나이가 어려보여서 같이 다니기 편할 것처럼 보였는데 아쉬워…… 근데 검정 갑옷을 입은 사람은 무서워 보이는데 어쩌지? 내 부탁을 들어줄까……?’

마침내 싸움의 끝이 다가왔다.
갈테르는 바닥에 대자로 퍼져 누운 버나드를 한심하게 내려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저한테 진 기분이 어떠십니까?”

버나드가 입술에서 피를 흘리며 비죽였다.

“…상쾌하군.”
“당신을 믿었어. 몇년전만해도 우린 최고의 콤비로 역사에 남을 수 있었지. 난 부하로서 당신을 잘 따랐고, 당신은 정의로우며 유능한 지휘관이었고. 우리가 힘을 합쳤다면 아주 강력했을거야.”

갈테르가 큭큭 허무하게 웃었다.

“하지만 내 착각이었어. 당신은 속좁고 비겁한 인간이었지. 전혀 정의롭지 못했어.”
“내가……?”
“내 실력을 질투했잖아! 그래서 부당한 방법으로 날 쫓아냈지! 우상이라 생각했던 당신이! 나를! 배신했어!”

버나드가 킥킥 실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조금전 흙먼지 날리며 맞는 바람에 입안에 들어간 흙들을 퉤퉤 뱉어낸 뒤에야 말을 꺼냈다.

“이봐 갈테르. 함부로 우상을 만들지마. 내 꼴 나니까. 콜록, 콜록!”
“내 꼴? 당신이 무슨 꼴을 당했는데? 혹시 날 비웃는 겁니까?”
“그래  비웃는다. 한때 누군가에게 충성을 다 바쳤던 우린 둘 다 똥멍청이들이야. 영원한건 없더군. 끝엔 결국  혼자야……”

버나드는 말끝을 흐리며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울컥했다.

“어쩔 수 없군요.”

갈테르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과만 받으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끝을 맺어야겠군요. 당신의 태도를 보아하니 사과 받기는 글렀어.”
“갈테르, 사과는 오히려 내가 받아야 한다고.”

버나드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하며 실없이 웃어댔다.
그 모습을 보고 갈테르가 질끈 이를 악물었다.
뒤로 돌아서 검이 꽂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사실 주저했습니다. 이곳에 오기를 수없이 망설였죠. 당신의 존재감이란게, 절대 넘을 수 없는 위대한 장벽처럼 느껴져서 두려웠으니까. 그럼에도 이곳에 온 이유는…… 성의 없어도 좋으니 당신의 사과를 꼭 받고 싶었어.”

그가 바닥에 꽂혀 있던 칼을 뽑아 제자리로 돌아왔다.
버나드를 차갑게 내려다보며 말했다.

“허나  전에 준비할게 하나 있었지.”
“뭘……?”
“당신의 세븐로얄에 맞설 힘이 필요했던거야. 그걸 막지 못하면 당할게 분명하니까.”
“큭…… 그래서 그 힘을 얻었나?”
“얻었지.”

갈테르는 두 손으로 칼자루를 잡고 천천히 들어올렸다.

“빨리 세븐로얄을 쓰지 않으면 죽을겁니다. 그렇게 누워만 있다간 당한다고. 어서 쓰십시오, 세븐로얄을.”

그가 머리 위로 들어올린 칼날에 검기를 싣자 날카로운 검끝에 활활 타오르는 붉은 구체가 생겨났고, 구체는 시전자의 마력을 흡수하며 점점 부풀어 올랐다.

고오오오오오!
누워있는 버나드의 시선에서 봤을때, 작열하는 불덩이는 순식간에 하늘을 완전히 가릴만큼 커다래졌다.
지름 4미터는 돼보였다.

“받아라, 나의 메테오 스트라이크를. 세븐로얄에 대항하기 위해 성취한 나의 비기다!”

갈테르는 크게 외침과 동시에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그대로 칼을 내려쳤다.
그렇게 바닥에 드러 누워있던 버나드를 향해 메테오 스트라이크를 내리 꽂았다.
콰아아앙!

하지만 그 직전, 찰나의 순간이었다.

‘제길!’

눈을 부릅 뜬 버나드는 순간 오금이 저리며 자기도 모르게 오른팔에 힘이 들어갔다.
아까 얻어터지는 동안에도 끝까지 놓지 않고 있던 마검을 세게 움켜쥐었다.
아귀힘으로 칼자루를 으스러뜨릴것처럼 꽉!

‘죽는건가? 설마? 여기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채!?’

프레드릭왕에게 당해 사지가 잘려나갔던 일이 스친다.
그리고 레아가 죽었다는 잔인한 현실도 떠올랐다.
아직 멈출 수 없었다.

“갈테르으으! 네 분노는 내 분노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투정일뿐이다아아!”

버나드가 피를 토하며 윽박지르는 순간, 살고 싶다는 버나드의 강렬한 욕구에 반응하며 마검이 빛을 발했다.
칼날에 붙어있던 마른 흙덩이들이 떨어져나와 자잘하게 부서지며 수많은 모래알로 분리됐다.
모래알들은 곧바로 버나드의 전신을 감싸며 완벽한 보호막을 형성했다.

그 결과, 메테오 스트라이크를 직격으로 맞은 버나드는 무사했고, 그가 누워있던 자리 주변만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초토화 되었다.
잠시 후 뭉게뭉게 피어올랐던 먼지가 어느 정도 걷히고 나자, 갈테르는 경악하고 말았다.

“내 비기가 통하지 않다니?!”

버나드가 멀쩡한 것을 보고 그의 얼굴에  당혹감이 깃들었다.

“세, 세븐로얄을 썼구나!”
“아니, 틀렸어.”

버나드는 태연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그의 체력은 방전됐으나 지금은 힘이 넘쳐났다.
마검을 통해 엄청난 힘이 그의 체내로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또 모래알로 분리되었던 마른 흙덩이들은 다시 뭉치며 마름모 형태로 바뀌었다.
심지어 그 성질마저 금속으로 변해버렸다.
햇빛에 반짝이며 은광을 자랑하는 수십개의 마름모들이 버나드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맴돌고 있었다.

“이건 다른 힘이야.”

버나드가  묻은 입술로 씨익 웃었다.

“고맙다 갈테르. 네 덕분에 잠들어 있던 마검을 깨웠어. 하지만 그건 그거고 우선 빚부터 청산해야겠지? 자, 멍청하게 있지말고 다시 칼을 세워라.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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