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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화 〉제국으로 향하는 여정12 (111/200)



〈 111화 〉제국으로 향하는 여정12

버나드가 먹는 모습을 주변에서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엘레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생긴걸 보면 나보다 어려보이는데 어쩌다 도적 길드의 표적이 되었을까……’

엘레나가 보기에 버나드의 나이는 올해 28살인 자신보다 대략 열살 가량은 적은듯 보였다.
십대 후반 아니면 이십대 초반.
그래서인지 조금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도 다 이루지 못하고 죽겠구나…… 시궁창 같은 인생을 살았던 내가 남을 가엾게 여길 처지는 아니지만……’

엘레나는 문득 지난날을 떠올렸다.
비록 창녀의 딸로 태어났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한가지만큼은 철저히 가르쳤다.

‘네 몸에 흐르는 피는 이 어미처럼 천하고 더러운 것이 아니다. 몸을 함부로 굴리지 말거라. 넌 태양처럼 빛나는 아이야. 미모를 가꾸고 몸가짐을 단정히 하여 정조를 지키다보면 언젠가 전하께서 널 찾아주실게다. 그리고 좋은 귀족 집안에 시집을 보내주실거야. 그날만 기다리렴. 반드시 그날이 찾아올게야.’

어머니는 프레드릭왕이 언젠가 다시 찾아주리란 희망을 품고 창녀일로 열심히 돈을 벌었다.
그리고  돈은 전부 엘레나를 곱게 키우는데 쏟아부었다.

그러다 결국 어머니는 성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죽는 순간에도 프레드릭왕을 그리워했다.

‘내 장례식엔 와주시겠지? 와주실거야. 암…… 전하께서 너와 날 버리실리가……’

어머니가 죽은 이후에 엘레나는 더 이상 공주처럼 살 수 없었다.
자신이 직접 돈을 벌어야 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가져다 주던 모이를 매일 받아먹기만 하던 그녀는 할 줄 아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일을 구하면 일을 제대로 못한다며 쫓겨나길 부지기수, 결국엔 어머니가 모았던 돈이 바닥이  거지처럼 살다가 그 무렵 일이 점차 손에 익었다.

밭에 버려진 야채나 보리 이삭을 주워 먹거나 날품을 팔며 하루 하루 연명하던중, 어느날 갑자기 왕궁에서 사자가 찾아왔다.
엘레나는 무척 기뻤다.

‘어머니가 살아생전 간절히 기다리던 아버지한테서 연락이 왔어!’

그러나 나중에 알고보니 프레드릭왕이 연락을 해온 이유가 제 2차 걷는 사자 전쟁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녀는 크게 실망했다.
매정한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거기, 당신 이름은 뭐지?”
“……”
“그쪽 말이야 아가씨.”
“……”
“어이! 아가씨?”
“네?!”

딴생각을 하고 있던 엘레나는 버나드가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움찔했다.

“저, 저요? 절 부르셨나요?”
“그래, 당신.”

당황한 그녀를 보며 버나드가 부드럽게 웃었다.

“이름이 뭐냐고.”
“에, 엘레나인데요.”
“엘레나? 엘레나라……”

버나드는 그걸로 됐다는듯 그녀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가 맞나보군.’

 순간, 그는 자신의 계획을 일부 수정하기로 정했다.
만약 버나드가 전처럼 한명의 군주만 바라보는 충심 가득한 신하였다면, 하늘 아래 태양이  개일  없듯 샤를이 있는한 엘레나의 존재는 방해만 될 뿐이었다.
따라서 죽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샤를을 진심으로 모시고 있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녀에게 진심으로 충성하는 일은 없을 터.
그녀뿐만이 아니라 영원히 누군가를 섬기는 일은 없다.
  다시 배신당하고 싶지 않으니까.

‘비천한 엘레나 정도면 내 마음대로 마음껏 부려먹을 수 있겠어. 신분이 높고 주위에 사람 많은 샤를보다 훨씬 다루기 편하겠지.’

그녀가 어떤 연유로 도적 길드와 같이다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잘됐다.
세상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몰래 삼켜서 빼돌릴 수 있을테니까.

‘샤를과 엘레나를 카드로 쓰겠어. 그리하면 내겐 두 번의 기회가 있는 셈이지.’

나중에 제국에 도착하면 황제는 분명 왕의 자녀들을 시험할 것이다.
제국측 입장에서 레온 왕국의 유물을 공짜로 돌려줄 수는 없지 않은가?
뭔가 대가를 바랄 것이고, 그 대가가 무엇일지는 아직은   없다.

제국측의 요구가 무엇이든 간에 샤를이 실패하면 엘레나로 다시 도전하자는 생각.
반대로 엘레나가 실패하면 샤를을 쓰면 된다.

게다가……

‘혹여 여행 도중 샤를이 암살당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럴때를 대비해서라도 엘레나를 손에 넣어야겠어. 어차피 엘레나를 납치해도 세상은 그녀가 사라진지 몰라. 신분이 미천한 여자니까.’

한편, 2층 난간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뉴베리는 인상을 찡그렸다.

‘저년은 왜 저기서 잡담을 나누는거야. 이 긴박한때에.’

아래층에 있던 부하에게 손짓해 엘레나를 빨리 치우라고 지시하는 것과 동시에 독을 더 쓰라는 신호를 보냈다.
주방에 있던 여관 주인이 즉시 뻘쭘히 서있던 엘레나를 불렀다.

“너 거기서 뭐해! 빨리 일로와!”
“네, 네!”

엘레나가 후다닥 뛰어오자 주인이 낮게 욕설을 뱉으면서 따끈따끈한 요리를 건넸다.

“또 잡담하기만 해봐. 아주  찢어벌텡게! 아무튼 이거 갖다주고 빠져있어. 서비스니까 처먹으라고 해.”
“아, 알겠습니다!”

엘레나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버나드에게 음식을 갖다줬다.

“서, 서비스래요.”
“잘 먹으리다.”

맹독을 소스처럼 가장해 흠뻑 들이부은 구운 청어 요리였다.
기존에 나왔던 요리보다 독성이 더욱 강했고, 음식을 서빙하고 떠나던 엘레나는 음식 냄새를 맡은 것만으로도 머리가 어지럽고 구토감을 느끼는 것과 더불어 몸이 간지러웠다.

‘아, 뭐지.  막혀.’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었던 그녀는 서둘러 주방 뒷문을 통해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와 동시에 버나드는 주저없이 수저를 들어 생선살을 퍼먹었다. 그리고……

“커억!”

갑자기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며 자신의 목을 부여잡고 의자에서 쓰러졌다.
바닥에서 발버둥치며 괴로워하던 그의 움직임이 금세 뚝 멈췄다.

“됐어! 으하하! 성공했다!”

주먹을 불끈 쥐어보이는 뉴베리의 외침과 함께 건물안에 숨어있던 도적들이 저마다 한손에 무기를 쥔 채 우르르 몰려나왔다.
수십명의 도적들은 바닥에 쓰러진 버나드를 에워쌌다.
한 사내가 버나드의 몸을 발로 툭툭찼다.

“진짜 죽었어?”
“당연하지 인마. 괴물도 단번에 죽여버릴  있는 맹독을 썼다고.”

도적들은 낄낄 거리며 술병을 돌려마셨다.
뉴베리도 서둘러 밑으로 내려왔다.

“비켜봐.”

부하들 사이를 비집고 나와 숨진 버나드를 내려다본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독에 당하면 이럴리가 없는데.”

독에 중독되면 피부가 녹색으로 변하거나 붉게 변하는 등 심지어 코피가 나기도 할텐데 죽었다는 사람의 안색이 너무나 좋다.
그것을 이상히 여기며 버나드의 얼굴 부근에 쪼그리고 앉아 물끄러미 살피던 와중이었다.
돌연 머리 위에서 밝고 명랑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죽을 놈이 몇마리당가.”
“여기 다 몰려있는거시라.”
“아니라, 밖에도 몇넘 있담시로. 밖도 다녀와야 한디.”

뜬금없이 들려온 소리에 도적들은 일순 잡담을 멈추며 일제히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다.
각각 2층 난간, 천장, 창문에 매달려 있는 루로키나 거지 삼남매를 발견한 그들은 은발에 거지 같은 옷, 앙상한 몰골, 창백한 피부 등 삼남매의 기괴한 모습에 기겁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저, 저것들 뭐야!?”
“유령……?”
“알게 뭐야. 야! 니들 거기서 안내려와? 당장 일로 내려와!”

어떤 도적의 고함소리에 딘과 샨, 루가 킥킥 거리며 비웃었다.

“건방지당게.”
“저놈부터 사지를 썰어야 쓰겄구만.”
“오빠들, 쟈들은  죽여도 마을 주민은 죽이면 안된다부요. 마스터울프가 화내불지라.”

쪼그려 앉아 버나드를 내려다보고 있던 뉴베리가 제자리에서 일어나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표정이 굳어있었다.

“뭐야 쓰벌…… 설마 함정이냐……?”

독에 중독된 버나드의 상태가 온전한게 아무래도 수상했고, 거기에 더해서 괴상한 모습을 한 삼남매의 출현이 그를 더욱 불안케 만들었다.
삼남매가 내뿜는 불길한 기운이 그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이래봬도 남뒤통수치며 칼밥을 먹고 살아오길 수십년, 아울러 한 도적 집단의 수장인만큼 눈앞의 삼남매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쯤은 그들을 보자마자 바로 눈치챘다.

‘그 개새끼, 나한테 누굴 죽이라고 시킨거야.’

머릿속에 안소니 후작이 떠올랐다.
처음 의뢰를 받았을땐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으나,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버나드란 작자의 정체가 예상외로 거물이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맹독도 통하지 않는 놈이라니 인간이 아닌게 확실해. 악마냐 괴물이냐!’

살짝 두려운 감정이 치솟으며 이를 꽉 물었다.

‘정신 바짝 차려야겠어. 자칫하면 이 안이 지옥으로 변할지도 몰라.’

뉴베리는 슬그머니 칼집으로 손을 가져다대며 아래에 쓰러져있는 버나드에게 시선을 옮겼다.
느낌상 죽은척 하는 것으로 보여 당장 찔러죽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

바닥에 있어야할 버나드가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 틈에 눈깜짝할 사이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날 찾나?”
“헉!?”

부릅뜬 뉴베리의 눈빛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버나드는 어디에도 가지않고 어느새 그의 눈앞에 당당히 서있었다.
마검을 빼든 채.

“잘 가라.”

두 손으로 마검을 잡더니 이내 뉴베리의 머리를 향해 방망이처럼 휘둘렀다.
퍽!

“꺼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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