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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화 〉제국으로 향하는 여정11 (110/200)



〈 110화 〉제국으로 향하는 여정11

수십명의 부하들이 우렁찬 환호성을 내지르며 레이크빈 마을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올가미에 걸린 엘레나는 부하들이 밧줄로 꽁꽁 묶어 말에 태우고 데려갔다.

뉴베리는 버나드를 앞질러 가서 빠르게 마을을 점령할 계획이었다.
레이크빈 마을은 규모가 작은 시골마을이었기에 무장을 한 오십명의 부하들이라면 마을을 손에 넣는 것은 그야말로 식은  먹기였다. 나중에  지역의 영주가 알면 대노하며 군사를 보내오겠지만, 뉴베리는 버나드만 처리한뒤 곧장 떠날 계획이라 그들을 신경쓸 필요가 없었다.

“이봐, 다시 한번 말하지만 새치기하지 말라고.”

뉴베리는 말을 하면서 옆을 돌아봤다.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한 사내가 어느새 다가와 그와 말을 나란히 하고 있었다.
전신을 흑갑으로 무장한 그는 투구의 면갑을 쓴 채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희가 실패하면 내가 나서겠다.”
“자신만만하시군. 안됐지만 버나드를 잡는건 우리다.”
“너희는 결코 버나드의 상대가 못돼.”
“거 좆같이 말하네.”

뉴베리는 그가 누군지 모른다.
얼굴조차 모른다.
아는 것이라고는 흑갑을 착용한 외관과 그의 바람뿐.

안소니 후작의 의뢰를 받고 뉴베리가 왕도를 떠나기 직전의 일이었다.
갑자기 흑갑을 입은 사내, 즉 지금 옆에 서 있는 흑기사가 도적길드를 찾아왔다.

“버나드를 잡으러 간다고 들었다. 나도 가겠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 뼉다귀야?”

뉴베리는 어이가 없는 나머지 부하들을 시켜 그를 쫓아내려고 했다.
그런데 이게 왠걸?
흑기사에게 달려든 부하 몇명이 순식간에 떡실신을 하고 말았다.
흑기사의 실력이 여간내기가 아니었다.

“쓰벌, 버나드를 잡으러 가기도 전에 박살나겠네.”

더 해봤자 손해라는 것을 직감한 뉴베리는 그때부터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를 따라와서 어쩌겠다는 건데? 그나저나 어떤 새끼가 누설한거야?”
“버나드를 찾는데 협력하겠다. 그리고…… 버나드를 죽인다.”
“놈의 목을 원하는거야? 목은 줄 수 없다.”
“버나드의 모든 것을 가져가라. 그의 시체, 그의 재산, 그의 여자, 모든 걸 가져가도 좋다. 내 목적은 오로지 버나드의 숨통을 끊는 일이다.”

말을 뱉는 흑기사의 목소리에서 화산처럼 활활 끓어오르는 진한 증오심을 느낄 수 있었다.
뉴베리가 씨익 웃었다.

“그래서 우리가 실패하면 당신이 이어서 하시겠다고?”
“그렇다.”

다시 현재.
뉴베리가 나란히 말을 타고 서 있는 흑기사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원한을 품게 된거지? 버나드에게 된통 당했었나?”
“말해줄 수 없다.”
“이봐, 우린 같은 편이라고. 친구가 과거에 무슨 사연을 겪었는지 정도는 알려줘도 괜찮잖아?”
“내 목적은 버나드뿐. 그외에는 아무것도 알려줄 수 없다.”

흑기사의 대답은 칼같이 단호했다.
뉴베리가 코웃음을 쳤다.

“버나드한테 차였기라도 했나보지?”
“날 건드려서 좋을게 없다. 농담으로라도 비아냥 대지마.”

흑기사는 말배를 박차며 앞으로 나아갔다.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뉴베리가 눈을 가늘게 떴다.

“말투랑 하는 짓을 보면 분명 우리 같은 잡것은 아닐지언데…… 귀족 같아. 아니면 그 주변에서 오래 놀았다든지.”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기는 흑기사의 정체가 무척 궁금했다.
하지만 뭐 아무래도 상관없다.

‘저 녀석의 정체가 신경쓰이지만 그렇다고 굳이 알 필요는 없지.’

그의 손을 빌어 버나드만 순조롭게 죽일 수 있다면야.
흑기사의 대단한 실력을 이미 눈으로 확인한 뉴베리는 이번 의뢰의 성공을 확신했다.

“버나드. 네놈이 뭐하던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랑 만나면  가루가 될거다. 기대해라.”

뉴베리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을 몰고 뛰어갔다.

***

마침내 레이크빈 마을의 초입에 다다랐다.
버나드는 혼자였고, 허름한 갈색 망토를 몸에 두른 채 라벤다를 몰고 천천히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평화롭군.”

마을 분위기는 평범한 여느 마을과 다를바 없었다.
순박한 인상의 주민들은 대체적으로 온화한 분위기를 풍기며 낯선 방문자를 환영했다.

“우리 마을은 어떻게 찾았수? 외지에 있어서 찾기 힘들건데.”
“손님이 오셨다고 촌장님께 알려야겠구만.”
“잘곳 구해야지? 우리 마을은 여관이 하나 밖에 없는데 글루 가실랴? 안내해줘?”

주민들은 오랜만에 찾아온 방문객을 친근히 대하며 여관까지 직접 안내해주었다.
여관 앞에 이르자 한 소년이 뛰어와 고삐를 달라고 정중히 부탁했다.

“나리, 말은 제가 마구간에 묶어 놓겠습니다.”
“괜찮다. 말은 내가 알아서 하마.”
“주변에 둘 곳이 없는데요?”
“이 녀석은 마구간에 묶어놓지 않아도 알아서 잘하는 영리한 말이다. 도망갈 일은 없어.”
“예? 그럼 똥은요? 길거리에 똥을 싸면 냄새나요.”
“대소변도 알아서 가리니 염려말거라. 이만 가봐.”

버나드는 소년에게 동화 몇푼을 쥐어주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소년은 어리둥절해하면서 다른곳으로 떠났다.

“사람들한테 피해주지말고 근처에서 쉬고 있어.”

라벤다는 버나드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한번 푸드득 하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처마 밑으로 가서 주저앉았다.
버나드는 곧장 허름한 여관 안으로 들어섰다.

그 광경을 근처 지붕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뉴베리가 히죽 거렸다.

“놈이 덫에 걸려들기 직전이군.”

버나드보다 하루 먼저 도착한 뉴베리 무리는 곧바로 마을을 점령한뒤 덫을 놓았다.
조금전 버나드를 환영한 주민들은 모두 두려움에 덜덜 떨며 연기를 했고, 뉴베리 무리의 협박에 못이겨 버나드를 함정에 빠뜨리는데 공조한 것이었다.

“근데 말야. 저 녀석 확실히 버나드 맞지?”

뉴베리는 주머니에서 구겨진 몽타주를 꺼내 머리를 갸웃거렸다.

“이 그림보다  어려보이는데, 이상하단 말이지. 의뢰주놈도 버나드가 서른살이 넘는다고 했단 말이야. 그런데 저놈을 보면 도저히 30대로 안보여.”

그에 지붕위에 앉아있던 흑기사가 몸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저 자는 버나드가 확실하다. 전보다 앳된 외모를 가졌지만  눈을 속일 수 없지.”
“어려진게 안이상해?”
“내가 아는 버나드라면 못할일도 아니다. 그는 언제나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일들을 손쉽게 해내는 재주가 있었지.”

흑기사가 뉴베리를 지나쳤다.

“여관으로 이동하자. 놈과 나의 결전 장소다.”

뉴베리가 피식 거렸다.

“그 전에 우리애들이 설치해놓은 함정부터가 먼저라고.”

여관 안.
실내에 들어서자 갖가지 음식 냄새가 풍겼다.
사내 세 명이 각자 다른 테이블에서 조용히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어, 어서 오세요!”

쟁반을 가슴에 끌어안고 있는 금발 머리 여종업원이 버나드를 맞이했다.
쭈뼛거리는 그 모습이 어색해보였다.
주방에서 우락부락한 사내가 걸어나오며 그대로 카운터로 직행했다.

“묵고 갈거요?”

다분히 긴장한듯한 여종업원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버나드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카운터에 서 있는 주인을 응시했다.

“밥만 주시오.”
“묵고 가지 그래?”
“메뉴는 뭐가 있소?”

버나드가 말을 무시하고 자기말만 내뱉자 여관 주인이 혀를 차며 팔짱을 꼈다.

“묵기 싫으면 하는 수 없지. 우리집 음식은 세 개 밖에 안한다오. 다른건 안돼. 재료도 없어.”
“셋  가장 잘나가는 걸로 하나 주시오.”
“그러지. 10분만 기다리시오.”

주인은 도로 주방으로 들어가고 버나드는  테이블에 가서 앉았다.
버나드의 시선은 다시금 주방 입구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여종업원에게 향했다.

‘…창녀의  서1녀 엘레나.’

버나드는 그녀의 얼굴을 처음 본 순간부터 정체를 꿰뚫고 있었다.

‘어째서 저 여자가 이곳에 있는거지?’

잠시 후 요리가 완성됐다.
주인은 음식이 담긴 접시를 엘레나에게 건네주면서 그녀를 노려보았다.

“살고 싶으면 실수없이 잘해.”
“네, 네……!”

엘레나는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손등으로 훔친 후 음식 접시가 담긴 쟁반을 들고 서둘러 버나드에게 향했다.
그 광경을 2층 난간에서 뉴베리가 숨 죽여 지켜보던 중이었다.

‘크큭, 저 음식에는 치명적인 맹독이 들어있지. 한숟갈만 떠먹어도 그대로 세상 하직한다구.’

이윽고 버나드 앞에 당도한 엘레나가 손을 미세하게 떨면서 음식 접시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마, 맛있게 드세요.”
“고맙소.”

버나드는 아무 망설임없이 수저를 들고 곧바로 수프를 떠마셨다.
동시에 뉴베리의 얼굴이 희열로 잔뜩 일그러졌다.

‘잘가라  덩어리야……!’

버나드가 수프를 천천히 음미하며 쩝쩝거렸다.

“음, 대충 만들었나 음식이 맛없군. 하지만 배고프니 이거라도 먹어야겠지.”

그러면서 한 숟갈  떠먹었다.
그리고 같이 나온 빵도 손으로 조금 찢어서 수프에 찍어 먹었다.
그 모습을 한참 지켜보던 뉴베리가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어……? 왜 반응이 없지? 어떻게 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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