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3화 〉제국으로 향하는 여정4 (103/200)



〈 103화 〉제국으로 향하는 여정4

지금보다 더 어린시절의 클레어는 도도하고 좀 교만하기도 한 소녀였다.
당시 기사 수업으로 인해 짧게나마 그녀와 어울렸던 귀족자제들은, 말이 적고 신중하면서도 타인을 멸시하는듯 쳐다보는 그녀를 오만불손한 사람으로 여기며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그들의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때의 클레어는 귀족 자제들 사이에서 가장 실력이 좋았고, 그에 멈추지 않고 최고의 경지에 오르려 부단히 노력하며, 자신보다 수준이 낮은 또래 친구들에게선 배울점이 없다고 치부하고 어울리지 않았으며 지기 싫어하고 독선적인 성격때문에 종종 친구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때때로 상냥하고 다정한 소녀들이 찾아와 그녀와 친해지려 노력했으나 서로의 관심사가 달라 클레어와 우정을 나누는 것은 무리였다.

클레어는 늘 칼만 떠올렸다.
매정하고 엄격한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최고가 되려 분투했다.

그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어느날 아킨테를 다스리는 미셸의 영애인 샤를의 호위기사가 될 수 있었고 마침내 정상의 위치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하늘 아래 자기또래중에 자신보다 잘난 사람은 없다고 믿었다.
나이 많은 검객들이야 경험과 관록을 무시할 수 없기에 이길  없다쳐도 또래 기사들중에서는 자신이 최고라고 확신했다.
버나드를 만나기 전까지는.

클레어는 경쟁자로 생각한 버나드에게 검술을 배우는 자신이 비굴하고 창피스러웠다.
그래서 하인들이 머무는 야외 부엌에 들려 빵을 굽고 또 구웠다.

질투하던 상대에게 당하는 패배감, 수치심, 불쾌감, 굴욕적 복종.
여러 기분 나쁜 감정이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가운데 머릿속에 한줄기 빛처럼 맴도는 밝은 미래를 향한 기대감이 유일하게 그녀를 기쁘게 했다.

자신을 능가하는 버나드의 굉장한 실력!
그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자신은 더욱 강해질  있다.
그래!
큰일을 이루기 위해 한순간의 수치심 정도는 참아내야만 한다!

‘버나드에게 배운 기술로 버나드를 넘어서면 돼!’

언젠가 찾아올 그날을 떠올리며 그녀는 재차 각오를 다졌다.

‘버나드와 난 같은 사람이야. 그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이고 나이도 비슷하고 사지도 멀쩡하고 나라고 못할것도 없어. 그가 가진걸 나도 다 갖고 있으니까.’

버나드와 헤어진뒤 숙소로 돌아온 클레어는 아침밥을 먹을 생각도 접고 일과를 시작하기 전까지 혼자서 수련에 매진했다.
경쟁자라 여겼던 버나드에게 배운다는 좌절감과 상실감이 격렬한 투지와 함께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불타는 의욕을 불러왔다.
덕분에 머리가 맑아지며 체내의 마나가 마치 살아숨쉬고 있는 것마냥 활기를 띠고 기운차게 넘실대는게 느껴졌다.

숙소 옆에 우두커니 자란 나무 한그루 앞에 서서 목검이 아닌 진검을 뽑아들었다.
버나드가 시범으로 보여주었던 병사의 축제.
화려하고 멋드러졌던 그의 모습을 머릿속에 되새기며 힘차게 바닥을 박찼다.

“하압!”

날카로운 칼날이 변화무쌍하게 휘둘러지고 나무기둥이 흔들리면서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져내렸다.
그렇게 일격을 날린 후 조용히 칼을 칼집에 꽂아넣자 잠시 뒤, 두꺼운 나무기둥이 대각선으로 잘린 채 미끄러지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쿠웅!

클레어의  눈이 크게 떠지며 얼굴에 환희가 어렸다.

“됐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며칠째 몇 번을 시도해도 안되던 기술을 드디어 깔끔하게 성공시켰다.
기술을 완성한 이상 제일 먼저 보여주고 싶은 사람은 당연히 버나드였다.
그에게 보란듯이 자랑하고 싶었다.
그녀는 서둘러 버나드가 있는 텐트로 뛰어갔다.

***

“버나드요? 멜라니아님이 무슨 약초인가 필요하대서 캐는거 도와준다고 같이 숲속에 들어갔답니다?”

클레어는 텐트 주변에서 율리아와 같이 짐을 싸고 있던 데보라의 말을 듣고 곧장 숲으로 향했다.
데보라도 따라오고 싶어하는 눈치였으나 백검대의 일정에 맞춰 오전에 길을 떠나야했기에 텐트를 접고 짐을 싸느라 바쁜 그녀였다.

아무튼 클레어는 숲에 들어가면서 자신의 꼴이 우습다는 생각도 들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버나드를 찾을일인가 싶었으나, ‘병사의 축제’를 완성하면 이어서 검기를 잘 다룰 수 있는 법을 알려준다고 했으니 빨리 배우고 싶은 마음이 더 앞섰다.

약초를 캐러갔다고 했으니 숲 외곽에는 귀한 약초가 자랄 일은 만무하고 숲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보았다.
울창한 숲길은 한적하고 고요했고, 졸졸 흘러내려가는 개울물 소리를 들어가며 기암괴석의 바위지대를 지나치려 할때였다.
조급한 마음에 빠른 걸음걸이로 걸어가던 클레어의 귀에 남녀가 헐떡이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수련중인가……?”

좀 더 주의를 집중해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살금살금 걸어가보니 그녀는  놀라운 광경과 마주했다.
바위지대 구석진 곳, 침대처럼 넓고 평평한 바위 위에 천자락을 깔아놓고 알몸의  남녀가 뒤엉켜 있었다.

“내가 뭘 본 거야……?”

나무기둥에 몸을 숨긴 채 몰래 엿보던 클레어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벌건 대낮에 야외에서 낯부끄러운 짓들을 일삼는 이들은 다름 아닌 버나드와 멜라니아였다.

“헉! 헉헉!"
“아아! 좋구나! 계속해줘 늑대야! 아아아!”

버나드의 탄탄한 하체가 멜라니아의 하반신을 힘차게 내려찍고 있었고, 밑에 깔려있던 멜라니아는 페니스가 몸을 찌를때마다 벌리고 있는 양다리를 들썩이며 마구 교성을 지르고 있었다.
살과 살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짐승처럼 허리를 흔들어대는 버나드의 모습을 보며 클레어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

남녀의 정사를 처음 보는 것은 둘째치고, 무엇보다 아는 사람이, 자신이 아는 사람이 누군가와 성관계를 하는 광경을 본다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랍고 경악스러웠다.

‘여기 있으면 안돼……!’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적나라한 광경을 뚫어지라 바라보던 클레어는 마치 죄를 지은 사람처럼 허둥대며 황급히 뒤돌아섰다.
얼른 떠나야겠다는 생각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뒤에서 갑자기 버나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클레어! 샤를리나님은 어쩌고 여긴 왜 왔지?”

자신이 엿보고 있었다는 것을 들키자 클레어는 몹시 놀라 그 자리에서 몸이 굳어버렸다.
버나드는 도중에 끊기가 아쉬웠던지 멜라니아의 음부를 강하게 두 번 찌르고 안을 휘저어준뒤 페니스를 빼고 일어섰다.

“당신의 감시 마법이 쓸만했군.”
“그냥 보내거라. 어쩔 생각인데?”

멜라니아가 달뜬 한숨을 내쉬며 계속 이어가자고 그를 보챘으나 버나드는 아랑곳하지 않고 클레어에게 다가갔다.
알몸인 그는 당당했으며 클레어 앞에서 발기한 성기를 감추려 들지도 않았다.
오히려 볼테면 보란듯이 허리를 곧게 펴고 빳빳하게 커진 성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여긴 뭐하러 왔어?”

버나드가 질책하듯 캐묻는다.
즐거운 시간을 방해받아서라기 보다는 일을 안하고 엉뚱한 장소에 와있는 클레어를 나무라는 느낌이었다.

“너한테 해줄 말이 있어서 왔어.”

클레어는 조금전 엿본걸 들켰을때 얼굴이 새하얗게 질릴 정도로 크게 당황했으나 본래 그녀의 성격이 차분하고 무감정한 면이 있다보니 금세 안정을 되찾았다.
그렇기에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당당히 성기를 드러내고 있는 버나드의 알몸을 봐도 그녀의 표정은 담담했다. 아니, 최대한 태연한척 하려 애를썼다. 솔직히 남자의 알몸을 대놓고 본다는게 쉬운 일은 아니었고 성격이 뒷받침 해줬기에 개의치 않는척하며 무덤덤하게 연기를 할  있었다.

“무슨 말?”
“병사의 축제…… 완성했어.”
“잘 됐군. 지금은 바쁘니 나중에 보여줘.”
“알았어.”

클레어는 담담한 눈빛으로 버나드의 하반신을 내려다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하늘을 향해 올곧게 서있는 버나드의 그것.

“처음봤어, 남자의 성기.”

자기도 모르게 무심코 소감을 밝혔다.
버나드가 피식 웃었다.

“얘기 끝났으면 빨리 가봐.”

하지만 클레어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직 떠나기 싫은듯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버나드의 페니스에 머물러있었다.
굵은 나무기둥처럼 단단하게 발기한 검붉은 페니스는 볼록하게 솟아난 핏줄에 휘감겨 있었다.
마치 무서운 흉기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흉측하지는 않았다. 낯설고 강하게 생긴 그것은 두려운 존재였지만 한편으로는 경이로웠다.

순간 교성을 내지르던 멜라니아가 뇌리에 스쳐지나갔다.
여자들에게 숨넘어가는 쾌락과 고동치는 환희를 선사하며 씨앗을 뿌려대는 버나드의 무기.
클레어는 무쇠처럼 단단한 페니스를 내려다보며  수 없는 위압감을 느꼈다.

“…이제야 깨달았어.”
“뭘?”
“널 넘어설  없다는 것을.”
“……?”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흥분됐다.
성적 흥분이 샘솟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것이 생전 처음  남자의 성기라서도 아니었다.
다른 남자들은 절대 지금 그녀가 느끼는 기분을 똑같이 만들어줄 수가 없다.

그녀의 기분이 한껏 고양되었던 이유는 눈앞의 흉기가 바로 애증과 질투의 대상인 ‘버나드의 것’이라서였다.
천재적인 실력을 자랑하던 버나드의 것이라서 그의 페니스까지 덩달아 멋져보였다.
저 늠름하고 위용있는 페니스에 버나드의 모든 힘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이 손에 넣고 싶었던 힘 말이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위엄찬 발기력을 뽐내며 가진 힘을 모아둘만한 남근이 없다.
그와 똑같을 수 없다는 것을 결국 깨달았다.

만약 자신에게 페니스가 달려있었다면 당장 페니스를 꺼내 버나드와 기싸움이라도 했을텐데……
달려 있지 않은 이상 자신은 왠지 그에게 정복당해야할 존재처럼 여겨졌다.
몸이 아닌 그의 칼앞에.
그런 생각이 들자 클레어는 망연자실하며 순순히 패배를 선언했다.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어.”

경외심을 품을 정도로 단단하고 우월한 남근의 위용에 그녀는 짓눌렸고, 복종심이 절로 우러났다.
클레어는 비로소 버나드를 스승으로 인정했다.
질투를 느낄 대상도, 경쟁자도 아니다.
그는 자신보다 한참 앞서는  이상의 존재였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속내를 밝힐 수 없었던 클레어는 침착한 표정으로 말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빨리 볼일보고 야영지로 돌아와. 샤를님과 만나기로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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