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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화 〉되찾는 노력, 수련66 (99/200)



〈 99화 〉되찾는 노력, 수련66

콜먼 진영의 기사들은 영내에 불이 난것이 적들이 몰래 다가와 불화살을 쏘고 도망친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들의 수뇌부는 콜먼 왕자와 참모인 플레오스의 죽음을 아랫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을 두려워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기사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들의 눈에는 버나드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들이 정말 어처구니 없고 정신나간 소리로만 들렸다.

“저 녀석 붙잡아! 주둥이를 틀어막아라!”
“뭔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미친놈!”
“첩자아냐?”

기사들이 즉시 고래고래 날뛰던 버나드를 체포했다.

“콜먼 왕자님과 플레오스님이 죽었어요! 여기 있다간 우리도 죽는다고요! 빨리 도망쳐야 합니다!”
“닥쳐! 어서 이놈을 감옥으로 데려가라!”

감옥으로 끌려가는 동안에도 버나드의 입은 쉴 줄을 몰랐다.

“싸울 이유가 없어졌어요! 여기 있어봤자 개죽음만 당할겁니다!”
“니  진짜야?”
“그렇다니까요! 살고 싶으면 빨리 도망쳐요!”
“흐음……”

버나드를 연행하던 기사와 종자들은 곳곳에서 화재가 발생하는 등 혼란스러운 주변 분위기로 보아 그냥 흘려들을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결국 그의 말에 넘어갈듯 말듯 미묘한 표정이 되어 버나드에게 자세한 사정을 캐물었다.

“두 분의 죽음을 간부들이 숨기고 있는중입니다! 샤를의 군대가 현재 이리로 오는중이고요! 화를 피할려면 지금 빨리 도망가야해요!”
“괜히 불안한데……”

이윽고 버나드의 주장에 설득을 당한 그들은 지레 겁을 집어먹었다.

“씨, 씨발! 진짜든 아니든 일단 짐부터 싸놔야겠다!”
“나, 난 아끼던 창녀한테 빨리 알려야겠어! 그년이랑 같이 튈거야!”
“제길, 아까부터 간부회의가 계속 열리는게 좀 수상하긴 했어!”

버나드를 연행하던 자들이 금세 뿔뿔이 흩어졌다.
홀로 남은 버나드는 조용히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때마침 멜리사가 어둠속을 뚫고 백검대를 이끌고 나타났다.
그 수는 백여명이 조금 넘었다.
적의 본진을 침공하기에 적은 숫자로 보이지만 병력이 적은건 콜먼쪽도 마찬가지였다.
애당초 샤를이나 콜먼이나 두 사람이 끌고 다니는 부대의 성격은 여행자이지 군대가 아니었다.

“쏴라!”

멜리사는 불화살을 날려 굳건히 잠긴 울타리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한 콜먼 진영이 더욱 혼란에 빠진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상당수의 병력을 화재를 진압하는데 투입하고 있던 그들은 불을 끄랴 공격을 막으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아주 난리가 나고 말았다.
그리고 그때야 비로소 버나드의 말이 제대로 먹혀들어가기 시작했다.
다시 자유로워진 버나드는 신속히 발걸음을 옮겼고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다녔다.

“콜먼 왕자님께서 돌아가셨다! 플레오스님도 죽었어! 모두 도망가! 우린 끝났어!”
“저, 정말 콜먼 왕자님께서 돌아가신걸까?”
“자객한테 살해당했대!”
“그, 그럼 우린 어떻게 되는거야?”
“플레오스님까지 죽은게 사실이면 누가 우릴 지휘해?!”
“그게 문제가 아니야. 콜먼 왕자님이 돌아가셨는데 우리가 뭐하러 싸워? 이제 여기 있을 이유가 없잖아?”
“도, 도망쳐!”

콜먼 진영 사람들이 단숨에 의욕을 상실하며 하나둘씩 몰래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흡족하게 지켜보고 있던 버나드는 계속해서 여기저기 떠벌리며 돌아다니다 우연히 각종 재화를 보관하는 장소를 발견했다.

“빨리 다 챙겨가자 쓰벌! 아휴 이거 왜 이렇게 안들어가!”
“자루 더 없어? 자루! 자루!”

금고를 지키고 있던 경비병들은 혼란을 틈타 실내에 보관되어 있던 금화와 각종 귀금속들을 자루에 쓸어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적과 싸우고 있는 동안 그들은 돈을 챙겨 탈영할 생각인  같았다.
버나드는 그런  사람에게 슬그머니 다가가 단숨에 쓰러뜨렸다.

“컥!”
“윽!”

털썩!
털썩!
두 사람이 기절한 것을 확인한 후 실내를 둘러보았다.
각종 금은 보화가 담긴 상자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중에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이 있었으니, 거치대에 걸린 에메랄드 빛 전신갑옷이었다.
투구부터 장갑 장화까지 풀세트가 전부 갖춰져 있었고, 척 보기에도 보통 갑옷이 아니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콜먼이 어떻게 저걸 가지고 있는거지?”

버나드는 영롱한 녹색 빛을 자아내는 전신갑옷을 보고 어떤 사연이 담긴 갑옷인지 즉시 눈치챘다.

‘시리우스 1세의 독 정화 갑옷. 다른 이름으로는 포이즌 아이비 스킨.’

간단히 말해 아티팩트다.
 레온 왕가는 선대왕들이 생전에 사용하던 무구를 오직 프레드릭왕과 왕위계승자만이 출입 가능한 ‘왕들의 유산’ 이라는 보안이 철저한 장소에 소중히 보관하고 있었는데, 버나드는 한때 프레드릭왕의 총애를 받았던만큼 왕과 같이 그곳에 종종 들어갈 수 있었다.
그때 거기서 본것중 하나가 바로 지금 눈앞에 있는 ‘시리우스 1세의 독 정화 갑옷’이었다.

시리우스 1세는  프레드릭왕까지 5대째인 레온 왕조의 초대왕이자 인복왕(人福王)으로 불렸던 자다.
그는 축복 받은 인복으로 수많은 영웅들을 거느리며 10개의 크고 작은 대영지들을 하나의 왕국으로 통일시킨 전설적인 영웅이었다.

왕국이 통일되기전 세상은 주요 인물이 암살과 독살로 죽는 일이 일상다반사일 정도로 각종 독 제조 기술이 그 어느 시대때보다 눈부시게 발전해 유난히 악명을 떨치던 시대였다.
난세의 소용돌이 속, 그때의 독 제조 기술이 지금까지 유용하게 사용될 정도로 시리우스 1세가 살던 시대에 개발된 독들은 실로 위력이 대단했다.

당시 시리우스 1세를 섬기던 대마법사 뮬린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모시는 군주가 하루아침에 독살 당할 것을 우려해 다른 종족들인 요정과 정령, 드워프들과 힘을 합쳐 기어이 독에 무적인 아티팩트를 만들어냈다.

그 갑옷이 바로 시리우스 1세의 독 정화 갑옷!
착용한 채 독을 마시면 그 어떤 독이라도 정화시킬 정도로 능력이 뛰어났으며, 설령 벗고 있을때 독에 중독 되었다 할지라도 즉시 갑옷만 착용한다면 곧바로 갑옷의 능력이 발동해 순식간에 해독을 해주었다.
그야말로 독 앞에서 무적인 갑옷!

“콜먼이 훔쳤나보군.”

프레드릭왕이 매우 아낄 정도로 ‘왕들의 유산’에 보관되어 있어야할 선대왕의 유물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는 것은 훔쳤다는 것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없다.
그도 그럴것이 갑옷이 거치된 거치대 앞에 값비싼 재질의 종이로 작성된 문서가 돌돌 말린 채 비치 되어 있었다.
마치 선물 꾸러미 위에 올려둔 편지 같이.

버나드는 그것을 집어 한중간의 매듭을 풀고 펴보았다.
주된 내용은 아케르니아 제국의 황제를 찬양하는 글.
 아랫 부분의 문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위대한 제국의 전능하신 황제폐하께 저희 왕국의 보물, 초대왕 시리우스 1세가 사용하던 포이즌 아이비 스킨 갑옷을 바치나이다.
-유서깊은 보물을 받으시고 부디 저희 레온 왕가의 가보 블랙드래곤의 심장 반쪽을 반환 받기 위해 이 먼 길을 찾아온  심정을 헤아려 주실 것을 간곡히 청하옵니다.

편지에 답이 나와있었다.

‘그런가. 귀한 보물이 세상에 나온 이유가 이거였나.’

버나드가 피식 웃었다.
콜먼은 시리우스 1세의 갑옷을 바치고 블랙드래곤의 심장 반쪽을 되찾을 계획이었던 것이다.
만약 그의 생각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면, 황제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는 실패했다.

“고맙다 콜먼.”

콜먼은 죽었고, 갑옷은 버나드의 차지가 되었다.
거치대에 걸린 갑옷을 향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면서 아버지의 물건을 훔쳐온 콜먼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했다.

“그나저나 갑옷이 생겼으니 입어주는게 도리.”

버나드는 즉시 입고 싶었다.
입고서 콜먼 진영에서 더욱 활개를 치고 다닐 생각이었다.
하지만 무거운 갑옷을 혼자서 입기란 불가능한 일. 도움이 필요했다.

“휘이휘이, 휘이이익!”

그가 휘파람을 불자 얼마 지나지 않아 막사 안으로 루로키나 삼남매가 빼꼼히 모습을 드러냈다.

“헤헤, 여기 계셨시라.”
“오따  갑옷은 뭐당가요.”
“마스터울프 업어줘.”

버나드는 소녀처럼 체구가 작은 루가 양팔을 벌리고 뛰어오자 그녀를 번쩍 안아들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행복한 표정을 짓는 루를 한팔로 안아든 채 딘과 샨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갑옷은 내 것이다. 입는 걸 도와줘.”

이후 삼남매의 도움을 받아 갑옷을 입고 밖으로 나오자 멜리사가 이끄는 공격군은 아직도 영내로 진입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 사람이라도 다치는 것을 막고자 몸을 사리는 것처럼 보였다.
반면에 궁지에 몰린 콜먼의 기사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정문과 울타리가 무너지는 것을 막고 있었다.
전우에게 노성을 지르며 아슬아슬하게 버티던 그들을 완전히 무너뜨린 것은 버나드였다.

“넌 누구냐!”

버나드는 정문을 지키던 기사들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어떤 기사가 차고 있던 칼을 민첩하게 빼앗아들며 그의 목을 베고 연달아 다른 이들까지 순식간에 처리했다.
그는 곧이어 울타리문을 옥죄고 있던 굵은 밧줄을 내려쳐 문을 활짝 열었다.

“들어와라!”

멀리서 크게 손짓하는 녹색 갑주의 기사를 보고 멜리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저 자는 누구지? 아군인가?”

좌우지간 굳건히 닫혔던 울타리 문이 열렸다.
아킨테의 기사들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물밀듯이 쳐들어왔다.

콜먼 진영이 함락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울타리문이 열리기 직전부터 콜먼과 플레오스가 자객에 의해 암살당했다는 소문이 만연하게 퍼져있었고, 그것은 곧 커다란 사기 저하를 불러왔다.
그러한 상황에 문이 열리고 아킨테의 기사들이 영내로 침입하자 콜먼의 기사들은 일순 절망감을 느끼며  이상 버티지 못했다.
살기 위해 개구멍으로 도망치거나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는 자가 속출했다.

살려달라고 비는 자들이 많아질수록 공격군의 기세는 더욱 드높아졌다.
저마다 일당백이었다.
그리하여 한 시간후쯤, 마침내 멜리사는 아군의 피해없이 콜먼 진영을 손쉽게 손에 넣을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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