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3화 〉되찾는 노력, 수련60 (93/200)



〈 93화 〉되찾는 노력, 수련60

이후 랜턴은 버나드에게  번이고 허리를 숙이고 나서 버나드가 가야할 곳과 반대 방향인 남쪽으로 떠났다.
왕국의 영웅과 숲속에서 하룻밤을 묵는등 새로운 이야기꺼리를 경험한 그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신나보였다.
언젠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올 마스터울프에 관한 이야기들은 신화속 영웅 이야기처럼 상당 부분 각색되겠지만, 왕국의 미래를 짊어질 어린 아이들에게 전해져 오래도록 기억될 것만은 틀림없었다.


***

“버나드, 그 마을로 갈거야?”
“가야지.”

때마침 말이 필요했던 버나드는 데보라와 란을 데리고 에그넘 마을로 향했다.
아침 일찍 출발했던  사람은 점심쯤이 되어서야 마을에 도착했다.

“여긴가 보군.”
“와~ 마을 풍경이 예뻐.”

작고 아담했던 마을 분위기는 생각보다 평화로웠다.
주민들은 마을을 방문한 외지인들에게 호의적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우리 마을은 활짝 열려있습니다! 배들이 출출하실텐데 식당은 이쪽에 있고 촌장님댁은 저깁니다!”
“금사자를 잡으러 오셨수?”
“흠, 겉보기에는 단순 여행자들 같으신데……”

주민들이 다가와  사람의 행색을 위아래로 쓸어다보며 자기들끼리 품평을 했다.
금사자를 상대할 수 있을지 없을지 따져보는 것 같았다.
그런 그들을 뒤로하고 곧장 촌장의 집으로 향했다.

“금사자 일로 찾아왔습니다.”
“오오, 잘들 오셨습니다.”

촌장을 만나 방문 이유를 설명하자, 촌장은 반색하며 버나드 일행에게 점심식사를 대접했다.

“모자라지만 맛있게 드십시오.”

식사 내내 음식을 나르던 촌장의 딸이 유독 눈에 띄었다.
외모는 말그대로 청순가련한 미인형인데, 생각외로 일을 꼼꼼히 씩씩하게 잘했다.

“나리, 술을 따라드리겠습니다.”

그녀가 버나드에게 다가와 반주겸 술을 따라주었을때, 버나드는 그녀의 채취를 맡고 절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몸에 싱그러운  냄새가 가득했다.
욕정 따위가 치솟은게 아니다.
활기차고 밝은 여자를 보니 그의 기분도 덩달아 밝아졌을뿐이다.
촌장 딸은 주변 사람에게 긍정적인 기운을 불어넣어주는 사람이었다.

“그 유명한 아킨테의 미셸님에게 인정받은 오크를 두려워하지 않는 기사 버나드님이시여.”

식사도중 촌장이 난감한 말을 꺼냈다.

“만약 금사자를 잡거나 길들여주신다면 우리 딸을 기사님께 바치겠나이다. 데려가서 첩으로 삼아주십시오.”

그 말에 데보라가 놀라 포크질을 멈췄다.

“촌장님, 아버지 맞아요……?”
“예예, 아버지 맞습니다. 아버지니까 딸을 위대한 분께 맡기고 싶은 겁니다. 이런 작은 마을에서 평생 가난한 삶을 사는 것보다 좁은 세계를 벗어나 넓은 세상에서 살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가 흐뭇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성질이 포악한 금사자를 길들일 정도면 대단하신 분이겠죠. 그런 분께 제 딸을 맡기고 싶습니다.”

촌장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딸도 모르는 이에게 팔려가는 것이 싫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금사자로부터 마을을 구할 수만 있다면 저는 기꺼이 나리를 따라나서겠어요. 어차피 제가 없어도 부모님은 남동생이 돌봐줄테고요.”

데보라는 뜬금없이 나타난 경쟁자를 경계했다.

“버나드, 거절할거지?”

그에 버나드의 대답은,

“아니.”
“뭐?”
“거절할 이유가 없어.”
“어째서……?”

데보라는 실망한듯 울상을 지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버나드가 안심하라는듯이 미소지었다.

“첩 대신 하녀로 삼을거야. 난 귀족이니까 수발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
“나는? 누나가 열심히 해주잖아.”
“알잖아. 한 사람으로는 부족해.”

버나드는 평민의 딸을 하녀로 들이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그러나 현재 금사자를 잡은 것도 아니고 확실히 정해진게 없었던 까닭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데보라를 설득하고 자시고 할것없이 대화는 흐지부지됐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마을 중심부의 커다란 곡식창고로 안내되었다.
텅빈 곡식창고 안에는 먼저와서 기다리고 있던 도전자들이 쉬고 있던 중이었다.

“엥? 또 왔어?”
“이번엔 남자 하나에 여자 둘이구만.”
“어휴, 금사자는 대체 언제 나타나는거야. 지루해 죽겠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도전자들이 모두 다섯명. 그들의 일행까지 합치면 총 스무명이 넘는 사람들이 곡식창고 안에서 한가하게 뒹굴고 있었다.
전부 금사자를 잡아달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외지인들이었다.
그들은 푹신하게 깔린 짚더미 위에서 편하게 쉬면서 하나같이 촌장 딸을 떠올리며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흐흐, 오늘밤 바로 처녀를 뚫어줄거야. 이렇게! 팍팍!”
“돈 아깝게 뭐하러 그래? 난 그냥 노예상인에게 팔아버릴거야. 얼굴이 반반해서 아주 비싸게 팔릴걸?”
“형씨, 그런짓은 하지마. 불쌍하잖아.  마누라로 삼아서 평생 행복하게 살고 싶어.”

실내가 여러 잡담소리로 떠들썩한 와중에 버나드와 데보라, 란, 세 사람은 구석 빈 공간으로 가서 짚을 깔고 편하게 앉았다.
버나드는 렌그룬 영주로부터 빼앗은 보물이 담긴 자루를 툭툭 치면서 란을 바라봤다.

“나중에 떠날때 이것도 가져가.”

짚에 숨어있다가 금세 꼬리털에 달라붙은 벼룩을 떼어내던 란이 그를 돌아봤다.

“돈으로 바꿔오라고?”
“쉽겠지? 장물아비 한두 명 정도는 알고 있을거 아니야.”
“바꿔오면 용돈 좀 줄거야?”
“내가  그래야 하지? 우리 계약서에 나와있지 않은 내용이다. 렌그룬 영주의 목을 치면 넌 내 목적을 달성할때까지 따라다니기로 맹세했고 보수는 없어.”
“구두쇠.”

란이 혀를 빼죽 내밀었다.
문득 버나드의 머릿속에 랜턴의 부모가 떠올랐다.
자신을 위해 헌신했던 그들을 따뜻하게 품지 않고 그저 이용만 했던 자신의 모습이 순간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게다가 지난날 레아에게 쌀쌀맞게 굴었던 행동을 지금 크게 후회하고 있지 않은가!

‘란은 나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야. 아껴줘야해.’

불쑥 그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건네주고 싶었다.
버나드는 입술을 꾹 오므리다 란에게 시선을 던졌다.

“란.”
“왜. 또 뭘 시킬려고.”

그녀가 입술을 삐죽이며 귀찮은듯이 대꾸하자 버나드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일하면서 다치지 마라.”
“응?”

그녀가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는듯 쳐다봤다.
버나드는 쑥스러운 모양인지 시선을 피하며 말을 이었다.

“꼭 사고 싶은게 있거든 장물  돈을 써도 좋아. 물론 전부 다 쓰란 소리는 아니다. 10% 정도만 써. 하지만 임무에 필요하다 싶으면 그 이상을 넘겨도 좋다.”

마지막으로 새침하게 덧붙였다.

“돈보다 네가 무사했으면 좋겠다.”

그 말에 놀란 란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봤다.
그녀는 귀를 의심했다.
레아를 통해 들었던 마스터울프는 결코 이런 말을 할 인간이 아니었다.

‘이 자식 뭐지? 갑자기 수상하게 왜 이래?’

란이 버나드의 속을 읽을 수 없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와중에 함께 있던 데보라가 버나드의 양어깨를 미친듯이 흔들며 앙탈을 부렸다.

“누나한테도 해줘! 누나한테도 돈보다 좋다고 해달란 말이야~”
“데, 데보라. 그야 당연하지. 데보라도 내게 소중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안심해.”
“정말이야? 란 씨보다 내가 더 좋은거지?”
“무, 물론……!”

그때였다.
마을 주민 한 명이 다급히 곡식창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나, 나타났습니다! 금사자가 나타났어요! 얼렁 준비들 하시랍니다!”
“뭐? 금사자가 나타났다고!?”
“아하하! 드디어 납시었군! 다들 잡으러 가보세!”
“가자아아아!”

모두들 서둘러 곡식창고를 뛰쳐나와 금사자가 나타났다는 밭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소식을 듣고 달려온 촌장과 주민들이 운집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아이고오 저놈봐! 아휴 어뜩혀!”

100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 말 한마리가 밭을 망치며 날뛰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금사자의 아름답고 기품있는 자태를 처음 목격한 버나드와 데보라, 란은 동시에 탄성을 흘렸다.
눈으로 봐도 보통 비범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황금색 털에 사자처럼 성질이 사나워 사람들은 모두 저 말을 금사자라고 부르고 있었으나 실제로 보니 털색이 황금색이라기보다는 반들반들 윤기나는 아이보리색에 가까웠다.
거기에 쭉 뻗은 다리와 날렵한 몸매, 그리고 군살 없는 근육까지.
정말로 훌륭하게  빠진 말이었다.
만약 저 말을 돈으로 사야한다면 아마 천문학적인 금액을 지불해야되지 않을까?

“오……”

버나드는 자기도 모르게 군침을 삼켰다.
금사자를 실물로 보게되니 소유하고 싶다는 욕심이 단숨에 솟구쳤다.
본인뿐만이 아니다.
저 말을 보는 모든 이들이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소유하고 싶다!’

일찍이 살생을 벌이면서까지 저 말을 탐을 냈던 렌그룬 영주의 생각이 어땠는지 이제야 조금 공감이 간달까.

“저 녀석은 짐승 주제에 머리가 아주 영악합니다.”

촌장이 금사자를 잡으러온 외지인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어갔다.

“여럿이 가까이 다가가면 귀신같이 도망치니까 반드시 한 사람씩 가셔야합니다. 한 사람씩 가면 사람을 우습게 보고 안도망칩니다. 그러니 순서를 정해 한분씩 도전하십시오.”

앞사람이 성공해서 채가면 그대로 끝이니, 외지인들은 서로 먼저 하겠다고 아우성을 쳤다.
금사자를 꼭 손에 넣고 싶었던 버나드 또한 겉으로 목소리를 내지는 않았으나 속으로 초조했다.
결국 촌장의 중재로 제비뽑기로 순서를 정했다.

그리하여 첫번째 도전자가 산적처럼 털보에 덩치가 큰 사내,
두번째 도전자는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여자,
세번째 도전자는 얍실해보이는 마른 사내,
버나드가 네 번째로 당첨되었다.

“성공하길 기원합니다!”
“저 마물을  우리 마을에서 쫓아내주십시오!”

주민들의 뜨거운 성원을 받으며 첫번째 도전자인 덩치 큰 사내가 나섰다.

“짐승을 길들이는데는 매가 최고지. 때리면 알아서 긴다구.”

덩치  사내는 당당한 발걸음으로 금사자에게 다가갔고, 밭의 작물을 뜯어먹고 있던 금사자는 점점 가까워지는 그를 발견하더니 제자리에서 멈춰서며 고개를 들었다.

“어쭈, 이놈봐라. 사람을 봐도 겁을 안먹는 것 보소.”

덩치 큰 사내는 황당한 웃음을 짓더니 금사자를 향해 호통을 쳤다.

“네 이놈! 한낱 짐승 따위가 인간에게 피해를 줘서야 되겠느냐! 내 네놈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 아자으아!”

퍽!
덩치 큰 사내가 소리를 치며 다짜고짜 금사자의 대가리를 주먹으로 때렸다.
그러자 금사자도 화가 났는지 물려고 달려들었다.

“히이잉!”
“이 자식이!”

곧이어 난투극이 벌어졌다.
덩치 큰 사내는 막무가내로 금사자를 때렸고, 금사자 역시 격렬히 맞서며 가만히 맞고만 있지 않았다.
서로 비등하게 싸우는가 싶더니 이윽고 덩치 큰 사내가 지친 나머지 돌부리에 걸려넘어지고 말았다.
바닥에 나자빠진 그의 몸을 금사자가 사정없이 짓밟았다.
퍽!
퍽! 퍽!
퍼버버벅!

“살려줘어어어!”

결국 마을 주민들이 농기구를 들고 떼거지로 달려가 온몸에 멍이 든 그를 급히 구조해서 데려왔다.
하도 맞아 정신을 못차리고 허우적대는 덩치 큰 사내를 보고 주민들은 또 실패냐며 탄식을 내뱉었다.

“이번엔 제가 가보겠습니다!”

두 번째 도전자인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여자가 나섰다.
그녀는 제 몸보다 커다란 타워쉴드에 몸을 숨긴 채 금사자에게 슬금슬금 다가갔다.
한 손에는 맛있는 요리가 담긴 접시가 들려 있었는데, 그 요리속에 수면제가 섞여있었다.
금사자의 코앞에 이르자 접시를 내밀었다.

“널 위해 만들었어. 요거 먹고 힘내렴. 언니는 금방 갈거야. 호호.”

그녀가 어색하게 웃으며 손에 쥔 접시를 바닥에 내려놓으려는 찰나, 금사자가 빠르게 돌아서며 뒷발로 걷어차버렸다.

“꺄아아악!”

여자는 타워쉴드와 함께 저 멀리 날아가버렸다.
그렇게 두번째 도전자마저 허무하게 당하자 주민들은 일제히 얼굴을 쓸어내렸다.

“또……!”

그런 상황에 세 번째 도전자가 패기 있게 나섰다.

“저한테 맡겨주십시오! 짐승이 왜 짐승이겠습니까! 대가리가 단순하니까 짐승인겁니다!”

얍실하게 생긴 사내는 음흉하게 웃으며 자신이 데려온 수말과 함께 금사자에게 다가갔다.
금사자와 가까워지자 그는 주머니속에서 정체 모를 풀을 꺼내더니 수말의 코에 비벼댔다.
그러자 수말의 성기가  깜짝할 사이에 커다랗게 발기했다.
그 즉시 얍실하게 생긴 사내가 수말의 고삐를 놓으며 명령했다.

“자, 가거라! 가서 박아버려!  년은 네 것이다! 당장 아내로 삼아버리라구!”

 광경을 지켜본 마을 주민들이 동시에 머리를 갸웃거렸다.

“왜 저래?”
“미친놈. 뭐하자는 거야.”

그의 행동을 지켜본 주민들이 저마다 이해할 수 없다며 양손을 드는 순간, 금사자를 덮치려던 수말과 더불어 얍실한 사내까지 차례차례 비명을 지르며 허공을 날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버나드의 차례가 되었다.

“버나드, 좋은 방법 있어?”

데보라가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란은 그를 향해 비웃었다.

“당신도 곧 앞에 사람들처럼 날아갈걸? 아무튼 잘해봐.”

앞서 세 명의 도전자를 거치면서 금사자도 더욱 흥분하고 거칠어진 상태였다.
이젠 접근하는 것조차 쉽지 않아보였기에 앞선 사람들보다 버나드가 많이 불리했다.

“녀석은 끝났어.”

하지만 버나드는 자신감이 넘쳤다.
금사자를 길들일 방책은 이미 마을에 도착하기 전부터 세워져있었다.

“이제 내거야.”

버나드는 가지고 다니던 짐을 뒤지더니  안에서 작은 자루를 꺼냈다.
그것을 들고 담담히 금사자에게 걸어갔다.
예상했던대로 금사자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버나드를 기다려주지 않고 먼저 달려왔다.

“히힝! 푸드득!”

그대로 들이받으려는듯 일직선으로 빠르게 달려오는 금사자.
 광경을 목격한 촌장과 주민들이 기겁을 하며 크게 웅성거렸다.

“도망가요!”
“그러다 죽어!”

그럼에도 버나드는 두려워하지 않고 자루속에 들어있던 그것을 태연히 꺼내며 돌돌말린 천을 풀어헤쳤다.
완전히 다 벗겨지자 그것을 앞으로  내밀었다.

“자, 네가 그토록 바라던게 여깄다.”

그 순간 맞은편에서 무섭게 질주해오던 금사자의 눈이 꿈틀거렸다.
제자리에 우두커니  버나드가 한쪽 입꼬리를 말며 웃었다.

“그래, 그런 반응을 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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