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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화 〉되찾는 노력, 수련58 (91/200)



〈 91화 〉되찾는 노력, 수련58

비록 신장이 4센치미터 정도 줄었지만 고치안에서 새로운 팔이 재생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소진된 체력까지 완전히 회복했다.
버나드는 여덟번째 기사가 걸치고 있던 망토를 벗겨서 몸에 두르고 그대로 신전안으로 진입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자신을 몸으로 막아서는 사제들에게 무섭게 경고했다.

“나는 프레드릭왕의 부정한 죄로 탄생한 악마다. 내 안에 심어진 증오와 원한은 잔인한 폭력으로 표출되어 신을 섬기는 성직자조차 그저 고깃덩이로만 보고 있다. 살고 싶으면 물러서라.”

좌우로 길게 벽을 만들었던 사제들은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다.
버나드는 겁에 질린 사제 한명을 붙잡아 렌그룬 영주의 위치를 물었고, 오래지 않아 비밀공간에 숨어있던 영주를 찾아냈다.
곧이어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렌그룬 영주의 목을 쳐냈다.

“아악!”

버나드는 영주의 잘린 머리를 천으로 돌돌말아 수중에 챙겼다.
그 장면을 본 고양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못생긴 영주의 목은 가져가서 뭐하게? 무겁기만 할텐데.”
“네크로맨시 의식을 통해 왕실의 동태와 프레드릭이 내게 숨겼던 정보가 있는지 캐낼 것이다.”
“오호라, 해줄 사람은 있고?”
“그건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버나드는 고양이에게 다가가서 그녀를 진지한 눈빛으로 마주봤다.

“이로써 네가 요구한 일을 끝마쳤다. 이제 네가 성의를 보일 차례야.”

고양이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곧 한쪽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웃었다.

“내 이름은 란네르케야. 잘 부탁해.”
“앞으로 란이라 부르마.”
“의뢰주 주제에 거만해. 주인 마냥 행동하네.”
“일의 신속성과 편의성, 비밀 유지를 위해 줄여 부르는 것 뿐이다.”
“거 몇자나 된다고?”
“란님! 앞으로 잘 부탁해요!”

데보라가 두 손을 공손히 모은 자세로 밝게 웃었다.
란은 순간 머릿속에서 레아가 떠오르며 마스터울프의 옆자리를 차지한 데보라를 살짝 불쾌하게 생각했으나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데보라를 향해 빙긋 미소짓고는 두 손을 뻗어 그녀의 풍만한 가슴을 움켜쥐었다.

“자주 보겠네 큰 가슴. 마스터울프는 가슴 큰 여자가 취향인가봐?”

그녀가 대뜸 양가슴을 주물럭거리자 데보라의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왔다.

“좋은말할때 빨리 놓는게 좋을거예요. 안그러면 플레일로 처맞을지도 모르니까.”
“무서워라~”

버나드는 그런 두 여자를 데리고 신전을 나와 영주의 관저를 습격했다.
대부분 하인들만 남아있었고, 그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것만 구경할뿐 굳이 따라가서 죽이지는 않았다.
집사를 협박해 영주의 방에 들어가서 비밀 금고를 찾아낸뒤, 들고 갈  있을 만큼의 재물만 자루에 챙기고 즉시 마을을 떠났다.

“그 위대한 마스터울프가 재물에 욕심을 낼줄은 몰랐는데?”
“렌그룬 영주가 가진 재산 또한 네 요구를 받아들인 이유중에 하나였다.”
“아하 한탕할 생각이셨구나. 돈이 급했나 보지?”
“모든 일에는 돈이 필요하다.”

버나드는 그렇게만 대답하고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마을 주변을 흐르고 있던 개울로 가서 몸에 묻은 피를 씻어냈다.
데보라도 그제야 한숨을 돌리며 얼굴과 손을 씻었다.
고양이, 아니 란은 허리에 차고 있던 수통에 물을 가득 채웠다.
 후 세 사람은 유유히 말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


데보라가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없네? 어디갔지?”

말을 묶어둔 숲속에 도착했을때 말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나무기둥에 묶어둔 밧줄까지 가져간 것을 보면 산짐승 혹은 괴물에게 잡아먹힌 것은 아닐테고, 우연히 이곳을 지나던 자들이 훔쳐갔거나 그게 아니면 버나드가 마을을 공격했을때 마을 밖으로 도망친 자들이 타고 간것으로 추측되었다.
버나드는 쉽게 단념했다.

“걸어가자.”

그렇게 말하면서 란을 쳐다봤다.

“넌 어쩔거야. 계약은 성립되었고 지금 우리와 같이 행동할때가 아닐텐데?”
“왜? 벌써 일시키려고?”
“그것말고 할게 있나?”
“무슨 일을 시킬건지 말도 안해줬잖아.”
“이미 알고 있는줄 알았다.”
“난 신이 아니야. 당신 속을 내가 어떻게 알아?”
“유능한 정보원은 의뢰인이 무엇을 시키기 전에 먼저 일을 찾아나설줄 알아야한다.”
“난 유능하지 않으니까 내 맘대로 할래.”

도도한 고양이상의 얼굴로 눈웃음 짓는 란.
키가 작은데다 꼬리까지 달려있으니 마치 개구쟁이 같았다.
버나드는 장난치는걸 좋아하는 그녀의 성격이 조금 못마땅했고, 노파심에 확실히 일러두었다.

“내가 필요한건 프레드릭과 안소니 후작, 그외 나를 향한 왕실의 움직임에 관한 정보다. 잊지마.”
“네네, 머릿속에 입력 완료 했습니다~”

말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도보로 길을 나섰다.
앞서 나가고 있는 멜리사의 백검대를 따라잡으려면 서둘러야했다.
걷다가 마을을 만나면 그곳에서 말을 구입하기로 다짐했다.
수중에 가진 돈은 영주의 관저를 턴 덕분에 차고 넘쳤다.

몇 시간째 산길을 따라 걷는 와중에 밤이 가까워졌다.
세 사람은 걷는걸 멈추고 적당한 장소를 찾아 야영을 준비했다.
버나드는 어깨에 짊어지고 다니던 자루에서 금으로 만들어진 술잔을 꺼내 근처 개울로 물을 뜨러갔고, 데보라는 자루에서 손바닥 보다 큰 보석함을 꺼내 그 안에 들어있던 보석들을 버리고 산나물 바구니로 썼다.
란은 꼬리를 사용해 원숭이처럼 나무를 타고다니며 잘 익은 과일들을 따왔다.

“힘을 잃었어……”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저녁식사를 하고 있던 와중에 버나드가 무심코 중얼거린 말을 란이 귀신같이 알아듣고 물었다.

“힘을 잃다니? 피곤하다고?”

버나드가 고개를 저었다.

“체격이 작아지면서 원래 갖고 있던 힘이 조금 소실되었단 뜻이다.”
“에? 약해지면 어떡해? 이젠 오늘 같은 힘을 못내는거야?”
“팔을 잃기전의 내 몸은 20대 시절의 몸이었고, 내 인생중 가장 힘이 강력했던 전성기 시절의 몸이었지. 하지만 지금은 아냐. 전성기 직전의 몸인  같아. 십대 후반 정도.”
“버나드 몸 멋졌는데……”

데보라가 버나드의 알몸을 상상하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란이 계속 호기심 어린 눈길로 물었다.

“전성기 시절 몸이었다면서 왜 당한거야?”

버나드가 어깨를 으쓱하며 변명하듯 빠르게 대꾸했다.

“체력적으로 지친 상태였다. 게다가 내 검술이 미완성이었던 것도 있고, 무엇보다 쓸만한 장비가 하나도 없었잖나.”

데보라도 거들었다.

“만약 버나드한테 멋진 갑옷이 있었다면 그 기사놈은 아무것도 아니었을거야. 그렇지 버나드?”

버나드가 그녀를 향해 조용히 웃어보였다.

“고마워, 데보라.”

란은 그런 두 사람을 보며 혀를 빼죽 내밀었다.

“어디서 연애질들이야.”

버나드는 마나를 다룰 수 있게 되면서 자고 있어도 무언가가 접근해오면 번쩍 눈이 떠지는 경지에 이르다보니 불침번은 따로 필요없었다.
밤새 버나드가 자면서 불침번을 섰다.

다음날 아침.
오늘도 란은 왕도로 떠날 생각이 없어보였다.
버나드 및 레아와 관련된 여러가지 것들을 물어보면서 계속 버나드를 따라다녔다.

“예전에 레아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어?”
“충성심 높은 부하.”
“지금은?”
“내가 왜 그걸 말해야하지?”
“부끄러워?”

버나드는 그녀가 빨리 정보를 캐러 가주었으면 했지만, 서로 알게 된지 얼마되지 않았으니 서로의 면면을 파악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성이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녀가 계속 붙어있어도 아무말도 안했다.

그날 오후, 산을 내려와 흙으로 포장된 평평한 길을 걸어가고 있을때였다.
우연히  나그네와 마주쳤다.
버나드와 데보라의 복장은 평범했기에 그다지 눈에 띌것까지야 없었으나 검은색 전신가죽 옷에 꼬리가 달린 란의 외모가 그의 흥미를 돋운것 같다.
지루한 여행길에 잠시 말동무가 필요했는지 나그네가 다가와서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실례합니다만, 그쪽에 계신 여성분은 혹시 아그리오족이십니까?”
“아그리오족이면 어쩔건데? 당신과 상관없으니 가던길이나 가셔.”

란은 심술궂게 대꾸하면서 버나드의 등뒤로 숨었다.
무안을 당한 나그네가 머리를 긁적이며 머쓱하게 웃었다.

“허허, 죄송합니다. 아그리오족 분을 오랜만에 봬서 기분이 그만 들떴었나 봅니다. 그나저나   말도 없이 여행중이십니까? 만약 공짜 말이 필요하시면 여기서 조금만  가면 아주 좋은 명마가 있긴한데……”

버나드는 인상 좋은 나그네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다 불현듯 15년전 일이 떠올랐다.

‘아, 그 아이였던가.’

어쩐지 익숙한 얼굴이다 싶었다.
버나드는 그를 만난적이 있었다.

나그네가 열네 살때, 적군에게 살해당할뻔한 그의 부모를 구해준 일이 있었다.
그 후 그 일이 계기가 되어, 부모는 이 지역에 살면서 버나드의 정보원 역할을 충실히 해주었고, 부모가 죽은 뒤에는 바로  나그네가 일을 물려받아 밤의 늑대들에게 간간이 정보를 보내주고 있었다.
12년전 1차 걷는 사자 전쟁이 종전된 이후 서로 직접 만난적은 없었지만 적어도 밤의 늑대들이 해체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어? 혹시 이 분은……?”

역시나 그도 버나드를 알아봤다.
그와 만난게 버나드가 십대 후반일때였으니 지금 버나드의 모습이 딱 그때의 모습이었고, 그때의 버나드만 기억하고 있던 그가 지금의 버나드를 못 알아볼리가 없었다.

“설마! 마, 마스터울프님!?”

크게 놀라는 그를 향해 버나드가 밝게 웃으며 그의 두 손을 따뜻하게 감싸쥐었다.

“많이 컸구나. 랜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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