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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화 〉되찾는 노력, 수련46 (79/200)



〈 79화 〉되찾는 노력, 수련46

버나드는 마녀의 말을 비웃고 부정하고 싶었으나 무어라 할말이 없었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말이 맞았다.
불길한 움직임은 눈앞에 보이는 야트막한 산에서 포착됐다.
두두두두두두!

“무, 무슨 소리지?”

지반이 미세하게 떨리자 기사들이 크게 당황했다.
방금 일어난 지진이 아닌 것만은 확실했다.

두두두두두두!
산속에 울창하게 자란 나무들이 하나씩 픽픽 쓰러지고 무수한 나뭇잎이 허공에 어지럽게 흩날렸다.
지반의 떨림은 점차 커졌고 눈앞에 보이는 산에서 무언가가 떼거지로 내려오는 중이었다.
이윽고 산밑으로 내려온 그것들이 정체를 드러내자 누군가 크게 소리쳤다.

“지, 짐승들이다!”

토끼, 멧돼지, 늑대, 곰, 들쥐, 뱀, 사슴, 다람쥐, 박쥐 등 종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산짐승들이 파도처럼 밀어닥쳤다.
개중에는 마물도 섞여있었고, 고블린, 놀, 인간 여성의 모습을 가진 드라이어드, 심지어 작은 크기의 바위골렘까지 이쪽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마치 산속에 살고 있던 모든 산짐승과 마물들이 한꺼번에 쫓겨난듯한 분위기였다.
멜리사가 칼을 뽑아들고 소리쳤다.

“방어하라!”

뿌우우우!
신경을 자극하는 뿔나팔 소리와 함께 기사들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창과 방패를 든 종자들이 황급히 앞으로 나서서 일렬로 벽을 쌓았다.

“기사들은 돌격 준비해!”
“사수들은 어서 대열을 갖춰라!”
“짐마차에서 목책을 꺼내와!”
“제기랄! 뭘 이리 꽁꽁 싸맸어! 꺼내기가 힘들잖아!”

산에서 쏜살같이 내려온 산짐승과 마물들은 곧바로 방패종자들과 충돌했다.
콰앙!
텅!

“버, 버텨!”
“절대 뚫리지 마라!”

종자들은 제 몸집만한 방패를 붙잡고 밀려나지 않으려 악착같이 버텼다.
그리고 방패종자들이 든든하게 방어선을 지키는 동안 말을  기사들이 앞으로 뛰쳐나가 산짐승과 마물들을 들쑤시며 유린하기 시작했다.
몇몇 마물들은 상대하기 껄끄럽다쳐도 힘없는 산짐승들은 우후죽순으로 칼과 창에 찔리며 일방적으로 학살을 당했다.

버나드는 데보라와 마크, 멜라니아와 함께 샤를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종자들이 방어선을 형성한 곳을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뭔가 이상해.”

백검대의 공격 앞에 맥없이 무너지는 산짐승들.
거기에 마물들 또한 애당초 싸울 의사가 없었는지 칼에 베이고 창에 찔리고 무력하게 당하고만 있었다.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체모를 비명과 지진 때문에 짐승과 마물들이 놀랐을뿐이야.”

놀라 도망치다가 우연히 우리와 마주친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할 무렵, 기사들을 지휘하던 멜리사가 다가와 샤를에게 가볍게 묵례했다.

“원만히 정리되고 있습니다.  끝날테니 안심하십시오.”
“알, 알겠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있던 샤를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완벽한 방어전을 펼친 덕분인지 어깨에 힘이 들어간 멜리사는, 버나드를 지나치며 그를 향해 득의양양한 미소를 짓고는 다시 지휘하러 자리를 떠났고, 그녀의 말대로 산짐승과 마물들의 기세는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토끼, 다람쥐, 들쥐부터 커다란 곰까지, 수백마리의 짐승 사체가 바닥을 온통 뒤덮고 있었다.
그 와중에 살아남은건 조금 힘있는 몇몇 마물들 뿐이었다.
그러나 마리마다 여러 기사들이 에워싸고 있었기에 마물들도 오래버티진 못할 것으로 보였다.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샤를은 그때부터 버나드를 계속 물끄러미 쳐다봤다.
버나드가 청년으로 성장한 이후, 그녀는 그에게 단 한마디도 걸지 못했다.
낯설고 어색해서.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많은 호기심과 호감을 담고 있었다.
버나드는 그것도 모르고 멜라니아와 대화를 나누는데 열중해있었다.

“전에 이와 같은 현상을 본적이 있어.”
“호오, 그러냐?”
“산짐승과 마물들이 산에서 쏟아진다는건……”

그때였다.
말을 잇는 와중에 산쪽에서 정체 모를 비명이 또다시 울려퍼졌다.

-끄아아아아아!

산짐승과 마물을 상대하고 있던 모든 기사들이 귀를 막았다.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는 이들도 있었다.
멜리사는 알 수 없는 일이 계속될거라는 불길함에 인상을 찌푸렸고, 샤를은 덜컥 겁을 집어먹으며 버나드 곁으로 바싹 다가섰다.
클레어는 칼을 뽑아들고 더욱 주위를 경계했다.
버나드는 허리를 숙여 두려움에 떠는 샤를의 온몸을 감싸듯 덥썩 끌어안았다.
그의 난데없는 행동에 샤를이 당황하며 눈을 크게 떴다.

“뭐, 뭐야! 떨어져!”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땅이 흔들릴겁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차례 매서운 지진이 일어났다.
덜덜덜!

“꺄아아아악!”
“조, 조심해!”
“아악, 다들 뭐라도 붙잡아!”

쿠우우웅!
다행히 이번 지진도 순식간에 끝이났다.
버나드는 샤를에게서 떨어지며 그녀를 마주봤다.

“안심하십시오. 제가 지켜드리겠습니다.”
“어, 응……”

샤를은 뺨을 붉힌채 바닥을 쳐다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급하게 소리쳤다.

“또 온다!”
“대장님! 북동쪽에 또 산짐승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백마리가 넘습니다!”
“뭐, 뭣이!?”

멜리사는 황급히 북동쪽을 바라본뒤 몹시 놀라며 혀를 찼다.
겨우 끝났다 싶었는데 새로운 전투가 기다리고 있었다.
산짐승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우르르 달려오는게 아닌가!
낙심하고 지쳤지만 그녀의 결단은 빨랐다.

“방어선을 북동쪽으로!”
“모든 방패병들은 우측으로 이십보씩 이동!”

종자들이 다급히 목책을 세우고, 말탄 기사들은 재빨리 돌아와 장비를 점검하며 돌격할 준비를 서둘렀다.
그리아와 카샤는 몰려오는 산짐승들의 허리를 치기 위해 신속히 자리를 이동했다.
멜리사는 문득 버나드를 원망하고 싶었다.

“우린 이렇게 열심히 싸우는데 저 사람은 샤를님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겁쟁이처럼 뭐하는거야. 입만 살아가지고.”

그녀가 눈앞에 벌어진 일들만 보고 버나드를 향해 투덜거리고 있을때, 버나드는 현재 닥친 위기 따위는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는 문제 해결을 위해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버나드는 이미 산짐승과 마물들이 쏟아지는   수 없는 현상에 대한 이유를 알고 있었다.

“잠시 산에 다녀오겠습니다.”
“산에는 왜?”

버나드가 자리를 비운다고 말하자 샤를이 다급하게 그의 옷깃을 붙잡았다.

“당신이 사라지면 날 누가 지켜?”
“클레어 경이 지켜드릴 겁니다.”

버나드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 상황을 매듭지으러 가는 것이니 안심하여 주십시오.”

샤를은 자기도 모르게 버나드의 옷깃을 붙잡았다는 것을 깨닫고 아차! 하며 재빨리 손을 놨다.
그에게 가지말라고 붙잡는 것은 속을 드러내는 것이다.
실수를 깨닫자 얼른 가면을 썼다.
팔짱을 끼고 새침하게 말했다.

“알았어, 가보시든지.”

버나드는 그녀에게 묵례한  클레어에게 다가갔다.

“샤를리나님을 부탁한다.”
“어디가……?”
“근원을 제거하러.”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한 후 떠날 채비를 서둘렀다.

“버나드! 누나도 데려가!”

데보라가 당연하다는듯이 따라붙었고, 멜라니아도 같이갈 생각인 모양이다. 그녀는 짐속에서 칼집에 에메랄드가 박힌 화려한 단검을 챙겨들었다.

“당신도 가게?”

버나드가 의외라는듯이 묻자 그녀가 입꼬리를 말아올린다.

“널 도우러 가는게 아니야. 희귀한 재료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가는거다.”

그렇게  사람이 근처의 산으로 떠나고 난뒤 홀로 남은 마크가 투덜거렸다.

“나만 또 혼자야.”

머리를 긁적거렸다.

“이럴때가 아니지 얼른 스케치 해야지, 스케치. 산짐승과 싸우는 기사님들! 대단한 명작이 나올게 분명해!”


***

산은 어느날 갑자기 솟아난다.
마녀들은 그것을 가리켜 아기산이 태어났다고 표현했다.
아기산은 태어나며 산통을 앓는다.
그 아픔의 시간은 인간의 수명의 길이와 비슷할 정도로 길었다.
간혹 어떤 마녀들은 아기산에 장기간 머물며 산의 아픔을 달래고, 어둠의 기운을 걷어내며 정화하는 제사를 지냈다.
그런 마녀들을 ‘산의 마녀’ 라 일컬었다.

“둘 다 이리와봐!”

덤비는 짐승만 사냥하면서 산을 오르는 중에 버나드가 우연히 여자의 시체를 발견했다.
젊은 여자였고, 옷이 거칠게 찢겨있다. 발가벗겨진 하반신에는 정액으로 보이는 것이 마른채 묻어있었다.
데보라와 멜라니아가 땀을 닦으며 다가왔다.

“죽은거야……?”

데보라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묻자 버나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죽었어.”
“산의 마녀로구만.”

멜라니아가 쯔쯔 혀를찼다.

“못된놈들이 왔다간게야.”

버나드가 쪼그리고 앉더니 죽은 여자의 입속에 대뜸 손을 집어넣었다.
데보라가 말리려 했으나 그는 아무렇지 않게 입안을 휘젓더니 이내 금화 한닢을 꺼냈다.
저승길에 노잣돈으로 넣어준 모양이다.

“범인이 부랑배 따위는 아닌가 보군.”

금화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는 곧바로 그 금화가 왕실에서만 소유하는 특별한 금화라는 것을 알아챘다.

“왕의 자식들 중 한 녀석의 짓이군. 이곳을 지나면서 사고를 치고 간거야.”
“어떻게 알아?”

데보라가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그에 버나드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냥 감이야. 이 금화는 오직 왕족들만 가질 수 있거든.”
“그렇다면 캐서린이나 아말리아년의 새끼중 한마리겠구나.”

멜라니아가 그들을 욕하며 침을  뱉었다.
버나드의 머릿속에 죽은 왕비들인 캐서린과 아말리아가 낳은 자식들의 명단이 떠올랐다.

첫째 왕비 캐서린 - 사망
둘째 왕비 아말리아 - 사망

1. 왕세자  (적1남, 모친 캐서린) - 사망
2.   (적1녀, 모친 캐서린)
3. 브랜든   (적2남, 모친 아말리아)
4. 콜먼  (적3남, 모친 아말리아)
5. 알렉시아(적2녀, 모친 아말리아)

버나드가 말했다.

“여기 이 정액의 주인은 브랜든 아니면 콜먼이겠군. 현재 둘 중 한명이 우리를 앞질러 가고 있는건가.”

추측은 거기까지였다.
그들은 마녀의 시체를 뒤로 하고 곧장 산의 심장부로 향했다.
산의 마녀를 잃고 요동치는 산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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