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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화 〉되찾는 노력, 수련44 (77/200)



〈 77화 〉되찾는 노력, 수련44

멜리사는 잠시 말을 멈추고 빤히 바라보다 말했다.

“근데 나이가……?”

버나드는 나이의 언급을 피했다.

“보시는대로입니다.”
“미셸님께 소년이라고 들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몸집이 커지는 마법이라도 부렸나보죠? 암만봐도 건장한 청년으로 보인단 말이죠.”
“실은.”

버나드는 꺼림직했으나 이후 샤를과 만나 해명하기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 진실을 밝힐 필요가 있었다.

“마녀에게 몸집이 작아지는 저주를 받아 그동안 소년의 모습으로 지냈습니다만, 며칠전 마녀와 서로 오해가 풀리면서 원래대로 돌아왔죠.”
“뭐라구요?”

멜리사는 귀를 의심하며 인상을 구겼다.
버나드가 농담하는줄 알고 어이없다는듯이 쳐다봤다.

“초면부터 장난치는 사람은 정말 질색이에요.”

버나드가 콧등을 살살 긁으며 대답했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입니다. 나와 같이온 멜라니아에게 사정을 물어보면 납득이 될겁니다. 미셸님께 마녀 멜라니아에 관한 이야기도 들어서 알겠죠?”
“멜라니아님은 어디계시죠?”
“아까 내 옆에 있었습니다. 검은 머리 여자요. 그쪽이 신경을 안쓰길래 숙소에 가서 쉬라고 보냈죠.”

멜리사는 팔짱을 끼며 조금  기억을 되짚었다.
그녀는 이내 눈을 크게 떴다.

“그 젊은 여자가 멜라니아님이라고요? 멜라니아님은 칠십이 넘은 노인이라고 들었는데?”
“남들에게 알리기 껄끄러운 이야기라 자세한 사정은 밝힐 수 없습니다만, 나와 서로 오해가 풀리면서 그녀는 젊어지고 난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죠.”

버나드는 적당히 밝힐것만 밝힌 다음 자연스럽게 화제를 바꿨다.

“나와 멜라니아 간에 어떤 복잡한 사연이 있는지 그리고 우리 둘의 외모가 어떻게 변했는지는 샤를님이 제국까지 가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그는 멜리사의 관심사를 돌리기 위해 일부러 그녀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녀가 무엇을 싫어하는지는 앞서 그녀의 발언에서 이미 재빠르게 눈치챘다.

“미셸님께서 날 마스터로 임명하신 이유는 백검대가 하는 일을 마냥 손놓고 지켜보라는 이유에서가 아닙니다. 멜리사 경에 맞먹는 동등한 자격과 발언권을 갖고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는 의미에서 날 마스터로 임명하신겁니다.”
“뭐죠  말은?”

관심 돌리기는 대성공이었다.
그녀의 얼굴이 단숨에 찌푸려지며 버나드를 쏘아보듯 쳐다봤다.

“날 무시하고 내 부하들에게 명령이라도 내리겠다는건가요?”

부대 수장으로서의 지위를 악착같이 사수하려는 그녀의 경계심과 똑부러지는 고집이 왠지 귀엽게 느껴져 버나드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올라갔다.

“백검대는 당신의 부대입니다.”

사실, 오래동안 높은 지위를 누려온 버나드의 입장에서는 멜리사가 제 아무리 백검대의 수장이라할지라도 신출내기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만만해보이는 감정이 없지 않아있었으나 그렇다고 그녀를 무시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뭐…… 가끔 이용해 먹을 생각은 있었다.

“절대  마음은 없지만 만약 명령을 내린다해도 당신 부하들이 내 말을 무시할게 뻔합니다. 괜히 사서 욕먹고 싶지 않습니다. 나도 내 주제를  알아요.”
“그럼 방금전 그 말은 뭔데요? 우리 일에 간섭하겠다는 뜻이 아닌가요?”
“백검대 내에서의 내 위치를 조력자 정도로만 해두죠.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해야할때나 혹은 중요한 사안에 대하여 의사결정을 할때 현명한 판단을 내릴수 있도록 곁에서 도움을 주겠습니다.”

멜리사가 필요없다는듯이 싱긋 웃어보였다.

“참모라면 우리 백검대 안에도 넘쳐납니다.”
“외부 조언자의 객관적인 시각이 위기상황에서 빛을 발할때도 있죠.”
“내부 사정도 모르는 잔소리꾼만 늘어나는 격이죠.”
“참모들은 내부의 정치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객관적인 시각으로 조언을 하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듣기 싫은지 그녀가 대놓고 비아냥거렸다.

“내게 조언을 해주겠다는 것은 날 상급자로 인정한다는 뜻인가요? 우리 서열이 쉽게 정해져서 기쁘네요. 좋아요. 날 모셔준다고 하니 앞으로 당신이 무슨 말을 하든 귀담아 들어줄게요. 어차피 좋은 가문 출생도 아닌듯하니 내게 머리를 수그려도 손해볼건 없잖아요. 그렇죠?”

가문을 들먹이며 한방 먹였다고 생각했는지 그녀가 일부러 소리내어 웃었다.

“아킨테에서 많은 가문들이 우리 가문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죠. 내게 존경심을 표하는 당신을 보고 다들 당연시할거예요. 절대 이상한 광경이 아니죠.”

버나드는 잘난척 거드름을 피우는 그녀를 보며 속으로 피식 웃었다.
이 여자, 한 부대의 수장이라는 직위에 걸맞지 않게 너무 솔직하게 군다.
수장은 포커페이스가 생명이다.
그런데  여자한테는 여우 같은 교활홤, 뱀 같은 능글능글함, 걸어온 인생이 말해주는 노련함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지 않은가.
그런 이유에서 그녀가 백검대의 수장자리를 꿰차는데 가문의 배경이 한몫 했음을  수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그녀는 아킨테에서 제일  나가는 로랑 가문 출신이다.

물론 그녀의 실력을 의심하는건 아니다.
어느 정도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아킨테에서 내로라하는 기사들로 구성된 백검대를 감히 이끌지 못할테니까.
불타는 색의 붉은 머리칼과 젖가슴과 엉덩이를 가졌다고 해서 사내가 대다수를 이루는 집단의 리더가 된게 아닌건 분명했다.
그런 그녀를 두고 버나드는 뜬금없이 입을 쩍 벌리며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피곤해서 오늘은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나중에 시간날때 찾아오죠.”

버나드를 깎아내리며 한방 먹였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자신을 앞에 두고 하품을 하는 무례한 짓을 하자 멜리사가 황당한 표정을 짓고 발끈한다.

“지금  뭐라고 생각하는거예요?”
“예? 뭐가요?”
“하품은 뭐고, 얘기도 안끝났는데 누가 멋대로 돌아가라고 했죠?”

버나드는 태평하게 관자놀이를 긁었다.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안보입니까?”

그가 덧붙였다.

“그리고 마스터인 내가 당신한테 일일이 허락을 받을 이유가 있습니까?”

멜리사가 기가막힌듯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말문이 막혀 입만 벌린 채 아무런 대꾸를 못했다.
그와 얘기할수록 기분만 상했다.
속에서 화가나다보니 입술모양이 못나졌다.

“…가세요. 빨리 나가요.”
“고맙습니다. 그럼 다음에.”
“다음에가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제 발로 찾아오겠습니다.”

멜리사는 속으로 재차 발끈했다.
욱하는 심정에 막말이 나왔다.

“허락도 없이 찾아오면 쫓아버릴 수도 있어요.”
“미셸님께서 아시면 실망하실겁니다. 우리 둘이 잘 상의해서 일을 해결해 나가라고 당부하신걸 잊지 마십시오.”

버나드는 끝까지 얄미운소리만 해댔다.
밖으로 걸어나가는 그의 등을 보며 멜리사가 입술을 비죽였다.

“내 일에 참견만 해봐.”

***

멜리사의 막사를 나온 버나드는 그 길로 쉬러가지 않고 곧장 멜라니아를 데리고 샤를의 숙소를 찾았다.
멜라니아가 젊어지고 자신이 청년이된 경위를 주인에게 설명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과제였다.

“다, 당신이 정말 버나드라고?!”
“말도 안돼……!”

놀라는 샤를과 클레어에게 그가 밝힌 것은 멜리사에게 해댄 변명과 똑같았다.
그동안 멜라니아에게 저주를 받고 있었고, 서로 오해가 풀려 본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
멜라니아가 젊어진 이유만큼은 사실 그대로 솔직하게 전했다.

“키클롭스의 정액과 처녀혈을 먹더니 저렇게 젊어졌습니다.”

샤를은 멜라니아가 젊어지건 말건 아무래도 좋은듯 싶었다. 해괴한 짓을 자주 벌이는 마녀에 대한 이야기는 그녀의 관심밖이었다. 그녀가 가장 관심있어 한건 버나드였다. 그가 듬직한 청년이 되어 눈앞에서자 그를 바라보는 샤를의 눈빛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수줍어하며 똑바로 쳐다보지를 못했다.

“저, 저 저만큼 멀리 떨어져 있어!”
“샤를리나님?”
“수, 숨막히니까 가까이 오지마!”
“괜찮으십니까?”
“난 괜찮아!”

안절부절 못하는 샤를을 뒤로하고 클레어를 쳐다보자 그녀 또한 반응이 심상치 않다.
버나드가 말을 걸면 정신산만한 사람처럼 시선둘곳을 몰라하며 이곳저곳을 계속 힐끔거렸다.

“손목은 다 나았어?”
“나, 나았어……”
“한번 보자.”
“아, 아니야.”

그녀는 급히 오른손을 엉덩이 뒤로 숨겼다.

“나은거 맞으니까 안봐도 돼……”

실내 분위기가 상당히 어색했다.
샤를과 키과 똑같아서 눈을 마주치고 얘기했던 버나드.
클레어보다 키가 조금 작아서 평소 그녀가 내려다보며 얘기했던 버나드.
그랬던 버나드가 지금은 자신들 보다 훨씬 커져서 건장한 청년이 되었다.

“내일 아침에 문안인사 드리러 오겠습니다. 그럼 이만.”
“자, 잘가!”
“또 봐……”

버나드는 그녀들이 어색해하는 것을 깨닫고 얼른 자리를 피해주었다.
샤를의 숙소를 나왔을때, 날은 완전히 저물었고 그는 매우 지쳐있었다.

텐트에 돌아가자 마크와 데보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마크는 미셸을 따라가지 않고 버나드와 데보라를 기다리느라 남아있었고, 버나드가 커진 사연은 데보라가 진작에 설명했기에 따로 얘기할 것이 없어 편했다.

“마셔! 몸이 커지고 꼬추도 커진 기념이다!”

잠자리에 들기전 마크와 독한  한병을 나눠마셨다.
모닥불 앞에서 데보라가 구워준 말린 청어를 찢어먹으면서 버나드는 앞으로 할일을 떠올렸다.

“우리, 계속 텐트에서만 지낼 수 없으니까 앞으로 천막치고 살자.”
“우리 같은 사람들이 그걸 언제치고 다시 거두냐? 귀찮게. 하인이라도 있으면 몰라. 노예나 하인 살돈은 있어?”

마크의 말에 버나드가 미소지으며 가볍게 대꾸했다.

“그러니까 앞으로 돈을 많이 벌어야지.”

버나드가 상급기사에 마스터가 되었으나 갑자기 큰 돈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라 모두 자비로 충당해야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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