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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6화 〉되찾는 노력, 수련43 (76/200)



〈 76화 〉되찾는 노력, 수련43

버나드의 실력에 놀란듯 기사들이 서로를 마주보며 웅성거렸다.

“방심했을뿐이야.”

처음에 길을 막아섰던 우락부락한 사내의 목소리에 웅성임이 가라앉았다.
그가 앞으로 나섰다.

“정식으로 내 소개를 하지. 첼린트의 리들이오. 버나드 경과 칼을 겨루고 싶소.”

칼을 뽑아들며 예를 갖추는걸 보니, 앞서 나자빠진 소르건을 보고 무언가 깨달은게 있는 모양이다.
좀 전과는 달리 진지한 눈빛으로 버나드를 대했다.

“하압!”

그는 대결이 시작되자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는듯 얼굴에 힘을 팍 줬다.
하지만 기세와 달리 맥없이 무너졌다.
소르건과 마찬가지로 몇  기운차게 칼을 주고 받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날아가 땅바닥에 쳐박혔다.

“컥!”

그는 그대로 무릎 통증을 호소하며 일어나지 못했다.

“저게 무슨 꼴이람!”

백검대가 연달아지자 멜리사의 미간에 생긴 주름이 더욱 짙어졌다.

“우리가 무슨 오합지졸 부대 같잖아. 어째서 소년 하나 못이기는거야.”

연승을 챙긴 버나드의 목소리는 기존보다 크고 자신만만했다.

“또 없습니까? 이대로 야영지 안으로 들어가도 괜찮은거죠?”

그의 도발에, 당황한 표정을 짓던 백검대원들의 얼굴에 한순간 분노와 얕은 복수심이 서렸다.

“난 뮬레달 출신의 ……입니다. 대결을 신청합니다.”

그러나 야심차게 등장한 그도 버나드의 적수가 되지는 못했다.

“끄앗!”

그럼에도 기사들은 작정한 얼굴로 연달아 나섰다.

“난 ……요.  면상을 발로 까주겠어.”
“대갈빡을 부숴주마.”

그래봤자 승수만 늘려줄 뿐이었다.

“아악!”
“으억!”

그리고 승수가 쌓일수록 백검대원들이 감탄하며, 갑자기 버나드에게 예 다운 예를 표하기 시작했다.

“버나드 경과 겨루게 되어 기사로서 영광입니다.”
“우리 백검대를 상대로 이룬 버나드 경의 연승에 경의를 표하오. 하지만 이번엔 다를 것이외다.”

정중히 예를 표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크아!”
“헉!”

버나드가 계속해서 승리했다.

“오 저런, 토란 경 마저!”
“이럴수가!”

버나드를 우습게 보던 그들은 결국 인정하지 않을래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버나드의 기를 죽여놓겠다고 단단히 벼르던 그들은 어느새 버나드를 향해 경의로운 시선을 보내며 그를 응원하고 박수쳤다.

“미셸님께서 밀어주는 이유가 있었군!”
“이거이거 안되겠는데, 시험 통과야!”
“대체 어디서 저런 괴물이 나타났지?”

기사들의 생리란 단순하다.
강자를 동경하며, 강자에게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한다.
그 때문인지 버나드의 기를 꺾어놓겠다는 목적으로 시작된 대결은 어느덧 버나드에게  수 가르침을 받는 대련으로 변해갔다.

“좋은 배움이 있기를 기원하며 잘 부탁드립니다.”
“경의 실력에 놀랐소. 나와 대결 좀 해봐주시오.”

하지만 모두가 그런것만은 아니었다.
백검대원중 일부는 여전히 버나드에게 반감을 갖고 있었다.
멜리사의 직속 부관인 베네피카의 자매들이 특히 그랬다.
그리고 그들은 버나드가 찾던 실력자들이기도 했다.

“전부 비켜.”

대원들속에서 두 여인이 각선미 넘치는  다리로 뚜벅뚜벅 걸어나왔다.
백검대원들이 눈을 깜빡이며 모두 뒤로 물러섰다.
버나드 앞에선 두 여자는 버나드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고양이의 송곳니 같은 날카로운 이를 살며시 드러냈다.

“우리 둘이 상대해주겠다. 그 정도 자신감이면 둘도 상대 가능하겠지?”

버나드는 그녀들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검은색 가죽 옷을 입은 두 여자는 흑갈색의 단발머리에 쌍둥이였다.
키, 얼굴, 체형 모든게 똑같았다.
하나 다른게 있다면 각자 얼굴 반쪽씩 문신을 하고 있었는데, 한명은 왼쪽 얼굴 절반에, 다른 한명은 오른쪽 얼굴 절반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듯한 문양의 검은 문신이 그려져있었다.
두 얼굴을 반반씩 합치면 좌우대칭이 잘맞는 하나의 문양이 완성될 것처럼 보였다.

아울러 버나드는 그녀들의 출신지가 아킨테 영지가 아니라 유목민이나 야만인쪽이란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이국적인 외모는 둘째치고 자신을 응시하는 눈빛에서  것의 분위기가 풀풀 풍겼으니까. 마치 야생을 뛰어다니는  마리의 맹수란 느낌이다.

“좋습니다.”

버나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들이 허리에  칼집을 주시했다.
낫과 흡사한 형태로 극단적으로 휘어진 칼집이 눈에 들어왔다.
버나드는 저 칼집속에 담긴 칼의 이름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윈드쇼텔.
그의 시선이 다시금 팜므파탈적인 느낌의 두 여자를 응시했다.

“초승달처럼 휘어진 곡도를 감싼 칼집의 정교함과 기술력은 언제봐도 멋지고 아름답군요. 머나먼 동쪽 대륙에서 가장 용맹스럽기로 소문난 베네피카의 여전사들을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나는 오크를 두려워하지 않는 기사 버나드입니다.”

버나드는 칼을 S자 모양으로 휘둘러 발랄한 암컷고양이 같은 그녀들에게 정중히 예를 표함과 동시에 대결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자 똑같이 생긴 두 여자가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웃었다.

“난 그리아.”
“카샤.”

버나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아 경과 카샤 경, 그럼 시작해봅시다.”

그리아와 카샤가 낫처럼 휘어진 윈드쇼텔을 칼집에서 무난히 뽑아들었다.
그때 한달음에 달려온 멜리사가 불쑥 끼어들었다.

“모두 칼을 넣으세요. 신병 신고식은 끝났습니다.”

멜리사는 백검대와 버나드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것은 원치 않았다.
주변에 널브러진 백검대원들을 보고 속이 쓰렸으나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적당한 선에서 멈춰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들 제 위치로 돌아가서 일하세요. 버나드 경은 날 따라오십시오.”

아직도 칼을 넣지 않는 베네피카 자매들을 향해 반복해서 명령했다.

“그리아, 카샤, 버나드 경은 미셸님의 명령으로 나와 동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어서 칼을 넣고 예를 갖추도록 해.”

두 자매는 아쉽다는듯 혀로 입술을 핥으며 버나드를 향해 심술궂게 웃었다. 그리고 칼을 거뒀다.

“후우.”

버나드도 칼을 칼집에 꽂으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사흘간 계속 말을 타고온데다 여러 기사들을 상대했더니 심신이 무척 지쳐있던 상태였다.
만약 베네피카 자매들과 싸웠다면 그 결과가 어찌되었을지 그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걸 알고 있던 데보라가 후다닥 뛰어와서 손수건을 꺼내들고 그의 얼굴을 콕콕 닦아주었다.
그러면서 아픈데 없느냐, 쓰린곳은 없느냐, 뻐근한데는 없느냐, 하면서 버나드를 측은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빨리 숙소로 가서 쉬자. 홀랑 벗고 자. 누나가 옆에 있어줄게.”

문득 두 사람 주위로 기사들이 다가왔다.
조금전 데보라를 향해 성희롱을 일삼았던 자들이었다.
우락부락한 사내와 철제 투구를 쓴 자도 껴있었다.
대결때 버나드에게 당해 둘 다 몸상태가 좋지 못했으나 나름 기운을 내며 미소를 짓고 말했다.

“아가씨, 아까 우리가 나쁜말 해서 미안했수다.”
“이 친구 신고식 좀 하느라 무례를 범했을 뿐이니 마음에 담아두지 마시오.”

데보라가 시원하게 용서해주며 그들을 돌려보냈다.
그들이 떠나자 멜리사가 가까이 다가오며 버나드에게 말했다.

“난 백검대장 멜리사입니다. 따라오세요. 자세한건 막사에 가서 얘기하겠습니다.”

***

버나드는 일찍이 아킨테 가문이 비밀리에 키우던 백검대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대장인 멜리사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암사슴처럼 유연하고 날렵한 몸매를 가진 여인이 눈앞에서 순백의 갑주를 걸친  아른거렸다.
호수처럼 맑고 푸른 눈동자와 오뚝하게 솟은 코, 작고 붉은 입술, 얼굴 피부는 만져보지 않아도 버들가지처럼 야들야들하고 부드럽다는게 눈에 훤히 보였다.

전체적으로 상큼한 여성미를 물씬 풍기는 여자였다.
한 공간에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사내를 기분 좋게 해주는 여자랄까.
그래서인지 버나드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몸에 남성의 손길이 거쳐간적이  한번도 없다는 것을.
그렇지 않고서야 그녀에게서 진동하는 파릇파릇한 신선함과 청순미를 설명할 수 없다.
남성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육체는 자신도 모르게 뭇 사내를 유혹하고 있었다.
그녀가 엉덩이를 씰룩이며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남성의 본능을 자극하며 야릇한 향기가 코끝을 찔렀다.

하지만 그녀는 모르는  같다.
버나드도 모르는 척 그녀를 담담히 마주했다.

“처음뵙겠습니다. 멜리사님.”
“존칭은 됐어요.  당신한테 대접받을 위치가 아니랍니다.”
“네?”

버나드가 영문 모를 표정을 짓자 그녀가 책상으로 가서 서랍을 열고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별모양처럼 생긴 훈장이었다.

“미셀님께서 떠나시기 전에 당신에게 영웅 훈장을 하사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당신이 자리를 비운 까닭에 내게 대신 전달해줄 것을 명령하셨죠.”

그녀가 탐탁지 않은 기색으로 훈장을 내밀었다.

“자, 받으세요. 일전에 괴물로부터 미셸님을 구해준 공로로 아킨테 가문의 상급기사가 된 것을 축하합니다. 그리고 미셸님께서 당신을 마스터(군주의 보좌관 혹은 조언자)로 임명하셨어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 마스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당신도 마스터가 되었으니 나와 동등한 위치가 되었네요.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버나드 경.”

멜리사는 무뚝뚝한 말투로 훈장을 건네주며 버나드와 짧게 악수를 나누었다.

“미셸님……”

버나드가 얼떨떨해 하는 가운데, 멜리사가 새침하게 덧붙였다.

“하나 당부할게 있어요. 마스터라고 다 같은 마스터는 아니니 우리 백검대 일에는 끼어들지 말았으면 좋겠군요. 샤를리나님을 안전하게 제국까지 모셔다 드리는 일은  주도하에 이뤄질겁니다. 그것만 명심하고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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