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되찾는 노력, 수련40
동쪽에서 불어온 바람에 높게 자란 나무들의 무성한 나뭇잎이 부산스럽게 흔들거렸다.
서로 혈전을 벌이던 두 짐승.
멜라니아의 배위에 올라타 격렬하게 움직이던 버나드의 몸이 순간 경직되었다.
그의 머리끝까지 강한 쾌감이 몰려왔고 이내 정액을 벌컥벌컥 토해냈다.
“아아……”
멜라니아는 뜨거운 것이 아랫배에 가득 차오르는걸 느끼며 버나드의 상체를 부둥켜 끌어안은 채 황홀한 정사의 끝을 기분 좋게 음미했다.
사정을 마치고 탈진한 버나드가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왔을때, 멜라니아는 기다렸다는듯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근처에 있던 투명한 빈병을 집고는 몸안에 들어간 정액을 병안에 담아냈다.
바닥에 늘어져있던 버나드가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멜라니아가 가까이 다가와서 그의 늘어진 물건을 귀엽게 쓰다듬으며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즐긴건 즐긴거고 정력제는 만들어야지.”
***
멜라니아와 정사를 나눈 후 그녀의 적극적인 협력을 받을 수 있었다.
그녀는 매일밤 데보라를 데리고 숲속에 들어가, 달밤에 주문을 외우며 약초를 채집한뒤 그것으로 몇 종류의 약을 지어주었을뿐만 아니라 산짐승의 피를 모은 통에서 몸을 씻게 하는 등 여러 기묘한 방법으로 버나드의 마나수련을 도왔다.
이와 더불어 마나를 잘 다루기 위해 그녀가 제안한 방법중에는, 데보라와 매일 정해진 시간에 관계를 가져 질 나쁜 마나를 주기적으로 몸속에서 빼내야 한다거나 하루 중 태양이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을때 널따란 분지를 알몸으로 수십바퀴 뛰어야 한다는 등 일반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도통 이해못할 것들도 더러 있었으나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마나의 양과 자신의 능력을 보고 버나드는 잘못된 방법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쨌거나 멜라니아의 도움 덕분에 버나드의 능력은 나날이 진보했다.
체내의 마나량이 대폭 증가함과 더불어 얼마전에는 칼날에 검기를 싣는 것까지 가능해졌다.
전에는 검기가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왔다면 지금은 자유자재로 통제가 가능했다.
하지만 체내에 갑자기 마나가 대폭 상승하다보니 당연하다는듯이 부작용도 따랐다.
오래전 클레어가 손목에 당한 부상처럼, 체내에 존재하는 마나의 길이 하루아침에 홍수처럼 불어난 마나량을 감당못하며 신체 이곳저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바람에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뻔한 적도 있었다.
그때 멜라니아가 제때 치료를 해주지 않았더라면 버나드는 정말로 죽었을 것이다.
“초심자처럼 자만하다 큰일날뻔했군. 위험했어……”
“멍청한 녀석. 그러니 적당히 훈련을 해야지 무리하다 이 꼴이 난게다.”
멜라니아의 도움으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버나드는, 문득 그녀에게서 온정을 느꼈으나 금세 끔찍한 생각이라며 머리를 흔들며 지워버렸다.
가끔 그의 머릿속에 대뜸 멜라니아가 찾아와 전처럼 관계를 애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깃들었으나, 오히려 멜라니아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는듯 담담히 평범하게 잘 생활했다. 한 번의 정사로 수십년간 쌓여있던 욕정을 말끔히 씻어낸 것 같았다. 겉보기에 그녀는 아무 고민없는 사람처럼 쾌활했다.
분지에서 생활하는 동안 데보라는 그녀의 무기인 플레일을 틈틈히 휘두르며 수련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처음에 버나드는 잠깐 하다 말겠지라며 웃어넘겼는데, 날이 지날수록 그녀의 노력을 지켜보며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요며칠간 그녀의 수행을 봐주기도 했다.
플레일을 다루는 방법에 관해 잘 모르긴 하지만, 적어도 스파링 상대는 해줄 수 있었다.
“플레일이 무겁지 않아?”
“누나는 힘이 세잖아. 아주 거뜬해!”
“근데 왜 배우려는거야?”
“버나드를 지키고 싶어서란다?”
그동안 두 사람은 단짝처럼 지내면서 연인 그 이상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사실 버나드는 그녀를 연인으로 생각하기보다는 그저 친밀한 유대관계를 맺은 여자로만 여겼다.
그녀와 수시로 은밀한 밀회를 즐기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성인끼리의 유희일뿐, 데보라를 평생의 반려자로 삼고 싶은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 평생의 반려자에 가까운 여자는 오직 레아뿐이었고(레아조차 반려자라기 보단 그의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 자신을 위해 희생한 여자였기에 특별히 아낄뿐이다), 또 자신의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누군가와 가족을 형성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아무튼 2주간 분지에서 생활하면서 버나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외모뿐만 아니라 그의 내공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칼날에 검기를 싣는 것은 아주 우스울 정도였다.
물론 현재 그의 기량은 세븐로얄을 가졌을때의 전성기에 한참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가능성이 무궁무진했기에 언젠가는 그 모든 것을 터득하고 이내 전성기때의 기량을 넘어서고 말것이 분명했다.
한편, 버나드는 어느 순간부터 봉인된 기억이 돌아오지 않는 이상 현재 수준에서 더 윗단계로 올라갈 방법이 없는 한계에 부딪혔다.
지금까지는, 돌아온 기억들을 다듬고 숙련하고 개선시켜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에 주력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결국 바닥나버린 것이다.
버나드는 계속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갈구했다.
하지만 초록색 풀떼기 밖에 없는 분지에는 아무것도 없다.
책이 필요하고, 스승이 필요하고, 경험이 필요한 그였다.
분지에 틀어박혀서 혼자 골몰히 무언가를 창조해낸다는 것은 완전 불가능한 일이다.
무엇보다 시간이 부족했다.
“이곳에서 십년 머물 것도 아니고……”
그렇게 그루터기에 앉아 먼 경치를 바라보며 입안에 쓴맛만 감돌고 있을때, 불쑥 아킨테군에서 보낸 전령이 찾아왔다.
“휴, 꼭대기까지 올라오느라 힘들었습니다. 도중에 괴물도 만났는데 다행히 절 못보고 지나치지 뭡니까. 죽는줄 알았어요.”
죽다 살아났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 전령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고 나서 미셸의 말을 전했다.
“백검대가 곧 합류할 예정입니다. 버나드 경도 어서 돌아오시랍니다.”
“미셸님은?”
“합류지점까지 제아무리 빨리가도 족히 6일 이상은 걸릴테니 그 사이에 아킨테로 떠나시겠죠. 아마 뵙기 어려우실 겁니다. 참고로 백검대는 3일 후에 도착합니다.”
전령은 애당초 버나드의 이름만 알뿐 그의 얼굴은 잘 몰랐는지, 버나드가 많이 변했음에도 알아보지 못했다.
“산을 내려가자.”
“어머, 드디어 내려가는거야? 와~!”
“둘 다 이리와서 내 짐 챙기는 것 좀 도와주거라.”
버나드는 서둘러 짐을 꾸렸다.
처음 이곳에 왔을때만 해도 가져온건 달랑 칼과 말, 몸뿐이었으나 지난 2주간 생활하면서 별의 별것이 다 생겼다.
가져갈게 무척 많았는데 전부 멜라니아의 짐들이었다.
늙었을때는 몸뚱이 하나 움직이는 것도 힘들어하며 꼼짝도 안하더니, 젊어지니까 기운이 넘치는지 사방팔방 잘도 돌아다녔다.
그녀는 분지에서 생활하면서 각종 벌레를 잡아다 말리고, 약초를 채집해다 말리고, 덫을 놓아 짐승을 사냥해 그 고기와 가죽을 말리고, 또 그것들을 섞어 잡다한 것들을 만들고, 좌우지간 누가 마녀 아니랄까봐 그녀가 벌린 일들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야영지 주변에 지저분하게 널어 놓았던 것들을 모두 수거하니 네 사람이 들고 가기가 버거울 정도로 그 양이 상당했다.
버나드가 눈을 비비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부 못 들고 가겠는데.”
그의 눈에는 죄다 잡동사니로 밖에 안보였다.
“마차라도 구해오지 그러냐?”
꼭 가져가고 싶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멜라니아의 말에 데보라가 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마차가 여기까지 어떻게 올라와요.”
“누가 너한테 물어봤어?”
젊어져도 데보라한테 쏘아붙이는건 여전했다.
멜라니아는 데보라를 싫어하는게 아니라 같은 여자를 싫어했다.
“중요한것만 챙겨.”
버나드의 말로 결정이 났다.
멜라니아는 못마땅한듯 투덜거렸으나 많은 짐들을 가져갈 방법이 없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기에 구시렁대는게 오래가지 않았다. 그녀는 즉시 고르고 골라 필요한 물건만 챙겼다.
이후 세 사람은 전령과 함께 하산한뒤 서둘러 말을 달렸다.
전령은 본인이 타고 왔던 말을 혼자 타고 있었고, 버나드의 말에는 데보라와 멜라니아가 함께 타고 있었다.
그 결과 말이 빨리 달리지 못하는 것은 둘째치고 금세 지쳤다.
기존에는 버나드와 멜라니아의 덩치가 작아 말이 세 사람을 태울 수 있었다면 지금은 둘 다 건장한 성인남녀 체격이다보니 말이 못버티는 것이 당연했다.
버나드는 말이 침을 흘리며 헥헥 대는 것을 보고 즉각 달리는 것을 멈추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말이 무거워해서 안되겠어. 멜라니아는 저 사람이랑 같이 타.”
“싫다!”
“그럼 데보라가 저 사람이랑……”
“서운해 버나드, 누나도 싫거든?”
“하는 수 없지. 내가 저 사람이랑 탈……”
“안돼!”
“안돼!”
그리하여 아킨테군이 주둔하는 곳에 당도하기까지 예정된 시일보다 이틀이 더 걸렸고, 그 무렵 미셸과 니콜라스는 이미 아킨테 영지로 떠난 상태였다.
미셸이 떠나면서 기존 병력들 포함 플랫폼을 이용하던 외부인들도 전부 데려갔기에, 아킨테군의 야영지는 더 이상 플랫폼이라고 부를 수 없었고 백검대장이 이끄는 백검대라고 불러야할 판이었다. 주둔하고 있는 병력 전원이 백검대 소속이었다.
따라서 버나드 일행을 맞이한 것은 낯선 인물들로 구성된 백검대와 클레어 그리고 샤를뿐이었다.
“당신이 우리를 이틀씩이나 기다리게 만든 버나드 경이라고?”
버나드 일행이 야영지 입구에 다다랐을때, 보초를 서던 백검대 소속 기사들이 다가와 신원을 물어보고는 버나드 라는 것을 밝히자 갑자기 깔보는 눈빛으로 쳐다보며 코웃음을 쳤다.
“꼬마라고 들었는데?”